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배우들의 힘과 역사 인식의 간극…‘관상’

입력 2013.09.04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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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란(癸酉靖難)은 조선왕조에서도 가장 극적인 사건 중 하나다. 왕권과 신권의 갈등, 야망과 명분의 충돌, 꼿꼿한 절개와 비루한 야합 등 이야깃거리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영화 '관상'은 기존 사대부 중심의 서술보다는 몰락한 양반과 '관상'이라는 소재를 결합시켜 역사적 사건을 바라본 팩션(Faction)이다. 허구의 인물을 등장시켜 권력 투쟁의 비정함과 바르게 살고 싶지만 시대적 한계 탓에 좌절할 수밖에 없는 소시민의 무력감을 담았다.

역적의 자식으로 깊숙한 시골에 은거한 조선 최고의 관상가 내경(송강호). 소문을 듣고 찾아온 관상가이자 기생 연홍(김혜수)의 매혹적인 제안을 받고 처남 팽헌(조정석)과 함께 한양으로 향한다.

그러나 연홍의 사기극에 속아 울며 겨자먹기로 무보수 관상을 봐주던 그는 우연히 관상만으로 범인을 잡아내는 실력을 발휘하며 당대의 실력자 좌의정 김종서(백윤식)의 눈에 든다.

백발백중의 실력에 놀란 김종서는 내경을 문종(김태우)에게 천거하고, 내경은 문종의 명으로 야심가 수양대군(이정재)의 관상을 보러 간다.

'관상장이' 이야기로 계유정란을 새롭게 바라봤다는 점에서 영화 '관상'은 신선하다. 초반 코미디와 중반을 넘기면서 서서히 피치를 올리는 드라마도 비교적 탄탄한 편이다.

특히 초반 코미디는 관객의 시선을 빨아들인다. 송강호와 조정석의 콤비플레이는 최근 나온 한국 상업영화 가운데 압권이라 할 만하다. 특히 송강호의 연기는 탁월하다. 민망한 상황에서 나오는 엉뚱한 표정은 '살인의 추억' 등에서 보여준 전성기 때의 연기를 떠올리게 한다.

송강호야 워낙 연기를 잘하는 걸로 소문났지만 조정석의 코미디 연기는 장족의 발전이라 할 만하다. '건축학개론'의 '납뜩이' 역할을 통해 시선을 끌었던 그는, 송강호라는 명배우와 호흡을 맞추며 걸쭉한 웃음을 선사한다.

수양대군이 등장하면서 고조되는 반정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민초에 불과한 관상쟁이가 역사의 파도를 바꿀 수 있을 만큼 커다란 활약을 펼치는 부분과 역적의 자손이라는 오명을 씻기 위한 그의 눈물겨운 노력은 드라마에 밀도감을 부여한다.

100억 원대의 제작비가 들어간 대작답게 미술과 의상도 화려해 볼거리가 풍성하다. 요즘 대세로 떠오른 이종석과 이정재·백윤식의 호연, 코미디와 드라마의 자연스러운 넘나듦 등을 고려해 봤을 때 추석 명절에 가족들이 보기에 무리 없는 작품이다.

그러나 역사를 바라보는 감독의 태도는 아쉽다. 특히 김종서와 수양대군 등 실존 인물에 대한 접근은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감독은 다이내믹한 시대를 살았던 인물의 다층적인 고민과 그들의 명분을 세밀하게 살피려 들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김종서가 의정부 기능 강화를 골자로 한 '황표정사'를 비판한 말단 벼슬아치의 지적에 소인배처럼 행동하고, 수양은 시대적 사명과 왕권 강화의 논리를 뒤로한 채 그저 개인적 야망만을 위해 폭주하는 인물로 묘사된다.(김씨 조선이 아니라 이씨 조선을 위해 칼을 빼들었다는 대사 한마디만으로 모든 걸 설명하려 한다면 무리다.) 이야기의 끝을 향하고자 이처럼 캐릭터의 '다층성'을 포기했다는 점에서 밀도있게 흐르던 영화의 이야기는 막판 헐거워진다. 이는 내경이라는 인물을 중심에 두고 사건을 진행하다 보니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한데, 이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조금 아쉽다.

'연애의 목적'(2005) '우아한 세계'(2007)로 충무로의 주목을 받은 한재림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영화다.

9월1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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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영화] 배우들의 힘과 역사 인식의 간극…‘관상’
    • 입력 2013-09-04 08:29:39
    연합뉴스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란(癸酉靖難)은 조선왕조에서도 가장 극적인 사건 중 하나다. 왕권과 신권의 갈등, 야망과 명분의 충돌, 꼿꼿한 절개와 비루한 야합 등 이야깃거리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영화 '관상'은 기존 사대부 중심의 서술보다는 몰락한 양반과 '관상'이라는 소재를 결합시켜 역사적 사건을 바라본 팩션(Faction)이다. 허구의 인물을 등장시켜 권력 투쟁의 비정함과 바르게 살고 싶지만 시대적 한계 탓에 좌절할 수밖에 없는 소시민의 무력감을 담았다. 역적의 자식으로 깊숙한 시골에 은거한 조선 최고의 관상가 내경(송강호). 소문을 듣고 찾아온 관상가이자 기생 연홍(김혜수)의 매혹적인 제안을 받고 처남 팽헌(조정석)과 함께 한양으로 향한다. 그러나 연홍의 사기극에 속아 울며 겨자먹기로 무보수 관상을 봐주던 그는 우연히 관상만으로 범인을 잡아내는 실력을 발휘하며 당대의 실력자 좌의정 김종서(백윤식)의 눈에 든다. 백발백중의 실력에 놀란 김종서는 내경을 문종(김태우)에게 천거하고, 내경은 문종의 명으로 야심가 수양대군(이정재)의 관상을 보러 간다. '관상장이' 이야기로 계유정란을 새롭게 바라봤다는 점에서 영화 '관상'은 신선하다. 초반 코미디와 중반을 넘기면서 서서히 피치를 올리는 드라마도 비교적 탄탄한 편이다. 특히 초반 코미디는 관객의 시선을 빨아들인다. 송강호와 조정석의 콤비플레이는 최근 나온 한국 상업영화 가운데 압권이라 할 만하다. 특히 송강호의 연기는 탁월하다. 민망한 상황에서 나오는 엉뚱한 표정은 '살인의 추억' 등에서 보여준 전성기 때의 연기를 떠올리게 한다. 송강호야 워낙 연기를 잘하는 걸로 소문났지만 조정석의 코미디 연기는 장족의 발전이라 할 만하다. '건축학개론'의 '납뜩이' 역할을 통해 시선을 끌었던 그는, 송강호라는 명배우와 호흡을 맞추며 걸쭉한 웃음을 선사한다. 수양대군이 등장하면서 고조되는 반정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민초에 불과한 관상쟁이가 역사의 파도를 바꿀 수 있을 만큼 커다란 활약을 펼치는 부분과 역적의 자손이라는 오명을 씻기 위한 그의 눈물겨운 노력은 드라마에 밀도감을 부여한다. 100억 원대의 제작비가 들어간 대작답게 미술과 의상도 화려해 볼거리가 풍성하다. 요즘 대세로 떠오른 이종석과 이정재·백윤식의 호연, 코미디와 드라마의 자연스러운 넘나듦 등을 고려해 봤을 때 추석 명절에 가족들이 보기에 무리 없는 작품이다. 그러나 역사를 바라보는 감독의 태도는 아쉽다. 특히 김종서와 수양대군 등 실존 인물에 대한 접근은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감독은 다이내믹한 시대를 살았던 인물의 다층적인 고민과 그들의 명분을 세밀하게 살피려 들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김종서가 의정부 기능 강화를 골자로 한 '황표정사'를 비판한 말단 벼슬아치의 지적에 소인배처럼 행동하고, 수양은 시대적 사명과 왕권 강화의 논리를 뒤로한 채 그저 개인적 야망만을 위해 폭주하는 인물로 묘사된다.(김씨 조선이 아니라 이씨 조선을 위해 칼을 빼들었다는 대사 한마디만으로 모든 걸 설명하려 한다면 무리다.) 이야기의 끝을 향하고자 이처럼 캐릭터의 '다층성'을 포기했다는 점에서 밀도있게 흐르던 영화의 이야기는 막판 헐거워진다. 이는 내경이라는 인물을 중심에 두고 사건을 진행하다 보니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한데, 이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조금 아쉽다. '연애의 목적'(2005) '우아한 세계'(2007)로 충무로의 주목을 받은 한재림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영화다. 9월1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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