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뉴스] 친일 후손들, ‘땅 찾기 소송’ 줄이어

입력 2013.08.14 (21:29) 수정 2013.08.1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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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친일파를 응징하는 내용을 담은 드라마 '각시탈'입니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한 매국노는 친일파가 된 이유를 이렇게 얘기합니다.

<녹취> "내 자손만큼은 편히 살길 염원하면서 피눈물을 흘려가면서 결정한 노선이 바로 친일이야"

드라마처럼 실제로도 친일 재산으로 대를 이어가며 호의호식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 정부는 지난 2004년 특별법을 만들어 친일 재산 환수에 나섰습니다.

친일파 후손들이 줄소송으로 반발했는데 지금도 소송은 진행중입니다.

먼저 홍혜림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청주에선 요즘 기자회견과 서명 운동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녹취> "반대한다, 반대한다!"

일제강점기 대표적 친일파였던 민영은의 후손들이 청주시가 자신들 집안의 땅을 무단 사용하고 있다며 소송을 냈기 때문입니다.

소송이 걸린 땅 대부분은 시민들이 이용하는 시내 도로들입니다.

이 도로들을 원상복구해 돌려달라고 요구하면서 민심이 들끓고 있는 겁니다.

<인터뷰> 손현준(민족문제연구소 충북지부장) : "선친의 친일 반민족 행위를 사과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파렴치한 소송을 진행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울 홍은동 주택가.

일제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은 친일파 이해승은 일제 강점기에 이곳을 포함해 수도권 땅 수백 필지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192필지는 소유권이 지난 2010년 이해승의 후손에게 완전히 넘어갔습니다.

국가가 친일재산으로 환수하려 했지만 법원이 친일 대가로 땅을 취득한 증거가 없다며 이해승 후손의 손을 들어준 겁니다.

<인터뷰>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 "당시 시가로 300억 정도 됐습니다. 이해승의 소유한 전체 재산 가운데 극히 일부기는 하지만 굉장히 큰 액수죠"

친일 재산 환수법 시행 이후 친일 후손들이 제기한 소송은 122건.

이를 통해 친일후손들은 수백억 원에 이르는 땅 2백만 제곱미터 이상을 찾아갔습니다.

<기자 멘트>

지난 1905년, 을사늑약 체결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일제에 넘어갑니다.

당시 여기 있는 고위 대신 5명, 이완용,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권중현 이른바 을사 5적이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했습니다.

이들을 포함해 대표적 친일파 61명이 일제 강점기에 소유했던 땅은 4억 4천만 제곱미터 정도로 추정됩니다.

지금 서울시 면적의 70%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 2010년까지 찾아낸 친일파의 땅은 전체 친일파 재산의 2.6%에 불과합니다.

왜 이것밖에 안 될까요?

친일 재산을 찾기 위한 친일재산 조사위원회는 지난 2006년 출범했습니다.

광복 후 60년이 더 지났는데 상당수 친일파 후손들이 이미 친일 재산을 팔아 숨긴 뒤였습니다.

이러다 보니 조선총독부나 대한민국 초기 행정자료까지 찾아 친일 기록이나 재산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상당수 자료가 이미 폐기됐거나 6.25 전쟁을 겪으면서 사라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이런 조사를 해온 친일재산조사위는 지난 2010년 해산됐고 지금은 이런 일을 담당할 전문 기관조차 없습니다.

숨겨진 친일재산을 더 찾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 진 겁니다.

나치 부역자들을 끝까지 추적한 프랑스의 사례를 통해 역사의 교훈을 알아봤습니다.

<리포트>

루브르 박물관 회화 전시실.

전시된 그림 가운데 박물관 소유가 아닌 그림이 있습니다.

고유번호 'MNR', 2차대전 당시 나치에 빼앗겼다 다시 찾은 그림입니다.

이 그림들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일이 전쟁이 끝난 지 70년 가까이 된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티에리 바주(예술품반환위원회 국장) : "이 일은 시효를 두지 않고 무기한으로 반환 요청을 받아서 처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4만5천여 점이 주인에게 돌아갔고, 이제 2천여 점이 남았습니다.

이처럼 나치가 강제로 빼앗은 재산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치에 협력한 사람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 1998년 프랑스 법원은 여든여덟 살의 전직 장관 파퐁에게 징역 10년과 추징금 10억여원을 선고했습니다.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했던 비쉬정권 시절 유대인을 강제수용소로 보내는데 나치에 협력한 사실이 반세기만에 밝혀진 데 따른 것입니다.

프랑스는 2차대전이후 철저한 조사를 거쳐 나치에 협력한 만여 명의 재산을 추징했습니다.

공소시효도, 관용도 없다는 원칙 아래 나치를 단죄하는 일은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파리에서 KBS 뉴스 박상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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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뉴스] 친일 후손들, ‘땅 찾기 소송’ 줄이어
    • 입력 2013-08-14 21:30:16
    • 수정2013-08-18 15: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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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친일파를 응징하는 내용을 담은 드라마 '각시탈'입니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한 매국노는 친일파가 된 이유를 이렇게 얘기합니다.

<녹취> "내 자손만큼은 편히 살길 염원하면서 피눈물을 흘려가면서 결정한 노선이 바로 친일이야"

드라마처럼 실제로도 친일 재산으로 대를 이어가며 호의호식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 정부는 지난 2004년 특별법을 만들어 친일 재산 환수에 나섰습니다.

친일파 후손들이 줄소송으로 반발했는데 지금도 소송은 진행중입니다.

먼저 홍혜림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청주에선 요즘 기자회견과 서명 운동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녹취> "반대한다, 반대한다!"

일제강점기 대표적 친일파였던 민영은의 후손들이 청주시가 자신들 집안의 땅을 무단 사용하고 있다며 소송을 냈기 때문입니다.

소송이 걸린 땅 대부분은 시민들이 이용하는 시내 도로들입니다.

이 도로들을 원상복구해 돌려달라고 요구하면서 민심이 들끓고 있는 겁니다.

<인터뷰> 손현준(민족문제연구소 충북지부장) : "선친의 친일 반민족 행위를 사과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파렴치한 소송을 진행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울 홍은동 주택가.

일제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은 친일파 이해승은 일제 강점기에 이곳을 포함해 수도권 땅 수백 필지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192필지는 소유권이 지난 2010년 이해승의 후손에게 완전히 넘어갔습니다.

국가가 친일재산으로 환수하려 했지만 법원이 친일 대가로 땅을 취득한 증거가 없다며 이해승 후손의 손을 들어준 겁니다.

<인터뷰>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 "당시 시가로 300억 정도 됐습니다. 이해승의 소유한 전체 재산 가운데 극히 일부기는 하지만 굉장히 큰 액수죠"

친일 재산 환수법 시행 이후 친일 후손들이 제기한 소송은 122건.

이를 통해 친일후손들은 수백억 원에 이르는 땅 2백만 제곱미터 이상을 찾아갔습니다.

<기자 멘트>

지난 1905년, 을사늑약 체결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일제에 넘어갑니다.

당시 여기 있는 고위 대신 5명, 이완용,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권중현 이른바 을사 5적이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했습니다.

이들을 포함해 대표적 친일파 61명이 일제 강점기에 소유했던 땅은 4억 4천만 제곱미터 정도로 추정됩니다.

지금 서울시 면적의 70%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 2010년까지 찾아낸 친일파의 땅은 전체 친일파 재산의 2.6%에 불과합니다.

왜 이것밖에 안 될까요?

친일 재산을 찾기 위한 친일재산 조사위원회는 지난 2006년 출범했습니다.

광복 후 60년이 더 지났는데 상당수 친일파 후손들이 이미 친일 재산을 팔아 숨긴 뒤였습니다.

이러다 보니 조선총독부나 대한민국 초기 행정자료까지 찾아 친일 기록이나 재산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상당수 자료가 이미 폐기됐거나 6.25 전쟁을 겪으면서 사라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이런 조사를 해온 친일재산조사위는 지난 2010년 해산됐고 지금은 이런 일을 담당할 전문 기관조차 없습니다.

숨겨진 친일재산을 더 찾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 진 겁니다.

나치 부역자들을 끝까지 추적한 프랑스의 사례를 통해 역사의 교훈을 알아봤습니다.

<리포트>

루브르 박물관 회화 전시실.

전시된 그림 가운데 박물관 소유가 아닌 그림이 있습니다.

고유번호 'MNR', 2차대전 당시 나치에 빼앗겼다 다시 찾은 그림입니다.

이 그림들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일이 전쟁이 끝난 지 70년 가까이 된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티에리 바주(예술품반환위원회 국장) : "이 일은 시효를 두지 않고 무기한으로 반환 요청을 받아서 처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4만5천여 점이 주인에게 돌아갔고, 이제 2천여 점이 남았습니다.

이처럼 나치가 강제로 빼앗은 재산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치에 협력한 사람들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 1998년 프랑스 법원은 여든여덟 살의 전직 장관 파퐁에게 징역 10년과 추징금 10억여원을 선고했습니다.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했던 비쉬정권 시절 유대인을 강제수용소로 보내는데 나치에 협력한 사실이 반세기만에 밝혀진 데 따른 것입니다.

프랑스는 2차대전이후 철저한 조사를 거쳐 나치에 협력한 만여 명의 재산을 추징했습니다.

공소시효도, 관용도 없다는 원칙 아래 나치를 단죄하는 일은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파리에서 KBS 뉴스 박상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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