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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공기업 같은날 입사시험…선택 자유 침해 논란
입력 2013.09.04 (06:41) 수정 2013.09.04 (06:49) 연합뉴스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한국거래소, 예금보험공사, 무역보험공사….

정년 보장의 철밥통과 대기업 뺨치는 급여로 '신이 내린 직장'이라 불리는 금융공기업(공사)들이다. 요즈음엔 청년 취업난이 심해지며 아예 '신도 들어가기 힘든 곳'이란 수식어도 덧붙었다.

이들 기관은 지난해 입사시험을 모두 같은 날로 '담합'했다. 수년간 이어진 'A매치 데이'다. A매치 데이란 다수의 축구 국가대표전이 열리는 날로 신의 직장인 이들 공기업에 들어가기 위한 쟁탈전을 빗댄 말이다.

시험날짜가 겹치니 지원자들은 사실상 중복지원이 불가능해진다. 채용도 한 해에 한 번꼴이라 떨어지면 꼬박 1년을 다시 기다려야 한다. 이 때문에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일고 있다. '왜 자유롭게 시험을 볼 자유마저 박탈하느냐'는 것이다.

◇ A매치 데이 왜 생겼나

A매치 데이란 용어가 생긴 것은 2000년 초반으로 추정된다. 당시에도 주요 공공기관과 언론사 등의 시험일이 겹치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공기업들이 인위적으로 시험 날짜를 맞춘 것은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알려졌다.

올해 A매치 데이는 10월19일이다. 이 날짜는 한은이 먼저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 관계자는 "다른 금융공기업들이 한은의 채용 계획을 보고 따라 하는 식"이라며 "일반 사기업들 역시 인적성 시험 등을 같은 날로 잡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0년의 경우 한은, 금감원, 산은, 예보, 수은 뿐 아니라 GS칼텍스, 에쓰오일, 한화, SK, KT, LG CNS 등 약 20개의 공기업·사기업이 모두 같은 날 입사시험을 치렀다.

2011년 역시 전년도 날짜가 같았던 금융공기업에 더해 한국거래소, 신한금융투자, 부산은행, GS칼텍스, 에쓰오일, SK, KT, CJ 등 약 30개의 주요기업이 A매치 데이에 참가하는 등 전선(戰線)은 확대하는 추세다.

올해도 벌써 한은, 금감원, 산은, 수은이 10월19일 필기시험 일정을 발표했다. 아직 채용 공고가 나지 않은 금융공기업들도 조만간 같은 날에 시험을 실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기업만의 A매치 데이도 있다. 올해 4월 처음으로 현대차그룹과 삼성그룹이 적성검사를 같은 날 치르며 자존심대결을 벌인 것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공채 시즌이 정해져 있다 보니 본의 아니게 시험일이 겹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 갑(甲)들의 행정편의적 발상 우려

금융공기업들이 시험일을 통일하는 이유는 뭘까. 금감원 관계자는 "이들이 시험 날짜를 달리하면 실력 있는 지원자가 2~3군데 붙고 안 가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은이나 금감원같이 선호가 높은 곳에서는 합격통지를 받고도 입사를 포기하는 경우가 적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선호가 떨어지는 공기업은 한은·금감원에 합격자를 양보하는 일이 왕왕 생긴다.

이 관계자는 "이 경우 2차, 3차 전형을 치러 빈자리를 메워야 하는 문제(번거로움)가 생긴다"며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금융공기업들이 같은 날로 시험 날짜를 정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인위적으로 맞추지는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고 설명했다.

A매치 데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공기업들이 취업시장에서 갑(甲)의 위치를 악용해 지원자들의 선택권을 침해하고, 자신들의 행정편의만을 꾀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 때문이다.

회계사 자격증을 갖고 올해 금융공기업 입사를 준비하는 오모(27·고려대 4)씨는 "솔직히 한 곳이라도 더 시험을 보고 싶은 게 취업준비생의 심정"이라며 "왜 이렇게 해야 하는 지 물어도 보고 싶지만, 불이익을 받을까봐 못한다"고 말했다.

다른 금융공기업 준비생 유모(28·연세대 4)씨도 "A매치 데이에는 (지원자들이 결시하며) 실질경쟁률이 뚝 떨어지는 측면도 있지만, 가고 싶은 곳에 모두 지원할 수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임민옥 사람인(취업포털사이트) 팀장은 "금융공기업들로서는 좋은 인재를 빼앗기고 싶지 않겠지만, 구직자 입장에선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들 수 있다"고 말했다.
  • 금융공기업 같은날 입사시험…선택 자유 침해 논란
    • 입력 2013-09-04 06:41:14
    • 수정2013-09-04 06:49:47
    연합뉴스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한국거래소, 예금보험공사, 무역보험공사….

정년 보장의 철밥통과 대기업 뺨치는 급여로 '신이 내린 직장'이라 불리는 금융공기업(공사)들이다. 요즈음엔 청년 취업난이 심해지며 아예 '신도 들어가기 힘든 곳'이란 수식어도 덧붙었다.

이들 기관은 지난해 입사시험을 모두 같은 날로 '담합'했다. 수년간 이어진 'A매치 데이'다. A매치 데이란 다수의 축구 국가대표전이 열리는 날로 신의 직장인 이들 공기업에 들어가기 위한 쟁탈전을 빗댄 말이다.

시험날짜가 겹치니 지원자들은 사실상 중복지원이 불가능해진다. 채용도 한 해에 한 번꼴이라 떨어지면 꼬박 1년을 다시 기다려야 한다. 이 때문에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일고 있다. '왜 자유롭게 시험을 볼 자유마저 박탈하느냐'는 것이다.

◇ A매치 데이 왜 생겼나

A매치 데이란 용어가 생긴 것은 2000년 초반으로 추정된다. 당시에도 주요 공공기관과 언론사 등의 시험일이 겹치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공기업들이 인위적으로 시험 날짜를 맞춘 것은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알려졌다.

올해 A매치 데이는 10월19일이다. 이 날짜는 한은이 먼저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 관계자는 "다른 금융공기업들이 한은의 채용 계획을 보고 따라 하는 식"이라며 "일반 사기업들 역시 인적성 시험 등을 같은 날로 잡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0년의 경우 한은, 금감원, 산은, 예보, 수은 뿐 아니라 GS칼텍스, 에쓰오일, 한화, SK, KT, LG CNS 등 약 20개의 공기업·사기업이 모두 같은 날 입사시험을 치렀다.

2011년 역시 전년도 날짜가 같았던 금융공기업에 더해 한국거래소, 신한금융투자, 부산은행, GS칼텍스, 에쓰오일, SK, KT, CJ 등 약 30개의 주요기업이 A매치 데이에 참가하는 등 전선(戰線)은 확대하는 추세다.

올해도 벌써 한은, 금감원, 산은, 수은이 10월19일 필기시험 일정을 발표했다. 아직 채용 공고가 나지 않은 금융공기업들도 조만간 같은 날에 시험을 실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기업만의 A매치 데이도 있다. 올해 4월 처음으로 현대차그룹과 삼성그룹이 적성검사를 같은 날 치르며 자존심대결을 벌인 것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공채 시즌이 정해져 있다 보니 본의 아니게 시험일이 겹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 갑(甲)들의 행정편의적 발상 우려

금융공기업들이 시험일을 통일하는 이유는 뭘까. 금감원 관계자는 "이들이 시험 날짜를 달리하면 실력 있는 지원자가 2~3군데 붙고 안 가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은이나 금감원같이 선호가 높은 곳에서는 합격통지를 받고도 입사를 포기하는 경우가 적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선호가 떨어지는 공기업은 한은·금감원에 합격자를 양보하는 일이 왕왕 생긴다.

이 관계자는 "이 경우 2차, 3차 전형을 치러 빈자리를 메워야 하는 문제(번거로움)가 생긴다"며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금융공기업들이 같은 날로 시험 날짜를 정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인위적으로 맞추지는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고 설명했다.

A매치 데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공기업들이 취업시장에서 갑(甲)의 위치를 악용해 지원자들의 선택권을 침해하고, 자신들의 행정편의만을 꾀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 때문이다.

회계사 자격증을 갖고 올해 금융공기업 입사를 준비하는 오모(27·고려대 4)씨는 "솔직히 한 곳이라도 더 시험을 보고 싶은 게 취업준비생의 심정"이라며 "왜 이렇게 해야 하는 지 물어도 보고 싶지만, 불이익을 받을까봐 못한다"고 말했다.

다른 금융공기업 준비생 유모(28·연세대 4)씨도 "A매치 데이에는 (지원자들이 결시하며) 실질경쟁률이 뚝 떨어지는 측면도 있지만, 가고 싶은 곳에 모두 지원할 수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임민옥 사람인(취업포털사이트) 팀장은 "금융공기업들로서는 좋은 인재를 빼앗기고 싶지 않겠지만, 구직자 입장에선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들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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