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저·밭고랑 없었지만’ 레바논 원정 망신

입력 2013.06.05 (07:49) 수정 2013.06.05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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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도 우려만큼 열악하지 않았고 폭죽, 레이저 포인터, 구름 관중도 없었지만 또 당하고 말았다.

5일(한국시간) 한국과 레바논의 2014년 국제축구연맹(FIFA)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6차전이 열린 레바논 베이루트의 카밀 샤문 스포츠시티 스타디움.

관중 4만8천명을 수용하는 이 경기장에 경기 시작 때 모인 관중은 2천여명에 불과했다.

2011년 아시아 3차 예선 5차전에서 한국이 레바논에 1-2로 참패할 때 운집한 4만여명의 20분의 1 수준이었다.

관중의 집단 응원전은 거세지 않았다.

북, 피리, 노래 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질 뿐 태극전사들을 주눅이 들게 할 소음은 아니었다.

그라운드 사정도 우려만큼 나쁘지 않았다.

선수들이 밀집하는 골대 앞 잔디가 조금 패였을 뿐 경기를 앞두고 말끔하게 보수된 그라운드가 선수들을 맞이했다.

FIFA의 요청을 받은 정규군, 경찰이 출입 통제를 강화한 까닭에 폭죽도 반입될 수 없었다.

개인 기술이 한 수 위인 한국의 낙승이 기대됐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암운이 몰려들었다.

한국 선수들이 까닭을 알 수 없이 우왕좌왕하면서 관중의 기세가 올랐다.

함성은 점점 커지는 와중에 레바논은 하산 마툭이 강력한 슈팅으로 한국의 골망을 흔들었다.

최전방 공격수 이동국이 노마크 기회에서 날린 슈팅이 허무하게 크로스바를 넘어가며 전반전이 끝났다.

후반전이 시작되기 직전에 갑자기 관중 수천 명이 밀물 닥치듯이 들어왔다.

레바논축구협회는 경기 전에는 입장료를 받다가 전반전이 끝나자 입장료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크게 개방된 출입문으로 레바논 관중이 밀어닥쳤던 것이다.

관중의 응원은 더 거세졌으나 이를 잠재울 한국의 '한 방'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말렸다!'

2년 전 레바논에 참패를 당한 악몽이 슬금슬금 되살아났다.

한국은 당시 패배 때 4만여명의 관중, 레이저 포인터 공격, 폭죽, 밭고랑이나 다름없던 그라운드 등 여러 핑계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변명이 있을 수 없었다.

한국은 결정적 골 기회를 몇 차례 잡았으나 슈팅이 골키퍼에게 막히거나 골대를 맞아 득점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경기가 막판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스코어는 여전히 0-1.

한국의 패스가 점점 섬세함을 잃기 시작했다.

만회골을 위한 조바심이 선수들의 투박해진 플레이 하나하나에서 읽혔다.

운도 지독히 따르지 않았다.

전반 이청용, 후반 중반 곽태휘에 이어 막판 이동국의 슈팅까지 골대를 때렸다.

레바논 관중은 한국의 만회골이 터질 듯 터질 듯 터지지 않자 희극을 보는 것처럼 즐거운 함성을 쏟아냈다.

추가시간 7분에 겨우 패배를 면했다. 김치우가 페널티아크에서 얻은 프리킥을 골로 연결해 기사회생했다.

그러나 한국은 자존심을 구길 대로 구겼다.

선수들은 고개를 떨어뜨린 채 그라운드를 빠져나왔다.

FIFA의 209개 회원국 가운데 129위를 달리는 약체에 다시 당한 굴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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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이저·밭고랑 없었지만’ 레바논 원정 망신
    • 입력 2013-06-05 07:49:41
    • 수정2013-06-05 07:50:22
    연합뉴스
그라운드도 우려만큼 열악하지 않았고 폭죽, 레이저 포인터, 구름 관중도 없었지만 또 당하고 말았다. 5일(한국시간) 한국과 레바논의 2014년 국제축구연맹(FIFA)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6차전이 열린 레바논 베이루트의 카밀 샤문 스포츠시티 스타디움. 관중 4만8천명을 수용하는 이 경기장에 경기 시작 때 모인 관중은 2천여명에 불과했다. 2011년 아시아 3차 예선 5차전에서 한국이 레바논에 1-2로 참패할 때 운집한 4만여명의 20분의 1 수준이었다. 관중의 집단 응원전은 거세지 않았다. 북, 피리, 노래 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질 뿐 태극전사들을 주눅이 들게 할 소음은 아니었다. 그라운드 사정도 우려만큼 나쁘지 않았다. 선수들이 밀집하는 골대 앞 잔디가 조금 패였을 뿐 경기를 앞두고 말끔하게 보수된 그라운드가 선수들을 맞이했다. FIFA의 요청을 받은 정규군, 경찰이 출입 통제를 강화한 까닭에 폭죽도 반입될 수 없었다. 개인 기술이 한 수 위인 한국의 낙승이 기대됐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암운이 몰려들었다. 한국 선수들이 까닭을 알 수 없이 우왕좌왕하면서 관중의 기세가 올랐다. 함성은 점점 커지는 와중에 레바논은 하산 마툭이 강력한 슈팅으로 한국의 골망을 흔들었다. 최전방 공격수 이동국이 노마크 기회에서 날린 슈팅이 허무하게 크로스바를 넘어가며 전반전이 끝났다. 후반전이 시작되기 직전에 갑자기 관중 수천 명이 밀물 닥치듯이 들어왔다. 레바논축구협회는 경기 전에는 입장료를 받다가 전반전이 끝나자 입장료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크게 개방된 출입문으로 레바논 관중이 밀어닥쳤던 것이다. 관중의 응원은 더 거세졌으나 이를 잠재울 한국의 '한 방'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말렸다!' 2년 전 레바논에 참패를 당한 악몽이 슬금슬금 되살아났다. 한국은 당시 패배 때 4만여명의 관중, 레이저 포인터 공격, 폭죽, 밭고랑이나 다름없던 그라운드 등 여러 핑계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변명이 있을 수 없었다. 한국은 결정적 골 기회를 몇 차례 잡았으나 슈팅이 골키퍼에게 막히거나 골대를 맞아 득점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경기가 막판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스코어는 여전히 0-1. 한국의 패스가 점점 섬세함을 잃기 시작했다. 만회골을 위한 조바심이 선수들의 투박해진 플레이 하나하나에서 읽혔다. 운도 지독히 따르지 않았다. 전반 이청용, 후반 중반 곽태휘에 이어 막판 이동국의 슈팅까지 골대를 때렸다. 레바논 관중은 한국의 만회골이 터질 듯 터질 듯 터지지 않자 희극을 보는 것처럼 즐거운 함성을 쏟아냈다. 추가시간 7분에 겨우 패배를 면했다. 김치우가 페널티아크에서 얻은 프리킥을 골로 연결해 기사회생했다. 그러나 한국은 자존심을 구길 대로 구겼다. 선수들은 고개를 떨어뜨린 채 그라운드를 빠져나왔다. FIFA의 209개 회원국 가운데 129위를 달리는 약체에 다시 당한 굴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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