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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 도화선 이한열 ‘티셔츠’ 손상 심해
입력 2013.06.09 (10:18) 수정 2013.06.09 (10:23) 연합뉴스


"사료 가치 크지만 보관환경 열악"

1987년 6월 연세대 정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경찰이 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친구에게 부축 당한 채 피를 흘리는 고(故) 이한열 열사.

당시 외신기자가 찍은 한 장의 사진은 온 국민을 공분케 했고, 시민 500만명 이상이 참가하는 6월 민주화항쟁으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됐다.

지금도 6월이 되면 연세대 교정을 비롯해 곳곳에서 대형 걸개그림으로 등장하는 이 사진은 엄혹했던 당시의 시대상과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보여준다.

그런데 당시 그가 착용한 옷과 신발, 허리띠, 가방 등의 보관을 두고 이한열기념사업회가 고민에 빠졌다. 사료로서의 가치가 크지만, 비용 등의 문제로 보관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이한열기념관. 그가 사용하던 물품과 그가 쓴 글, 사진 등 관련자료 수십 점이 전시돼 있어 매년 2천명의 시민이 이 곳을 찾는다.

최루탄을 맞아 쓰러질 당시 그는 학교 이름(YONSEI)이 새겨진 파란색 티셔츠와 러닝셔츠, 흰 바지를 입고 허리띠를 착용했으며 흰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혈흔과 최루가스, 땀으로 범벅이 됐던 옷은 2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그러나 한 짝만 남은 운동화는 밑바닥의 절반 이상이 부스러졌다. 선명했던 티셔츠의 혈흔은 색이 바랬다.

최근 기념관을 방문, 유품 상태를 확인한 전문가들은 적절한 보관시설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연세대 박물관 이원규 학예사는 9일 "시간이 흐르면서 기본 재질이 망가지는 데다 당일 혼잡한 상황 속에서 땀과 피, 최루가스, 응급약품 등이 섞여 옷 자체가 많이 손상된 상태"라며 "적절한 온도나 습도를 갖추고 자외선을 방어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한데 보존환경이 좋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학예사는 "완전 복구는 어렵겠지만 전문적인 처리를 통해 앞으로 변형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열사의 유품은 가족들이 보관하다 2005년 기념관으로 옮겨졌다. 애초에는 아크릴 진열장 안에 담겨 햇빛이 비치는 창가쪽에 있다가 최근 기념관 리모델링을 하면서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열사의 모교인 연세대는 지난해 처음으로 교내에서 그에 관한 전시회를 열었고 당시 물품 보관상태를 확인하고는 훈증소독, 탈산처리 등 전문 보존처리를 약속했다.

그러나 항온·항습기능을 갖춘 시설이 없으면 보존처리를 하더라도 추가 손상을 막기 힘들다. 따라서 기념사업회 측은 적절한 보관시설을 갖추려면 약 1천만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모금을 통해 비용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원본을 박물관 등에 맡기고 기념관에서는 복제본을 전시하는 방법도 조심스럽게 거론되지만, 되도록 원본을 보관·전시하고 싶다는 게 유족의 입장이다.

이한열기념사업회 관계자는 "격동의 현대사 현장에 있었던 이 열사의 유품은 그날의 역사를 말해주는 가장 상징적이고 가시적인 자료"라며 "더 이상의 손상을 막고 가치를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 6월항쟁 도화선 이한열 ‘티셔츠’ 손상 심해
    • 입력 2013-06-09 10:18:54
    • 수정2013-06-09 10:23:01
    연합뉴스


"사료 가치 크지만 보관환경 열악"

1987년 6월 연세대 정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경찰이 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친구에게 부축 당한 채 피를 흘리는 고(故) 이한열 열사.

당시 외신기자가 찍은 한 장의 사진은 온 국민을 공분케 했고, 시민 500만명 이상이 참가하는 6월 민주화항쟁으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됐다.

지금도 6월이 되면 연세대 교정을 비롯해 곳곳에서 대형 걸개그림으로 등장하는 이 사진은 엄혹했던 당시의 시대상과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보여준다.

그런데 당시 그가 착용한 옷과 신발, 허리띠, 가방 등의 보관을 두고 이한열기념사업회가 고민에 빠졌다. 사료로서의 가치가 크지만, 비용 등의 문제로 보관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이한열기념관. 그가 사용하던 물품과 그가 쓴 글, 사진 등 관련자료 수십 점이 전시돼 있어 매년 2천명의 시민이 이 곳을 찾는다.

최루탄을 맞아 쓰러질 당시 그는 학교 이름(YONSEI)이 새겨진 파란색 티셔츠와 러닝셔츠, 흰 바지를 입고 허리띠를 착용했으며 흰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혈흔과 최루가스, 땀으로 범벅이 됐던 옷은 2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그러나 한 짝만 남은 운동화는 밑바닥의 절반 이상이 부스러졌다. 선명했던 티셔츠의 혈흔은 색이 바랬다.

최근 기념관을 방문, 유품 상태를 확인한 전문가들은 적절한 보관시설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연세대 박물관 이원규 학예사는 9일 "시간이 흐르면서 기본 재질이 망가지는 데다 당일 혼잡한 상황 속에서 땀과 피, 최루가스, 응급약품 등이 섞여 옷 자체가 많이 손상된 상태"라며 "적절한 온도나 습도를 갖추고 자외선을 방어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한데 보존환경이 좋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학예사는 "완전 복구는 어렵겠지만 전문적인 처리를 통해 앞으로 변형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열사의 유품은 가족들이 보관하다 2005년 기념관으로 옮겨졌다. 애초에는 아크릴 진열장 안에 담겨 햇빛이 비치는 창가쪽에 있다가 최근 기념관 리모델링을 하면서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열사의 모교인 연세대는 지난해 처음으로 교내에서 그에 관한 전시회를 열었고 당시 물품 보관상태를 확인하고는 훈증소독, 탈산처리 등 전문 보존처리를 약속했다.

그러나 항온·항습기능을 갖춘 시설이 없으면 보존처리를 하더라도 추가 손상을 막기 힘들다. 따라서 기념사업회 측은 적절한 보관시설을 갖추려면 약 1천만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모금을 통해 비용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원본을 박물관 등에 맡기고 기념관에서는 복제본을 전시하는 방법도 조심스럽게 거론되지만, 되도록 원본을 보관·전시하고 싶다는 게 유족의 입장이다.

이한열기념사업회 관계자는 "격동의 현대사 현장에 있었던 이 열사의 유품은 그날의 역사를 말해주는 가장 상징적이고 가시적인 자료"라며 "더 이상의 손상을 막고 가치를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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