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본문 영역

상세페이지

왕자웨이 “찍고 죽자는 각오로 사막에 갔죠”
입력 2013.12.06 (11:50) 연합뉴스
'동사서독 리덕스' 개봉으로 내한

"찍고 죽자는 마음으로 사막에 갔어요. '동사서독'을 찍고 나서 어떤 영화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지난 5일 밤 서울 명동의 한 극장.

왕자웨이(왕가위·王家衛) 감독이 영화 '동사서독'(1994)을 찍을 당시에 대해 이렇게 회고하자 떠들썩했던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졌다.

왕자웨이 감독이 돌아왔다.

'동사서독'을 새롭게 편집해 디지털로 옷을 갈아입힌 '동사서독 리덕스'(2013)를 들고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상실감이라는 키워드로 1990년대 국내 문학계에서 주목받았다면, 영화계의 주역은 단연 왕자웨이였다.

'아비정전'(1990), '동사서독'(1994), '중경삼림'(1994), '타락천사'(1995), '화양연화'(2000)는 느닷없이 찾아온 사랑과 가만히 떠나가는 사랑을 감각적인 영상으로 그려 젊은 관객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동사서독'은 이 가운데 가장 불친절한 작품이다.

진융(김용·金庸)의 무협소설 '영웅문'을 원작으로 삼았지만, 원작과는 달리 스토리는 파편화돼 있다.

황약사, 구양봉, 홍칠공 등 여러 인물이 등장하나 이야기가 딱히 연결되지도 않는다.

유일하게 연결되는 건 실연의 감정이다.

사랑에 실패한 인물들의 지독한 고독만이 영화의 중심을 꿰뚫는다.

"뭔가 대단한 걸 봤지만 뭘 봤는지는 몰랐다"는 정성일 평론가의 말처럼 영화는 난해하다.

그러나 아름답고 시적이다.

특히 황량하고 고독한 사막 신은 압권이다.

수만 년 동안 고비사막을 걸어갔던 사람들의 고독이 화면 안에 깊숙이 담겨 있는 듯하다.

왕자웨이 감독은 사막 장면이 많은 이유에 대해 "배우를 기다리다가 사막을 찍기 시작했다"며 "매일 매일 찍다 보니 사막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영화는 중국 고비사막 일대에서 촬영됐다.

오지에서 촬영하다 보니 "배우를 기다리는 게 일"이었다.

린칭샤(임청하·林靑霞)는 당시 10여 편의 영화를 찍고 있을 시기였다.

200여 명의 스태프는 오지 않는 배우들을 기다리다 대역을 찍었고, "대역들도 떠나다 보니 새로운 대역을 찾아" 영화를 찍었다.

왕자웨이는 사막에서 그렇게 2년을 보냈다.

"그때 고독을 즐기자고 다짐했어요. 그렇게 완성된 게 '동사서독'입니다. 무협장면을 많이 넣어달라는 주문이 많았지만 어떤 타협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점이 자랑스러웠어요. 영화를 찍으면서 저 자신의 역량을 믿게 된 계기가 됐죠.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 어떤 작품을 해도 두렵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 촬영한 '중경삼림'은 두 달 만에 찍었죠."(웃음)

왕자웨이 감독은 예정된 촬영 기간을 지키지 않는 감독으로 악명이 높다.

송혜교가 량차오웨이(양조위·梁朝偉)와 호흡을 맞춘 '일대종사'(2013)를 완성하기까지는 4년이 넘는 긴 시간이 걸렸다.

량차오웨이와 왕페이(왕비·王菲)가 주연한 '중경삼림'은 상영시간까지도 편집을 완성하지 못했다.

영화는 밤 11시30분에 개봉했는데, 편집을 완성한 필름부터 극장에 급히 보내야 했다고 한다.

"필름 1개 박스에 10분 분량만 담을 수 있기 때문에 상영시간이 90분인 영화는 9개 박스에 담아야 했죠. 제시간에 아홉 개 박스가 모두 도착한 극장에서 영화를 본 관객들은 '해피엔딩'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홍콩 시내가 밤이라고 해도 차량이 잘 막히기 때문에 시내에서 좀 먼 곳에 있는 관객은 시간 내에 필름이 다 도착하지 못해 80분 분량의 영화만 봤습니다. 그곳 관객들은 양조위와 왕비가 헤어지는 것으로 끝나는 비극으로 영화를 기억했죠. 또 더 먼 곳에 있는 관객들은 70분만 영화를 봤습니다. '훌륭한 예술영화구나'라고 느꼈다고 합니다.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하자 홍콩에선 모든 필름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상영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모두 '중경삼림' 덕택입니다." (웃음)

'중경삼림'을 찍을 당시 "그때 우린 미쳤었구나, 잘 찍긴 했는데 당시에 좀 더 놀았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든다는 왕자웨이 감독.

'왕가위, 3색 로맨스'라는 제목이 붙은 기획전 '동사서독' '중경삼림' '화양연화'의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 개봉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영화를 만난다는 건 친구를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인상이 좋지 않다가도 몇 년 후 다시 만났을 때는 마음에 드는 친구가 있잖아요.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은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 왕자웨이 “찍고 죽자는 각오로 사막에 갔죠”
    • 입력 2013-12-06 11:50:55
    연합뉴스
'동사서독 리덕스' 개봉으로 내한

"찍고 죽자는 마음으로 사막에 갔어요. '동사서독'을 찍고 나서 어떤 영화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지난 5일 밤 서울 명동의 한 극장.

왕자웨이(왕가위·王家衛) 감독이 영화 '동사서독'(1994)을 찍을 당시에 대해 이렇게 회고하자 떠들썩했던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졌다.

왕자웨이 감독이 돌아왔다.

'동사서독'을 새롭게 편집해 디지털로 옷을 갈아입힌 '동사서독 리덕스'(2013)를 들고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상실감이라는 키워드로 1990년대 국내 문학계에서 주목받았다면, 영화계의 주역은 단연 왕자웨이였다.

'아비정전'(1990), '동사서독'(1994), '중경삼림'(1994), '타락천사'(1995), '화양연화'(2000)는 느닷없이 찾아온 사랑과 가만히 떠나가는 사랑을 감각적인 영상으로 그려 젊은 관객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동사서독'은 이 가운데 가장 불친절한 작품이다.

진융(김용·金庸)의 무협소설 '영웅문'을 원작으로 삼았지만, 원작과는 달리 스토리는 파편화돼 있다.

황약사, 구양봉, 홍칠공 등 여러 인물이 등장하나 이야기가 딱히 연결되지도 않는다.

유일하게 연결되는 건 실연의 감정이다.

사랑에 실패한 인물들의 지독한 고독만이 영화의 중심을 꿰뚫는다.

"뭔가 대단한 걸 봤지만 뭘 봤는지는 몰랐다"는 정성일 평론가의 말처럼 영화는 난해하다.

그러나 아름답고 시적이다.

특히 황량하고 고독한 사막 신은 압권이다.

수만 년 동안 고비사막을 걸어갔던 사람들의 고독이 화면 안에 깊숙이 담겨 있는 듯하다.

왕자웨이 감독은 사막 장면이 많은 이유에 대해 "배우를 기다리다가 사막을 찍기 시작했다"며 "매일 매일 찍다 보니 사막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영화는 중국 고비사막 일대에서 촬영됐다.

오지에서 촬영하다 보니 "배우를 기다리는 게 일"이었다.

린칭샤(임청하·林靑霞)는 당시 10여 편의 영화를 찍고 있을 시기였다.

200여 명의 스태프는 오지 않는 배우들을 기다리다 대역을 찍었고, "대역들도 떠나다 보니 새로운 대역을 찾아" 영화를 찍었다.

왕자웨이는 사막에서 그렇게 2년을 보냈다.

"그때 고독을 즐기자고 다짐했어요. 그렇게 완성된 게 '동사서독'입니다. 무협장면을 많이 넣어달라는 주문이 많았지만 어떤 타협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점이 자랑스러웠어요. 영화를 찍으면서 저 자신의 역량을 믿게 된 계기가 됐죠.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 어떤 작품을 해도 두렵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 촬영한 '중경삼림'은 두 달 만에 찍었죠."(웃음)

왕자웨이 감독은 예정된 촬영 기간을 지키지 않는 감독으로 악명이 높다.

송혜교가 량차오웨이(양조위·梁朝偉)와 호흡을 맞춘 '일대종사'(2013)를 완성하기까지는 4년이 넘는 긴 시간이 걸렸다.

량차오웨이와 왕페이(왕비·王菲)가 주연한 '중경삼림'은 상영시간까지도 편집을 완성하지 못했다.

영화는 밤 11시30분에 개봉했는데, 편집을 완성한 필름부터 극장에 급히 보내야 했다고 한다.

"필름 1개 박스에 10분 분량만 담을 수 있기 때문에 상영시간이 90분인 영화는 9개 박스에 담아야 했죠. 제시간에 아홉 개 박스가 모두 도착한 극장에서 영화를 본 관객들은 '해피엔딩'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홍콩 시내가 밤이라고 해도 차량이 잘 막히기 때문에 시내에서 좀 먼 곳에 있는 관객은 시간 내에 필름이 다 도착하지 못해 80분 분량의 영화만 봤습니다. 그곳 관객들은 양조위와 왕비가 헤어지는 것으로 끝나는 비극으로 영화를 기억했죠. 또 더 먼 곳에 있는 관객들은 70분만 영화를 봤습니다. '훌륭한 예술영화구나'라고 느꼈다고 합니다.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하자 홍콩에선 모든 필름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상영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모두 '중경삼림' 덕택입니다." (웃음)

'중경삼림'을 찍을 당시 "그때 우린 미쳤었구나, 잘 찍긴 했는데 당시에 좀 더 놀았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든다는 왕자웨이 감독.

'왕가위, 3색 로맨스'라는 제목이 붙은 기획전 '동사서독' '중경삼림' '화양연화'의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 개봉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영화를 만난다는 건 친구를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인상이 좋지 않다가도 몇 년 후 다시 만났을 때는 마음에 드는 친구가 있잖아요.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은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kbs가 손수 골랐습니다. 네이버에서도 보세요.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