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렌즈에 담긴 한국전쟁 속 서울 풍경

입력 2013.08.25 (08:46) 수정 2013.08.25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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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이 맥린 박사 "한국의 경이로운 성장 기뻐"

폐허가 된 시내를 배경으로 남산자락을 걷는 봇짐장수, 전쟁통에도 잔해 하나 없이 평온하고 푸른 한강….

한국전쟁에 참전한 한 미군 병사가 렌즈에 담은 서울 풍경은 왜곡과 과장없이 당시 서울의 일상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1951년부터 1953년까지 미8군 제3철도수송단에서 상병으로 근무했던 듀이 맥린(Dewey McLean, 82) 박사는 25일 연합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 사람과 땅, 눈길을 끄는 것들을 볼 때마다 경험으로 기록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용산고 자리에 있었던 제3철도수송단에서 근무했지만 수시로 시내에 나와 서울 곳곳을 담아 약 300장의 사진을 남겼다. 1950년대 서울 풍경이 컬러 사진으로 생생하게 담긴 사례는 흔치 않다.

1952~1953년 사이 겨울에 찍은 '한국 오두막들, 남산'은 포격으로 지붕과 담이 모두 무너진 남산자락의 집들을 담았다. 지붕부터 폭삭 내려앉은 집들이 당시 처참한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의 아버지'는 황폐화된 시내를 배경으로 먼지 날리는 남산길을 걷는 봇짐장수의 모습이 담겼다. 전쟁 속 고단한 일상이 담긴 봇짐장수의 표정이 생생하다.

반면 '우아한 한국 신사, 서울'로 표현된 노인이 허물어진 담벼락을 뒤로하고 '한복 정장'에 중절모까지 갖춰 쓴 채 점잖게 거리를 지나고 있어 대조적이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미군들을 위해 시내 P.X(현재 신세계백화점)에 크리스마스 장식물을 걸어놓은 사진도 눈에 띈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서울성곽을 헐고 지었다고 전해지지만 현존하진 않는 조선신궁의 모습도 찍혔다. '제3철도수송단 건물' 사진 오른쪽 상단에는 남산 위 조선신궁의 지붕이 보이며 '1천개의 계단' 사진에는 남대문쪽에서 조선신궁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볼 수 있다.

전쟁의 소란과 무관하게 고요한 한강과 뚝섬의 풍경도 인상적이다. 맥린 박사가 찍은 당시 한강은 지금과 달리 고층 빌딩은커녕 다리 등 인공 구조물 하나 없이 청정지대다.

맥린 박사는 1953년 8월 미국으로 돌아가 버지니아텍에서 지질학과 교수로 지내며 지구온난화에 대한 연구로 널리 이름을 알렸다. 그는 1995년 은퇴해 최근에는 K-T경계층에 대해 저술하고 있다.

그는 반세기 전 경험이지만 서울에서의 첫날 밤이 아직 생생하다고 했다.

맥린 박사는 "매우 어둡고 추운 첫날 밤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서 서울 전역의 불이 나가 중공군인 줄 알고 긴장하며 보초를 섰는데 훗날 들으니 악명높은 북한의 저공비행기 '취침점호 찰리(Bedcheck Charlie)'였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전쟁 후 한국에 다시 가본 적은 없지만, 인터넷을 통해 한국의 도시와 풍경을 즐겨본다"며 "전쟁 후 한국의 경이로운 성장은 내게도 기쁜 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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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군 렌즈에 담긴 한국전쟁 속 서울 풍경
    • 입력 2013-08-25 08:46:49
    • 수정2013-08-25 08:48:57
    연합뉴스
듀이 맥린 박사 "한국의 경이로운 성장 기뻐"

폐허가 된 시내를 배경으로 남산자락을 걷는 봇짐장수, 전쟁통에도 잔해 하나 없이 평온하고 푸른 한강….

한국전쟁에 참전한 한 미군 병사가 렌즈에 담은 서울 풍경은 왜곡과 과장없이 당시 서울의 일상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1951년부터 1953년까지 미8군 제3철도수송단에서 상병으로 근무했던 듀이 맥린(Dewey McLean, 82) 박사는 25일 연합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 사람과 땅, 눈길을 끄는 것들을 볼 때마다 경험으로 기록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용산고 자리에 있었던 제3철도수송단에서 근무했지만 수시로 시내에 나와 서울 곳곳을 담아 약 300장의 사진을 남겼다. 1950년대 서울 풍경이 컬러 사진으로 생생하게 담긴 사례는 흔치 않다.

1952~1953년 사이 겨울에 찍은 '한국 오두막들, 남산'은 포격으로 지붕과 담이 모두 무너진 남산자락의 집들을 담았다. 지붕부터 폭삭 내려앉은 집들이 당시 처참한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의 아버지'는 황폐화된 시내를 배경으로 먼지 날리는 남산길을 걷는 봇짐장수의 모습이 담겼다. 전쟁 속 고단한 일상이 담긴 봇짐장수의 표정이 생생하다.

반면 '우아한 한국 신사, 서울'로 표현된 노인이 허물어진 담벼락을 뒤로하고 '한복 정장'에 중절모까지 갖춰 쓴 채 점잖게 거리를 지나고 있어 대조적이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미군들을 위해 시내 P.X(현재 신세계백화점)에 크리스마스 장식물을 걸어놓은 사진도 눈에 띈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서울성곽을 헐고 지었다고 전해지지만 현존하진 않는 조선신궁의 모습도 찍혔다. '제3철도수송단 건물' 사진 오른쪽 상단에는 남산 위 조선신궁의 지붕이 보이며 '1천개의 계단' 사진에는 남대문쪽에서 조선신궁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볼 수 있다.

전쟁의 소란과 무관하게 고요한 한강과 뚝섬의 풍경도 인상적이다. 맥린 박사가 찍은 당시 한강은 지금과 달리 고층 빌딩은커녕 다리 등 인공 구조물 하나 없이 청정지대다.

맥린 박사는 1953년 8월 미국으로 돌아가 버지니아텍에서 지질학과 교수로 지내며 지구온난화에 대한 연구로 널리 이름을 알렸다. 그는 1995년 은퇴해 최근에는 K-T경계층에 대해 저술하고 있다.

그는 반세기 전 경험이지만 서울에서의 첫날 밤이 아직 생생하다고 했다.

맥린 박사는 "매우 어둡고 추운 첫날 밤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서 서울 전역의 불이 나가 중공군인 줄 알고 긴장하며 보초를 섰는데 훗날 들으니 악명높은 북한의 저공비행기 '취침점호 찰리(Bedcheck Charlie)'였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전쟁 후 한국에 다시 가본 적은 없지만, 인터넷을 통해 한국의 도시와 풍경을 즐겨본다"며 "전쟁 후 한국의 경이로운 성장은 내게도 기쁜 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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