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끈질긴 부정’ 15년 만에 성폭행범 잡아

입력 2013.09.06 (08:34) 수정 2013.09.06 (09:17)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멘트>

15년 전의 일입니다.

대구의 한 고속도로에서 여대생이 화물차에 치여 숨진 사고가 있었는데요.

당시 경찰은 이 여대생이 무단횡단을 하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종결했는데요.

하지만 석연찮은 점이 많았던 이 사건을 두고 유가족은 끊임없이 의혹을 제기해왔고, 15년 만에 이 사건의 진실이 밝혀졌습니다.

김기흥 기자, 15년 만에 밝혀진 진실이 뭡니까?

<기자 멘트>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었습니다.

그것도 집단 성폭행 사건이 있었던 겁니다.

유족들은 처음부터 성범죄의 가능성을 제기하며 재수사를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영구 미제 사건으로 분류되고 말았는데요.

하지만 아버지의 끈질긴 노력을 계속됐고 지난해 9월 검찰의 재수사가 시작되면서 공소시효 만료를 한 달여 앞두고 범인을 검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딸에게 진실을 꼭 밝혀내겠다고 한 약속을 뒤늦게라도 지켜서 다행이라는 아버지...

아버지의 기나긴 15년의 세월을 따라가봤습니다.

<리포트>

지난 1998년 10월 17일 새벽 5시 10분쯤.

대구 구마고속도로 중앙분리대 근처에서 한 여대생이 화물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습니다.

숨진 여대생은 당시 열여덟 살이었던 정 모양.

사랑하는 딸을 잃은 유족들은 깊은 슬픔에 잠겼는데요.

<인터뷰> 정현조(정 양 아버지) : “웃음꽃이 피었던 가족이 웃음이 없어져 버리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는 건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당시 경찰은 정 양이 고속도로를 무단 횡단하다가 일어난 단순 교통사고로 단정 짓고 서둘러 수사를 종결했습니다.

그런데, 유족들은 경찰의 수사 결과에 대해 강한 의문이 들었다고 하는데요.

<인터뷰> 정현조(정 양 아버지) : “(사고 현장) 거기에서 학교까지 거리나 우리 집에서의 거리나 비슷해요. 딱 삼각형태가 되거든요. (집과는) 반대방향이에요.”

게다가 단순한 교통사고로 보기에는 의심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당시 병원에서 확인했을 때 정양은 겉옷만 입고 있었고, 사고 현장 부근에서 정 양의 것으로 보이는 속옷이 발견된 건데요.

<인터뷰> 정현조(정 양 아버지) : “시트를 이렇게 걷어 보니까 속옷이 없어요. 동서들이 와서 학교에서 (사고 현장까지) 차로 거리를 쟀어요. (고속도로 주변) 풀밭에 속옷이 있더래요.”

이 같은 정황으로 살펴볼 때, 유족들은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닐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터뷰> 정현조(정 양 아버지) :“지나가는 아줌마들이 버린 것을 주워 와서 딸 것이라고 한다고 (했어요.)”

유족들의 계속된 요구에 DNA를 분석한 결과, 발견된 속옷은 정 양의 것으로 확인됐는데요.

하지만 수사는 이미 종결된 상태!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습니다.

<녹취> 경찰 관계자: "수사는 종결됐고 유족은 딱하지만 저희가 하는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사고가 있기 하루 전 날, 학교 행사에 간다며 집을 나섰다는 정 양.

그 날 밤, 동기 학생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다 취한 동료 남학생을 바래다주는 과정에서 소식이 끊겼는데요.

그리고 다음 날 새벽, 구마고속도로 하행선 부근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겁니다.

그렇다면, 교문을 나섰던 밤 10시 30분부터 다음 날 새벽 5시 10분 사이 정 양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녹취> 피해자측 변호사 : “우선 학교에서 상당히 먼데, 거기(사건 현장)까지 어떻게 간 것일까. 남학생이 (교문을 나선) 후에 대해서 잘 기억을 못했어요. 부정확한 상황 때문에 굉장히 많은 의문을 갖고 있었던 상태였죠.”

석연치 않은 딸의 죽음! 정 양의 아버지는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청와대와 인권위원회에 여러 차례에 걸쳐 수사 재개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냈는데요.

인터넷에 딸의 추모홈페이지를 만들어 누리꾼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했고, 경찰의 재수사를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을 벌였습니다.

영원히 미제로 남을 것 같던 이 사건은 딸을 위한 아버지의 끈질긴 노력으로 지난해 9월 검찰의 재수사가 이뤄지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풀렸는데요.

검찰이 2년 전, 청소년 성 매수 혐의로 입건됐던 피의자의 유전자를 대조하는 과정에서 피의자의 DNA가 정 양의 속옷에 묻어있던 DNA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겁니다.

<인터뷰> 이금로(차장검사 /대구지방검찰청 형사1부) : “속옷에서 발견된 DNA가 현재 국립과학수사 연구원에 보관 중이라는 사실을 기초로, 대검찰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통해 DNA 일치자의 정보를 확인하였습니다.”

공소시효 만료를 불과 한 달여 앞두고, 극적으로 피의자를 검거한 건데요.

붙잡힌 피의자는 46살 외국인 근로자!

검찰 수사 결과, 스리랑카인 K씨는 사고 당일 새벽, 집으로 돌아가던 정 양을 동료 외국인 근로자 2명과 함께 집단 성폭행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인터뷰> 이금로(차장검사/대구지방검찰청 형사1부) : “길을 가던 중 술에 취한 피해자 정 모양을 발견하고 피해자를 자전거에 태워 구마고속도로 아래 굴다리 근처로 데려가 공범들과 순차적으로 강간했다는 혐의입니다.”

당시 산업연수생으로 국내에 머물렀던 K씨 일행.

공범 2명은 2001년에 불법체류로 적발돼 스리랑카로 강제 출국했지만 K씨는 한국인 여성과 결혼해 국내에 정착했습니다.

검찰은 이들이 정 양을 살인했을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성폭행을 당한 정양이 충격으로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주변을 걷다가 트럭에 치여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요.

<인터뷰> 이금로(차장검사/대구지방검찰청 형사1부) : “피해자가 갓길 쪽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고속도로) 가운데에서 (사고가) 났고요. 살아있는 피해자를 트럭에 밀칠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시장에서 10년 넘게 장사를 했던 정 양의 아버지!

딸의 억울한 죽음을 풀기 위해 그동안 생업도 포기하고 힘겨운 시간들을 보내야 했는데요.

<인터뷰> 시장상인 : “많이 힘들었지. 자식을 잃었는데...그 부모 마음이 얼마나 힘들고 그랬겠어요.”

마침내 진실이 드러나면서 유족들의 한은 조금이나마 풀리게 됐습니다.

<인터뷰> 정현조(정 양 아버지) : “아빠로서는 내가 할 일은 다 한 것 같다. 그러니 너는 하늘나라에서 범죄 없는 좋은 나라에 가서 편안히 잘 살아라.”

15년 가까이 숱한 의혹만 남긴 채 영원히 묻힐 뻔했던 이번 사건!

검찰은 K씨를 구속 기소하고, 스리랑카로 돌아간 공범 2명에 대해 처벌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뉴스 따라잡기] ‘끈질긴 부정’ 15년 만에 성폭행범 잡아
    • 입력 2013-09-06 08:37:54
    • 수정2013-09-06 09:17:13
    아침뉴스타임
<앵커 멘트>

15년 전의 일입니다.

대구의 한 고속도로에서 여대생이 화물차에 치여 숨진 사고가 있었는데요.

당시 경찰은 이 여대생이 무단횡단을 하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종결했는데요.

하지만 석연찮은 점이 많았던 이 사건을 두고 유가족은 끊임없이 의혹을 제기해왔고, 15년 만에 이 사건의 진실이 밝혀졌습니다.

김기흥 기자, 15년 만에 밝혀진 진실이 뭡니까?

<기자 멘트>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었습니다.

그것도 집단 성폭행 사건이 있었던 겁니다.

유족들은 처음부터 성범죄의 가능성을 제기하며 재수사를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영구 미제 사건으로 분류되고 말았는데요.

하지만 아버지의 끈질긴 노력을 계속됐고 지난해 9월 검찰의 재수사가 시작되면서 공소시효 만료를 한 달여 앞두고 범인을 검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딸에게 진실을 꼭 밝혀내겠다고 한 약속을 뒤늦게라도 지켜서 다행이라는 아버지...

아버지의 기나긴 15년의 세월을 따라가봤습니다.

<리포트>

지난 1998년 10월 17일 새벽 5시 10분쯤.

대구 구마고속도로 중앙분리대 근처에서 한 여대생이 화물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습니다.

숨진 여대생은 당시 열여덟 살이었던 정 모양.

사랑하는 딸을 잃은 유족들은 깊은 슬픔에 잠겼는데요.

<인터뷰> 정현조(정 양 아버지) : “웃음꽃이 피었던 가족이 웃음이 없어져 버리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는 건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당시 경찰은 정 양이 고속도로를 무단 횡단하다가 일어난 단순 교통사고로 단정 짓고 서둘러 수사를 종결했습니다.

그런데, 유족들은 경찰의 수사 결과에 대해 강한 의문이 들었다고 하는데요.

<인터뷰> 정현조(정 양 아버지) : “(사고 현장) 거기에서 학교까지 거리나 우리 집에서의 거리나 비슷해요. 딱 삼각형태가 되거든요. (집과는) 반대방향이에요.”

게다가 단순한 교통사고로 보기에는 의심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당시 병원에서 확인했을 때 정양은 겉옷만 입고 있었고, 사고 현장 부근에서 정 양의 것으로 보이는 속옷이 발견된 건데요.

<인터뷰> 정현조(정 양 아버지) : “시트를 이렇게 걷어 보니까 속옷이 없어요. 동서들이 와서 학교에서 (사고 현장까지) 차로 거리를 쟀어요. (고속도로 주변) 풀밭에 속옷이 있더래요.”

이 같은 정황으로 살펴볼 때, 유족들은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닐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터뷰> 정현조(정 양 아버지) :“지나가는 아줌마들이 버린 것을 주워 와서 딸 것이라고 한다고 (했어요.)”

유족들의 계속된 요구에 DNA를 분석한 결과, 발견된 속옷은 정 양의 것으로 확인됐는데요.

하지만 수사는 이미 종결된 상태!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습니다.

<녹취> 경찰 관계자: "수사는 종결됐고 유족은 딱하지만 저희가 하는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사고가 있기 하루 전 날, 학교 행사에 간다며 집을 나섰다는 정 양.

그 날 밤, 동기 학생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다 취한 동료 남학생을 바래다주는 과정에서 소식이 끊겼는데요.

그리고 다음 날 새벽, 구마고속도로 하행선 부근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겁니다.

그렇다면, 교문을 나섰던 밤 10시 30분부터 다음 날 새벽 5시 10분 사이 정 양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녹취> 피해자측 변호사 : “우선 학교에서 상당히 먼데, 거기(사건 현장)까지 어떻게 간 것일까. 남학생이 (교문을 나선) 후에 대해서 잘 기억을 못했어요. 부정확한 상황 때문에 굉장히 많은 의문을 갖고 있었던 상태였죠.”

석연치 않은 딸의 죽음! 정 양의 아버지는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청와대와 인권위원회에 여러 차례에 걸쳐 수사 재개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냈는데요.

인터넷에 딸의 추모홈페이지를 만들어 누리꾼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했고, 경찰의 재수사를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을 벌였습니다.

영원히 미제로 남을 것 같던 이 사건은 딸을 위한 아버지의 끈질긴 노력으로 지난해 9월 검찰의 재수사가 이뤄지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풀렸는데요.

검찰이 2년 전, 청소년 성 매수 혐의로 입건됐던 피의자의 유전자를 대조하는 과정에서 피의자의 DNA가 정 양의 속옷에 묻어있던 DNA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겁니다.

<인터뷰> 이금로(차장검사 /대구지방검찰청 형사1부) : “속옷에서 발견된 DNA가 현재 국립과학수사 연구원에 보관 중이라는 사실을 기초로, 대검찰청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을 통해 DNA 일치자의 정보를 확인하였습니다.”

공소시효 만료를 불과 한 달여 앞두고, 극적으로 피의자를 검거한 건데요.

붙잡힌 피의자는 46살 외국인 근로자!

검찰 수사 결과, 스리랑카인 K씨는 사고 당일 새벽, 집으로 돌아가던 정 양을 동료 외국인 근로자 2명과 함께 집단 성폭행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인터뷰> 이금로(차장검사/대구지방검찰청 형사1부) : “길을 가던 중 술에 취한 피해자 정 모양을 발견하고 피해자를 자전거에 태워 구마고속도로 아래 굴다리 근처로 데려가 공범들과 순차적으로 강간했다는 혐의입니다.”

당시 산업연수생으로 국내에 머물렀던 K씨 일행.

공범 2명은 2001년에 불법체류로 적발돼 스리랑카로 강제 출국했지만 K씨는 한국인 여성과 결혼해 국내에 정착했습니다.

검찰은 이들이 정 양을 살인했을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성폭행을 당한 정양이 충격으로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주변을 걷다가 트럭에 치여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요.

<인터뷰> 이금로(차장검사/대구지방검찰청 형사1부) : “피해자가 갓길 쪽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고속도로) 가운데에서 (사고가) 났고요. 살아있는 피해자를 트럭에 밀칠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시장에서 10년 넘게 장사를 했던 정 양의 아버지!

딸의 억울한 죽음을 풀기 위해 그동안 생업도 포기하고 힘겨운 시간들을 보내야 했는데요.

<인터뷰> 시장상인 : “많이 힘들었지. 자식을 잃었는데...그 부모 마음이 얼마나 힘들고 그랬겠어요.”

마침내 진실이 드러나면서 유족들의 한은 조금이나마 풀리게 됐습니다.

<인터뷰> 정현조(정 양 아버지) : “아빠로서는 내가 할 일은 다 한 것 같다. 그러니 너는 하늘나라에서 범죄 없는 좋은 나라에 가서 편안히 잘 살아라.”

15년 가까이 숱한 의혹만 남긴 채 영원히 묻힐 뻔했던 이번 사건!

검찰은 K씨를 구속 기소하고, 스리랑카로 돌아간 공범 2명에 대해 처벌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