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원정 산악인 인명 사고 왜 빈발하나

입력 2013.05.22 (17:24) 수정 2013.05.22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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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산악인들의 잇따른 사고 소식이 전해져 계속 되풀이되는 딜레마가 또 물 위로 떠올랐다.

왜 존엄한 생명을 담보로 고산의 험로를 등반하느냐의 물음이다.

히말라야 고지대는 생명체가 살지 않을 정도로 사람이 발을 디디기에 위험한 곳이다.

그러나 등산의 본질은 그런 위험을 극복하는 데 있다는 게 산악인들의 공통된 정신세계로 보인다.

남선우 대한산악연맹 등산교육원 원장은 "알피니즘이라는 모험은 아주 주관적인 무형의 가치, 자아실현을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산악인들이 지독한 육체적 괴로움을 겪더라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자아실현에 중독성에 있다고 그는 분석했다.

남 원장은 "등산을 통해 얻은 성취감, 쾌감은 임팩트가 매우 강하고 오래 남는다"며 "그 경지를 경험한 산악인은 끊임없이 자기 가능성, 잠재력을 확인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고산 사고는 눈사태와 같은 어쩔 수 없는 재해나 동행하는 동료의 부상 등 갖가지 이변 때문에 발생한다.

남 원장은 고산 등반을 보는 한국 사회의 그릇된 인식도 사고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적했다.

등산을 스포츠 경기처럼 여기는 국민과 언론이 사고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남 원장은 "정상은 종착점이 아니다"며 "성공적인 등산은 정상에 갔다가 안전하게 집에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능한 산악인은 살아서 돌아오는 '포기할 줄 아는 용기'가 있다"며 "그러나 바라보는 사람이 많으면 쉽게 등정을 포기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등반가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가 아니라 스포츠 기록과 같은 계량화한 업적이 등반의 성취도를 결정할 때 '포기하는 용기'가 흔들린다는 설명이다.

남 원장은 "등산은 스포츠와 달리 규칙이 없고 똑같은 환경에서 이뤄지는 경쟁도 아니다"며 "14좌를 오른 이가 12좌를 오른 이보다 훌륭한 것도 아니고 6,000m 등반이 8,000m 등반보다 가치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높이 지향주의, 결과 지상주의처럼 널리 퍼진 인식이 개선돼야 알피니즘 본질에 걸맞고 더 안전한 등산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결과 지상주의와 관련해 국내에서는 산악 사고가 불거질 때마다 등산을 후원하는 아웃도어 업체들이 비판을 받곤 한다.

기업들이 마케팅을 위해 더 험난한 등반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남 원장은 "기업으로서는 억울한 면이 있다"며 "산에 간다고 하는 산악인들을 후원한 뒤 사고가 나면 모든 오명을 뒤집어쓴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산악인은 기업 후원이 사고를 부추긴다는 것은 선후가 뒤바뀐 시각이라고 지적했다.

이 산악인은 "모든 비판을 한몸에 받을 수 있는 큰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투자하는 기업이 어디 있겠느냐"며 "대다수 기업은 산악인들의 부탁을 받아 등반 기회를 마련해주는 차원에서 후원에 나선다"고 말했다.

에베레스트를 한국인 최초로 등정한 고(故) 고상돈 씨와 함께 1979년 미국 매킨리를 등정한 뒤 중상을 입고 홀로 살아남은 원로 산악인 박훈규 씨는 산악인들이 등반과 사고에 대한 품는 일반적 인식을 이렇게 풀어놓았다.

"산악인들은 고산으로 떠날 때 '사고'라는 장비를 함께 배낭에 쌉니다. 나오면 안 되는 이 장비를 배낭에서 꺼낼 일이 없이 돌아올 때 그 등반은 성공한 등반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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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원정 산악인 인명 사고 왜 빈발하나
    • 입력 2013-05-22 17:24:27
    • 수정2013-05-22 17:27:59
    연합뉴스
최근 산악인들의 잇따른 사고 소식이 전해져 계속 되풀이되는 딜레마가 또 물 위로 떠올랐다. 왜 존엄한 생명을 담보로 고산의 험로를 등반하느냐의 물음이다. 히말라야 고지대는 생명체가 살지 않을 정도로 사람이 발을 디디기에 위험한 곳이다. 그러나 등산의 본질은 그런 위험을 극복하는 데 있다는 게 산악인들의 공통된 정신세계로 보인다. 남선우 대한산악연맹 등산교육원 원장은 "알피니즘이라는 모험은 아주 주관적인 무형의 가치, 자아실현을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산악인들이 지독한 육체적 괴로움을 겪더라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자아실현에 중독성에 있다고 그는 분석했다. 남 원장은 "등산을 통해 얻은 성취감, 쾌감은 임팩트가 매우 강하고 오래 남는다"며 "그 경지를 경험한 산악인은 끊임없이 자기 가능성, 잠재력을 확인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고산 사고는 눈사태와 같은 어쩔 수 없는 재해나 동행하는 동료의 부상 등 갖가지 이변 때문에 발생한다. 남 원장은 고산 등반을 보는 한국 사회의 그릇된 인식도 사고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적했다. 등산을 스포츠 경기처럼 여기는 국민과 언론이 사고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남 원장은 "정상은 종착점이 아니다"며 "성공적인 등산은 정상에 갔다가 안전하게 집에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능한 산악인은 살아서 돌아오는 '포기할 줄 아는 용기'가 있다"며 "그러나 바라보는 사람이 많으면 쉽게 등정을 포기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등반가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가 아니라 스포츠 기록과 같은 계량화한 업적이 등반의 성취도를 결정할 때 '포기하는 용기'가 흔들린다는 설명이다. 남 원장은 "등산은 스포츠와 달리 규칙이 없고 똑같은 환경에서 이뤄지는 경쟁도 아니다"며 "14좌를 오른 이가 12좌를 오른 이보다 훌륭한 것도 아니고 6,000m 등반이 8,000m 등반보다 가치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높이 지향주의, 결과 지상주의처럼 널리 퍼진 인식이 개선돼야 알피니즘 본질에 걸맞고 더 안전한 등산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결과 지상주의와 관련해 국내에서는 산악 사고가 불거질 때마다 등산을 후원하는 아웃도어 업체들이 비판을 받곤 한다. 기업들이 마케팅을 위해 더 험난한 등반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남 원장은 "기업으로서는 억울한 면이 있다"며 "산에 간다고 하는 산악인들을 후원한 뒤 사고가 나면 모든 오명을 뒤집어쓴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산악인은 기업 후원이 사고를 부추긴다는 것은 선후가 뒤바뀐 시각이라고 지적했다. 이 산악인은 "모든 비판을 한몸에 받을 수 있는 큰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투자하는 기업이 어디 있겠느냐"며 "대다수 기업은 산악인들의 부탁을 받아 등반 기회를 마련해주는 차원에서 후원에 나선다"고 말했다. 에베레스트를 한국인 최초로 등정한 고(故) 고상돈 씨와 함께 1979년 미국 매킨리를 등정한 뒤 중상을 입고 홀로 살아남은 원로 산악인 박훈규 씨는 산악인들이 등반과 사고에 대한 품는 일반적 인식을 이렇게 풀어놓았다. "산악인들은 고산으로 떠날 때 '사고'라는 장비를 함께 배낭에 쌉니다. 나오면 안 되는 이 장비를 배낭에서 꺼낼 일이 없이 돌아올 때 그 등반은 성공한 등반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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