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 권한 휘두르며 ‘엘리트 판사 인맥’ 형성

입력 2013.09.25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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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법원행정처가 로클럭(재판연구원)들의 취업을 위해 대형 로펌들과 간담회를 열려다 무산된 사건은 법원행정처에 대한 법원 안팎의 싸늘한 시선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법원행정처는 내년 초 2년의 임기가 끝나는 로클럭들의 진로에 대한 법조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다양한 직역으로 진출할 발판을 제공하겠다는 '선의'를 강조했다. 그러나 재야 법조계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행정처가 향후 판사로 임용될 가능성이 큰 로클럭들을 '제 식구'라고 보고 경력 관리를 해준다는 비난이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새내기 변호사들의 취업 길을 막는다는 비판을 감수하고 '순혈주의 강화', '시대착오적 선언' 등의 표현을 써가며 강하게 반발했다. '슈퍼 갑'이라는 격한 말도 나왔다.

재판도 하지 않는 법원행정처는 왜 법조계 내 '공공의 적'이 됐을까.

명목상 재판업무를 보조하는 행정기관에 불과한 법원행정처의 막강한 영향력은 인사권과 함께 근무 경력이 일종의 '훈장'으로 여겨지는 데서 나온다.

대법원 규칙은 행정처 인사심의관이 법관 인사 계획을 마련하고 해외연수·상훈 등의 업무를 하도록 했다.

인사심의관은 3천명에 육박하는 전국 판사들의 인사평정과 업무량 분석 등 법관 인사와 관련된 모든 사항을 통제한다. 인사 제도 전반에 대한 중장기 연구와 법조인력 양성·수급 등의 연구는 사법정책실이 맡는다.

문제는 고등법원 부장판사와 대법관 등 고위법관 자리를 행정처 출신들이 대거 차지하는 데 있다. 연수원 졸업성적 등에 근거한 서열 문화가 여전히 남아있는 판사들 사이에서는 행정처에 발탁되면 최상위 서열과 실력을 모두 인정받은 것으로 평가한다.

행정처 근무가 엘리트 코스로 인식되고 이들이 보이지 않는 인맥을 구축하면서 판사들 사이에 위화감이 생긴다는 지적도 있다.

행정처는 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기 직전인 10년차 안팎의 판사들을 심의관으로 불러들인다. 평판사들은 연수원 동기가 심의관으로 발탁되면 고등부장 승진인사 때만큼이나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한다.

법조계에서는 법원행정처에 집중된 권한을 각급 법원 등에 나눠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양승태 대법원장도 2011년 9월 취임 직후 법관 인사권을 분산시킬 의향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고위법관 자리를 독식하며 이너서클을 이루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판사들을 보내 행정업무만 보게 하는 현재 인사제도를 폐지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실제로 사법행정기관에 판사들을 근무하게 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정도다. 미국 연방대법원에도 법원행정처(Administrative Office)가 있긴 하지만 정책을 결정하는 기능은 없고 변호사 출신 행정 전문가들이 업무를 담당한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정 지역에서만 근무하는 '향판' 제도를 활성화하고 법원행정처가 장악한 인사권을 고등법원으로 나눠야 한다"며 "궁극적으로는 법관의 승진구조를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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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강 권한 휘두르며 ‘엘리트 판사 인맥’ 형성
    • 입력 2013-09-25 07:07:54
    연합뉴스
지난달 법원행정처가 로클럭(재판연구원)들의 취업을 위해 대형 로펌들과 간담회를 열려다 무산된 사건은 법원행정처에 대한 법원 안팎의 싸늘한 시선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법원행정처는 내년 초 2년의 임기가 끝나는 로클럭들의 진로에 대한 법조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다양한 직역으로 진출할 발판을 제공하겠다는 '선의'를 강조했다. 그러나 재야 법조계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행정처가 향후 판사로 임용될 가능성이 큰 로클럭들을 '제 식구'라고 보고 경력 관리를 해준다는 비난이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새내기 변호사들의 취업 길을 막는다는 비판을 감수하고 '순혈주의 강화', '시대착오적 선언' 등의 표현을 써가며 강하게 반발했다. '슈퍼 갑'이라는 격한 말도 나왔다. 재판도 하지 않는 법원행정처는 왜 법조계 내 '공공의 적'이 됐을까. 명목상 재판업무를 보조하는 행정기관에 불과한 법원행정처의 막강한 영향력은 인사권과 함께 근무 경력이 일종의 '훈장'으로 여겨지는 데서 나온다. 대법원 규칙은 행정처 인사심의관이 법관 인사 계획을 마련하고 해외연수·상훈 등의 업무를 하도록 했다. 인사심의관은 3천명에 육박하는 전국 판사들의 인사평정과 업무량 분석 등 법관 인사와 관련된 모든 사항을 통제한다. 인사 제도 전반에 대한 중장기 연구와 법조인력 양성·수급 등의 연구는 사법정책실이 맡는다. 문제는 고등법원 부장판사와 대법관 등 고위법관 자리를 행정처 출신들이 대거 차지하는 데 있다. 연수원 졸업성적 등에 근거한 서열 문화가 여전히 남아있는 판사들 사이에서는 행정처에 발탁되면 최상위 서열과 실력을 모두 인정받은 것으로 평가한다. 행정처 근무가 엘리트 코스로 인식되고 이들이 보이지 않는 인맥을 구축하면서 판사들 사이에 위화감이 생긴다는 지적도 있다. 행정처는 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기 직전인 10년차 안팎의 판사들을 심의관으로 불러들인다. 평판사들은 연수원 동기가 심의관으로 발탁되면 고등부장 승진인사 때만큼이나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한다. 법조계에서는 법원행정처에 집중된 권한을 각급 법원 등에 나눠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양승태 대법원장도 2011년 9월 취임 직후 법관 인사권을 분산시킬 의향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고위법관 자리를 독식하며 이너서클을 이루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판사들을 보내 행정업무만 보게 하는 현재 인사제도를 폐지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실제로 사법행정기관에 판사들을 근무하게 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정도다. 미국 연방대법원에도 법원행정처(Administrative Office)가 있긴 하지만 정책을 결정하는 기능은 없고 변호사 출신 행정 전문가들이 업무를 담당한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정 지역에서만 근무하는 '향판' 제도를 활성화하고 법원행정처가 장악한 인사권을 고등법원으로 나눠야 한다"며 "궁극적으로는 법관의 승진구조를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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