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 개 자막으로 읽는 예능…tvN ‘꽃보다 누나’

입력 2013.12.06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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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에 스토리텔링 더해…"작가주의 예능 탄생" 분석도

주로 다큐멘터리 장르에 활용되는 내레이션은 일반적으로 상황이나 심리를 묘사함으로써 시청자의 이해를 돕는다.

반면 여러 캐릭터가 동시다발적으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버라이어티 예능은 내레이션과 어울리지 않는다.

내레이션이 활용되는 일부가 있지만 다큐멘터리 성격이 강한 프로그램들이다.

대신 예능 프로그램에는 비장의 무기 '자막'이 있다.

제작진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자막은 시청자가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을 강조하기도 하고, 정신없이 흐르는 장면에 쉼표를 끼워넣기도 한다.

적절히 활용된 섬세한 자막은 예능 프로그램 캐릭터를 만드는 역할도 수행한다.

바로 이와 같은 자막이 첫 방송에서 시청률 10%(유료플랫폼 가구 기준)를 넘기며 화제를 낳은 tvN 여행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윤여정, 김자옥, 김희애, 이미연, 이승기 출연)의 힘이다.

지난달 29일 방송된 '꽃보다 누나'(이하 '꽃누나') 1화에서는 방송시간 71분 동안 무려 약 1천50개의 자막(말풍선 모양 포함)이 활용됐다.

1분당 15개, 4초당 1개꼴이다.

풍경을 롱테이크(길게 찍기)로 잡은 장면이 곳곳에 삽입되고, 개별 자막이 실제 화면에 노출되는 시간도 짧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방송 내내 자막이 화면 일부를 차지한 것이다.

마치 소설의 문장을 내레이션으로 듣는 'TV 소설'처럼 시청자는 '꽃누나'를 보면서 자막도 읽은 셈.

'꽃누나'에서 자막은 다른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상황을 설명하거나 출연진의 코멘트를 강조하기 위해, 또는 배경 정보를 전달하는 용도로 쓰였다.

하지만 '꽃누나'의 강점은 자막이 시작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목표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나영석 PD는 방송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의 관심사는 크게 말하면 휴머니즘, 작게 말하면 사람에 대한 관심"이라며 "여배우들과 이승기의 성장스토리를 그리고 싶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꽃누나' 자막은 그의 말처럼 화면의 중앙과 외곽을 오가며 캐릭터의 특징을 설명하는 데 온전하게 할애된다.

'워너비 여정', '로맨틱 자옥', '호기심 희애', '왈가닥 미연' 식으로 네 여배우의 특징을 간명히 잡아주는 것을 시작으로, 끊임없이 출연자 각자의 개성을 포착해 부각시킨다.

여러 출연자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평범한 대화에서도 최연장자 윤여정이나 짐꾼 이승기의 서로 다른 위치가 반영된 반응을 포착해낸다.

예컨대 윤여정에게 '우렁차게' 인사하는 다른 멤버나 김희애와 인사를 나누는 이미연의 '긴장된' 목소리는 자막이 없었다면 뚜렷이 인식하기 어려웠던 부분이다.

때문에 '꽃누나'의 자막에는 상대적으로 '형용사'가 많다. 상황을 설명하거나 코멘트를 강조하기보다 드러나지 않은 맥락을 잡아내는 경우가 다수이기 때문이다.

자막을 통해 캐릭터의 선명한 이미지를 만들고 나아가 형성된 캐릭터가 성장하면서 바뀌는 이야기까지 끌어내는 것.

실제 '꽃누나'는 첫 회부터 자막을 매개로 여행 초반과 후반을 교차 편집하며 이승기를 중심으로 인물의 '성장'을 예고했다.

'꽃누나' 자막의 다른 미덕은 바로 독특한 디자인이다.

프로그램의 상징이 된 특유의 글자체는 친근함을 준다. 여기에 크기, 색깔, 모양에 끊임없이 변화를 줘 시청자가 지루하지 않게 돕는다.

심지어 화면 아래에 깔리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자막조차 상황에 따라 미세한 높이 차이를 뒀다.

물론 변화는 자막 내용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언성이 높아지면 말풍선 모양이 커지거나 자막이 화면 상부로 올라간다.

이를 통해 시청자는 출연진 말의 의도나 전체적인 맥락을 시각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김교석 문화평론가는 "'꽃누나'는 어찌 보면 평범할 수 있는 여행기에 제작진이 끊임없이 스토리텔링에 공을 쏟아 영상만으로 전달이 어려운 메시지와 재미를 담았다"며 "자막이 캐릭터를 설정하고 재미있는 부분을 짚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적극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제작진의 개성이 프로그램에 강하게 묻어나는 측면에서는 '꽃누나'가 본격적인 '작가주의 예능'의 탄생이란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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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천 개 자막으로 읽는 예능…tvN ‘꽃보다 누나’
    • 입력 2013-12-06 10:40:47
    연합뉴스
여행기에 스토리텔링 더해…"작가주의 예능 탄생" 분석도 주로 다큐멘터리 장르에 활용되는 내레이션은 일반적으로 상황이나 심리를 묘사함으로써 시청자의 이해를 돕는다. 반면 여러 캐릭터가 동시다발적으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버라이어티 예능은 내레이션과 어울리지 않는다. 내레이션이 활용되는 일부가 있지만 다큐멘터리 성격이 강한 프로그램들이다. 대신 예능 프로그램에는 비장의 무기 '자막'이 있다. 제작진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자막은 시청자가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을 강조하기도 하고, 정신없이 흐르는 장면에 쉼표를 끼워넣기도 한다. 적절히 활용된 섬세한 자막은 예능 프로그램 캐릭터를 만드는 역할도 수행한다. 바로 이와 같은 자막이 첫 방송에서 시청률 10%(유료플랫폼 가구 기준)를 넘기며 화제를 낳은 tvN 여행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윤여정, 김자옥, 김희애, 이미연, 이승기 출연)의 힘이다. 지난달 29일 방송된 '꽃보다 누나'(이하 '꽃누나') 1화에서는 방송시간 71분 동안 무려 약 1천50개의 자막(말풍선 모양 포함)이 활용됐다. 1분당 15개, 4초당 1개꼴이다. 풍경을 롱테이크(길게 찍기)로 잡은 장면이 곳곳에 삽입되고, 개별 자막이 실제 화면에 노출되는 시간도 짧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방송 내내 자막이 화면 일부를 차지한 것이다. 마치 소설의 문장을 내레이션으로 듣는 'TV 소설'처럼 시청자는 '꽃누나'를 보면서 자막도 읽은 셈. '꽃누나'에서 자막은 다른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상황을 설명하거나 출연진의 코멘트를 강조하기 위해, 또는 배경 정보를 전달하는 용도로 쓰였다. 하지만 '꽃누나'의 강점은 자막이 시작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목표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나영석 PD는 방송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의 관심사는 크게 말하면 휴머니즘, 작게 말하면 사람에 대한 관심"이라며 "여배우들과 이승기의 성장스토리를 그리고 싶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꽃누나' 자막은 그의 말처럼 화면의 중앙과 외곽을 오가며 캐릭터의 특징을 설명하는 데 온전하게 할애된다. '워너비 여정', '로맨틱 자옥', '호기심 희애', '왈가닥 미연' 식으로 네 여배우의 특징을 간명히 잡아주는 것을 시작으로, 끊임없이 출연자 각자의 개성을 포착해 부각시킨다. 여러 출연자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평범한 대화에서도 최연장자 윤여정이나 짐꾼 이승기의 서로 다른 위치가 반영된 반응을 포착해낸다. 예컨대 윤여정에게 '우렁차게' 인사하는 다른 멤버나 김희애와 인사를 나누는 이미연의 '긴장된' 목소리는 자막이 없었다면 뚜렷이 인식하기 어려웠던 부분이다. 때문에 '꽃누나'의 자막에는 상대적으로 '형용사'가 많다. 상황을 설명하거나 코멘트를 강조하기보다 드러나지 않은 맥락을 잡아내는 경우가 다수이기 때문이다. 자막을 통해 캐릭터의 선명한 이미지를 만들고 나아가 형성된 캐릭터가 성장하면서 바뀌는 이야기까지 끌어내는 것. 실제 '꽃누나'는 첫 회부터 자막을 매개로 여행 초반과 후반을 교차 편집하며 이승기를 중심으로 인물의 '성장'을 예고했다. '꽃누나' 자막의 다른 미덕은 바로 독특한 디자인이다. 프로그램의 상징이 된 특유의 글자체는 친근함을 준다. 여기에 크기, 색깔, 모양에 끊임없이 변화를 줘 시청자가 지루하지 않게 돕는다. 심지어 화면 아래에 깔리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자막조차 상황에 따라 미세한 높이 차이를 뒀다. 물론 변화는 자막 내용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언성이 높아지면 말풍선 모양이 커지거나 자막이 화면 상부로 올라간다. 이를 통해 시청자는 출연진 말의 의도나 전체적인 맥락을 시각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김교석 문화평론가는 "'꽃누나'는 어찌 보면 평범할 수 있는 여행기에 제작진이 끊임없이 스토리텔링에 공을 쏟아 영상만으로 전달이 어려운 메시지와 재미를 담았다"며 "자막이 캐릭터를 설정하고 재미있는 부분을 짚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적극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제작진의 개성이 프로그램에 강하게 묻어나는 측면에서는 '꽃누나'가 본격적인 '작가주의 예능'의 탄생이란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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