봄여름가을겨울 “25년간 우리의 야성은 진행형”

입력 2013.04.10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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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스톤스 오마주 한 데뷔 25주년 앨범 발표

내달 충무아트홀서 기념 공연.."故김현식, 감사하고 속상한 존재"

1982년 12월 24일 당시 뮤지션들의 사랑방인 방배동 카페 '시나브로'. 가수 문관철이 운영하는 이곳에서 김광민, 정원영 등 뮤지션들의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렸다.

이 자리엔 '막내급'인 동년배 둘이 끼어 있었다. '날티' 나는 고려대생 김종진(51, 보컬.기타)과 '교회 오빠' 같은 서강대생 전태관(51, 드럼)이었다.

이곳에서 처음 본 둘은 그땐 구하기 어려운 퓨전 재즈 앨범을 돌려 들으며 빠르게 친해졌다.

동갑내기인데다가 음악 취향이 같아 잘 통했다.

이 우연한 만남이 올해로 데뷔 25주년을 맞은 2인조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의 시작점이다.

수도여고 국사 선생이 꿈이던 김종진과 대기업에 입사하려던 전태관은 진로를 선회, 1986년 고(故) 김현식의 백밴드로 프로 뮤지션의 길로 들어섰다.

이어 봄여름가을겨울을 결성해 1988년 1집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를 냈고 강산이 두 번 반 변하는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켰다.

이를 기념해 둘은 이달 말께 봄여름가을겨울 데뷔 25주년 기념 앨범 '그르르릉!'(GRRRNG!)을 발표한다.
 
또 다음달 11-12일에는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총 2천석 규모의 기념 공연을 펼친다.

'거사'(巨事)를 앞둔 봄여름가을겨울을 지난 9일 홍대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지난해 신장의 7㎝짜리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전태관은 정기 검진을 받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20분가량 지각한 김종진이 "오늘도 예외 없이 늦었으니 벽 보고 벌을 서겠다"며 미안함을 전하자 전태관은 넉넉한 웃음을 지었다.

인터뷰 내내 같은 뜻으로 얘기하며 서로 답변을 보탠 둘은 양해를 넘어 이해가 되는 관계였다.

25주년 앨범은 지난해 발매된 영국 록밴드 롤링스톤스의 결성 50주년 기념 앨범 '그르르르!'(GRRR!)를 재치있게 패러디했다. 두 멤버는 "우리의 25년씩을 더하면 50주년 아닌가"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롤링스톤스를 오마주 했어요. 롤링스톤스 50주년 앨범 재킷에는 보컬 믹 재거의 입을 형상화한 혓바닥 로고 대신 고릴라가 혓바닥을 내민 모습이 담겼어요. 하지만 우린 범띠이고 한국색을 가미해 호랑이가 혓바닥을 내미는 그림으로 살짝 비틀었죠. 앨범 제목도 우리의 야성은 현재진행형(~ING)이란 뜻을 더해 '그르르릉'으로 변화를 줬고요. 하하."(김종진, 전태관)

앨범에는 신곡 한 곡과 대표곡들이 석 장의 CD에 담긴다.

대표곡은 90%가량 선곡한 상태로 지금껏 발표한 앨범에서 라이브 실황 버전과 스튜디오 녹음 버전을 망라해 골랐다.

신곡은 지난 2008년 8집 이후 5년 만이다. 신곡이 뜸했던데 대해 김종진은 "새로운 걸 하려 해도 아이디어가 고갈됐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전태관은 "이 친구, 한동안 창작의 샘이 말랐다"며 거들었다.

아직 제목이 미정인 신곡은 김종진이 작사, 작곡했다.

그는 아내가 잠자는 새벽 2시에 알람을 맞춰 일어나 커피 한잔에 잠을 깨고 고독하게 곡을 만들었다고 했다.

음악의 정체성과 요즘의 트렌드 사이에서 고민도 됐을 터. 곧 나올 조용필의 19집이 여러 세대가 공감할 젊고 감각적인 음악이라고 설명하자 그는 자신들은 조금 다른 의도를 갖고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얼마 전 미국 뮤지션인 보즈 스캑스(Boz Scaggs)의 앨범을 듣고 감명받았어요. 그의 음악은 단지 1970년대에 머문 게 아니라 그 시대가 정말 좋다고 느끼게 해줬죠. 우리도 살아온 시대의 정서를 담아 사람들이 언제라도 돌아가면 지키고 있는 등대 같은 음악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신곡은 엄마 손맛이 나지만 고리타분할지도 몰라요."(김종진)

기념 공연도 이러한 의도와 일맥상통한다. 1991년 2CD로 발표한 첫 라이브 앨범 수록곡을 레퍼토리로 결정했다.

당시 80만 장이 팔린 이 앨범에는 1990년 12월 30일 여의도 63빌딩에서 연 공연 실황이 담겼다.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떤이의 꿈' 등 대표곡들이 빼곡하다.

전태관은 "우리를 사랑해준 이들에게 의미 있는 공연이고 싶다"며 "그래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갖고 있을 1991년 라이브 앨범 곡을 선보이면 좋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김종진도 "'추억 팔이'를 좋아하지 않지만 한 번쯤은 실험 정신을 한켠에 두고 그분들을 위한 타임머신이 되기로 했다"며 "우리 음악은 기억을 돌려주는 도구이고 관객은 각자의 시간과 추억에 머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음악과 부대낀 이들의 삶도 돌아보니 참 다사다난했다.

"모든 기득권을 포기할 만큼 음악에 매료돼 시작했지만 봄여름가을겨울 1집을 내고 6개월간 손가락만 빨고 있었죠. 연습실이 없어 안양에 있는 서울음반에 가서 연습했고 어머니에게 30만원씩 용돈을 타서 썼어요. 그즈음 한영애 씨 공연 게스트로 나가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를 부르는데 엄청난 박수가 쏟아졌죠. 그 순간부터 취직 생각을 접었어요."(전태관)

"전 할 줄 아는 게 음악밖에 없어요. 물론 힘들 때마다 후회는 해요. 어젯밤에도 했고요. 하지만 계속하는 걸 보면 음악은 마약과 비슷한가 봐요. 하하."(김종진)

음악 초창기 만난 김현식이란 존재는 이들에게 '감사함'이자 '안타까움'으로 정리된다.

전태관은 "첫 걸음마 때부터 현식이 형 같은 뮤지션과 만났으니 그게 제일 감사하다"며 "그래서 우린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

김종진도 "현식이 형이 일찍 세상을 떠난 게 음악하며 가장 속상한 일"이라며 "형이 대마초로 망가질 때 더 잔인하게 말리지 못한 게 후회된다"고 돌아봤다.

선배 뮤지션들이 봄여름가을겨울을 이끌었듯이 이들도 대중음악 시장에서 후배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음악인들의 세대는 대체로 5년 단위로 주기가 넘어가요. 우리가 5년 위 선배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면 우린 5년 아래 세대에게 실험적인 음악을 제시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김종진, 전태관)

지난해에는 어떤 음악인도 선뜻 나서지 못할 시도를 해 화제가 됐다.

음악이 정액제 상품으로 덤핑 판매되고 무제한 스트리밍 되는데 반기를 들어 자신들이 정식 발매한 모든 앨범의 온라인 서비스를 중단했다.

김종진과 전태관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는데 우린 25년간 앨범을 스스로 제작해 저작권을 소유한 덕에 가능했다"며 "우린 처음부터 인디였고 지금도 야성이 꿈틀대는 인디"라고 강조했다.

그리고는 동고동락한 서로를 토닥이듯 훈훈한 덕담을 했다.

"둘이었기에 여기까지 왔어요. 내년이면 10년째인 '와인 콘서트'도 한해 쉬고 싶을 때면 서로 독려했죠. 이 친구는 제게 숙명이자 운명이에요."(전태관)

"음악으로 이윤 추구보다 행복 추구를 했어요. 우린 정말 가치관이 잘 맞아요."(김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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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여름가을겨울 “25년간 우리의 야성은 진행형”
    • 입력 2013-04-10 07:55:54
    연합뉴스
롤링스톤스 오마주 한 데뷔 25주년 앨범 발표 내달 충무아트홀서 기념 공연.."故김현식, 감사하고 속상한 존재" 1982년 12월 24일 당시 뮤지션들의 사랑방인 방배동 카페 '시나브로'. 가수 문관철이 운영하는 이곳에서 김광민, 정원영 등 뮤지션들의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렸다. 이 자리엔 '막내급'인 동년배 둘이 끼어 있었다. '날티' 나는 고려대생 김종진(51, 보컬.기타)과 '교회 오빠' 같은 서강대생 전태관(51, 드럼)이었다. 이곳에서 처음 본 둘은 그땐 구하기 어려운 퓨전 재즈 앨범을 돌려 들으며 빠르게 친해졌다. 동갑내기인데다가 음악 취향이 같아 잘 통했다. 이 우연한 만남이 올해로 데뷔 25주년을 맞은 2인조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의 시작점이다. 수도여고 국사 선생이 꿈이던 김종진과 대기업에 입사하려던 전태관은 진로를 선회, 1986년 고(故) 김현식의 백밴드로 프로 뮤지션의 길로 들어섰다. 이어 봄여름가을겨울을 결성해 1988년 1집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를 냈고 강산이 두 번 반 변하는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켰다. 이를 기념해 둘은 이달 말께 봄여름가을겨울 데뷔 25주년 기념 앨범 '그르르릉!'(GRRRNG!)을 발표한다.   또 다음달 11-12일에는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총 2천석 규모의 기념 공연을 펼친다. '거사'(巨事)를 앞둔 봄여름가을겨울을 지난 9일 홍대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지난해 신장의 7㎝짜리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전태관은 정기 검진을 받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20분가량 지각한 김종진이 "오늘도 예외 없이 늦었으니 벽 보고 벌을 서겠다"며 미안함을 전하자 전태관은 넉넉한 웃음을 지었다. 인터뷰 내내 같은 뜻으로 얘기하며 서로 답변을 보탠 둘은 양해를 넘어 이해가 되는 관계였다. 25주년 앨범은 지난해 발매된 영국 록밴드 롤링스톤스의 결성 50주년 기념 앨범 '그르르르!'(GRRR!)를 재치있게 패러디했다. 두 멤버는 "우리의 25년씩을 더하면 50주년 아닌가"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롤링스톤스를 오마주 했어요. 롤링스톤스 50주년 앨범 재킷에는 보컬 믹 재거의 입을 형상화한 혓바닥 로고 대신 고릴라가 혓바닥을 내민 모습이 담겼어요. 하지만 우린 범띠이고 한국색을 가미해 호랑이가 혓바닥을 내미는 그림으로 살짝 비틀었죠. 앨범 제목도 우리의 야성은 현재진행형(~ING)이란 뜻을 더해 '그르르릉'으로 변화를 줬고요. 하하."(김종진, 전태관) 앨범에는 신곡 한 곡과 대표곡들이 석 장의 CD에 담긴다. 대표곡은 90%가량 선곡한 상태로 지금껏 발표한 앨범에서 라이브 실황 버전과 스튜디오 녹음 버전을 망라해 골랐다. 신곡은 지난 2008년 8집 이후 5년 만이다. 신곡이 뜸했던데 대해 김종진은 "새로운 걸 하려 해도 아이디어가 고갈됐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전태관은 "이 친구, 한동안 창작의 샘이 말랐다"며 거들었다. 아직 제목이 미정인 신곡은 김종진이 작사, 작곡했다. 그는 아내가 잠자는 새벽 2시에 알람을 맞춰 일어나 커피 한잔에 잠을 깨고 고독하게 곡을 만들었다고 했다. 음악의 정체성과 요즘의 트렌드 사이에서 고민도 됐을 터. 곧 나올 조용필의 19집이 여러 세대가 공감할 젊고 감각적인 음악이라고 설명하자 그는 자신들은 조금 다른 의도를 갖고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얼마 전 미국 뮤지션인 보즈 스캑스(Boz Scaggs)의 앨범을 듣고 감명받았어요. 그의 음악은 단지 1970년대에 머문 게 아니라 그 시대가 정말 좋다고 느끼게 해줬죠. 우리도 살아온 시대의 정서를 담아 사람들이 언제라도 돌아가면 지키고 있는 등대 같은 음악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신곡은 엄마 손맛이 나지만 고리타분할지도 몰라요."(김종진) 기념 공연도 이러한 의도와 일맥상통한다. 1991년 2CD로 발표한 첫 라이브 앨범 수록곡을 레퍼토리로 결정했다. 당시 80만 장이 팔린 이 앨범에는 1990년 12월 30일 여의도 63빌딩에서 연 공연 실황이 담겼다.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떤이의 꿈' 등 대표곡들이 빼곡하다. 전태관은 "우리를 사랑해준 이들에게 의미 있는 공연이고 싶다"며 "그래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갖고 있을 1991년 라이브 앨범 곡을 선보이면 좋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김종진도 "'추억 팔이'를 좋아하지 않지만 한 번쯤은 실험 정신을 한켠에 두고 그분들을 위한 타임머신이 되기로 했다"며 "우리 음악은 기억을 돌려주는 도구이고 관객은 각자의 시간과 추억에 머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음악과 부대낀 이들의 삶도 돌아보니 참 다사다난했다. "모든 기득권을 포기할 만큼 음악에 매료돼 시작했지만 봄여름가을겨울 1집을 내고 6개월간 손가락만 빨고 있었죠. 연습실이 없어 안양에 있는 서울음반에 가서 연습했고 어머니에게 30만원씩 용돈을 타서 썼어요. 그즈음 한영애 씨 공연 게스트로 나가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를 부르는데 엄청난 박수가 쏟아졌죠. 그 순간부터 취직 생각을 접었어요."(전태관) "전 할 줄 아는 게 음악밖에 없어요. 물론 힘들 때마다 후회는 해요. 어젯밤에도 했고요. 하지만 계속하는 걸 보면 음악은 마약과 비슷한가 봐요. 하하."(김종진) 음악 초창기 만난 김현식이란 존재는 이들에게 '감사함'이자 '안타까움'으로 정리된다. 전태관은 "첫 걸음마 때부터 현식이 형 같은 뮤지션과 만났으니 그게 제일 감사하다"며 "그래서 우린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 김종진도 "현식이 형이 일찍 세상을 떠난 게 음악하며 가장 속상한 일"이라며 "형이 대마초로 망가질 때 더 잔인하게 말리지 못한 게 후회된다"고 돌아봤다. 선배 뮤지션들이 봄여름가을겨울을 이끌었듯이 이들도 대중음악 시장에서 후배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음악인들의 세대는 대체로 5년 단위로 주기가 넘어가요. 우리가 5년 위 선배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면 우린 5년 아래 세대에게 실험적인 음악을 제시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김종진, 전태관) 지난해에는 어떤 음악인도 선뜻 나서지 못할 시도를 해 화제가 됐다. 음악이 정액제 상품으로 덤핑 판매되고 무제한 스트리밍 되는데 반기를 들어 자신들이 정식 발매한 모든 앨범의 온라인 서비스를 중단했다. 김종진과 전태관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는데 우린 25년간 앨범을 스스로 제작해 저작권을 소유한 덕에 가능했다"며 "우린 처음부터 인디였고 지금도 야성이 꿈틀대는 인디"라고 강조했다. 그리고는 동고동락한 서로를 토닥이듯 훈훈한 덕담을 했다. "둘이었기에 여기까지 왔어요. 내년이면 10년째인 '와인 콘서트'도 한해 쉬고 싶을 때면 서로 독려했죠. 이 친구는 제게 숙명이자 운명이에요."(전태관) "음악으로 이윤 추구보다 행복 추구를 했어요. 우린 정말 가치관이 잘 맞아요."(김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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