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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전범 장례식 무산…묻힐 곳 없는 주검
입력 2013.10.17 (07:38) 수정 2013.10.17 (18:05) 연합뉴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로마에서 수백 명을 학살하고도 사과를 거부하다 15년의 가택연금 끝에 100세로 숨진 나치 전범의 장례식이 시민의 항의로 무산된 데 이어 주검도 묻힐 곳을 찾지 못해 16일(현지시간) 저녁 로마 인근 군 비행장에 방치됐다.

더구나 독일도 자칫 극우세력의 성지화를 우려해 나치 무장친위대 출신으로 '아르데아티네 동굴의 백정'으로 불렸던 에리히 프리프케의 장지 문제에 대해 독일 정부의 책임이 아니라는 입장을 피력해 고국으로 쉽게 돌아가기 어려운 신세가 됐다. 프리프케가 50년 동안 살았던 아르헨티나와 독일의 고향에서도 그의 주검을 받아들이길 거부한 상황이다.

이에 앞서 애초 나치 전범 프리프케를 위한 장례식은 15일 로마 인근 알바노시(市)에 있는 극우 세력의 신학교에서 치러질 예정이었으나 수 백명의 항의 시위대가 몰리면서 무산됐다.

알바노의 니콜라 마리니 시장은 알바노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의 본거지라는 이유를 들어 로마 시내에서 출발한 장례행렬의 알바노 진입을 금지했으나 로마 주가 이를 무효처리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장례행렬이 신학교 인근에 도착하면서 양측의 충돌이 본격화됐다. 몇몇 사람은 운구행렬을 향해 "암살자!", "시신을 쓰레기장에 버려라" 등의 욕을 했고, '프리프케 교수집행인'이라는 글이 적힌 플래카드도 보였다.

이에 맞서 30여명의 우익 세력은 나치식 경례를 하는가 하면 파시스트 노래를 불렀고 "그는 영웅이었다"고 외치는 등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장례식 찬반 세력이 충돌하는 가운데 경찰은 500여명의 반대세력을 저지하다 결국에는 최루탄까지 발사했다.

프리프케 측은 이날 오후 장례식을 일단 연기됐다가 여건이 호전되지 않자 아예 취소한다고 밝혔다.

검은색 밴 차량에 실린 프리프케 유해는 이어 로마 인근 군 비행장 근처로 옮겨져 독일로 가는 방안을 모색했으나 이마저 여의치 않아 오갈곳이 없는 신세가 됐다.

독일 연방정부 외교부 마르틴 섀퍼 대변인은 "독일 정부가 이 문제를 책임질 이유가 없고 이탈리아 정부도 공식요청을 해오지 않았다"며 "독일인이 독일에 묻힐 수 있지만 가족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역시 16일이 나치가 로마 유대인 지역을 공격한 지 70주년이어서 장례식의 추이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유대인 커뮤니티에서는 프리프케의 시신을 화장해 지중해에 뿌리는 것이 적절한 해결방법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프리프케는 1944년 3월 로마 외곽의 아르데아티네 동굴에서 대규모 학살을 주도한 혐의로 1998년 이탈리아 법정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나치 친위대에 대한 게릴라들의 공격을 '10배로 되갚겠다'면서 계획된 이 학살에서 레지스탕스 대원, 유대인, 어린
이 등 335명이 목숨을 잃었다.

프리프케는 판결 이후 고령과 건강문제 때문에 수감되지 않았고 자기 변호사의 로마 자택에 연금되는 형태로 형을 살았다. 그는 생전 범행을 사과하지 않은 채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고 당시 세계 여러 곳에서 민간인이 숨졌다"는 변명만 되풀이했다.

프리프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아르헨티나 남부의 관광명소인 바릴로체로 도망쳐 40년 이상 호텔지배인으로 살다 1995년에야 이탈리아로 송환돼 재판을 받았다.

아르헨티나 생활 당시 프리프케는 태연히 실명을 쓰면서 지역 유지로 행세했고 독일 여권을 갖고 독일, 미국, 이탈리아를 여행하기도 했다. 바릴로체는 많은 나치 전범이 평온한 삶을 누리는 도피처로 악명이 높았다.
  • 나치 전범 장례식 무산…묻힐 곳 없는 주검
    • 입력 2013-10-17 07:38:08
    • 수정2013-10-17 18:05:12
    연합뉴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로마에서 수백 명을 학살하고도 사과를 거부하다 15년의 가택연금 끝에 100세로 숨진 나치 전범의 장례식이 시민의 항의로 무산된 데 이어 주검도 묻힐 곳을 찾지 못해 16일(현지시간) 저녁 로마 인근 군 비행장에 방치됐다.

더구나 독일도 자칫 극우세력의 성지화를 우려해 나치 무장친위대 출신으로 '아르데아티네 동굴의 백정'으로 불렸던 에리히 프리프케의 장지 문제에 대해 독일 정부의 책임이 아니라는 입장을 피력해 고국으로 쉽게 돌아가기 어려운 신세가 됐다. 프리프케가 50년 동안 살았던 아르헨티나와 독일의 고향에서도 그의 주검을 받아들이길 거부한 상황이다.

이에 앞서 애초 나치 전범 프리프케를 위한 장례식은 15일 로마 인근 알바노시(市)에 있는 극우 세력의 신학교에서 치러질 예정이었으나 수 백명의 항의 시위대가 몰리면서 무산됐다.

알바노의 니콜라 마리니 시장은 알바노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의 본거지라는 이유를 들어 로마 시내에서 출발한 장례행렬의 알바노 진입을 금지했으나 로마 주가 이를 무효처리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장례행렬이 신학교 인근에 도착하면서 양측의 충돌이 본격화됐다. 몇몇 사람은 운구행렬을 향해 "암살자!", "시신을 쓰레기장에 버려라" 등의 욕을 했고, '프리프케 교수집행인'이라는 글이 적힌 플래카드도 보였다.

이에 맞서 30여명의 우익 세력은 나치식 경례를 하는가 하면 파시스트 노래를 불렀고 "그는 영웅이었다"고 외치는 등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장례식 찬반 세력이 충돌하는 가운데 경찰은 500여명의 반대세력을 저지하다 결국에는 최루탄까지 발사했다.

프리프케 측은 이날 오후 장례식을 일단 연기됐다가 여건이 호전되지 않자 아예 취소한다고 밝혔다.

검은색 밴 차량에 실린 프리프케 유해는 이어 로마 인근 군 비행장 근처로 옮겨져 독일로 가는 방안을 모색했으나 이마저 여의치 않아 오갈곳이 없는 신세가 됐다.

독일 연방정부 외교부 마르틴 섀퍼 대변인은 "독일 정부가 이 문제를 책임질 이유가 없고 이탈리아 정부도 공식요청을 해오지 않았다"며 "독일인이 독일에 묻힐 수 있지만 가족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역시 16일이 나치가 로마 유대인 지역을 공격한 지 70주년이어서 장례식의 추이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유대인 커뮤니티에서는 프리프케의 시신을 화장해 지중해에 뿌리는 것이 적절한 해결방법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프리프케는 1944년 3월 로마 외곽의 아르데아티네 동굴에서 대규모 학살을 주도한 혐의로 1998년 이탈리아 법정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나치 친위대에 대한 게릴라들의 공격을 '10배로 되갚겠다'면서 계획된 이 학살에서 레지스탕스 대원, 유대인, 어린
이 등 335명이 목숨을 잃었다.

프리프케는 판결 이후 고령과 건강문제 때문에 수감되지 않았고 자기 변호사의 로마 자택에 연금되는 형태로 형을 살았다. 그는 생전 범행을 사과하지 않은 채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고 당시 세계 여러 곳에서 민간인이 숨졌다"는 변명만 되풀이했다.

프리프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아르헨티나 남부의 관광명소인 바릴로체로 도망쳐 40년 이상 호텔지배인으로 살다 1995년에야 이탈리아로 송환돼 재판을 받았다.

아르헨티나 생활 당시 프리프케는 태연히 실명을 쓰면서 지역 유지로 행세했고 독일 여권을 갖고 독일, 미국, 이탈리아를 여행하기도 했다. 바릴로체는 많은 나치 전범이 평온한 삶을 누리는 도피처로 악명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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