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뱅갈어 책도 없어요”…10살 ‘아키’에게 한국은?

입력 2013.11.18 (18:27) 수정 2013.11.28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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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열살인 방글라데시 출신 아키(가명). 외국인 노동자인 아버지를 따라 우리나라에 와서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생소한 환경에서 뭔가를 배운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일단 글을 배워야 하고 수업을 따라갈 정도의 말을 이해하는데만 얼마가 걸릴지 모릅니다. 세계에서 7번째로 사용인구가 많다는 뱅갈어를 아는 선생님도 없고 뱅갈어로 된 교재도 없습니다. 그저 아이들과 놀면서, 선생님의 몸짓으로 배울 수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이런 아이들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융합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바로 '다문화 교육'입니다. 다문화 교육은 지향점은 아이가 가진 문화와 언어에 따른 특성을 살려주면서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연 잘 되고 있는 걸까요?

취재진이 찾은 한 초등학교. 경기도교육청이 다문화 교육 정책 연구학교로 지정할 정도로 다문화 교육 분야에서 선도적인 곳으로 인정받는 곳입니다. 이곳에 재학하고 있는 다문화 학생은 모두 60여 명. 전체 학생의 15%나 됩니다. 주로 중국과 러시아, 일본에서 오거나 그 나라 부모를 둔 아이들입니다. 학교에서도 이들을 위해 일부 교재를 외국어로 따로 만들었습니다. 중국어와 일본어, 러시아어로 된 생활 안내 교재 같은 것들입니다. 이중언어 선생님도 계십니다. 러시아어를 하는 선생님 두 분, 중국어를 하시는 선생님 두 분, 일본어를 하시는 선생님 한 분이 계십니다. 다문화 학생이 새로 들어오면 언어 능력에 따라서 예비반에서 말과 글만 중점적으로 가르치거나 특별반에서 우리 문화와 언어를 가르칩니다. 특별반 아이들은 평소에는 일반 학급에서 일반 학생들과 같이 공부를 하다가 일주일에 한 두시간씩 따로 모여 특별반 선생님의 지도를 받습니다. 이 정도면 잘 짜여진 시스템이고 다문화 학생들을 위한 배려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다문화 교육이라고 하면서 시도하고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엄밀히 따져보면 '한국화 교육'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 말과 문화를 반복적으로 가르치는 형식. 아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측면에서는 반드시 필요하고 중요한 교육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문제는 다문화 학생들이 가진 다양성을 인정하는 교육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는 점입니다. 질풍노도의 시기 사춘기를 보내야 하고 가치관과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고 자부심도 키워야 할 나이. 외모도 생각도 먹는 음식도 다른 아이들. 다양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획일화하는 듯한 교육에 대한 반성은 교육 현장에서도 나오고 있고 대안을 찾기 위한 고민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외국의 사례 가운데 모범적인 것으로 평가되는 캐나다의 경우 자아 개발과 타인 이해, 관계 형성을 바탕으로 한 문화적 정체성 확립에 다문화 교육의 목표를 둔다고 합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이들의 다양성은 뒤로 미뤄둔 교육. 섞이고 융합하는 '다문화'가 아닌 주류 사회에 어떻게든 적응하라는 '한국화'가 되고 있는 건 아닌지 다문화 학생이 5만 명을 돌파하고 매년 6천 명이 늘고 있는 이 시점에서는 한 번 돌아볼 일입니다.



다문화 아이들 사이에서도 교육 여건에 차이가 있습니다. 사례를 든 학교의 경우 학생 수가 많은 중국어나 일본어, 러시아어는 학교에 그 나라 출신 선생님도 있고 그 나라 말로 된 교재도 일부지만 있습니다. 출신국의 언어도 잊지 않으면서 우리 문화도 익힐 수 있는 건데요. 반면에 동남아시아나 서남아시아 출신들이 배울 교재나 선생님은 따로 없습니다. 학교 차원에서 이걸 마련할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예산도 들고 역량도 필요한 부분이라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다문화 아이들 사이에서도 생기는 편차. 이건 여러 학교를 담당하는 순회 선생님을 두거나 교육부 차원에서 표준 교재를 만들어 주는 게 방안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나 교육청 차원에서 보급한 외국어 책자는 손에 꼽을 정도.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다문화 교육을 위한 예산은 줄고 있습니다. 올해 정부의 다문화 교육 예산은 155억 원. 지난해보다 25억 원이 줄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문제 의식 하나. 다문화 학생을 위해 인력을 투입하고 예산을 들이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요? 이런 의문은 '다문화 교육'을 외국에서 온 아이들에 대한 교육으로만 바라볼 때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다문화 교육의 객체에는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도 포함됩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고등학생의 말이 인상적인데요, "여러 나라를 경험한 친구들이 바라보는 세상이 조금 더 넓다는 걸 느낀다"고 했습니다. 다른 감성과 다른 경험을 친구로부터 직접 듣는 다는 것. 책에서 얻는 간접 경험보다 훨씬 효과적일 것 같지 않습니까? 게다가 다문화, 세계화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입니다. 우리나라 내부적인 시각으로만 보면 다문화 아이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 같지만 더 넓게 보면 그 아이들의 경쟁력, 그리고 그 아이들이 주는 다양성이 국가 경쟁력으로 직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현실은 조금 비관적입니다. 일반 학생들의 평균 취학률은 96%로 웬만하면 다 학교에 다니면서 배웁니다. 심지어 학력 인플레란 말이 나올 지경인데요, 다문화 학생들의 취학률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점점 낮아집니다. 초등학교는 86%, 중학교는 84%, 고등학교는 70% 수준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그 만큼 적응을 못하고 있다는 방증일텐데요, 정체성의 혼란, 일반학생들의 편견, 상대적으로 낮은 학업 성취도...그 아이들에게도 불행이지만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도 잠재 경쟁력을 깎아 먹는 일이고 사회 통합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입니다. 최소한 일반 학생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때 '다문화 교육'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제대로된 다문화 교육에 대한 교육 현장의 고민. 이제는 사회 전반이 그 고민을 나누고 해법을 찾아 나설 때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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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뱅갈어 책도 없어요”…10살 ‘아키’에게 한국은?
    • 입력 2013-11-18 18:27:11
    • 수정2013-11-28 16:17:29
    취재후·사건후
이제 열살인 방글라데시 출신 아키(가명). 외국인 노동자인 아버지를 따라 우리나라에 와서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생소한 환경에서 뭔가를 배운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일단 글을 배워야 하고 수업을 따라갈 정도의 말을 이해하는데만 얼마가 걸릴지 모릅니다. 세계에서 7번째로 사용인구가 많다는 뱅갈어를 아는 선생님도 없고 뱅갈어로 된 교재도 없습니다. 그저 아이들과 놀면서, 선생님의 몸짓으로 배울 수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이런 아이들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융합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바로 '다문화 교육'입니다. 다문화 교육은 지향점은 아이가 가진 문화와 언어에 따른 특성을 살려주면서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연 잘 되고 있는 걸까요?

취재진이 찾은 한 초등학교. 경기도교육청이 다문화 교육 정책 연구학교로 지정할 정도로 다문화 교육 분야에서 선도적인 곳으로 인정받는 곳입니다. 이곳에 재학하고 있는 다문화 학생은 모두 60여 명. 전체 학생의 15%나 됩니다. 주로 중국과 러시아, 일본에서 오거나 그 나라 부모를 둔 아이들입니다. 학교에서도 이들을 위해 일부 교재를 외국어로 따로 만들었습니다. 중국어와 일본어, 러시아어로 된 생활 안내 교재 같은 것들입니다. 이중언어 선생님도 계십니다. 러시아어를 하는 선생님 두 분, 중국어를 하시는 선생님 두 분, 일본어를 하시는 선생님 한 분이 계십니다. 다문화 학생이 새로 들어오면 언어 능력에 따라서 예비반에서 말과 글만 중점적으로 가르치거나 특별반에서 우리 문화와 언어를 가르칩니다. 특별반 아이들은 평소에는 일반 학급에서 일반 학생들과 같이 공부를 하다가 일주일에 한 두시간씩 따로 모여 특별반 선생님의 지도를 받습니다. 이 정도면 잘 짜여진 시스템이고 다문화 학생들을 위한 배려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다문화 교육이라고 하면서 시도하고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엄밀히 따져보면 '한국화 교육'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 말과 문화를 반복적으로 가르치는 형식. 아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측면에서는 반드시 필요하고 중요한 교육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문제는 다문화 학생들이 가진 다양성을 인정하는 교육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는 점입니다. 질풍노도의 시기 사춘기를 보내야 하고 가치관과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고 자부심도 키워야 할 나이. 외모도 생각도 먹는 음식도 다른 아이들. 다양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획일화하는 듯한 교육에 대한 반성은 교육 현장에서도 나오고 있고 대안을 찾기 위한 고민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외국의 사례 가운데 모범적인 것으로 평가되는 캐나다의 경우 자아 개발과 타인 이해, 관계 형성을 바탕으로 한 문화적 정체성 확립에 다문화 교육의 목표를 둔다고 합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이들의 다양성은 뒤로 미뤄둔 교육. 섞이고 융합하는 '다문화'가 아닌 주류 사회에 어떻게든 적응하라는 '한국화'가 되고 있는 건 아닌지 다문화 학생이 5만 명을 돌파하고 매년 6천 명이 늘고 있는 이 시점에서는 한 번 돌아볼 일입니다.



다문화 아이들 사이에서도 교육 여건에 차이가 있습니다. 사례를 든 학교의 경우 학생 수가 많은 중국어나 일본어, 러시아어는 학교에 그 나라 출신 선생님도 있고 그 나라 말로 된 교재도 일부지만 있습니다. 출신국의 언어도 잊지 않으면서 우리 문화도 익힐 수 있는 건데요. 반면에 동남아시아나 서남아시아 출신들이 배울 교재나 선생님은 따로 없습니다. 학교 차원에서 이걸 마련할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예산도 들고 역량도 필요한 부분이라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다문화 아이들 사이에서도 생기는 편차. 이건 여러 학교를 담당하는 순회 선생님을 두거나 교육부 차원에서 표준 교재를 만들어 주는 게 방안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나 교육청 차원에서 보급한 외국어 책자는 손에 꼽을 정도.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다문화 교육을 위한 예산은 줄고 있습니다. 올해 정부의 다문화 교육 예산은 155억 원. 지난해보다 25억 원이 줄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문제 의식 하나. 다문화 학생을 위해 인력을 투입하고 예산을 들이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요? 이런 의문은 '다문화 교육'을 외국에서 온 아이들에 대한 교육으로만 바라볼 때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다문화 교육의 객체에는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도 포함됩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고등학생의 말이 인상적인데요, "여러 나라를 경험한 친구들이 바라보는 세상이 조금 더 넓다는 걸 느낀다"고 했습니다. 다른 감성과 다른 경험을 친구로부터 직접 듣는 다는 것. 책에서 얻는 간접 경험보다 훨씬 효과적일 것 같지 않습니까? 게다가 다문화, 세계화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입니다. 우리나라 내부적인 시각으로만 보면 다문화 아이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 같지만 더 넓게 보면 그 아이들의 경쟁력, 그리고 그 아이들이 주는 다양성이 국가 경쟁력으로 직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현실은 조금 비관적입니다. 일반 학생들의 평균 취학률은 96%로 웬만하면 다 학교에 다니면서 배웁니다. 심지어 학력 인플레란 말이 나올 지경인데요, 다문화 학생들의 취학률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점점 낮아집니다. 초등학교는 86%, 중학교는 84%, 고등학교는 70% 수준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그 만큼 적응을 못하고 있다는 방증일텐데요, 정체성의 혼란, 일반학생들의 편견, 상대적으로 낮은 학업 성취도...그 아이들에게도 불행이지만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도 잠재 경쟁력을 깎아 먹는 일이고 사회 통합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입니다. 최소한 일반 학생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때 '다문화 교육'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제대로된 다문화 교육에 대한 교육 현장의 고민. 이제는 사회 전반이 그 고민을 나누고 해법을 찾아 나설 때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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