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분석] “6·25 당시 실종·전사자 찾아야”

입력 2013.06.20 (21:21) 수정 2013.06.20 (22:33)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워싱턴에는 한국전 참전기념공원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6.25 당시 장진호 전투의 주역들이 형상화돼 있습니다.

장진호 전투 당시 미군 사상자만 4천여 명, 포로로 남겨진 전우도 부지기수였습니다.

미군은 정전협정 체결 이후 지속적으로 포로송환을 요구해서 생존자 대부분은 돌아왔습니다.

1995년에는 미군 유해발굴단도 북한에 들어갔습니다..

그 후 10년간 북한 전역에서 유해 400여구를 발굴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북한에는 대가로 330억원을 지불했습니다.

수십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간 군인들의 넋이 조금이라도 위로받지 않았을까요?

하와이에는 미군 전쟁포로 실종자 사령부가 있습니다.

이 사령부의 임무수행 기간은 "포로나 전사자 유해가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로 돼있습니다.

미국의 이런 노력에 비춰볼 때 우리는 초라하기 그지 없습니다.

6.25당시 실종 또는 전사 처리됐지만 아직도 생사를 모르거나 유해를 찾지 못한 국군의 수는 13만여명입니다.

그동안 조국은 이들을 위해 과연 무엇을 했는지 되돌아볼 때입니다.

데스크 분석이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데스크 분석] “6·25 당시 실종·전사자 찾아야”
    • 입력 2013-06-20 21:23:15
    • 수정2013-06-20 22:33:31
    뉴스 9
워싱턴에는 한국전 참전기념공원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6.25 당시 장진호 전투의 주역들이 형상화돼 있습니다.

장진호 전투 당시 미군 사상자만 4천여 명, 포로로 남겨진 전우도 부지기수였습니다.

미군은 정전협정 체결 이후 지속적으로 포로송환을 요구해서 생존자 대부분은 돌아왔습니다.

1995년에는 미군 유해발굴단도 북한에 들어갔습니다..

그 후 10년간 북한 전역에서 유해 400여구를 발굴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북한에는 대가로 330억원을 지불했습니다.

수십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간 군인들의 넋이 조금이라도 위로받지 않았을까요?

하와이에는 미군 전쟁포로 실종자 사령부가 있습니다.

이 사령부의 임무수행 기간은 "포로나 전사자 유해가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로 돼있습니다.

미국의 이런 노력에 비춰볼 때 우리는 초라하기 그지 없습니다.

6.25당시 실종 또는 전사 처리됐지만 아직도 생사를 모르거나 유해를 찾지 못한 국군의 수는 13만여명입니다.

그동안 조국은 이들을 위해 과연 무엇을 했는지 되돌아볼 때입니다.

데스크 분석이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