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줄 죄는 미국, 양적완화 축소의 역사적 교훈 반영

입력 2013.12.19 (06:30) 수정 2013.12.1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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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18일(현지시간) 월 100억 달러 규모의 비교적 완만한 양적완화 축소를 결정한 것은 급격한 긴축이 국내외 금융시장의 동요로 이어진 과거 경험의 교훈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연준이 장기간의 저금리 기조에서 벗어나 긴축으로 돌아선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1994년과 2004년이 꼽힌다.

미국 경기 과열을 우려해 기준금리인 연방기금 목표금리를 2배 이상 대폭 인상한 것은 공통적이지만, 신흥국 등 세계 경제에 미친 영향은 판이했다.

1994년에 연준은 기준금리인 연방기금 목표금리를 7차례에 걸쳐 3.0%에서 6.0%로 인상, 불과 1년 만에 기준금리를 3%포인트나 올렸다.

사전 신호 없이 불시에 인상을 단행한데다가, 한 차례에 최대 0.75%포인트(75bp)씩 올린 인상 속도도 시장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금리 인상이 무방비 상태의 시장을 강타해 '1994년 채권시장 대학살'로 불리는 미국 채권시장의 폭락 사태가 빚어졌다.

훨씬 더 큰 충격을 받은 곳은 멕시코 등 중남미 신흥국들이었다.

금리 인상 전에는 저금리 기반의 미국 유동성이 중남미에 대량 유입돼 주식시장 호황을 가져왔다.

동부증권에 따르면 미국 유동성 유입이 본격화된 1989년부터 1994년까지 멕시코 주가는 약 30배 가까이, 아르헨티나 주가는 약 20배 이상 폭등했다.

그러나 금리 인상 이후 막대한 유동성이 급속히 이탈하면서 멕시코·아르헨티나의 경우 주가가 1년 만에 고점 대비 50% 이상 폭락하는 등 중남미 금융시장이 뿌리째 흔들렸다.

결국 멕시코는 외환위기('테킬라 위기')를 맞아 미국·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신세가 됐고, 중남미 각국은 경제위기를 겪었다.

반면 2004년 긴축 사례는 1994년과는 대조적이다.

연준은 그 해 6월부터 2006년 6월까지 기준금리를 1.0%에서 5.25%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앨런 그린스펀 당시 연준 의장은 10년 전 서투르고 과격한 금리 인상으로 세계 경제에 혼란을 가져왔다고 비판받은 기억을 잊지 않았다.

그린스펀 의장은 그 해 1월부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성명에서 "금리를 상당 기간(for a considerable time) 낮게 유지할 계획"이란 문구를 삭제해 시장에 사전 신호를 내보냈다.

인상 속도도 2년의 기간을 두고 한 번에 0.25%포인트(25bp)씩 17차례로 나눠 시장에 주는 충격을 줄였다.

이처럼 시장에 대비할 시간을 주고 조심스럽게 접근한 결과, 각국 주가는 인상 3∼5개월 전부터 인상 전망을 반영해 조정을 받다가 금리를 인상한 직후에는 상승세로 전환하는 흐름을 보였다.

실제로 신흥시장 주가를 나타내는 MSCI 신흥시장 지수는 금리 인상 기간에 400대 초반에서 700~800대까지 꾸준히 상승했다.

한국 주가도 그해 상반기에 900대에서 700대 초반으로 떨어졌다가 8월부터 반등, 800대 후반으로 거의 회복했고 원·달러 환율도 금리 인상 이후 오히려 하락했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경기 호조와 중국의 호황 등으로 세계 경기가 양호했던 시기여서 금리 인상의 여파를 잘 흡수한 것으로 평가된다.

김유미 한화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은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었고, 유럽도 시차를 두고 기준금리를 인상할 정도로 성장이 견고했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중국의 글로벌 수요도 뒷받침하면서 이들 수요를 통해 국내 증시는 오름세를 이어가고, 원·달러 환율도 수출을 통한 경상수지 흑자를 바탕으로 하락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번 양적완화 축소의 양상도 1994년보다 2004년에 훨씬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연준은 이미 지난 5∼6월 양적완화 축소 방침을 예고해 시장이 대비할 시간을 반년 가량 줬다.

그 결과 지난 여름께 신흥국 시장이 주가ㆍ통화가치 급락 등 한 차례 홍역을 겪기는 했다.

그러나 이미 양적완화 축소 전망이 각종 자산 가격에 상당히 반영돼 그만큼 이번 축소 결정에 따른 충격은 덜해졌다.

게다가 연준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초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아 단기간 내 금리 인상 등 본격적 긴축 가능성을 배제함에 따라 1994년과 같은 사태의 재연 가능성은 한층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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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12-19 06:30:31
    • 수정2013-12-19 10:4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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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18일(현지시간) 월 100억 달러 규모의 비교적 완만한 양적완화 축소를 결정한 것은 급격한 긴축이 국내외 금융시장의 동요로 이어진 과거 경험의 교훈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연준이 장기간의 저금리 기조에서 벗어나 긴축으로 돌아선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1994년과 2004년이 꼽힌다. 미국 경기 과열을 우려해 기준금리인 연방기금 목표금리를 2배 이상 대폭 인상한 것은 공통적이지만, 신흥국 등 세계 경제에 미친 영향은 판이했다. 1994년에 연준은 기준금리인 연방기금 목표금리를 7차례에 걸쳐 3.0%에서 6.0%로 인상, 불과 1년 만에 기준금리를 3%포인트나 올렸다. 사전 신호 없이 불시에 인상을 단행한데다가, 한 차례에 최대 0.75%포인트(75bp)씩 올린 인상 속도도 시장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금리 인상이 무방비 상태의 시장을 강타해 '1994년 채권시장 대학살'로 불리는 미국 채권시장의 폭락 사태가 빚어졌다. 훨씬 더 큰 충격을 받은 곳은 멕시코 등 중남미 신흥국들이었다. 금리 인상 전에는 저금리 기반의 미국 유동성이 중남미에 대량 유입돼 주식시장 호황을 가져왔다. 동부증권에 따르면 미국 유동성 유입이 본격화된 1989년부터 1994년까지 멕시코 주가는 약 30배 가까이, 아르헨티나 주가는 약 20배 이상 폭등했다. 그러나 금리 인상 이후 막대한 유동성이 급속히 이탈하면서 멕시코·아르헨티나의 경우 주가가 1년 만에 고점 대비 50% 이상 폭락하는 등 중남미 금융시장이 뿌리째 흔들렸다. 결국 멕시코는 외환위기('테킬라 위기')를 맞아 미국·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신세가 됐고, 중남미 각국은 경제위기를 겪었다. 반면 2004년 긴축 사례는 1994년과는 대조적이다. 연준은 그 해 6월부터 2006년 6월까지 기준금리를 1.0%에서 5.25%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앨런 그린스펀 당시 연준 의장은 10년 전 서투르고 과격한 금리 인상으로 세계 경제에 혼란을 가져왔다고 비판받은 기억을 잊지 않았다. 그린스펀 의장은 그 해 1월부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성명에서 "금리를 상당 기간(for a considerable time) 낮게 유지할 계획"이란 문구를 삭제해 시장에 사전 신호를 내보냈다. 인상 속도도 2년의 기간을 두고 한 번에 0.25%포인트(25bp)씩 17차례로 나눠 시장에 주는 충격을 줄였다. 이처럼 시장에 대비할 시간을 주고 조심스럽게 접근한 결과, 각국 주가는 인상 3∼5개월 전부터 인상 전망을 반영해 조정을 받다가 금리를 인상한 직후에는 상승세로 전환하는 흐름을 보였다. 실제로 신흥시장 주가를 나타내는 MSCI 신흥시장 지수는 금리 인상 기간에 400대 초반에서 700~800대까지 꾸준히 상승했다. 한국 주가도 그해 상반기에 900대에서 700대 초반으로 떨어졌다가 8월부터 반등, 800대 후반으로 거의 회복했고 원·달러 환율도 금리 인상 이후 오히려 하락했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경기 호조와 중국의 호황 등으로 세계 경기가 양호했던 시기여서 금리 인상의 여파를 잘 흡수한 것으로 평가된다. 김유미 한화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은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었고, 유럽도 시차를 두고 기준금리를 인상할 정도로 성장이 견고했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중국의 글로벌 수요도 뒷받침하면서 이들 수요를 통해 국내 증시는 오름세를 이어가고, 원·달러 환율도 수출을 통한 경상수지 흑자를 바탕으로 하락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번 양적완화 축소의 양상도 1994년보다 2004년에 훨씬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연준은 이미 지난 5∼6월 양적완화 축소 방침을 예고해 시장이 대비할 시간을 반년 가량 줬다. 그 결과 지난 여름께 신흥국 시장이 주가ㆍ통화가치 급락 등 한 차례 홍역을 겪기는 했다. 그러나 이미 양적완화 축소 전망이 각종 자산 가격에 상당히 반영돼 그만큼 이번 축소 결정에 따른 충격은 덜해졌다. 게다가 연준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초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아 단기간 내 금리 인상 등 본격적 긴축 가능성을 배제함에 따라 1994년과 같은 사태의 재연 가능성은 한층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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