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게임 중독자, 평상시 뇌 기능 살펴보니…

입력 2013.11.27 (17:10) 수정 2013.11.28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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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중학교 3학년생인 A양. 인터넷 게임에 너무 빠져 통제하기 힘든 상태입니다. 그 결과 두통을 이유로 결석과 조퇴를 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실제로는 들리지 않는 소리가 귀를 맴도는 환청 증상까지 생겼습니다. 가상 상황에 몰입하면서 게임 속 채팅 친구에게 집착하게 된 반면, 현실 속 친구들과는 제대로 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악순환에도 빠졌습니다. 결국 지난 8월, 학교 측의 의뢰로 서울의 한 대형병원 정신과를 찾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게임에 너무 몰입해서 중독 수준에 이를 경우, 심하면 정신적 문제까지 겪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먼저 짚고 넘어어가고 싶은 사실이 있습니다. 게임이 문제란 얘기는 결코 아니란 것입니다. 게임은 수많은 사용자들을 거느린 문화이고 산업이며 레저 활동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너무 게임을 많이 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중독' 증상입니다. 게임이 가진 특유의 재미와 강한 자극에 과도하게 몰입하다가는 뜻하지 않은 문제까지 겪을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일까요? 컴퓨터나 스마트폰 게임에 집중하고 있을 때 두뇌를 검사해 보면 하이 베타파(high beta), 이른바 '스트레스 뇌파'가 80%나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극도로 불안하거나 긴장했을 때와 같은 모습입니다. 이런 상태가 반복되면 기억력과 판단력, 집중력을 관장하는 뇌 전두엽의 기능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과정을 거쳐 게임 중독에 빠졌을 경우, 두뇌는 어떤 모습을 보일까요? 국내 연구진이 게임 중독자들이 쉬고 있는 상태(resting-state)의 뇌파를 측정해 봤습니다. 게임을 하고 있는 중의 뇌파가 아닌, 게임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 게임 중독자들의 뇌파는 어떤 형태인지를 측정해 본 최초의 실험입니다.

서울대 보라매병원 최정석 교수팀은 '게임 중독군' 21명과 그렇지 않은 '대조군' 20명을 대상으로 실험에 나섰습니다. 게임 중독군은 평균 나이 23살, 인터넷 게임을 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6시간인 사람들로 구성했습니다. 게임 중독으로 인한 영향을 정확히 가려내기 위해 다른 정신 질환은 없이 게임 중독 증상만으로 병원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들을 추려냈습니다. 이들의 비교 대상인 정상적 대조군은 평균 연령 22살, 게임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2시간 미만인 경우로 구성했습니다. 측정 대상 뇌파는 충동성과 관련이 있는 베타파와 감마파 두 가지로 정했습니다.



측정 결과, 게임 중독군의 뇌에서 측정된 베타파 값(단위: 마이크로볼트 제곱)은 6 수준으로, 대조군의 10과 비교해 60%에 그쳤습니다. 게임에 중독되면 게임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 베타파가 일반적인 경우에 비해 적게 나온다는 얘기입니다. 베타파 감소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와 비슷한 충동적 성향과 부주의함, 감정 조절 실패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반면 감마파의 경우엔 게임 중독군이 1 정도로, 대조군의 0.5 수준과 비교해 2배 가까이 수치가 높았습니다. 감마파는 주로 여러 가지 정보를 하나로 통합하는 등의 인지 작용을 할 때 증가합니다. 이런 감마파가 눈을 감고 쉴 때에도 일반적인 경우보다 크게 높다는 것은, 게임에 중독되면 휴식 상태에서조차 뇌가 비정상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는 결국 뇌를 다른 분야에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방해해 학습 능력과 기억력, 집중력, 판단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게 연구진의 분석입니다.

연구진은 이번 뇌파 측정 결과에 대해, 게임에 중독되면 뇌 기능 이상이 일시적인 수준을 넘어 고착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합니다. 특이한 것은, 게임 중독 환자들은 평상시에는 베타파가 떨어진 상태에 있다가도 게임만 하면 또다시 베타파가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게임에는 뇌가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게임 이외의 자극, 예컨대 학습이라든지 스포츠 같은 활동에는 제대로 반응하지 않는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반응 억제와 충동 조절에 실패하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작은 일에도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는 행동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게임에 중독된 한 학생의 경우에는 자신의 피부를 뜯어내는 등의 가학적 행위를 하는 경우도 관찰됐다고 합니다.



그럼, 어떤 종류의 게임이 중독 증상을 불러오기 쉬울까요? 전문가들은 여러 사람이 인터넷으로 연결된 가상현실을 기반으로 진행되는 'MMORPG(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의 중독성이 가장 강하다고 지적합니다. 게임을 통해 아이템 획득과 지위 상승 등의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보상을 남들보다 더 많이, 더 빨리 받기 위해 장시간 게임을 하게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MMORPG 다음으로는 게임을 하는 사람의 시선으로 역시 인터넷으로 연결된 다른 사람들과 총격전을 벌이는 '1인칭 슈팅 게임'의 중독성이 심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반면 퍼즐·카드·스포츠 등 이른바 '캐주얼 게임'은 상대적으로 중독성이 덜한 편으로 분석됩니다.

그렇다면 이런 게임들에 한 번 중독되면, 평생 뇌 기능 이상을 안고 살게 되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정신과 전문의들의 치료 사례를 보면, 게임 중독자가 게임을 한동안 끊으면 앞서 살펴본 베타파와 감마파 등 뇌파들이 일반적인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른 중독과 마찬가지로 '절제'가 중독을 고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해법이란 얘기입니다.

다만 이는 본인 혼자의 의지만으로는 쉽지가 않습니다. 주변의 도움, 특히 가족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무작정 게임을 하지 말라고만 할 게 아니라,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지부터 파악해야 합니다. 우선은 그런 게임을 하는 것에 대해 공감해주고, 다만 너무 과도하게 하면 문제를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줘야 합니다. 또한 밖에서 즐기는 스포츠나 여행 등 대안 활동들을 마련해 줌으로써 게임에 대한 과도한 관심을 어느 정도 다른 곳으로 돌려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전문가들은 정 안 되면 지금 하는 게임을 다른 것으로 바꿔볼 것도 권유합니다. 하나의 게임에 대한 집착을 조금이나마 덜어냄으로써 중독 증상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거듭 얘기하지만, 게임이 문제란 게 결코 아닙니다. 게임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이, 다른 것은 제쳐둔 채 게임에만 너무 몰두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절제, 그리고 다른 일상 생활과의 조화가 필요함을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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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11-27 17:10:53
    • 수정2013-11-28 16:17:29
    취재후·사건후
서울의 한 중학교 3학년생인 A양. 인터넷 게임에 너무 빠져 통제하기 힘든 상태입니다. 그 결과 두통을 이유로 결석과 조퇴를 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실제로는 들리지 않는 소리가 귀를 맴도는 환청 증상까지 생겼습니다. 가상 상황에 몰입하면서 게임 속 채팅 친구에게 집착하게 된 반면, 현실 속 친구들과는 제대로 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악순환에도 빠졌습니다. 결국 지난 8월, 학교 측의 의뢰로 서울의 한 대형병원 정신과를 찾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게임에 너무 몰입해서 중독 수준에 이를 경우, 심하면 정신적 문제까지 겪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먼저 짚고 넘어어가고 싶은 사실이 있습니다. 게임이 문제란 얘기는 결코 아니란 것입니다. 게임은 수많은 사용자들을 거느린 문화이고 산업이며 레저 활동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너무 게임을 많이 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중독' 증상입니다. 게임이 가진 특유의 재미와 강한 자극에 과도하게 몰입하다가는 뜻하지 않은 문제까지 겪을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일까요? 컴퓨터나 스마트폰 게임에 집중하고 있을 때 두뇌를 검사해 보면 하이 베타파(high beta), 이른바 '스트레스 뇌파'가 80%나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극도로 불안하거나 긴장했을 때와 같은 모습입니다. 이런 상태가 반복되면 기억력과 판단력, 집중력을 관장하는 뇌 전두엽의 기능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과정을 거쳐 게임 중독에 빠졌을 경우, 두뇌는 어떤 모습을 보일까요? 국내 연구진이 게임 중독자들이 쉬고 있는 상태(resting-state)의 뇌파를 측정해 봤습니다. 게임을 하고 있는 중의 뇌파가 아닌, 게임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 게임 중독자들의 뇌파는 어떤 형태인지를 측정해 본 최초의 실험입니다.

서울대 보라매병원 최정석 교수팀은 '게임 중독군' 21명과 그렇지 않은 '대조군' 20명을 대상으로 실험에 나섰습니다. 게임 중독군은 평균 나이 23살, 인터넷 게임을 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6시간인 사람들로 구성했습니다. 게임 중독으로 인한 영향을 정확히 가려내기 위해 다른 정신 질환은 없이 게임 중독 증상만으로 병원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들을 추려냈습니다. 이들의 비교 대상인 정상적 대조군은 평균 연령 22살, 게임하는 시간은 하루 평균 2시간 미만인 경우로 구성했습니다. 측정 대상 뇌파는 충동성과 관련이 있는 베타파와 감마파 두 가지로 정했습니다.



측정 결과, 게임 중독군의 뇌에서 측정된 베타파 값(단위: 마이크로볼트 제곱)은 6 수준으로, 대조군의 10과 비교해 60%에 그쳤습니다. 게임에 중독되면 게임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 베타파가 일반적인 경우에 비해 적게 나온다는 얘기입니다. 베타파 감소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와 비슷한 충동적 성향과 부주의함, 감정 조절 실패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반면 감마파의 경우엔 게임 중독군이 1 정도로, 대조군의 0.5 수준과 비교해 2배 가까이 수치가 높았습니다. 감마파는 주로 여러 가지 정보를 하나로 통합하는 등의 인지 작용을 할 때 증가합니다. 이런 감마파가 눈을 감고 쉴 때에도 일반적인 경우보다 크게 높다는 것은, 게임에 중독되면 휴식 상태에서조차 뇌가 비정상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는 결국 뇌를 다른 분야에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방해해 학습 능력과 기억력, 집중력, 판단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게 연구진의 분석입니다.

연구진은 이번 뇌파 측정 결과에 대해, 게임에 중독되면 뇌 기능 이상이 일시적인 수준을 넘어 고착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합니다. 특이한 것은, 게임 중독 환자들은 평상시에는 베타파가 떨어진 상태에 있다가도 게임만 하면 또다시 베타파가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게임에는 뇌가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게임 이외의 자극, 예컨대 학습이라든지 스포츠 같은 활동에는 제대로 반응하지 않는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반응 억제와 충동 조절에 실패하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작은 일에도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는 행동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게임에 중독된 한 학생의 경우에는 자신의 피부를 뜯어내는 등의 가학적 행위를 하는 경우도 관찰됐다고 합니다.



그럼, 어떤 종류의 게임이 중독 증상을 불러오기 쉬울까요? 전문가들은 여러 사람이 인터넷으로 연결된 가상현실을 기반으로 진행되는 'MMORPG(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의 중독성이 가장 강하다고 지적합니다. 게임을 통해 아이템 획득과 지위 상승 등의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보상을 남들보다 더 많이, 더 빨리 받기 위해 장시간 게임을 하게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MMORPG 다음으로는 게임을 하는 사람의 시선으로 역시 인터넷으로 연결된 다른 사람들과 총격전을 벌이는 '1인칭 슈팅 게임'의 중독성이 심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반면 퍼즐·카드·스포츠 등 이른바 '캐주얼 게임'은 상대적으로 중독성이 덜한 편으로 분석됩니다.

그렇다면 이런 게임들에 한 번 중독되면, 평생 뇌 기능 이상을 안고 살게 되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정신과 전문의들의 치료 사례를 보면, 게임 중독자가 게임을 한동안 끊으면 앞서 살펴본 베타파와 감마파 등 뇌파들이 일반적인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른 중독과 마찬가지로 '절제'가 중독을 고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해법이란 얘기입니다.

다만 이는 본인 혼자의 의지만으로는 쉽지가 않습니다. 주변의 도움, 특히 가족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무작정 게임을 하지 말라고만 할 게 아니라,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지부터 파악해야 합니다. 우선은 그런 게임을 하는 것에 대해 공감해주고, 다만 너무 과도하게 하면 문제를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줘야 합니다. 또한 밖에서 즐기는 스포츠나 여행 등 대안 활동들을 마련해 줌으로써 게임에 대한 과도한 관심을 어느 정도 다른 곳으로 돌려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전문가들은 정 안 되면 지금 하는 게임을 다른 것으로 바꿔볼 것도 권유합니다. 하나의 게임에 대한 집착을 조금이나마 덜어냄으로써 중독 증상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거듭 얘기하지만, 게임이 문제란 게 결코 아닙니다. 게임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이, 다른 것은 제쳐둔 채 게임에만 너무 몰두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절제, 그리고 다른 일상 생활과의 조화가 필요함을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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