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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슈] ‘3·1운동·관동대지진’ 희생자 첫 공개
입력 2013.11.20 (00:00) 수정 2013.11.20 (08:56) 뉴스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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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3.1운동과 관동대지진 당시 일제에 의해 희생된 한국인 명부가 사상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한일간 논란이 돼 온 과거사 규명과 피해 보상 문제에 새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입니다.

취재기자와 함께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질문> 이 기자, 이번에 공개된 기록. 구체적으로 어떤 명부들입니가.

<답변>

네, 우선 3.1 운동 피살자 명부를 들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충남 천안에 살던 53살 김상원 씨는 기미년 3월1일 독립만세를 외치다 총살당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희생자 630명의 이름과 나이, 주소, 순국일시와 장소, 당시 상황까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3.1 운동 때 순국해 독립유공자로 인정 받은 분은 391명입니다.

이번 발굴로 최소 200명 이상 추가로 확인된 셈입니다.

<질문> 관동대지진 때 숨진 사람들의 명단도 공개됐다면서요.

<답변>

네, 1923년 9월 일어난 관동대지진 때 일제는 마치 당시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 처럼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무차별 학살을 했었습니다.

그 때 희생된 조선인의 수, 적게는 6천 명에서 많게는 2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이 사실을 줄곧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일본진재시 피살자 명부'를 보면 당시 일제에 의해 살해 당한 한국인 290명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희생자 명단이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특히 경남 합천에서 신고된 사례를 보면 일가족으로 추정되는 4명이 모두 일제에 의해 학살당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질문> 징용자 명부도 공개됐죠?

<답변>

네, '일정시 피징용자 명부'라고 되어 있는데요.

그 양이 방대합니다.

모두 65권에 22만9천7백 여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1957년 노동청이 작성한 왜정시 피징용자명부가 가장 오래된 기록이었는데 이 것보다 4년 전에 조사된겁니다.

특히 이번에 발견된 명부를 보면 57년도 명부보다 훨씬 더 내용이 자세합니다.

이를테면 57년도 명부는 나이도 그냥 숫자로 되어 있어 이게 징용 될 때 나이인지, 아니면 다시 돌아 왔을 때 나이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요.

이번에 공개된 문건에는 아예 생년월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소 역시 읍면은 물론 리 단위까지 표시되어 있어 징용 대상자들의 신상 파악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질문> 그럼 이렇게 엄청난 기록 대체 언제 어디서 발견된겁니까.

<답변>

네, 지난 여름 일본 도쿄의 주일 한국대사관이 이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사관 창고에서 발견된겁니다.

무더기로 발견된 이 문서들을 한국으로 옮겨와 국가기록원에서 5개월 간 분석했습니다.

분석 결과 1953년 우리 정부가 만든 문서들이었습니다.

<질문> 그렇군요.

한창 6.25 전쟁 때일텐데 그 때 왜 그런 명부를 만든거죠?

<답변>

네, 전쟁중이긴 했지만 1952년 2월 한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제1차 한일회담이 열렸습니다.

가장 큰 쟁점은 역시 일제 시대 때 우리 민족이 입었던 피해 보상 문제였습니다.

1차 회담이 결렬된 뒤 이승만 대통령이 협상 준비를 위해 국무회의에서 3.1 운동 때 사망자 수, 관동대지진 때 사망자 수, 그리고 일제 시대 징용자 수 등을 파악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 지시에 따라 전국적인 조사를 통해 나온 결과물이 이번에 공개된 명부들입니다.

이번에 공개된 사료의 의미에 대한 평가 한 번 들어보시죠.

<인터뷰> 오일환(강제동원조사위) : "제2차 한일회담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에 대해서 (피해자 숫자를 언급하며 필요하다면) 증빙 자료를 일본 측에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한 부분이 나오는데 여태까지 이 부분은 회의록에만 존재했지 실제로는 전달했거나 명부를 만들었다는 확인 된바가 없었어요. 그러다 이번에 이 자료가 발견됨으로써..."

<질문> 그렇다면 이 명부들이 일제 시대 피해자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답변>

네, 일제 35년 간 우리 민족이 입었던 수많은 피해, 하지만 1965년 한일협정이 체결되면서 정부 대 정부로 배상을 청구할 권리는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개인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할 수 있는 여지는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때문에 이번에 공개된 자료가 상당한 도움이 될거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말입니다.

<인터뷰> 정혜경(강제동원조사위) : "소송중인 분 중에 명단에 확인된 분에게는 더 힘이 실릴 것이고 피해자로 판정을 못 받으신 분 중에도 이걸로 판정을 받으시면 또 소송이 가능해지시고."

정부는 이번에 발굴된 자료를 독립 유공자 선정과 과거사 증빙 자료로 적극 활용하고 내년 초에는 일반인에게도 공개할 예정입니다.
  • [오늘의 이슈] ‘3·1운동·관동대지진’ 희생자 첫 공개
    • 입력 2013-11-20 07:54:56
    • 수정2013-11-20 08:5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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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3.1운동과 관동대지진 당시 일제에 의해 희생된 한국인 명부가 사상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한일간 논란이 돼 온 과거사 규명과 피해 보상 문제에 새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입니다.

취재기자와 함께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질문> 이 기자, 이번에 공개된 기록. 구체적으로 어떤 명부들입니가.

<답변>

네, 우선 3.1 운동 피살자 명부를 들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충남 천안에 살던 53살 김상원 씨는 기미년 3월1일 독립만세를 외치다 총살당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희생자 630명의 이름과 나이, 주소, 순국일시와 장소, 당시 상황까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3.1 운동 때 순국해 독립유공자로 인정 받은 분은 391명입니다.

이번 발굴로 최소 200명 이상 추가로 확인된 셈입니다.

<질문> 관동대지진 때 숨진 사람들의 명단도 공개됐다면서요.

<답변>

네, 1923년 9월 일어난 관동대지진 때 일제는 마치 당시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 처럼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무차별 학살을 했었습니다.

그 때 희생된 조선인의 수, 적게는 6천 명에서 많게는 2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이 사실을 줄곧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일본진재시 피살자 명부'를 보면 당시 일제에 의해 살해 당한 한국인 290명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희생자 명단이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특히 경남 합천에서 신고된 사례를 보면 일가족으로 추정되는 4명이 모두 일제에 의해 학살당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질문> 징용자 명부도 공개됐죠?

<답변>

네, '일정시 피징용자 명부'라고 되어 있는데요.

그 양이 방대합니다.

모두 65권에 22만9천7백 여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1957년 노동청이 작성한 왜정시 피징용자명부가 가장 오래된 기록이었는데 이 것보다 4년 전에 조사된겁니다.

특히 이번에 발견된 명부를 보면 57년도 명부보다 훨씬 더 내용이 자세합니다.

이를테면 57년도 명부는 나이도 그냥 숫자로 되어 있어 이게 징용 될 때 나이인지, 아니면 다시 돌아 왔을 때 나이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요.

이번에 공개된 문건에는 아예 생년월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소 역시 읍면은 물론 리 단위까지 표시되어 있어 징용 대상자들의 신상 파악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질문> 그럼 이렇게 엄청난 기록 대체 언제 어디서 발견된겁니까.

<답변>

네, 지난 여름 일본 도쿄의 주일 한국대사관이 이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사관 창고에서 발견된겁니다.

무더기로 발견된 이 문서들을 한국으로 옮겨와 국가기록원에서 5개월 간 분석했습니다.

분석 결과 1953년 우리 정부가 만든 문서들이었습니다.

<질문> 그렇군요.

한창 6.25 전쟁 때일텐데 그 때 왜 그런 명부를 만든거죠?

<답변>

네, 전쟁중이긴 했지만 1952년 2월 한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제1차 한일회담이 열렸습니다.

가장 큰 쟁점은 역시 일제 시대 때 우리 민족이 입었던 피해 보상 문제였습니다.

1차 회담이 결렬된 뒤 이승만 대통령이 협상 준비를 위해 국무회의에서 3.1 운동 때 사망자 수, 관동대지진 때 사망자 수, 그리고 일제 시대 징용자 수 등을 파악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 지시에 따라 전국적인 조사를 통해 나온 결과물이 이번에 공개된 명부들입니다.

이번에 공개된 사료의 의미에 대한 평가 한 번 들어보시죠.

<인터뷰> 오일환(강제동원조사위) : "제2차 한일회담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에 대해서 (피해자 숫자를 언급하며 필요하다면) 증빙 자료를 일본 측에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한 부분이 나오는데 여태까지 이 부분은 회의록에만 존재했지 실제로는 전달했거나 명부를 만들었다는 확인 된바가 없었어요. 그러다 이번에 이 자료가 발견됨으로써..."

<질문> 그렇다면 이 명부들이 일제 시대 피해자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답변>

네, 일제 35년 간 우리 민족이 입었던 수많은 피해, 하지만 1965년 한일협정이 체결되면서 정부 대 정부로 배상을 청구할 권리는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개인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할 수 있는 여지는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때문에 이번에 공개된 자료가 상당한 도움이 될거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말입니다.

<인터뷰> 정혜경(강제동원조사위) : "소송중인 분 중에 명단에 확인된 분에게는 더 힘이 실릴 것이고 피해자로 판정을 못 받으신 분 중에도 이걸로 판정을 받으시면 또 소송이 가능해지시고."

정부는 이번에 발굴된 자료를 독립 유공자 선정과 과거사 증빙 자료로 적극 활용하고 내년 초에는 일반인에게도 공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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