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나리는 호남선’ 손인호, 아들과 한 무대

입력 2013.05.17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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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박성서의 토크 콘서트' 출연

'비 나리는 호남선'을 부른 원로가수 손인호(본명 손효찬·86)가 아들인 가수 손동준과 함께 공연 무대에 오른다.

손인호는 오는 18일 오후 5시 서울 관악구 서울대입구역 인근 라이브 레스토랑 '7080 가요무대'에서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가 진행하는 '박성서의 토크 콘서트'에 출연해 자신의 음악 인생과 대표곡을 들려준다.

그는 이날 무대에서 북한에서 내려와 '얼굴 없는 가수'로 산 사연과 데뷔곡 '나는 울었네'를 비롯해 '비 나리는 호남선' '해운대 엘레지' 등의 대표곡을 들려준다.

또 그의 장남인 손동준은 아버지의 노래 '울어라 기타줄'과 자신의 노래 '러브샷'을 노래한다.

또 공연에 참여한 팬들이 참가하고 손 부자가 심사하는 '손인호 노래부르기 대회' 코너도 마련된다.

1927년 평안북도 창성 출생인 손인호는 평양에서 열린 노래자랑대회인 '관서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하고는 가수가 되고자 1946년 상경했다.

당시 작곡가 김해송이 이끈 KPK악단에서 실시한 가수 모집에 응모해 1등을 차지하며 악단 생활을 시작했다.

이어 윤부길 씨가 이끄는 '부길부길쇼단'에서 가수로 활동했지만 한국전쟁이 터져 군예대에 들어가 '군번 없는 용사'로 전쟁터를 누볐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1950년대부터 라디오와 스크린을 동시에 장악했지만 '얼굴 없는 가수'였다는 점이다.

박성서 씨는 "손인호 씨가 '한 많은 대동강'을 비롯해 '울어라 기타줄' '하룻밤 풋사랑' '해운대 엘레지' '비 나리는 호남선' 등 1950-60년대를 대표하는 숱한 노래들을 히트시키며 정상에 서 있는 동안에도 방송은 물론 일반 무대에서도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어 "톱 가수 반열에 오른 1955년 결혼 당시 부인조차 그가 가수였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그의 원래 직업은 영화 녹음기사였다.

가수로 150여 곡을 발표했지만 영화 녹음 기사로는 무려 2천여 편 이상의 영화 녹음 작업을 진행한 인물이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 '로맨스 빠빠' '빨간 마후라' '미워도 다시 한번' 등이 그가 녹음 작업을 한 영화들로 그는 대종상 녹음상 등을 무려 일곱 차례 수상했지만 한 시대를 대표한 가수로 받은 상은 단 한 차례도 없다.

박씨는 "TV 브라운관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게 지난 2001년 KBS '가요무대' 특집방송의 '얼굴 없는 가수 손인호 편'이었다"며 "2003년 뒤늦게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에 입회해 76세에 비로소 가수의 적을 둔 셈이고 같은 해 40여 년 만의 신곡 '휴전선아 말해다오'를 발표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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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 나리는 호남선’ 손인호, 아들과 한 무대
    • 입력 2013-05-17 22:48:39
    연합뉴스
18일 '박성서의 토크 콘서트' 출연 '비 나리는 호남선'을 부른 원로가수 손인호(본명 손효찬·86)가 아들인 가수 손동준과 함께 공연 무대에 오른다. 손인호는 오는 18일 오후 5시 서울 관악구 서울대입구역 인근 라이브 레스토랑 '7080 가요무대'에서 대중음악평론가 박성서가 진행하는 '박성서의 토크 콘서트'에 출연해 자신의 음악 인생과 대표곡을 들려준다. 그는 이날 무대에서 북한에서 내려와 '얼굴 없는 가수'로 산 사연과 데뷔곡 '나는 울었네'를 비롯해 '비 나리는 호남선' '해운대 엘레지' 등의 대표곡을 들려준다. 또 그의 장남인 손동준은 아버지의 노래 '울어라 기타줄'과 자신의 노래 '러브샷'을 노래한다. 또 공연에 참여한 팬들이 참가하고 손 부자가 심사하는 '손인호 노래부르기 대회' 코너도 마련된다. 1927년 평안북도 창성 출생인 손인호는 평양에서 열린 노래자랑대회인 '관서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하고는 가수가 되고자 1946년 상경했다. 당시 작곡가 김해송이 이끈 KPK악단에서 실시한 가수 모집에 응모해 1등을 차지하며 악단 생활을 시작했다. 이어 윤부길 씨가 이끄는 '부길부길쇼단'에서 가수로 활동했지만 한국전쟁이 터져 군예대에 들어가 '군번 없는 용사'로 전쟁터를 누볐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1950년대부터 라디오와 스크린을 동시에 장악했지만 '얼굴 없는 가수'였다는 점이다. 박성서 씨는 "손인호 씨가 '한 많은 대동강'을 비롯해 '울어라 기타줄' '하룻밤 풋사랑' '해운대 엘레지' '비 나리는 호남선' 등 1950-60년대를 대표하는 숱한 노래들을 히트시키며 정상에 서 있는 동안에도 방송은 물론 일반 무대에서도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어 "톱 가수 반열에 오른 1955년 결혼 당시 부인조차 그가 가수였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그의 원래 직업은 영화 녹음기사였다. 가수로 150여 곡을 발표했지만 영화 녹음 기사로는 무려 2천여 편 이상의 영화 녹음 작업을 진행한 인물이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 '로맨스 빠빠' '빨간 마후라' '미워도 다시 한번' 등이 그가 녹음 작업을 한 영화들로 그는 대종상 녹음상 등을 무려 일곱 차례 수상했지만 한 시대를 대표한 가수로 받은 상은 단 한 차례도 없다. 박씨는 "TV 브라운관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게 지난 2001년 KBS '가요무대' 특집방송의 '얼굴 없는 가수 손인호 편'이었다"며 "2003년 뒤늦게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에 입회해 76세에 비로소 가수의 적을 둔 셈이고 같은 해 40여 년 만의 신곡 '휴전선아 말해다오'를 발표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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