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의 진정한 교역로는 육로 아닌 해로”

입력 2013.10.30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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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불교 석학 랭카스터 교수 주장


"비단길을 뜻하는 실크로드라는 말은 사실 맞지 않습니다. 실크로드는 '스파이스(향신료) 로드'로 바꿔 불러야 합니다."

세계적인 불교학자인 루이스 R. 랭카스터(81) 미국 버클리대 명예교수는 지난 29일 호텔현대 경주에서 열린 '실크로드 위의 인문학, 어제와 오늘' 국제인문·문화축제에서 '실크로드와 불경의 전파-혜초의 구법여행과 대순환로'를 주제로 강연했다.

랭카스터 교수는 실크로드의 이미지가 상당 부분 왜곡됐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실크로드라고 하면 육로를 떠올립니다. 낙타의 등에 비단처럼 값비싼 물품들을 가득 싣고 사막을 끝없이 걸어가는 이야기는 낭만적인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죠. 하지만 진정한 교역로는 해상 교역로였습니다."

그는 그 근거로 비단과 같은 값비싼 물건일지라도 그걸 낙타 등에 실어서 수주에 걸쳐 수천 마일을 간다는 것은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낙타는 최대 150㎏까지 짐을 나를 수 있다. 그렇게 150㎏의 짐을 싣고 5천∼6천마일을 간다는 것은 운송비가 너무 많이 든다"고 했다.

랭카스터 교수는 "반면 당시의 배 한 척은 400t까지 무게를 감당할 수 있었다"며 8∼9세기 고대인들에게 해양로가 육로보다 훨씬 더 중요한 교역로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는 또 하나의 근거로 로마의 금화가 한나라 옛 수도인 장안(현재의 시안(西安))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꼽았다. 랭카스터 교수에 따르면 시안에서는 불과 15개의 로마 금화만이 발견됐다. 정작 금화는 남인도에 있었다. 남인도에서는 수천 개의 로마 금화가 나왔다.

그는 "중국은 실크로드를 통해 비단을 보냈고 로마는 금을 중국으로 보냈다고 사람들은 몇 년간 말해왔다"면서 "하지만 시안에서 발견된 로마 금화의 수가 손에 꼽을 정도라는 사실은 로마와 한나라 사이에 육로를 통한 직접적인 교류가 없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이를 바탕으로 랭카스터 교수는 중국에서 생산한 비단이 낙타 등에 실려 지중해까지 갔다는 이야기들은 사실은 과장된 측면이 많다고 했다.

아울러 비단과 같은 직물이 유라시아의 교역을 지배하는 물품은 아닌 반면 바닷길을 통해 이동한 상품들에는 향신료, 특히 후추와 계피 등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고 주장했다. 그런 측면에서 실크로드는 '스파이스 로드'로 바꿔 불러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불교는 육로를 상징하는 실크로드를 통해 전파된 종교가 아니라 해상을 통해 전파된 종교라고 주장했다. 해상 불교를 주창한 것이다.

랭카스터 교수는 "혜초 스님이 고국인 신라에서 인도로, 그리고 그곳에서 한나라 서쪽 변방으로 여행한 기록을 보면 그가 해상로를 따라서 인도로 갔다가 내륙을 거쳐 중국으로 돌아온 것을 알 수 있다"며 비단길과 해양로를 함께 묶어 동과 서를 잇는 유라시아의 '대순환로'를 제시했다.

그는 "한국은 이 대순환로의 중요한 일부이며, 혜초 스님 덕분에 신라 시대에 한반도가 바다를 포함한 교역망에 통합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랭카스터 교수는 기조 강연 후 그의 제자인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의 통역으로 진행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관습적으로 실크로드를 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사실 해상 실크로드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한 증거가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그렇지만 사소한 기록이라도 눈여겨보고 이를 통해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하는 상상력이 어쩌면 더 중요한 의미를 띨 수 있다고 랭카스터 교수는 주장했다.

그는 최근 한국에서 실크로드의 동단 기점으로 신라 천 년의 고도 경주의 역사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이는 것과 관련해서는 "한국에서는 경주를 실크로드의 기점으로 생각하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대순환로'의 개념에서는 시작점이 곧 종점이기도 하다. 어느 곳이나 기점이 된다"고 명쾌한 답을 내놨다.

그렇다면, 한국이 향후 실크로드 연구에서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랭카스터 교수는 "한국에는 많은 실크로드 관련 유물이 있지만, 이런 것들이 정작 컴퓨터로 전산화되지 않았다"면서 "그러다 보니까 다른 나라의 학자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다. 입체적으로 유물과 특정 장소를 연결하기란 쉽지 않다"면서 실크로드 관련 정보의 디지털화를 선결과제로 꼽았다.

그는 현재 유라시아 지역을 아우르는 '해상 불교 지도'의 제작을 목표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도 제작의 전제는 다음과 같다.

"중국이나 한국, 또는 일본의 불교 역사는 인도와 동남아시아, 남중국의 항구들과 인접지를 언급하지 않고서는 진정으로 성립할 수 없다."

교육부와 경상북도가 공동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세계인문학포럼 사무국)이 주관하는 이번 국제인문·문화축제는 실크로드 분야에서 세계적인 인지도 및 중요성을 지닌 상징적인 연사들이 나서 실크로드 국가의 다양한 문명을 돌아보는 자리다. 이번 행사는 30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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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크로드의 진정한 교역로는 육로 아닌 해로”
    • 입력 2013-10-30 07:40:11
    연합뉴스
세계적인 불교 석학 랭카스터 교수 주장 "비단길을 뜻하는 실크로드라는 말은 사실 맞지 않습니다. 실크로드는 '스파이스(향신료) 로드'로 바꿔 불러야 합니다." 세계적인 불교학자인 루이스 R. 랭카스터(81) 미국 버클리대 명예교수는 지난 29일 호텔현대 경주에서 열린 '실크로드 위의 인문학, 어제와 오늘' 국제인문·문화축제에서 '실크로드와 불경의 전파-혜초의 구법여행과 대순환로'를 주제로 강연했다. 랭카스터 교수는 실크로드의 이미지가 상당 부분 왜곡됐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실크로드라고 하면 육로를 떠올립니다. 낙타의 등에 비단처럼 값비싼 물품들을 가득 싣고 사막을 끝없이 걸어가는 이야기는 낭만적인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죠. 하지만 진정한 교역로는 해상 교역로였습니다." 그는 그 근거로 비단과 같은 값비싼 물건일지라도 그걸 낙타 등에 실어서 수주에 걸쳐 수천 마일을 간다는 것은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낙타는 최대 150㎏까지 짐을 나를 수 있다. 그렇게 150㎏의 짐을 싣고 5천∼6천마일을 간다는 것은 운송비가 너무 많이 든다"고 했다. 랭카스터 교수는 "반면 당시의 배 한 척은 400t까지 무게를 감당할 수 있었다"며 8∼9세기 고대인들에게 해양로가 육로보다 훨씬 더 중요한 교역로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는 또 하나의 근거로 로마의 금화가 한나라 옛 수도인 장안(현재의 시안(西安))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꼽았다. 랭카스터 교수에 따르면 시안에서는 불과 15개의 로마 금화만이 발견됐다. 정작 금화는 남인도에 있었다. 남인도에서는 수천 개의 로마 금화가 나왔다. 그는 "중국은 실크로드를 통해 비단을 보냈고 로마는 금을 중국으로 보냈다고 사람들은 몇 년간 말해왔다"면서 "하지만 시안에서 발견된 로마 금화의 수가 손에 꼽을 정도라는 사실은 로마와 한나라 사이에 육로를 통한 직접적인 교류가 없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이를 바탕으로 랭카스터 교수는 중국에서 생산한 비단이 낙타 등에 실려 지중해까지 갔다는 이야기들은 사실은 과장된 측면이 많다고 했다. 아울러 비단과 같은 직물이 유라시아의 교역을 지배하는 물품은 아닌 반면 바닷길을 통해 이동한 상품들에는 향신료, 특히 후추와 계피 등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고 주장했다. 그런 측면에서 실크로드는 '스파이스 로드'로 바꿔 불러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불교는 육로를 상징하는 실크로드를 통해 전파된 종교가 아니라 해상을 통해 전파된 종교라고 주장했다. 해상 불교를 주창한 것이다. 랭카스터 교수는 "혜초 스님이 고국인 신라에서 인도로, 그리고 그곳에서 한나라 서쪽 변방으로 여행한 기록을 보면 그가 해상로를 따라서 인도로 갔다가 내륙을 거쳐 중국으로 돌아온 것을 알 수 있다"며 비단길과 해양로를 함께 묶어 동과 서를 잇는 유라시아의 '대순환로'를 제시했다. 그는 "한국은 이 대순환로의 중요한 일부이며, 혜초 스님 덕분에 신라 시대에 한반도가 바다를 포함한 교역망에 통합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랭카스터 교수는 기조 강연 후 그의 제자인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의 통역으로 진행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관습적으로 실크로드를 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사실 해상 실크로드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한 증거가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그렇지만 사소한 기록이라도 눈여겨보고 이를 통해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하는 상상력이 어쩌면 더 중요한 의미를 띨 수 있다고 랭카스터 교수는 주장했다. 그는 최근 한국에서 실크로드의 동단 기점으로 신라 천 년의 고도 경주의 역사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이는 것과 관련해서는 "한국에서는 경주를 실크로드의 기점으로 생각하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대순환로'의 개념에서는 시작점이 곧 종점이기도 하다. 어느 곳이나 기점이 된다"고 명쾌한 답을 내놨다. 그렇다면, 한국이 향후 실크로드 연구에서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랭카스터 교수는 "한국에는 많은 실크로드 관련 유물이 있지만, 이런 것들이 정작 컴퓨터로 전산화되지 않았다"면서 "그러다 보니까 다른 나라의 학자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다. 입체적으로 유물과 특정 장소를 연결하기란 쉽지 않다"면서 실크로드 관련 정보의 디지털화를 선결과제로 꼽았다. 그는 현재 유라시아 지역을 아우르는 '해상 불교 지도'의 제작을 목표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도 제작의 전제는 다음과 같다. "중국이나 한국, 또는 일본의 불교 역사는 인도와 동남아시아, 남중국의 항구들과 인접지를 언급하지 않고서는 진정으로 성립할 수 없다." 교육부와 경상북도가 공동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세계인문학포럼 사무국)이 주관하는 이번 국제인문·문화축제는 실크로드 분야에서 세계적인 인지도 및 중요성을 지닌 상징적인 연사들이 나서 실크로드 국가의 다양한 문명을 돌아보는 자리다. 이번 행사는 30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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