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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24 이슈] ‘민주화 상징’ 만델라 타계, 남아공 현지 분위기는?
입력 2013.12.06 (18:00) 수정 2013.12.06 (18:38) 글로벌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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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현지시간 5일,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 대통령이 향년 95세의 삶을 마감했습니다.

95세의 고령과 지병이었던 폐 감염증이 원인이었습니다.

훌륭한 투사이자 협상가였고, 화해의 지도자였던 넬슨 만델라의 죽음에 전 세계도 추모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지금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만델라 전 대통령의 애도를 비는 한편 닥쳐올 정정 불안 사태의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데요.

먼저 현지 연결해 만델라의 타계를 맞는 남아공 표정부터 알아봅니다.

이윤 주 남아공 대사 연결돼 있습니다.

<질문> 남아프리카공화국 국민들, 무척 슬픔에 잠겨 있을텐데.. 현지 표정은 어떻습니까?

<질문> 장례식 준비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국장으로 치러지겠죠?

<앵커 멘트>

그렇군요...

그럼 이번에는 우리 시대 최고의 위인으로 불리는 넬슨 만델라, 어떤 인물이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국제부 박수현 기자 나와있습니다.

<질문> 박기자,, 고단했지만 위대했던 그의 인생을 한번 쫓아가 볼까요..

만델라 인생의 전반부는 강력한 투사로서의 모습이죠?

<답변>

예 남아공 추장 가문의 후손으로 태어나 흑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엘리트코스를 밟았던 만델라는 변호사를 거쳐, 무장 저항 운동의 선봉에 나서게됐습니다.

25 살에 민주화 투쟁의 중심인 아프리카 민족회의에 가담하구요,

34살에는 변호사가 돼 남아공 최초의 흑인 법률 사무소를 설립합니다.

1960년 경찰 발포로 흑인 시위대 69명이 사망하는 '샤퍼빌 대학살' 사건이 발생하자 비폭력 저항운동을 버리고 무력 투쟁을 시작합니다.

<녹취> 넬슨 만델라(1961년 5월) : "무장하지 않은 시민들에게 야만적인 보복을 가하는 정부를 상대로 비폭력과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쓸모없고 헛되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이후 전국적 저항 운동을 이끌다 결국 내란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 받게 되죠?

<답변>

예 그 유명한 '리보니아 재판' 인데요..

만델라가 국내 외에서 민주화 투쟁의 중심으로 부상한 것은 바로 이 재판을 통해서 였습니다.

64년 6월 11일 아프리카 민족회의 지도급 인사 7명과 함께 내란 등 혐으로 종신형을 선고 받는데요

이때 법정에서 한 진술은 남아공을 변화시킨 역사적인 발언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녹취> 넬슨 만델라(1964년 재판 진술) : "나는 모든 사람이 함께 조화를 이루고 동등한 기회를 누리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에 대한 이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회야 말로 내가 살아가는 목적이고 이루고 싶은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그런 이상을 위해 나는 죽을 준비가 돼있습니다."

<질문> 결국 종신형을 선고 받은 만델라는 긴긴 수감 생활을 하게되죠?

<답변>

예 27년 동안 긴 옥살이를 하면서 감방에서 남아공 민주화의 정신적 지주로서 또다른 투쟁의 길을 걷게됩니다.

남아공 본토에서 북쪽으로 9킬로 떨어진 로벤섬..

그가 18년 동안 옥고를 치렀던 곳입니다.

<녹취> "2개의 매트, 그리고 3장의 담요. 우리는 바닥에서 자야했습니다. 그렇게 14년을 침대 없이 잤습니다."

만델라는 감옥에서도 흑인들의 정신적 지주였습니다.

<녹취> 데스몬드 투투(대주교) : "우리는 넬슨 만델라를 원한다. 그는 우리의 지도자이다 그는 우리의 지도자이다. 그를 석방하라!"

만델라가 바깥 세상에 나오기 까진 무려 27년이 넘는 세월이 걸려야 했습니다.

43세,, 중년의 나이에 투옥됐다 71살의 노인이 되어서야 다시 세상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질문> 석방된 만델라는 결국 남아공의 첫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죠?

<답변>

예 1993년 남아공의 흑인차별 정책 철폐를 위한 평생의 투쟁의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구요

이듬해인 1994년 마침내 남아공 최초의 다인종 선거가 치러진 가운데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그의 나이 76세 때입니다.

<녹취> 넬슨 만델라 : "나, 넬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위해서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맹세합니다."

<질문> 대통령 선출이 된 뒤에는 흑인을 탁압하던 백인을 용서와 화합의 정신으로 포옹하는 정책을 펼쳤죠?

<답변>

예 탄압을 받던 피지배 계층이 권력을 장악한 뒤 압제자들과 평화공존을 도모한 것은 역사적으로 매우 드문 일인데요

만델라는 투투 대주교와 함께 '진실화해위원회"을 출법시켜 피를 흘리지 않고 과거를 정리했습니다.

<녹취> 데스먼드 투투 : "국민 통합은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벤트가 아닌 과정입니다."

흑인과 백인이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무지개 국가를 만드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에도 인류 평화를 위한 외길에 매진해 우리 시대 최고의 위인으로 전 세계인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녹취> 조지 비조스 : "만델라는 선지자나 성자로 여겨지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는 남아공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기억될 것입니다."

<녹취> 넬슨 만델라(1990년 연설) : "역사는 왕이나 장군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민중들이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항상 이것을 믿어왔습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에 있는 이유입니다. 아프리카!! "

<질문> 하지만 영웅도 시간의 무게를 피해갈 순 없었는데요..

전세계에서 애도의 뜻을 보내고 있죠?

<답변>

네 먼저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그를 애도하는 성명을 통해 만델라의 전 생애가 유엔의 가치와 열망을 증진시킨 위대한 희생이었으며 인종차별 정책을 종식시키는데 결정적인 다리가 되었다고 밝혔구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역시 '만델라' 없는 자신은 상상할 수 없다며 애도를 표시했습니다.

<녹취> 오바마

그밖에도 아웅산 수치 여사를 비롯한 각국의 정치가들과 골프선수 타이그 우즈까지 정재계와 연예계, 심지어는 스포츠계까지 지구촌 각계 각층의 유명 인사들이 앞다투어 자유의 투사 만델라에게 추모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질문> 이렇게 흑인과 백인 모든국민의 신망을 바탕으로 갈등을 억눌러오던 만델라가 사라지면서 또다시 남아프리카내 충돌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면서요?

<답변>

그렇습니다.

'위대한 어른'이라는 뜻의 마디바란 애칭으로 불릴 만큼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만델라 전 대통령, 백인정권이 막을 내린 후 남아프리카 공화국 내 백인들은 만델라 개인의 리더십과 화합정책에 기대어 흑인들과 공존을 해 왔던 만큼 정치적-사회적 통합의 구심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사망과 함께 또 다시 사회-인종 갈등이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녹취> 남아공 주민

또 흑백갈등 뿐 아니라 최근엔 흑흑 갈등, 즉 흑인 내부의 갈등도 풀어야 할 숙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현재 남아프리카의 주류를 이루는 흑인 부족은 줄루족인데요.

바로 지금 남아공을 이끄는 제이콥 주마 대통령이 이 줄루족 출신입니다.

하지만 코사족 만델라를 비롯해 현 정치권에 코사족의 영향력이 여전히 강한 만큼 국가보다 부족을 우선시했던 남아공의 오랜 풍토와 더불어 두 라이벌 부족, 줄루족과 코사족이 또다시 충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질문> 공식 언어만 열한 개, 수도 없이 많은 민족이 존재하고 다문화가 공존하는 남아프리카에서 사회통합이 큰 과제로 남겨진 거군요.

<답변>

네. 실제 충돌 가능성은 적습니다만. 당장 해결해야 할 현안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특히 극심한 빈부 격차와 높은 실업률은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받아 왔죠.

실제 남아공의 소득수준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절반 이상을 장악하는 반면 하위 10%가 차지하는 비율은 채 1%가 되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청년실업자들을 중심으로 흑인 서민들의 불만이 쌓이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남아공의 불안요인입니다.

만델라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아파르트헤이트가 꽁꽁 닫아뒀던 노동시장의 문이 열리면서 흑인 노동자들이 대거 시장으로 몰렸습니다만 숙련된 기술이나 교육을 받지 못했던 이들이 가져갈 수 있는 일자리는 적었습니다.

다시 말해, 남아공의 백인과 흑인 사이에는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진 근본적인 '생산성의 격차'가 존재했던 겁니다.

만델라가 아파르트헤이트를 종식시킨 직후와 수십년이 흐른 오늘날까지 빈곤율이 비슷한 건 바로 이런 상황 때문입니다.

<질문> 지난 여름, 만델라 전 대통령이 처음 병원에 입원할 당시 남아공 금융시장이 한차례 요동을 쳤는데요.

남아공의 화폐인 랜드화, 달러당 가치가 1.6% 떨어지고 요하네스버그 증권거래소의 주가지수는 9%까지 급락하면서 '만델라 크래시'라는 신조어까지 나올 정도였죠.

박수현 기자, 남아공 경제 상황은 어떻습니까?

<답변>

시차를 고려했을 때 조금 더 상황을 지켜봐야 하겠습니다만, 실제 영향은 그렇게 크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 6월 만델라의 첫 입원 이후 시장 역시 그의 죽음을 준비해 왔던 만큼 충격이 적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자유를 향한 만델라의 긴 여정은 이제 끝이 났는데요.

여전히 숱한 문제를 안고 있는 남아공이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 지... 당분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것으로 보입니다.

평등과 자유, 그리고 화합.. 만델라가 평생을 두고 이루고자 했던 목표였는데요.

남아공의 정치권이 계속 그 뜻을 이루어 가기를 바랍니다.

만델라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 [글로벌24 이슈] ‘민주화 상징’ 만델라 타계, 남아공 현지 분위기는?
    • 입력 2013-12-06 18:06:09
    • 수정2013-12-06 18: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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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현지시간 5일,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 대통령이 향년 95세의 삶을 마감했습니다.

95세의 고령과 지병이었던 폐 감염증이 원인이었습니다.

훌륭한 투사이자 협상가였고, 화해의 지도자였던 넬슨 만델라의 죽음에 전 세계도 추모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지금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만델라 전 대통령의 애도를 비는 한편 닥쳐올 정정 불안 사태의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데요.

먼저 현지 연결해 만델라의 타계를 맞는 남아공 표정부터 알아봅니다.

이윤 주 남아공 대사 연결돼 있습니다.

<질문> 남아프리카공화국 국민들, 무척 슬픔에 잠겨 있을텐데.. 현지 표정은 어떻습니까?

<질문> 장례식 준비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국장으로 치러지겠죠?

<앵커 멘트>

그렇군요...

그럼 이번에는 우리 시대 최고의 위인으로 불리는 넬슨 만델라, 어떤 인물이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국제부 박수현 기자 나와있습니다.

<질문> 박기자,, 고단했지만 위대했던 그의 인생을 한번 쫓아가 볼까요..

만델라 인생의 전반부는 강력한 투사로서의 모습이죠?

<답변>

예 남아공 추장 가문의 후손으로 태어나 흑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엘리트코스를 밟았던 만델라는 변호사를 거쳐, 무장 저항 운동의 선봉에 나서게됐습니다.

25 살에 민주화 투쟁의 중심인 아프리카 민족회의에 가담하구요,

34살에는 변호사가 돼 남아공 최초의 흑인 법률 사무소를 설립합니다.

1960년 경찰 발포로 흑인 시위대 69명이 사망하는 '샤퍼빌 대학살' 사건이 발생하자 비폭력 저항운동을 버리고 무력 투쟁을 시작합니다.

<녹취> 넬슨 만델라(1961년 5월) : "무장하지 않은 시민들에게 야만적인 보복을 가하는 정부를 상대로 비폭력과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쓸모없고 헛되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이후 전국적 저항 운동을 이끌다 결국 내란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 받게 되죠?

<답변>

예 그 유명한 '리보니아 재판' 인데요..

만델라가 국내 외에서 민주화 투쟁의 중심으로 부상한 것은 바로 이 재판을 통해서 였습니다.

64년 6월 11일 아프리카 민족회의 지도급 인사 7명과 함께 내란 등 혐으로 종신형을 선고 받는데요

이때 법정에서 한 진술은 남아공을 변화시킨 역사적인 발언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녹취> 넬슨 만델라(1964년 재판 진술) : "나는 모든 사람이 함께 조화를 이루고 동등한 기회를 누리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에 대한 이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회야 말로 내가 살아가는 목적이고 이루고 싶은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그런 이상을 위해 나는 죽을 준비가 돼있습니다."

<질문> 결국 종신형을 선고 받은 만델라는 긴긴 수감 생활을 하게되죠?

<답변>

예 27년 동안 긴 옥살이를 하면서 감방에서 남아공 민주화의 정신적 지주로서 또다른 투쟁의 길을 걷게됩니다.

남아공 본토에서 북쪽으로 9킬로 떨어진 로벤섬..

그가 18년 동안 옥고를 치렀던 곳입니다.

<녹취> "2개의 매트, 그리고 3장의 담요. 우리는 바닥에서 자야했습니다. 그렇게 14년을 침대 없이 잤습니다."

만델라는 감옥에서도 흑인들의 정신적 지주였습니다.

<녹취> 데스몬드 투투(대주교) : "우리는 넬슨 만델라를 원한다. 그는 우리의 지도자이다 그는 우리의 지도자이다. 그를 석방하라!"

만델라가 바깥 세상에 나오기 까진 무려 27년이 넘는 세월이 걸려야 했습니다.

43세,, 중년의 나이에 투옥됐다 71살의 노인이 되어서야 다시 세상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질문> 석방된 만델라는 결국 남아공의 첫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죠?

<답변>

예 1993년 남아공의 흑인차별 정책 철폐를 위한 평생의 투쟁의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구요

이듬해인 1994년 마침내 남아공 최초의 다인종 선거가 치러진 가운데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그의 나이 76세 때입니다.

<녹취> 넬슨 만델라 : "나, 넬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위해서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맹세합니다."

<질문> 대통령 선출이 된 뒤에는 흑인을 탁압하던 백인을 용서와 화합의 정신으로 포옹하는 정책을 펼쳤죠?

<답변>

예 탄압을 받던 피지배 계층이 권력을 장악한 뒤 압제자들과 평화공존을 도모한 것은 역사적으로 매우 드문 일인데요

만델라는 투투 대주교와 함께 '진실화해위원회"을 출법시켜 피를 흘리지 않고 과거를 정리했습니다.

<녹취> 데스먼드 투투 : "국민 통합은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벤트가 아닌 과정입니다."

흑인과 백인이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무지개 국가를 만드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에도 인류 평화를 위한 외길에 매진해 우리 시대 최고의 위인으로 전 세계인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녹취> 조지 비조스 : "만델라는 선지자나 성자로 여겨지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는 남아공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기억될 것입니다."

<녹취> 넬슨 만델라(1990년 연설) : "역사는 왕이나 장군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민중들이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항상 이것을 믿어왔습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에 있는 이유입니다. 아프리카!! "

<질문> 하지만 영웅도 시간의 무게를 피해갈 순 없었는데요..

전세계에서 애도의 뜻을 보내고 있죠?

<답변>

네 먼저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그를 애도하는 성명을 통해 만델라의 전 생애가 유엔의 가치와 열망을 증진시킨 위대한 희생이었으며 인종차별 정책을 종식시키는데 결정적인 다리가 되었다고 밝혔구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역시 '만델라' 없는 자신은 상상할 수 없다며 애도를 표시했습니다.

<녹취> 오바마

그밖에도 아웅산 수치 여사를 비롯한 각국의 정치가들과 골프선수 타이그 우즈까지 정재계와 연예계, 심지어는 스포츠계까지 지구촌 각계 각층의 유명 인사들이 앞다투어 자유의 투사 만델라에게 추모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질문> 이렇게 흑인과 백인 모든국민의 신망을 바탕으로 갈등을 억눌러오던 만델라가 사라지면서 또다시 남아프리카내 충돌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면서요?

<답변>

그렇습니다.

'위대한 어른'이라는 뜻의 마디바란 애칭으로 불릴 만큼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만델라 전 대통령, 백인정권이 막을 내린 후 남아프리카 공화국 내 백인들은 만델라 개인의 리더십과 화합정책에 기대어 흑인들과 공존을 해 왔던 만큼 정치적-사회적 통합의 구심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사망과 함께 또 다시 사회-인종 갈등이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녹취> 남아공 주민

또 흑백갈등 뿐 아니라 최근엔 흑흑 갈등, 즉 흑인 내부의 갈등도 풀어야 할 숙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현재 남아프리카의 주류를 이루는 흑인 부족은 줄루족인데요.

바로 지금 남아공을 이끄는 제이콥 주마 대통령이 이 줄루족 출신입니다.

하지만 코사족 만델라를 비롯해 현 정치권에 코사족의 영향력이 여전히 강한 만큼 국가보다 부족을 우선시했던 남아공의 오랜 풍토와 더불어 두 라이벌 부족, 줄루족과 코사족이 또다시 충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질문> 공식 언어만 열한 개, 수도 없이 많은 민족이 존재하고 다문화가 공존하는 남아프리카에서 사회통합이 큰 과제로 남겨진 거군요.

<답변>

네. 실제 충돌 가능성은 적습니다만. 당장 해결해야 할 현안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특히 극심한 빈부 격차와 높은 실업률은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받아 왔죠.

실제 남아공의 소득수준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절반 이상을 장악하는 반면 하위 10%가 차지하는 비율은 채 1%가 되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청년실업자들을 중심으로 흑인 서민들의 불만이 쌓이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남아공의 불안요인입니다.

만델라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아파르트헤이트가 꽁꽁 닫아뒀던 노동시장의 문이 열리면서 흑인 노동자들이 대거 시장으로 몰렸습니다만 숙련된 기술이나 교육을 받지 못했던 이들이 가져갈 수 있는 일자리는 적었습니다.

다시 말해, 남아공의 백인과 흑인 사이에는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진 근본적인 '생산성의 격차'가 존재했던 겁니다.

만델라가 아파르트헤이트를 종식시킨 직후와 수십년이 흐른 오늘날까지 빈곤율이 비슷한 건 바로 이런 상황 때문입니다.

<질문> 지난 여름, 만델라 전 대통령이 처음 병원에 입원할 당시 남아공 금융시장이 한차례 요동을 쳤는데요.

남아공의 화폐인 랜드화, 달러당 가치가 1.6% 떨어지고 요하네스버그 증권거래소의 주가지수는 9%까지 급락하면서 '만델라 크래시'라는 신조어까지 나올 정도였죠.

박수현 기자, 남아공 경제 상황은 어떻습니까?

<답변>

시차를 고려했을 때 조금 더 상황을 지켜봐야 하겠습니다만, 실제 영향은 그렇게 크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 6월 만델라의 첫 입원 이후 시장 역시 그의 죽음을 준비해 왔던 만큼 충격이 적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자유를 향한 만델라의 긴 여정은 이제 끝이 났는데요.

여전히 숱한 문제를 안고 있는 남아공이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 지... 당분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것으로 보입니다.

평등과 자유, 그리고 화합.. 만델라가 평생을 두고 이루고자 했던 목표였는데요.

남아공의 정치권이 계속 그 뜻을 이루어 가기를 바랍니다.

만델라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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