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곤 감독, ‘亞 정상 서고도’ 쓸쓸한 작별

입력 2013.12.04 (17:23) 수정 2013.12.04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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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첫 올림픽 8강 신화를 썼고 불과 1년 전만 해도 아시아 정상에서 호령하던 '명장'이었지만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프로축구 울산 현대를 5년간 이끌어온 김호곤(62) 감독이 4일 사령탑에서 전격 물러났다.

김 감독은 이날 2014 브라질 월드컵 공인구 '브라주카' 공개 행사에 참석하고 나서 현장을 찾은 기자들을 불러모아 중구 서울클럽에서 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덤덤한 표정으로 "우승을 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울산 감독에서 사퇴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나 울산에서 보낸 영욕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는지 표정과는 별개로 목소리와 탁자 위의 손은 떨렸다.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8강 신화를 쓰며 지도력을 인정받은 김 감독은 2009시즌을 앞두고 울산에 부임했다.

그는 2년간의 리빌딩 기간을 거치며 두꺼운 수비와 빠르고 정확도 높은 역습으로 요약되는 '철퇴축구'를 완성해 2011년부터 눈에 띄는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이 해에 러시앤캐시컵 우승, 정규리그 준우승이라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고 지난 시즌에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올시즌에는 공격과 중원, 수비 전반에 걸쳐 전력 누수가 심했는데도 울산은 시즌 막판 선두 자리에서 내려올 줄 몰랐다.

김 감독은 "지난 5년은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며 "날 항상 믿어주고 지난 3년간 좋은 결과를 안겨준 선수들과 열두 번째 선수였던 서포터들에게 너무 감사하다"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K리그 최고령 감독이었던 김 감독은 자신 이름 앞에 붙은 '노장'이라는 수식어가 듣기 싫었다고 털어놨다.

유난히 젊은 사령탑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은 올시즌이었다. 김 감독의 애제자이기도 한 최용수(40) FC서울 감독은 아시아 정상 문턱까지 도달했고 서정원(43) 수원 삼성 감독은 명가 재건에 나섰다.

이들과 비교되며 우승 경쟁을 펼친 김 감독 입장에서는 부담을 느꼈을 법도 하다.

게다가 40대 기수론의 맨 앞에 선 황선홍(45) 감독의 포항 스틸러스는 정규리그 '결승'최종전에서 울산을 꺾고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김 감독은 "노장은 녹슬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닳아 없어지는 것"이라는 말로 프로축구판을 떠나는 마지막 노장 감독으로서의 안타까운 마음을 대신 표현했다.

3일 열린 2013 현대오일뱅크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베스트 11에 선정된 울산 선수들은 김 감독의 사퇴를 예감했는지 하나같이 그의 이름을 언급하며 감사를 표했다.

최우수선수(MVP)로도 선정된 김신욱은 "김 감독님은 나의 축구 아버지"라고 했고 이용은 "내년에도 김 감독님 밑에서 열심히 해서 꼭 우승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감독이 자진해서 물러나는 모양새가 갖춰졌지만 실제로는 구단 수뇌부가 포항전 경기 내용이 무기력했다며 강하게 사퇴 압력을 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김 감독은 5년간 울산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오고도 마지막 한 경기를 잡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령탑에서 물러난 셈이 됐다.

김 감독은 "울산 감독에서는 사퇴하지만 앞으로 계속 축구인으로서 할 일이 있다면 열심히 하겠다. 나와 축구는 뗄 수 없는 것이고 축구에 너무 감사하다"며 5년간 자신을 지지해준 팬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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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호곤 감독, ‘亞 정상 서고도’ 쓸쓸한 작별
    • 입력 2013-12-04 17:23:31
    • 수정2013-12-04 17:25:29
    연합뉴스
사상 첫 올림픽 8강 신화를 썼고 불과 1년 전만 해도 아시아 정상에서 호령하던 '명장'이었지만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프로축구 울산 현대를 5년간 이끌어온 김호곤(62) 감독이 4일 사령탑에서 전격 물러났다. 김 감독은 이날 2014 브라질 월드컵 공인구 '브라주카' 공개 행사에 참석하고 나서 현장을 찾은 기자들을 불러모아 중구 서울클럽에서 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덤덤한 표정으로 "우승을 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울산 감독에서 사퇴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나 울산에서 보낸 영욕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는지 표정과는 별개로 목소리와 탁자 위의 손은 떨렸다.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8강 신화를 쓰며 지도력을 인정받은 김 감독은 2009시즌을 앞두고 울산에 부임했다. 그는 2년간의 리빌딩 기간을 거치며 두꺼운 수비와 빠르고 정확도 높은 역습으로 요약되는 '철퇴축구'를 완성해 2011년부터 눈에 띄는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이 해에 러시앤캐시컵 우승, 정규리그 준우승이라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고 지난 시즌에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올시즌에는 공격과 중원, 수비 전반에 걸쳐 전력 누수가 심했는데도 울산은 시즌 막판 선두 자리에서 내려올 줄 몰랐다. 김 감독은 "지난 5년은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며 "날 항상 믿어주고 지난 3년간 좋은 결과를 안겨준 선수들과 열두 번째 선수였던 서포터들에게 너무 감사하다"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K리그 최고령 감독이었던 김 감독은 자신 이름 앞에 붙은 '노장'이라는 수식어가 듣기 싫었다고 털어놨다. 유난히 젊은 사령탑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은 올시즌이었다. 김 감독의 애제자이기도 한 최용수(40) FC서울 감독은 아시아 정상 문턱까지 도달했고 서정원(43) 수원 삼성 감독은 명가 재건에 나섰다. 이들과 비교되며 우승 경쟁을 펼친 김 감독 입장에서는 부담을 느꼈을 법도 하다. 게다가 40대 기수론의 맨 앞에 선 황선홍(45) 감독의 포항 스틸러스는 정규리그 '결승'최종전에서 울산을 꺾고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김 감독은 "노장은 녹슬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닳아 없어지는 것"이라는 말로 프로축구판을 떠나는 마지막 노장 감독으로서의 안타까운 마음을 대신 표현했다. 3일 열린 2013 현대오일뱅크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베스트 11에 선정된 울산 선수들은 김 감독의 사퇴를 예감했는지 하나같이 그의 이름을 언급하며 감사를 표했다. 최우수선수(MVP)로도 선정된 김신욱은 "김 감독님은 나의 축구 아버지"라고 했고 이용은 "내년에도 김 감독님 밑에서 열심히 해서 꼭 우승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감독이 자진해서 물러나는 모양새가 갖춰졌지만 실제로는 구단 수뇌부가 포항전 경기 내용이 무기력했다며 강하게 사퇴 압력을 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김 감독은 5년간 울산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오고도 마지막 한 경기를 잡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령탑에서 물러난 셈이 됐다. 김 감독은 "울산 감독에서는 사퇴하지만 앞으로 계속 축구인으로서 할 일이 있다면 열심히 하겠다. 나와 축구는 뗄 수 없는 것이고 축구에 너무 감사하다"며 5년간 자신을 지지해준 팬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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