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가 간다] 종점을 지키는 사람들 ① 제천역의 6인조
입력 2013.12.09 (15:47)
수정 2013.12.13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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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추위 속 물청소에 정신이 아찔”
[종점을 지키는 사람들] ① 제천역의 6인조
지난 10월 14일 오후 7시 25분, 충북 제천시 제천역의 승강장 부근 허름한 단층 건물에서 50~60대 남성 5명과 여성 1명이 걸어 나왔다. 형광연두색 모자에 목장갑을 낀 이들은 7시 39분에 도착하는 기차를 청소하기 위해 휴게실에서 대기 중이던 노동자들. 17년째 일하고 있다는 작업반장 이 모(58) 씨는 “(형광색) 이 모자가 우리에게는 작업모이자 안전모”라며 승강장으로 발을 옮겼다.
▲ 제천역 승강장에서 다음 열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청소노동자들. 형광색 모자는 어둠 속에서 식별할 수 있게 하는 안전모이자 작업모다. ⓒ 김연지
중간 정차 차량은 5분 안에 숨 가쁘게 청소
강원도 정선군 아우라지에서 온 열차는 예정된 시각에 정확하게 도착했다. 청소노동자들은 열차에서 사람들이 모두 내릴 때까지 눈에 띄지 않게 구석에서 기다렸다. 이번 열차는 제천에 잠깐 정차했다 서울 청량리역으로 출발하기 때문에 5~10분 만에 청소를 마쳐야 한다. ‘제천역 6인조’는 서둘러 객차에 오른 뒤 각자 맡은 위치에서 숨 가쁘게 움직였다.
이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역방향 출발에 맞춰 의자를 돌려놓는 것. 6칸짜리 객차를 기준으로 210개쯤 되는 2인용 의자를 인부 2명이 맡아 신속하게 돌린다. 그 뒤를 따라 나머지 노동자들이 의자와 선반의 먼지를 털고, 커튼을 정리하고, 50리터(ℓ)짜리 비닐봉투에 쓰레기를 주워 담고, 대걸레로 바닥을 닦는 작업을 재빨리 진행한다. 마지막 순서는 내부 유리창 닦기. 노동자 한 명이 의자 사이를 몇 번이고 드나들면서 한 칸 당 18개의 큰 유리창을 물걸레로 박박 문질러 닦아냈다.
▲ 객차 안에서 먼지털기, 쓰레기줍기 등 정해진 작업을 재빨리 진행하는 청소노동자들. ⓒ 박소연
이 모든 작업을 하는 동안 열차 내부에는 불이 꺼져 있고 인부들은 승강장의 불빛에 의지해 청소를 마쳤다. 전력을 공급하는 기관차를 반대방향에 설치하느라 객차와 일시 분리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청소노동자 중 홍일점인 박 모(52) 씨는 “흐릿한 불빛에 작업하는 것이 익숙해서 큰 어려움은 없다”고 말했다.
종착하는 차량은 분뇨 제거와 외벽 청소까지
중간 정차가 아니라 제천역에 종착하는 기차는 분뇨 제거와 외벽 청소 등 보다 종합적인 작업을 해야 한다. 제천역에 종착하는 여객열차는 평일 기준 아침 8시 11분부터 밤 10시 43분까지 하루 9편이 들어온다.
청소노동자들은 차량 도착시간에 맞춰 승강장에서 대기하다가 승객들이 모두 내리면 열차를 타고 검수소로 이동한다. 기관차가 따로 분리되지는 않지만 운행열차가 아니다보니 검수소로 들어가는 동안에도 열차 내 전기는 들어오지 않는다. 선로를 따라 이동하는 열차 안은 깜깜하지만 어둠에 익숙해진 인부들은 의자의 방향을 돌리거나 유리를 닦는 등 자기가 맡은 작업을 쉴 새 없이 진행한다. 빠르게 작업을 마쳐야 조금이라도 휴식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차량기지에서 도착해 전력과 물이 공급되면 기차 내부 청소를 본격적으로 한다. 내부 작업이 80%정도 끝나면 인부 3~4명이 먼저 밖으로 나온다. 한 명이 검수소 앞에 설치된 수압기로 기차 외벽에 물을 뿌리면 나머지 인부들이 유리닦이로 유리창 외부와 문짝 등을 빠르게 문지른다.
▲ 객차의 화장실을 청소하는 모습. ⓒ 박소연
외벽 물청소가 끝날 즈음엔 차량 화장실의 분뇨를 제거한다. 검수소 근처에 정화조와 분뇨를 제거하는 호스가 설치돼 있는데, 이를 이용해 열차 화장실 외벽 구멍을 통해 분뇨를 빼 낸다. 이 작업을 마치면 ‘청소 끝’을 외칠 수 있다.
이렇게 일을 마치는 데 30분 정도가 걸리지만 저녁 7시 이후부터는 검수소로 들어오는 열차 간격도 30분이라 쉴 틈 없이 다음 열차로 이동해야 한다. 일을 조금 빨리 마치고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추위를 녹여줄 드럼통 난로 같은 것은 기대할 수 없다. 고압전선이 있는 곳이라 화재 가능성을 특히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업반장 이 씨는 “한 겨울에 작업하다보면 장갑을 끼고 있어도 너무 추워 손에 감각이 없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또 “외벽 청소를 위해 살수기로 물을 뿌릴 때는 정신이 아찔할 정도”라며 유난히 추운 제천의 겨울을 걱정했다.
24시간 교대로 일하지만 저임금으로 생활 어려워
제천역 청소노동자는 한 조당 6명씩 총 12명이 오전 8시 30분부터 다음날 같은 시간까지 24시간 2교대로 근무한다. 이들은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아닌 용역업체 소속의 비정규직이다. 2005년 코레일이 공사로 전환하면서 승무, 역무, 차량 등 다른 직원들은 공사소속이 됐고 근무도 2조 2교대에서 3조 2교대로 바뀌었는데, 미화노동자들만 유일하게 근무조건이 개선되지 못했다. 제천차량사업소의 김용하(42) 선임차량관리과장은 “(2005년)이전부터 함께 일해왔던 사람들이고 고생하는 거 뻔히 아는데 차별이 개선되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들 청소노동자가 쉴 수 있는 공간도 역사 부근의 1평 남짓한 휴게실이 전부다. 인부들은 이곳에서 쪽잠을 청하고 매 끼니를 해결한다. 24시간 근무 중 조금 길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은 새벽 5시 25분에 출발하는 첫차를 준비하기 직전까지의 4시간 정도가 전부. 이 일을 5년 8개월째 하고 있다는 박 모(60) 씨는 “종일 근무하는 게 만성이 됐다”며 “몸이 조금 고되긴 하지만 이 나이에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박 씨는 그러나 “월 150만원이 채 안 되는 임금으로 대학 다니는 아들 등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게 문제”라며 “종일 일한 다음 날은 쉬어야 하지만 조금이라도 돈을 벌려고 부업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계속)
<청년기자 이청초 이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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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추위 속 물청소에 정신이 아찔”
[종점을 지키는 사람들] ① 제천역의 6인조
지난 10월 14일 오후 7시 25분, 충북 제천시 제천역의 승강장 부근 허름한 단층 건물에서 50~60대 남성 5명과 여성 1명이 걸어 나왔다. 형광연두색 모자에 목장갑을 낀 이들은 7시 39분에 도착하는 기차를 청소하기 위해 휴게실에서 대기 중이던 노동자들. 17년째 일하고 있다는 작업반장 이 모(58) 씨는 “(형광색) 이 모자가 우리에게는 작업모이자 안전모”라며 승강장으로 발을 옮겼다.
▲ 제천역 승강장에서 다음 열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청소노동자들. 형광색 모자는 어둠 속에서 식별할 수 있게 하는 안전모이자 작업모다. ⓒ 김연지
중간 정차 차량은 5분 안에 숨 가쁘게 청소
강원도 정선군 아우라지에서 온 열차는 예정된 시각에 정확하게 도착했다. 청소노동자들은 열차에서 사람들이 모두 내릴 때까지 눈에 띄지 않게 구석에서 기다렸다. 이번 열차는 제천에 잠깐 정차했다 서울 청량리역으로 출발하기 때문에 5~10분 만에 청소를 마쳐야 한다. ‘제천역 6인조’는 서둘러 객차에 오른 뒤 각자 맡은 위치에서 숨 가쁘게 움직였다.
이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역방향 출발에 맞춰 의자를 돌려놓는 것. 6칸짜리 객차를 기준으로 210개쯤 되는 2인용 의자를 인부 2명이 맡아 신속하게 돌린다. 그 뒤를 따라 나머지 노동자들이 의자와 선반의 먼지를 털고, 커튼을 정리하고, 50리터(ℓ)짜리 비닐봉투에 쓰레기를 주워 담고, 대걸레로 바닥을 닦는 작업을 재빨리 진행한다. 마지막 순서는 내부 유리창 닦기. 노동자 한 명이 의자 사이를 몇 번이고 드나들면서 한 칸 당 18개의 큰 유리창을 물걸레로 박박 문질러 닦아냈다.
▲ 객차 안에서 먼지털기, 쓰레기줍기 등 정해진 작업을 재빨리 진행하는 청소노동자들. ⓒ 박소연
이 모든 작업을 하는 동안 열차 내부에는 불이 꺼져 있고 인부들은 승강장의 불빛에 의지해 청소를 마쳤다. 전력을 공급하는 기관차를 반대방향에 설치하느라 객차와 일시 분리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청소노동자 중 홍일점인 박 모(52) 씨는 “흐릿한 불빛에 작업하는 것이 익숙해서 큰 어려움은 없다”고 말했다.
종착하는 차량은 분뇨 제거와 외벽 청소까지
중간 정차가 아니라 제천역에 종착하는 기차는 분뇨 제거와 외벽 청소 등 보다 종합적인 작업을 해야 한다. 제천역에 종착하는 여객열차는 평일 기준 아침 8시 11분부터 밤 10시 43분까지 하루 9편이 들어온다.
청소노동자들은 차량 도착시간에 맞춰 승강장에서 대기하다가 승객들이 모두 내리면 열차를 타고 검수소로 이동한다. 기관차가 따로 분리되지는 않지만 운행열차가 아니다보니 검수소로 들어가는 동안에도 열차 내 전기는 들어오지 않는다. 선로를 따라 이동하는 열차 안은 깜깜하지만 어둠에 익숙해진 인부들은 의자의 방향을 돌리거나 유리를 닦는 등 자기가 맡은 작업을 쉴 새 없이 진행한다. 빠르게 작업을 마쳐야 조금이라도 휴식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차량기지에서 도착해 전력과 물이 공급되면 기차 내부 청소를 본격적으로 한다. 내부 작업이 80%정도 끝나면 인부 3~4명이 먼저 밖으로 나온다. 한 명이 검수소 앞에 설치된 수압기로 기차 외벽에 물을 뿌리면 나머지 인부들이 유리닦이로 유리창 외부와 문짝 등을 빠르게 문지른다.
▲ 객차의 화장실을 청소하는 모습. ⓒ 박소연
외벽 물청소가 끝날 즈음엔 차량 화장실의 분뇨를 제거한다. 검수소 근처에 정화조와 분뇨를 제거하는 호스가 설치돼 있는데, 이를 이용해 열차 화장실 외벽 구멍을 통해 분뇨를 빼 낸다. 이 작업을 마치면 ‘청소 끝’을 외칠 수 있다.
이렇게 일을 마치는 데 30분 정도가 걸리지만 저녁 7시 이후부터는 검수소로 들어오는 열차 간격도 30분이라 쉴 틈 없이 다음 열차로 이동해야 한다. 일을 조금 빨리 마치고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추위를 녹여줄 드럼통 난로 같은 것은 기대할 수 없다. 고압전선이 있는 곳이라 화재 가능성을 특히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업반장 이 씨는 “한 겨울에 작업하다보면 장갑을 끼고 있어도 너무 추워 손에 감각이 없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또 “외벽 청소를 위해 살수기로 물을 뿌릴 때는 정신이 아찔할 정도”라며 유난히 추운 제천의 겨울을 걱정했다.
24시간 교대로 일하지만 저임금으로 생활 어려워
제천역 청소노동자는 한 조당 6명씩 총 12명이 오전 8시 30분부터 다음날 같은 시간까지 24시간 2교대로 근무한다. 이들은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아닌 용역업체 소속의 비정규직이다. 2005년 코레일이 공사로 전환하면서 승무, 역무, 차량 등 다른 직원들은 공사소속이 됐고 근무도 2조 2교대에서 3조 2교대로 바뀌었는데, 미화노동자들만 유일하게 근무조건이 개선되지 못했다. 제천차량사업소의 김용하(42) 선임차량관리과장은 “(2005년)이전부터 함께 일해왔던 사람들이고 고생하는 거 뻔히 아는데 차별이 개선되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들 청소노동자가 쉴 수 있는 공간도 역사 부근의 1평 남짓한 휴게실이 전부다. 인부들은 이곳에서 쪽잠을 청하고 매 끼니를 해결한다. 24시간 근무 중 조금 길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은 새벽 5시 25분에 출발하는 첫차를 준비하기 직전까지의 4시간 정도가 전부. 이 일을 5년 8개월째 하고 있다는 박 모(60) 씨는 “종일 근무하는 게 만성이 됐다”며 “몸이 조금 고되긴 하지만 이 나이에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박 씨는 그러나 “월 150만원이 채 안 되는 임금으로 대학 다니는 아들 등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게 문제”라며 “종일 일한 다음 날은 쉬어야 하지만 조금이라도 돈을 벌려고 부업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계속)
<청년기자 이청초 이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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