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크] 예일대 수학과 첫 여성 종신교수

입력 2013.06.03 (23:49) 수정 2013.06.12 (19:27)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멘트>

한 한국인 수학자가 미국 아이비리그 명문대에 첫 여성 종신직 교수로 임명돼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무려 312년 동안 깨지지 않았던 예일대학교 수학과의 금녀의 벽을 허문 주인공 오희 교수를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앵커 : "안녕하십니까?"

오희(교수) : "안녕하세요."

앵커 : "네, 먼저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오희 : "네, 감사합니다."

앵커 : "예. 예일대 수학과 첫 여성 종신교수가 되셨어요. 기분이 어떠십니까?"

오희 : "글쎄, 제가 여성 수학자로 삶을 살면서 제가 보고 배울만한 여성 수학자의 롤 모델이 별로 없다는 것에 대해서 항상 아쉽고 또 그런 롤 모델이 없으니까 제가 과연 그 길을 갈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이 항상 있었는데 제가 예일(대학교)처럼 이렇게 영향력 있는 학교의 교수가 됨으로써 앞으로 수학을 전공하고 싶어 하는 여학생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또 그들에게 롤 모델이 될 수 있으면 참 보람 있을 것 같습니다."

앵커 : "네, 멋지십니다. 그런데 원래부터 수학과를 지망하신 건 아니시라면서요? "

오희 : "원래부터 수학과를 지망한 건 아니고요, 그렇다고 딱히 지망하고 싶었던 과가 있었던 것도 아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제가 수학과를 지망한 게 우연인 것 같지만 어떤 절대자의 섭리 안에서 다 이루어진 일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앵커 : "원래 지망은 어떤 것이셨나요?"

오희 : "원래는 의대를 지망했는데요."

앵커 : "어떤 계기로 수학과를 가시게 되셨죠?"

오희 : "의대를 지망했는데, 의대가 1지망이었고 2지망이 수학과였는데 학교에서 공부를 할 때에는 사실 공부를 잘하면 부모님이 칭찬해 주시고 선생님이 칭찬해 주시고 그것이 기뻐서 제가 공부를 했지 의대를 가야 되겠다 공부를 한 건 아니었거든요. 일단 학력고사를 보고 나서 과를 써야 되는데 그냥 그때 잘하는 학생들은 의대를 가니까 별 생각 없이 사실은 의대를 썼고요. 수학과를 쓰게 된 것은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신 큰오빠가 아시는 은사님께서 한국에 기초과학을 하는 인재들이 많이 필요하니까 동생이 수학과를 써 보는 것도 괜찮겠다 라고 이야기를 하셔서 수학과를 쓰게 됐어요."

앵커 : "그런데 단순히 대학에서 전공을 하는 걸로 그치지 않고 유학길에 오르셨어요. 그 정도로 매력에 빠질만한 수학의 특징이랄지 매력이랄지 뭐가 있었던가요?"

오희 : "수학은 정말 매력이 너무나 다양해서 제가 한 두 가지로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이야기를 해보면 처음에 문제를 받아들고 도대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될까, 아무도 사실은 다른 사람이 풀어보지 못한 문제를 제가 풀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럴 때 고민을 하고 굉장히 오랜 시간을 들이면서 어떻게 접근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어느 순간 그 해결점이 딱 보이는 순간에 그 때 느끼는 성취감은 이루 말 할 수가 없고요. 제가 그 문제를 완성했을 땐 아주 아름다운 예술품을 완성한 것 같은, 그리고 그 예술품을 감상할 때 느끼는 그런 심오한 감정을 느끼는데, 그건 정말 자기가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성취감과 기쁨이 있습니다."

앵커 : "그러시군요, 그런데 이제 한국에서 학사를 마치고 유학길에 오르신 거였잖아요? 좀 늦게 가신 것인데, 언어 장벽 같은 건 없으셨나요?"

오희 : "언어장벽은 그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요, 제가 지금 한국말로 인터뷰를 하게 되서 너무 편한데요. 그렇지만 언어장벽 보다는 제가 수학공부를 하러 가서 박사학위를 받은 논문문제를 풀어야 되는데 그것이 더 큰 어려움이었어요. 근데 여기 한국에서도 학부 때 수학교재는 다 영어교재였거든요. 그러니까 말하는 건 어려웠지만 사실은 읽고 생각하고 교수님 강의를 알아듣는 데는 그렇게 큰 어려움은 없었고 이제 영어로 말하는 게 어렵다기 보다는 제가 얼마나 논리적으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제 생각을 정리해서 말해 본 훈련이 얼마 없다는 그런 게 많이 느껴져서 영어보다는 언어 장벽을 느꼈습니다. 사실은."

앵커 : "사실 한국에서는 취업 걱정이 커서 기초과학을 좀 기피하는 학생들이 많거든요. 그런 학생들에게 선배로서 조언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오희 : "기초과학을 하는 일은 사실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거든요? 제가 수학을 즐겁다고 이야기하지만 정말 너무나 어렵거든요. 정말 어렵고 제가 아는 유명한 수학자분이 이야기하시길 '5년에 한 번씩 거울을 보고 웃을 수 있으면 너는 성공한 수학자다.' 이렇게 말씀하실 정도로 수학의 길은 어렵고 다른 기초과학들도 어렵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제가 기초과학을 해야 된다고 이야기 할 순 없지만, 근데 그걸 정말 좋아하게 되는 거는 해보지 않은 사람은 또 그 기쁨을 알 수가 없거든요. 근데 일단 자기가 해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되면 기초과학자로서의 삶이 정말 보람 있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월급도 잘 받고 학생들과 항상 어울릴 수 있어서 좋은 직업인 것 같아요."

앵커 : "네, 앞으로 이제 예일대 종신교수로서의 계획 같은 게 있으실 거 같은데, 어떤 게 있으실까요?"

오희 : "예일대 종신교수로서의 특별한 계획이라기보다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좋은 수학을 하고 싶고, 그런 욕심이 있고요. 이제 학교를 예일대로, 제 모교인 만큼 그 학교에 가서 그 학교 수학과가 더 발전하고 또 예일대가 더 발전하는데 제가 공헌을 할 수 있으면 기쁘겠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 "네. 앞으로 많은 학생들이게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그런 분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오희 : "고맙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뉴스토크] 예일대 수학과 첫 여성 종신교수
    • 입력 2013-06-03 23:51:16
    • 수정2013-06-12 19:27:42
    뉴스라인 W
<앵커 멘트>

한 한국인 수학자가 미국 아이비리그 명문대에 첫 여성 종신직 교수로 임명돼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무려 312년 동안 깨지지 않았던 예일대학교 수학과의 금녀의 벽을 허문 주인공 오희 교수를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앵커 : "안녕하십니까?"

오희(교수) : "안녕하세요."

앵커 : "네, 먼저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오희 : "네, 감사합니다."

앵커 : "예. 예일대 수학과 첫 여성 종신교수가 되셨어요. 기분이 어떠십니까?"

오희 : "글쎄, 제가 여성 수학자로 삶을 살면서 제가 보고 배울만한 여성 수학자의 롤 모델이 별로 없다는 것에 대해서 항상 아쉽고 또 그런 롤 모델이 없으니까 제가 과연 그 길을 갈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이 항상 있었는데 제가 예일(대학교)처럼 이렇게 영향력 있는 학교의 교수가 됨으로써 앞으로 수학을 전공하고 싶어 하는 여학생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또 그들에게 롤 모델이 될 수 있으면 참 보람 있을 것 같습니다."

앵커 : "네, 멋지십니다. 그런데 원래부터 수학과를 지망하신 건 아니시라면서요? "

오희 : "원래부터 수학과를 지망한 건 아니고요, 그렇다고 딱히 지망하고 싶었던 과가 있었던 것도 아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제가 수학과를 지망한 게 우연인 것 같지만 어떤 절대자의 섭리 안에서 다 이루어진 일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앵커 : "원래 지망은 어떤 것이셨나요?"

오희 : "원래는 의대를 지망했는데요."

앵커 : "어떤 계기로 수학과를 가시게 되셨죠?"

오희 : "의대를 지망했는데, 의대가 1지망이었고 2지망이 수학과였는데 학교에서 공부를 할 때에는 사실 공부를 잘하면 부모님이 칭찬해 주시고 선생님이 칭찬해 주시고 그것이 기뻐서 제가 공부를 했지 의대를 가야 되겠다 공부를 한 건 아니었거든요. 일단 학력고사를 보고 나서 과를 써야 되는데 그냥 그때 잘하는 학생들은 의대를 가니까 별 생각 없이 사실은 의대를 썼고요. 수학과를 쓰게 된 것은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신 큰오빠가 아시는 은사님께서 한국에 기초과학을 하는 인재들이 많이 필요하니까 동생이 수학과를 써 보는 것도 괜찮겠다 라고 이야기를 하셔서 수학과를 쓰게 됐어요."

앵커 : "그런데 단순히 대학에서 전공을 하는 걸로 그치지 않고 유학길에 오르셨어요. 그 정도로 매력에 빠질만한 수학의 특징이랄지 매력이랄지 뭐가 있었던가요?"

오희 : "수학은 정말 매력이 너무나 다양해서 제가 한 두 가지로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이야기를 해보면 처음에 문제를 받아들고 도대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될까, 아무도 사실은 다른 사람이 풀어보지 못한 문제를 제가 풀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럴 때 고민을 하고 굉장히 오랜 시간을 들이면서 어떻게 접근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어느 순간 그 해결점이 딱 보이는 순간에 그 때 느끼는 성취감은 이루 말 할 수가 없고요. 제가 그 문제를 완성했을 땐 아주 아름다운 예술품을 완성한 것 같은, 그리고 그 예술품을 감상할 때 느끼는 그런 심오한 감정을 느끼는데, 그건 정말 자기가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성취감과 기쁨이 있습니다."

앵커 : "그러시군요, 그런데 이제 한국에서 학사를 마치고 유학길에 오르신 거였잖아요? 좀 늦게 가신 것인데, 언어 장벽 같은 건 없으셨나요?"

오희 : "언어장벽은 그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요, 제가 지금 한국말로 인터뷰를 하게 되서 너무 편한데요. 그렇지만 언어장벽 보다는 제가 수학공부를 하러 가서 박사학위를 받은 논문문제를 풀어야 되는데 그것이 더 큰 어려움이었어요. 근데 여기 한국에서도 학부 때 수학교재는 다 영어교재였거든요. 그러니까 말하는 건 어려웠지만 사실은 읽고 생각하고 교수님 강의를 알아듣는 데는 그렇게 큰 어려움은 없었고 이제 영어로 말하는 게 어렵다기 보다는 제가 얼마나 논리적으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제 생각을 정리해서 말해 본 훈련이 얼마 없다는 그런 게 많이 느껴져서 영어보다는 언어 장벽을 느꼈습니다. 사실은."

앵커 : "사실 한국에서는 취업 걱정이 커서 기초과학을 좀 기피하는 학생들이 많거든요. 그런 학생들에게 선배로서 조언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오희 : "기초과학을 하는 일은 사실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거든요? 제가 수학을 즐겁다고 이야기하지만 정말 너무나 어렵거든요. 정말 어렵고 제가 아는 유명한 수학자분이 이야기하시길 '5년에 한 번씩 거울을 보고 웃을 수 있으면 너는 성공한 수학자다.' 이렇게 말씀하실 정도로 수학의 길은 어렵고 다른 기초과학들도 어렵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제가 기초과학을 해야 된다고 이야기 할 순 없지만, 근데 그걸 정말 좋아하게 되는 거는 해보지 않은 사람은 또 그 기쁨을 알 수가 없거든요. 근데 일단 자기가 해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되면 기초과학자로서의 삶이 정말 보람 있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월급도 잘 받고 학생들과 항상 어울릴 수 있어서 좋은 직업인 것 같아요."

앵커 : "네, 앞으로 이제 예일대 종신교수로서의 계획 같은 게 있으실 거 같은데, 어떤 게 있으실까요?"

오희 : "예일대 종신교수로서의 특별한 계획이라기보다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좋은 수학을 하고 싶고, 그런 욕심이 있고요. 이제 학교를 예일대로, 제 모교인 만큼 그 학교에 가서 그 학교 수학과가 더 발전하고 또 예일대가 더 발전하는데 제가 공헌을 할 수 있으면 기쁘겠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 "네. 앞으로 많은 학생들이게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그런 분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오희 : "고맙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