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박의 ‘고독한 싸움’

입력 2013.05.24 (23:02) 수정 2013.05.24 (23:3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프롤로그>

그가 돌아왔습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리는, 유진 박

말끔하게 차려입은 정장, 객석을 배경으로 한 정통 클래식 공연 포스터와 함께, 대중에게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인터넷에는 그의 옛 명성과 걸맞지 않은 공연 영상들이 떠돌고 있습니다.

사실, 유진 박은 좀 아픕니다.

그는 병과 고독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이올린에 대한 그의 열정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감금과 폭행이라는 상상하기 힘든 상처를 떨치고 재기에 나선 유진 박, 지금의 그는 어떤 마음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을까.

유진 박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부처님 오신 날 경남 김해의 한 사찰.

한바탕 신명나는 공연이 끝나자 차량 한 대가 들어섭니다.

<녹취> "안녕하십니까? 전자 바이올리니스트 유진 박입니다."

유진 박을 알아본 사람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었습니다.

<인터뷰> 유한광(경남 김해시 삼안동) : "TV에서도 많이 보니까 유명한 것 같은데, 그 뭐 매니저랑 그런 사람들이 잘못한다, 그런 얘기도 있고, 좀 낭설이 있더라고요."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공연에 나선 유진 박의 자세는 사뭇 진지합니다.

대웅전 앞마당에서 펼쳐진 유진 박의 공연은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며 한 시간가량 흥겹게 이어졌습니다.

<인터뷰> 김영순(경남 김해시 삼방동) : "저는 처음 뵙는 분이고, TV 에서만 봤어요. 굉장히 오래됐지? 안본지가? 너무 즐겁고요. 그런데 그분이 너무 신 같아요. 너무 잘 해요."

무대 위의 유진 박은 빛났습니다.

<인터뷰> 유진 박 : "조금 더 열심히 했어요. 만족해. (피곤하지 않아요?) 난 피곤하지 않아요. 또 하고 싶어요."

팬들의 선물 공세도 이어집니다.

<녹취> "아이 러브 유(지우 이 그림 누구 그린 거야?) 유진 박 아저씨 (아저씨 멋졌어?) "

공연을 마친 유진 박은 급히 사찰을 떠났습니다.

오늘은 두 달 만에 어머니를 만나는 날입니다.

미국에 거주하는 어머니가 커다란 선물을 가지고 아들을 찾아왔습니다.

<녹취> 이장주(유진 박 어머니) : "유진아, 이거 뉴욕에서 가져왔는데 한번 켜봐라. 소리가 제대로 나는지.(뉴욕에서?)"

아들의 정성스런 연주를 어머니는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모처럼 함께하는 식사, 서른여덟 살의 어리광이 시작됩니다.

<녹취> 유진 박 : "어머니 와서 제가 기분이 되게 좋아요. 왜냐면 더 편하니까. 엄마 없었을 때, 엄마 미국에 있었을 때, 항상 (엄마) 말 잘 들었어요. 말씀 그대로."

유진 박의 지하철역 공연, 누군가 또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를 괴롭혀 억지로 지하철역까지 끌어내 공연을 하게 한 것 아니냐는 논란을 불렀습니다.

<인터뷰> 이장주(유진 박 어머니) : "그게 그런 게 아니에요. 사실 얘는 좋아서 하고, 저도 그렇고."

유진 박이 청중을 만나러 일부러 지하철 공연을 했다는 것.

<인터뷰> 이장주(유진 박 어머니) : "자기가 음악을 하면서 행복감을 느끼고 조금이라도 연관을 만들거든요. 사람들이랑, 사인해주는 걸 그렇게 좋아해요. 공연 끝나면 악수하고 사인해요. 그러면서 그런 걸 보면 힐링이 어디 딴 데 있습니까? 자기의 행복지수가 높아지는 게 힐링이지."

유진 박을 아끼는 사람들 중에는 어머니와 조금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인터뷰> 양욱진(인제대 음악학과 교수/줄리아드 음대 동문) : "제가 보는 유진 박이라는 바이올리니스트는 정말로 세계적으로 능력도 있고, 어렸을 때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라고도 얘기 들었고요. 정말 그런 식으로 봤을 때 정말 아무 데나 가서 쉽게 연주를 물론 하는 것도 좋지만 격이 갖춰진 무대에서, 격이 갖춰진 대우를 받으면서 연주하면 좋겠다는 친구로서 옆에서 보기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양 교수의 바람대로 유진 박과 친구들은 다음달 커다란 클래식 무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바이올린과 첼로, 그리고 피아노.

대학 시절 종종 이렇게 모여 연주를 하곤 했습니다.

<인터뷰> 양욱진 : "같이 연습해 보고 이러다 보니까 역시 어렸을 때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소리를 들을 만한 실력을 아직도 가지고 있고요. 그 가슴 안에 불씨도 살아 있고, 그 다음에 정말 음악에 빠져서 같이 연주할 수 있는 이런 바이올리니스트라고 생각을 해요."

지난 1996년 혜성처럼 등장한 유진 박은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우리 문화예술계를 강타했습니다.

앨범 100만 장 판매에 대통령 취임식 축하 연주까지, 그는 정상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2009년 유진 박은 놀라운 뉴스 속의 주인공이 돼 나타납니다.

<녹취> 유진 박(2009년 당시) : "여관에 있는 것에 대해 알아보니, 좋은 일이 아니었어요."

당시 소속사에서는 유진 박의 출연료를 가로채고 감금에 폭행까지 일삼았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유진 박의 어머니에게도 끔찍했던 기억입니다.

<인터뷰> 이장주(유진박 어머니) : "전 기획사에서 3년 반을 어디로 데리고 가서, 저한테도 또 (한국에) 들어오면, 큰일이 벌어질 거라고. 잘못하면 손가락을 자른다고 그런 식으로 협박이 들어오고, 그런 이유로 혼자서 3년 반을 로드 매니저들이 군대 금방 끝나고 온 녀석들이, 군대식으로 (하고), 배도 막 때리고, 때리면 배만 때린대요. 그렇다고 슬픈 얘기를 해요."

대학을 졸업할 즈음 유진 박에게 찾아온 조울증은 이 사건 이후 더 악화됐습니다.

<인터뷰> 이장주 : "(조울증이) 보통 스무 살 이후에 생겨요. 대학교 졸업 조금 전에 생겼어요. 유진이는. 매니저가 전화가 갑자기 왔어요. 유진이가 갑자기 방송 출연이 다 잡혀있는데 나가서 머리를 박박 깎고 들어왔대요."

어머니는 유진 박의 조울증도 다른 병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강조합니다.

<인터뷰> 이장주 : "보통 한국 부모님들은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게, 참 딱하다 불쌍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 하나도 불쌍한 게 아니에요. 당뇨병 환자가 당뇨병 인슐린 수치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기 때문에 그런 증상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울증도) 뇌에 세로토닌 수치가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것처럼 같은 레벨로 생각하면 (다르지 않습니다.)"

음악을 함께 해온 친구들은 유진 박의 건강에 대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양욱진(인제대 음악학과 교수/줄리아드 음대 동문) : "저희 음악 하는 사람들은 신났다 안 신났다 이런 생활을 반복하고 살고 있다고 보면 되는데, 유진 박은 감정과 음악을 하고 싶은 불씨가 안에 굉장히 강해서 그게 심하게 나타나는 것 같아요. 제 생각엔 연습하고 관리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유진 박 3집 앨범에 수록된 '왕따'를 주제로 한 노랩니다.

고등학교 시절 심한 따돌림을 당한 상처의 기억을 되짚은 노래입니다.

위로를 받고 싶었던 그때의 마음을 전하던 노래.

<인터뷰> 유진 박 : "제가 고등학교 다녔을 때, 왕따였어요. 이유는 운동 못했으니까. 스포츠 저는 농구 못해요. 손가락 다치면 안 됩니다. 그리고 풋볼도 못해요. 운동 못해요. 제가 학교 다닐 때 얘들 나한테 막 '너 농구 못 하지 이리와 너 손보자. 너 바이올린 하지? 너 손 깨지면 어떡해?' 깨질 뻔했어요. 고등학교 다닐 때 두 번 그랬어요."

자신의 음악이 이런 아픔을 가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인터뷰> 유진 박 : "제가 전자 바이올린 켤 때 항상 이런 것 기억합니다. 왕따 당했던 애들, 예를 들어 자살하고 싶은 애들. 그래서 이런 사람들 위해서 전자 바이올린 하는 거예요."

그는 아직도 전자 바이올린이 꿈입니다.

<인터뷰> 유진 박 : "저는 전자 바이올리니스트예요. 그리고 비올리스트인데, 제가 전자 바이올린 할 때 되게 행복해요. 전자 바이올린 약간 중독 같아요. 어디나 큰 무대, 작은 무대, 작은 클럽, 큰 무대, 어디나. 전자 바이올린은 중독이에요."

바이올린에 대한 열정 이면에 존재하는 유진 박의 아픔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까.

<인터뷰> 서천석(정신과 전문의) : "질병은 그분이 가지고 있는 것에 한 5퍼센트, 10퍼센트에 불과하고 더 많은 부분은, 그분은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질병이 아닌 그분만의 어떤 재능도 있을 수 있을 것이고, 그분만의 어떤 행복, 그분의 어떤 기쁨 슬픔 아픔 다 있는데 그것을 포괄적으로 이해해야지 우리가 그분을 정확히 이해한다고 볼 수 있고, 또 그분이 더 행복한 삶을 사는 데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 마지막까지 무대에 서고 싶다는 유진 박.

오늘은 특별한 장소에 섰습니다.

행사나 초청 공연이 아니라, 유진 박만의 무댑니다.

전자 바이올린 하나 들고 고국에 첫발을 디뎠던 유진 박이 국내에서 처음 연주했던 곳이 바로 이 클럽입니다.

오래전부터 유진 박과 호흡을 맞췄던 옛 멤버들도 다시 만났습니다.

<인터뷰> 유진 박 : "저는 사람들이 제 공연 보면 너무 행복합니다. 여기서 많이 (공연)했었어요"

<녹취> 유진 박 : "안녕하십니까, 전자 바이올리니스트 유진 박입니다. 오늘 팬들 여러분 위해서 공연하는 건데, 오늘 많이 오셔서 기분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자유로운 재즈 선율 속에 유진 박의 손놀림이 가볍습니다.

무대 위의 작은 음향 사고, 유진 박이 순발력을 발휘합니다.

이제 다시 대중 앞으로 돌아온 유진 박에게는 많은 싸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울증에 맞선 자신과의 싸움은 오히려 작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유진 박을 예술가가 아닌 환자로 바라보는 세상의 편견과도 싸워야 합니다.

<인터뷰> 유진 박 : "저는 단지 사람입니다. 저는 유진 박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큰 힘이 있다면 그게 매력이겠지만, 근데 생각해 보세요.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어도 그냥 사람일 뿐입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유진 박.

그는 돌아왔고, 음악 속에서 행복해지고 싶어합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유진 박의 ‘고독한 싸움’
    • 입력 2013-05-24 23:03:40
    • 수정2013-05-24 23:35:25
    취재파일K
<프롤로그>

그가 돌아왔습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리는, 유진 박

말끔하게 차려입은 정장, 객석을 배경으로 한 정통 클래식 공연 포스터와 함께, 대중에게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인터넷에는 그의 옛 명성과 걸맞지 않은 공연 영상들이 떠돌고 있습니다.

사실, 유진 박은 좀 아픕니다.

그는 병과 고독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이올린에 대한 그의 열정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감금과 폭행이라는 상상하기 힘든 상처를 떨치고 재기에 나선 유진 박, 지금의 그는 어떤 마음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을까.

유진 박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리포트>

부처님 오신 날 경남 김해의 한 사찰.

한바탕 신명나는 공연이 끝나자 차량 한 대가 들어섭니다.

<녹취> "안녕하십니까? 전자 바이올리니스트 유진 박입니다."

유진 박을 알아본 사람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었습니다.

<인터뷰> 유한광(경남 김해시 삼안동) : "TV에서도 많이 보니까 유명한 것 같은데, 그 뭐 매니저랑 그런 사람들이 잘못한다, 그런 얘기도 있고, 좀 낭설이 있더라고요."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공연에 나선 유진 박의 자세는 사뭇 진지합니다.

대웅전 앞마당에서 펼쳐진 유진 박의 공연은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며 한 시간가량 흥겹게 이어졌습니다.

<인터뷰> 김영순(경남 김해시 삼방동) : "저는 처음 뵙는 분이고, TV 에서만 봤어요. 굉장히 오래됐지? 안본지가? 너무 즐겁고요. 그런데 그분이 너무 신 같아요. 너무 잘 해요."

무대 위의 유진 박은 빛났습니다.

<인터뷰> 유진 박 : "조금 더 열심히 했어요. 만족해. (피곤하지 않아요?) 난 피곤하지 않아요. 또 하고 싶어요."

팬들의 선물 공세도 이어집니다.

<녹취> "아이 러브 유(지우 이 그림 누구 그린 거야?) 유진 박 아저씨 (아저씨 멋졌어?) "

공연을 마친 유진 박은 급히 사찰을 떠났습니다.

오늘은 두 달 만에 어머니를 만나는 날입니다.

미국에 거주하는 어머니가 커다란 선물을 가지고 아들을 찾아왔습니다.

<녹취> 이장주(유진 박 어머니) : "유진아, 이거 뉴욕에서 가져왔는데 한번 켜봐라. 소리가 제대로 나는지.(뉴욕에서?)"

아들의 정성스런 연주를 어머니는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모처럼 함께하는 식사, 서른여덟 살의 어리광이 시작됩니다.

<녹취> 유진 박 : "어머니 와서 제가 기분이 되게 좋아요. 왜냐면 더 편하니까. 엄마 없었을 때, 엄마 미국에 있었을 때, 항상 (엄마) 말 잘 들었어요. 말씀 그대로."

유진 박의 지하철역 공연, 누군가 또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를 괴롭혀 억지로 지하철역까지 끌어내 공연을 하게 한 것 아니냐는 논란을 불렀습니다.

<인터뷰> 이장주(유진 박 어머니) : "그게 그런 게 아니에요. 사실 얘는 좋아서 하고, 저도 그렇고."

유진 박이 청중을 만나러 일부러 지하철 공연을 했다는 것.

<인터뷰> 이장주(유진 박 어머니) : "자기가 음악을 하면서 행복감을 느끼고 조금이라도 연관을 만들거든요. 사람들이랑, 사인해주는 걸 그렇게 좋아해요. 공연 끝나면 악수하고 사인해요. 그러면서 그런 걸 보면 힐링이 어디 딴 데 있습니까? 자기의 행복지수가 높아지는 게 힐링이지."

유진 박을 아끼는 사람들 중에는 어머니와 조금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인터뷰> 양욱진(인제대 음악학과 교수/줄리아드 음대 동문) : "제가 보는 유진 박이라는 바이올리니스트는 정말로 세계적으로 능력도 있고, 어렸을 때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라고도 얘기 들었고요. 정말 그런 식으로 봤을 때 정말 아무 데나 가서 쉽게 연주를 물론 하는 것도 좋지만 격이 갖춰진 무대에서, 격이 갖춰진 대우를 받으면서 연주하면 좋겠다는 친구로서 옆에서 보기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양 교수의 바람대로 유진 박과 친구들은 다음달 커다란 클래식 무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바이올린과 첼로, 그리고 피아노.

대학 시절 종종 이렇게 모여 연주를 하곤 했습니다.

<인터뷰> 양욱진 : "같이 연습해 보고 이러다 보니까 역시 어렸을 때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소리를 들을 만한 실력을 아직도 가지고 있고요. 그 가슴 안에 불씨도 살아 있고, 그 다음에 정말 음악에 빠져서 같이 연주할 수 있는 이런 바이올리니스트라고 생각을 해요."

지난 1996년 혜성처럼 등장한 유진 박은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우리 문화예술계를 강타했습니다.

앨범 100만 장 판매에 대통령 취임식 축하 연주까지, 그는 정상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2009년 유진 박은 놀라운 뉴스 속의 주인공이 돼 나타납니다.

<녹취> 유진 박(2009년 당시) : "여관에 있는 것에 대해 알아보니, 좋은 일이 아니었어요."

당시 소속사에서는 유진 박의 출연료를 가로채고 감금에 폭행까지 일삼았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유진 박의 어머니에게도 끔찍했던 기억입니다.

<인터뷰> 이장주(유진박 어머니) : "전 기획사에서 3년 반을 어디로 데리고 가서, 저한테도 또 (한국에) 들어오면, 큰일이 벌어질 거라고. 잘못하면 손가락을 자른다고 그런 식으로 협박이 들어오고, 그런 이유로 혼자서 3년 반을 로드 매니저들이 군대 금방 끝나고 온 녀석들이, 군대식으로 (하고), 배도 막 때리고, 때리면 배만 때린대요. 그렇다고 슬픈 얘기를 해요."

대학을 졸업할 즈음 유진 박에게 찾아온 조울증은 이 사건 이후 더 악화됐습니다.

<인터뷰> 이장주 : "(조울증이) 보통 스무 살 이후에 생겨요. 대학교 졸업 조금 전에 생겼어요. 유진이는. 매니저가 전화가 갑자기 왔어요. 유진이가 갑자기 방송 출연이 다 잡혀있는데 나가서 머리를 박박 깎고 들어왔대요."

어머니는 유진 박의 조울증도 다른 병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강조합니다.

<인터뷰> 이장주 : "보통 한국 부모님들은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게, 참 딱하다 불쌍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 하나도 불쌍한 게 아니에요. 당뇨병 환자가 당뇨병 인슐린 수치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기 때문에 그런 증상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울증도) 뇌에 세로토닌 수치가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것처럼 같은 레벨로 생각하면 (다르지 않습니다.)"

음악을 함께 해온 친구들은 유진 박의 건강에 대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양욱진(인제대 음악학과 교수/줄리아드 음대 동문) : "저희 음악 하는 사람들은 신났다 안 신났다 이런 생활을 반복하고 살고 있다고 보면 되는데, 유진 박은 감정과 음악을 하고 싶은 불씨가 안에 굉장히 강해서 그게 심하게 나타나는 것 같아요. 제 생각엔 연습하고 관리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유진 박 3집 앨범에 수록된 '왕따'를 주제로 한 노랩니다.

고등학교 시절 심한 따돌림을 당한 상처의 기억을 되짚은 노래입니다.

위로를 받고 싶었던 그때의 마음을 전하던 노래.

<인터뷰> 유진 박 : "제가 고등학교 다녔을 때, 왕따였어요. 이유는 운동 못했으니까. 스포츠 저는 농구 못해요. 손가락 다치면 안 됩니다. 그리고 풋볼도 못해요. 운동 못해요. 제가 학교 다닐 때 얘들 나한테 막 '너 농구 못 하지 이리와 너 손보자. 너 바이올린 하지? 너 손 깨지면 어떡해?' 깨질 뻔했어요. 고등학교 다닐 때 두 번 그랬어요."

자신의 음악이 이런 아픔을 가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인터뷰> 유진 박 : "제가 전자 바이올린 켤 때 항상 이런 것 기억합니다. 왕따 당했던 애들, 예를 들어 자살하고 싶은 애들. 그래서 이런 사람들 위해서 전자 바이올린 하는 거예요."

그는 아직도 전자 바이올린이 꿈입니다.

<인터뷰> 유진 박 : "저는 전자 바이올리니스트예요. 그리고 비올리스트인데, 제가 전자 바이올린 할 때 되게 행복해요. 전자 바이올린 약간 중독 같아요. 어디나 큰 무대, 작은 무대, 작은 클럽, 큰 무대, 어디나. 전자 바이올린은 중독이에요."

바이올린에 대한 열정 이면에 존재하는 유진 박의 아픔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까.

<인터뷰> 서천석(정신과 전문의) : "질병은 그분이 가지고 있는 것에 한 5퍼센트, 10퍼센트에 불과하고 더 많은 부분은, 그분은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질병이 아닌 그분만의 어떤 재능도 있을 수 있을 것이고, 그분만의 어떤 행복, 그분의 어떤 기쁨 슬픔 아픔 다 있는데 그것을 포괄적으로 이해해야지 우리가 그분을 정확히 이해한다고 볼 수 있고, 또 그분이 더 행복한 삶을 사는 데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 마지막까지 무대에 서고 싶다는 유진 박.

오늘은 특별한 장소에 섰습니다.

행사나 초청 공연이 아니라, 유진 박만의 무댑니다.

전자 바이올린 하나 들고 고국에 첫발을 디뎠던 유진 박이 국내에서 처음 연주했던 곳이 바로 이 클럽입니다.

오래전부터 유진 박과 호흡을 맞췄던 옛 멤버들도 다시 만났습니다.

<인터뷰> 유진 박 : "저는 사람들이 제 공연 보면 너무 행복합니다. 여기서 많이 (공연)했었어요"

<녹취> 유진 박 : "안녕하십니까, 전자 바이올리니스트 유진 박입니다. 오늘 팬들 여러분 위해서 공연하는 건데, 오늘 많이 오셔서 기분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자유로운 재즈 선율 속에 유진 박의 손놀림이 가볍습니다.

무대 위의 작은 음향 사고, 유진 박이 순발력을 발휘합니다.

이제 다시 대중 앞으로 돌아온 유진 박에게는 많은 싸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울증에 맞선 자신과의 싸움은 오히려 작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유진 박을 예술가가 아닌 환자로 바라보는 세상의 편견과도 싸워야 합니다.

<인터뷰> 유진 박 : "저는 단지 사람입니다. 저는 유진 박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큰 힘이 있다면 그게 매력이겠지만, 근데 생각해 보세요.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어도 그냥 사람일 뿐입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유진 박.

그는 돌아왔고, 음악 속에서 행복해지고 싶어합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