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해설] 잘못된 관행과 결별할 때

입력 2013.05.07 (07:34) 수정 2013.05.07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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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근 해설위원]

그것이 잘못일지라도 익숙한 관행을 끊어내기는 참 힘듭니다. 사회적 계약 관계, 이른바 갑과 을 사이에선 더 그렇습니다. 한 식품대기업의 욕설파문은 이제 이대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공분마저 일으키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공개된 녹취록의 충격은 욕설이 주는 모멸감을 훨씬 뛰어 넘습니다. 을의 위치에 있는 상대편을 낭떠러지로 몰아붙이는 구조화된 일그러진 상거래현실을 고발합니다. 물건 떠넘기기는 물론 발주프로그램까지 조작했다거나 심지어는 유효기간이 임박한 제품을 강제로 할당했다는 증언들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더 이상 못 견디겠다는 이런 외침이 이 업종, 이번 경우 뿐 이던가요? 올해 들어서만 편의점주 세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지난 5년 새 대기업편의점은 두 배 가까이 늘었지만 가맹점주 수익은 수직 하락해서 한 달 백만 원 벌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빵집이나 커피체인점, 치킨점 등 프랜차이즈업종은 또 어떤가요? 주기적으로 수 천만 원 인테리어를 강요받거나 어느 날 갑자기 같은 지역에 신규 출점시켜도 참아야합니다. 대기업이 자본의 힘으로 밀어붙이면 사실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법과 제도엔 으례껏 허점이 있기 마련이고요, 이번에 사회적 파장이 컸던 건 인터넷과 SNS에서 확장된 밑바닥 여론 때문이었습니다. 대기업의 소매영역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우리 사회 곳곳의 이런 파열음은 적당한 선에서 무마하는 단계를 이미 지난 듯합니다. 당국의 과태료부과나 일회성 수사는 잠시 덮어뒀다가 나중에 환부를 더 키울 뿐입니다. 기업간, 또 기업과 개인간 계약 관계에서 현저하게 힘의 균형이 무너졌다면 그걸 바로잡을 책무는 당연히 정부당국에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일방적인 갑과 을 계약 관계를 수직에서 수평으로, 굴종에서 공존으로 바꾸는 근원적인 해결책이 나와야합니다. 경제민주화나 사회정의로 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미루거나 또 머뭇거린다면 불만은 커질 것입니다. 잘못된 관행에 대한 분노의 에너지를 모아서 단호하게 끊어내서 다시 세워야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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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해설] 잘못된 관행과 결별할 때
    • 입력 2013-05-07 07:36:11
    • 수정2013-05-07 07:5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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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근 해설위원]

그것이 잘못일지라도 익숙한 관행을 끊어내기는 참 힘듭니다. 사회적 계약 관계, 이른바 갑과 을 사이에선 더 그렇습니다. 한 식품대기업의 욕설파문은 이제 이대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공분마저 일으키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공개된 녹취록의 충격은 욕설이 주는 모멸감을 훨씬 뛰어 넘습니다. 을의 위치에 있는 상대편을 낭떠러지로 몰아붙이는 구조화된 일그러진 상거래현실을 고발합니다. 물건 떠넘기기는 물론 발주프로그램까지 조작했다거나 심지어는 유효기간이 임박한 제품을 강제로 할당했다는 증언들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더 이상 못 견디겠다는 이런 외침이 이 업종, 이번 경우 뿐 이던가요? 올해 들어서만 편의점주 세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지난 5년 새 대기업편의점은 두 배 가까이 늘었지만 가맹점주 수익은 수직 하락해서 한 달 백만 원 벌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빵집이나 커피체인점, 치킨점 등 프랜차이즈업종은 또 어떤가요? 주기적으로 수 천만 원 인테리어를 강요받거나 어느 날 갑자기 같은 지역에 신규 출점시켜도 참아야합니다. 대기업이 자본의 힘으로 밀어붙이면 사실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법과 제도엔 으례껏 허점이 있기 마련이고요, 이번에 사회적 파장이 컸던 건 인터넷과 SNS에서 확장된 밑바닥 여론 때문이었습니다. 대기업의 소매영역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우리 사회 곳곳의 이런 파열음은 적당한 선에서 무마하는 단계를 이미 지난 듯합니다. 당국의 과태료부과나 일회성 수사는 잠시 덮어뒀다가 나중에 환부를 더 키울 뿐입니다. 기업간, 또 기업과 개인간 계약 관계에서 현저하게 힘의 균형이 무너졌다면 그걸 바로잡을 책무는 당연히 정부당국에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일방적인 갑과 을 계약 관계를 수직에서 수평으로, 굴종에서 공존으로 바꾸는 근원적인 해결책이 나와야합니다. 경제민주화나 사회정의로 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미루거나 또 머뭇거린다면 불만은 커질 것입니다. 잘못된 관행에 대한 분노의 에너지를 모아서 단호하게 끊어내서 다시 세워야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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