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두 공기 김치 몇 조각’ 홀로 남은 그가 훔친 것

입력 2013.09.06 (08:45) 수정 2013.09.0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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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고파서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초점이 없는 눈동자로 정모(27)씨는 고개를 숙였다.

정씨가 고개를 숙일 때마다 남루한 옷에 배어 피어난 까만 곰팡이가 어깨 위에서 들썩였다.

그는 6일 새벽 광주 서구 광천동의 창문이 열린 식당에 들어가 어둠 속에서 밥을 펐다.

손님들이 먹다 남은 김치 몇 조각에 밥 두 공기를 금세 비웠다.

물을 마시려 냉장고를 여는 순간 식당 주인이 뛰쳐나왔다.

냉장고의 희미한 불빛 앞에서 얼어버린 듯 제자리에서 물병을 들고 서 있던 그는 주인에게 붙들렸다.

밥 두 공기에 김치 몇 조각. 6일 새벽 4시 그가 홀로 남은 세상에서 훔친 것이다.

정씨는 혼자다. 12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뜨고 3살 아래 동생이 어딘가로 가버리고는 혼자 남았다.

아버지가 집 한 채를 남겨 주고 떠났지만 작은아버지는 그 집을 팔아버렸다.

이후 신문배달, 일용직 노동 등을 하며 15년을 살았다.

그런데 올해들어 일용직 자리가 뚝 끊겼다.

다른 일자리를 구하려 해도 별다른 기술 없이 20대 후반이 된 정씨를 받아줄 곳은 없었다.

그는 올해 여름을 사람이 많은 곳에 그냥 멍하니 앉아 보냈다. 혼자 있으면 너무 외로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사람 많은 곳에 가 있었다고 그는 털어놨다.

저녁에 월세 20만원짜리 쪽방에 들어가려면 주인을 깨워야 하는 게 미안스러워 길거리에 누워 며칠씩 밤을 지새웠다.

사람들은 정씨를 손가락질하며 "무능하다", "어린놈이 게으르다"고 손가락질했다.

'나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는데 이렇게 됐다'고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코를 손으로 막고 종종걸음치며 그를 피해가는 행인들을 보면서도 그러려니 할 뿐이었다.

그는 절도혐의로 경찰조사를 받았다.

경찰서에서 몸을 씻고, 경찰이 사 준 밥을 먹고, 남은 옷을 얻어 입은 후 다시 혼자 남은 세상으로 터벅터벅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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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밥 두 공기 김치 몇 조각’ 홀로 남은 그가 훔친 것
    • 입력 2013-09-06 08:45:46
    • 수정2013-09-06 09:10:57
    연합뉴스
"배 고파서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초점이 없는 눈동자로 정모(27)씨는 고개를 숙였다.

정씨가 고개를 숙일 때마다 남루한 옷에 배어 피어난 까만 곰팡이가 어깨 위에서 들썩였다.

그는 6일 새벽 광주 서구 광천동의 창문이 열린 식당에 들어가 어둠 속에서 밥을 펐다.

손님들이 먹다 남은 김치 몇 조각에 밥 두 공기를 금세 비웠다.

물을 마시려 냉장고를 여는 순간 식당 주인이 뛰쳐나왔다.

냉장고의 희미한 불빛 앞에서 얼어버린 듯 제자리에서 물병을 들고 서 있던 그는 주인에게 붙들렸다.

밥 두 공기에 김치 몇 조각. 6일 새벽 4시 그가 홀로 남은 세상에서 훔친 것이다.

정씨는 혼자다. 12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뜨고 3살 아래 동생이 어딘가로 가버리고는 혼자 남았다.

아버지가 집 한 채를 남겨 주고 떠났지만 작은아버지는 그 집을 팔아버렸다.

이후 신문배달, 일용직 노동 등을 하며 15년을 살았다.

그런데 올해들어 일용직 자리가 뚝 끊겼다.

다른 일자리를 구하려 해도 별다른 기술 없이 20대 후반이 된 정씨를 받아줄 곳은 없었다.

그는 올해 여름을 사람이 많은 곳에 그냥 멍하니 앉아 보냈다. 혼자 있으면 너무 외로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사람 많은 곳에 가 있었다고 그는 털어놨다.

저녁에 월세 20만원짜리 쪽방에 들어가려면 주인을 깨워야 하는 게 미안스러워 길거리에 누워 며칠씩 밤을 지새웠다.

사람들은 정씨를 손가락질하며 "무능하다", "어린놈이 게으르다"고 손가락질했다.

'나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는데 이렇게 됐다'고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코를 손으로 막고 종종걸음치며 그를 피해가는 행인들을 보면서도 그러려니 할 뿐이었다.

그는 절도혐의로 경찰조사를 받았다.

경찰서에서 몸을 씻고, 경찰이 사 준 밥을 먹고, 남은 옷을 얻어 입은 후 다시 혼자 남은 세상으로 터벅터벅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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