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오보…선정적인 ‘장성택 보도’

입력 2013.12.22 (17:08) 수정 2013.12.22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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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북한 국방위 부위원장이었던 장성택의 숙청, 그리고 처형 소식이 전해지면서, 언론들도 관련 내용들을 집중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을 확인하기 보다는 추측에 의존한 기사들이 많았고, 일부 언론은 오보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번 사건을 둘러싼 우리 언론의 보도 태도를 짚어봅니다.

이 자리에 미디어 인사이드 구영희 기자, 그리고, KBS 북한 전문기자인 박진희 기자가 나와있습니다.

<질문> 먼저 구영희 기자! 사실 이번 일은 파장이 큰 만큼, 언론도 크게 다루지 않을 수는 없는 사안이었는데, 하지만, 모두 다 믿을 만한 기사는 아니었죠?

<대답> 네. 추측성 보도 경향은, 장성택의 숙청설이 나돌던 이달초부터 두드러졌습니다.

특히 장성택의 측근들의 처형 소식이 알려지면서부터 언론들은 관련 보도에 집중했습니다.

지난 3일, 국가정보원은 장성택의 핵심 측근 2명이 공개처형됐다는 내용을 국회에 보고했습니다.

<녹취> 방송 3사 뉴스 녹취 : "이와함께 국정원이 공개한 정보는 장성택의 실각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 뿐이었지만, 언론들의 추측은 꼬리를 물었습니다."

한 신문은, 숙청이 기정사실화되기 전인 6일, 장성택이 매일 반성문을 쓰고 있다는 주장을 보도했습니다.

중앙일보 12월 6일 1면 : "장성택이 집에 칩거하면서 김정은(29) 국방위 제1위원장의 특별지시에 따라 반성문을 매일 제출하는 등 자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반면, 또다른 신문은 온라인판에 장성택이 지난 5일 이미 처형됐다는 주장을 전했습니다.

조선닷컴 12월 9일 “공개처형이 아닌 극소수의 인원이 모인 가운데 처형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은은 새벽 2시에도 일어나 보고를 직접 받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처형됐다는 5일보다 일주일이나 지난 12일, 북한 측은 특별군사재판을 열어 장성택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 TV : "공화국 형법 제 60조에 따라 사형에 처하기로 판결하였다. 판결은 즉시 집행되었다."

또 북한이 숙청계획을 중국에 미리 알렸다는 소식도 나왔습니다.

<녹취> MBC 뉴스데스크(12월 4일) : "오늘은 MBC의 단독 취재내용으로 뉴스 시작하겠습니다. 북한이 장성택 숙청계획을 중국에 사전 통보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정부는, 이를 오보라며 공식 부인했습니다.

또, 장성택 측근들의 망명설도 잇따라 보도됐는데, 그 내용은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녹취> YTN(12월 6일) : "장성택의 최 측근이 우리 정부에 망명을 요청했고"

<녹취> SBS(12월 10일 톱뉴스) : "장성택의 핵심 측근이 최근 북한의 핵개발과 관련한 중요한 자료를 빼돌려서 중국으로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녹취> TV조선(12월 12일) : "중국으로 탈출해 망명을 원하는 장성택계 인사가 노두철 북한 부총리, 리무영 부총리 겸 화학공업상이라고 TV조선 취재결과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망명했다던 인물 중 일부는 김정일 2주기행사에 나타났습니다.

<녹취> KBS(12.17 9시 김대영 리포트) : "로두철 내각 무총리... 도 맨 앞줄에 앉아 건재를 확인시켰습니다."

장성택의 친척들이 소환됐다는 단독 보도도 나왔지만,

<녹취> 채널A 저녁뉴스(12월 3일) : “쿠바 대사로 나가있는 장성택의 매제와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인 장성택의 조카가 최근 북한으로 전격 소환당한 사실을 저희 채널 A가 확인했습니다.”

이후엔 이 인물이 여전히 대사 임무를 수행중이라는 기사가 났습니다.

한국일보 12월 18일 : “전 대사를 소환했다는 기사가 한국에서 나왔을 때, 북한대사관 직원들이 웃었다고 들었다"

<질문> 그런데, 박진희 기자. 박 기자는 김일성 종합대학을 나왔고, 북한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이같은 국내 언론들의 북한 보도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대답> 네, 일단 북한 관련 소식에 대해 국내 언론이 이렇게 많은 기사를 보도하는데 놀랐습니다.

북한에는 언론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사실 극히 제한적인 보도만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번에 장성택의 처형을 북한 언론이 보도한 것도 제 경험에 비춰보면 상당히 이례적입니다.

지난 97년에도 북한이 농업담당비서를 미제 간첩으로 몰아서 공개처형을 했지만, 관영 매체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아서 입소문을 타고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국내 언론의 보도를 보니, 북한의 매체들이 북한을 보도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내용을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망스러운 부분도 많습니다.

저도 통일부를 출입하고 있지만, 최근엔 기자들 사이에서도 너무 추측보도가 심한 게 아니냐, 이런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질문> 그런데 이번 사안 자체가 중대하긴 하지만, 언론 보도가 과열양상을 보인 측면이 있고, 익명의 취재원에 지나치게 의지한 게 아닌가 싶은데요...

<대답> 네. 제작진은 주요 언론들이 이번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내용을 분석해 봤습니다.

지난 13일, 방송 3사의 주요 뉴스는 단연, 장성택의 처형 소식이었습니다.

<방송 3사 메인 뉴스>

스포츠와 날씨를 제외한 뉴스 시간 가운데, 60% 가까이는 장성택 관련 소식이었습니다.

종편 채널은 아예 이날 하루, 전체 방송 시간 가운데 많게는 열시간 이상을 장성택의 처형 소식에 할애했습니다.

지난 3일, 장성택 숙청설부터 사형 집행 소식이 나오기까지, 사실 국내적으로는 국정원 개혁이나 채동욱 개인정보 유출, 철도 파업 등 주요 현안들이 많았지만 뉴스에서는 상대적으로 뒤로 밀렸습니다.

그런데, 이 장성택 관련 보도 가운데 과연 사실로 확인되는 정보는 얼마나 될까?

12월 4일에서 14일까지 5개 신문의 장성택 관련 기사를 분석했습니다.

총 기사 건수가 293건.

기사 제목을 보면 추측인 경우가 절반이었고, 취재원의 말을 인용한 경우가 24%, 사실을 제목으로 쓴 경우는 26%뿐이었습니다.

기사 취재원을 보면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가 26%로 가장 많았고 이어 정부,정치권이 23%, 북한 소식통,탈북자가 14%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주된 취재원을 명확히 밝힌 경우는 56%였지만 나머지 44%는 대북소식통 등으로 얼버무렸습니다.

북한 전문가들은 언론이 최근 북한 관련 고급 정보를 가진 익명의 소식통을 독자적으로 이렇게 많이 확보할 수 있는지, 의문을 표합니다.

<인터뷰> 양무진(북한대학원 교수) : "가능하지 않죠. 아니 우리 북한 분석가나 그다음에 북한 전문기자나 폐쇄된 국가에서 특히 남북 대화도 단절되고 교류협력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북한에 대한 고급정보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것은 거의 불가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박 기자. 앞에서 본 것처럼, 탈북자들을 인용한 보도가 많은데, 탈북자라고 모두 정확한 정보가 있다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답변> 네. 통일부 통계를 보면, 올해 9월까지 북한을 탈출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새터민이 2만 5천여명에 이릅니다.

이들 중 지난해말까지 들어온 2만 4천여명의 출신을 분석을 해보면, 북한에 있을 당시 그나마 고급 정보를 갖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는 관리직은 1.6% 정도밖에 안되고, 그가운데도 고위 관리직은 극히 드뭅니다.

반면 직업이 없었던 사람이 51%로 절반 가량이고, 노동자 출신이 38%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도층의 일거수 일투족을 일반 시민이 알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물며 북한이라는 폐쇄적인 사회는 더 한데, 단지 탈북자, 혹은 대북 소식통이라고 해서 정치적인 상황과 관련된 그들의 발언을 비중있게 다루는 것은 언론의 신뢰도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일부 탈북자들은, 자신의 경력을 과대포장해서, 실제 아는 것보다 더 과장되게 말하는 경우도 있고, 일부에서는 이해관계 때문에 일부러 이들의 입을 빌어 역정보를 흘리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더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질문> 부정확한 보도도 문제지만,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도 많았던 것 같아요..

<대답> 네.그렇습니다. 북한 체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보다는, 일단 눈길을 끌고 보자는 옐로우 저널리즘적 측면도 일부에서 나타났습니다.

지난 11일, 한 신문은 “장성택 여자관계는 은하수 관현악단지칭” 이라고 보도했습니다.

12.11. 5면 : “해맞이 식당 룸에서 장성택이 연회를 즐겼다” “이 과정에서 은하수 악단이 기쁨조 역할을 했다”

그러자,다른 언론들은 이를 확인하지 않고 받아썼고, 장성택의 여자관계를 둘러싼 내용은 갈수록 더 불어났습니다.

특히 은하수 악단 출신인 리설주와 장성택의 불륜설이 불거지면서, 김정은이 새 신부를 찾고 있다는 설까지 나왔습니다.

조선일보 온라인 : “장성택이 사단이 났고 리설주 역시 사실상 숙청된 상태다. 현재 김정은은 15세에서 18세 사이 여성 중에서 신부감을 찾기 위한 간택심사를 진행 중”이라는 설이 돌고 있다.

그러더니 김정은이 커플 시계를 차고 있어, 리설주는 건재한 것 같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녹취> 채널A 종합뉴스 : “ 김정은이 커플 시계를 차고 나오고 리설주가 나오는 기록 영화가 상영되는 등 리설주의 신변에는 이상이 없는 분위기입니다.“

훙미위주의 보도는 잇따랐습니다.

<녹취> TV조선(돌아온 저격수다 183회) : “리설주가 부쩍 살이 찌고 이뻐보이지 않습니다. 사랑받지 못한다는 부분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자기는 1억원짜리를 차면서 부인은 100분지 1인인 100만원짜리를 채워줬다? 절대 사랑하는 사이가 아닙니다. 김정은은 1억원짜리. 리설주는 100만원짜리랍니다.“

결국, 김정일 2주기인 지난 17일 , 리설주는 김정은과 함께 공식석상에 등장했습니다.

<인터뷰> 김용현(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그런 보도가 남북 관계를 앞으로 풀어가는데 있어서도 북한이 굉장이 트집을 잡거나 불만을 표시할 수 있다. 특히 가족관계나 사생활 부분에 있어서는 매우 신중하게 접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장성택에 대한 기관총 사살설이 나오자 부인 김경희의 반응을 상상하기도 하고,

<녹취> TV조선(돌아온 저격수다 182회) : "오히려 기관총 쏠 때 통쾌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애증의 관계였다면. 화염방사기를 사용해 시신을 훼손했다는 설이 나오자 추측 보도는 한발 더 나갔습니다."

<녹취> YTN(12.16 3) : "우리는 화염방사기를 써서 했다 이렇게 알고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다. 3일 굶긴 군견을 시켜서 물어뜯게 했다. 누구를 ? 장성택을요..."

하지만 이런 보도는 북한을 정확히 이해하고 분석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인터뷰> 양무진(북한대학원 교수) : "이것은 남북관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남남 갈등 남북 갈등 이것을 심화 확산시킬 수 있다."

<질문> 박진희 기자. 그리고 국내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북한의 모습이 사실과 다르지는 않습니까?

<답변> 저는 국내 언론이 북한의 실제 모습보다는 보고 싶은 모습만 보고, 다른 모습의 북한을 만들고 있다는 걸 많이 느꼈습니다.

예를 들어서 국내 언론들이 리설주 패션에 대해 쓰면서 치마가 짧고 자유분방한 패션으로, 보통여성들과 많이 차이나는 특별한 옷차림을 한 것처럼 보도했는데, 사실 제가 북한에 있을때도 그정도 옷차림은 기본 스타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신변잡기적인 보도, 선정적,자극적인 보도를 보면, 그게 과연 사실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장성택만 해도 사생활이 문란했는지 안했는지, 그게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보다는 경제.외교통이었던 장성택이 숙청됨으로써 북한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또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해 제대로 된 분석을 하는 것이 바로 언론이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사실 이런 추측성 보도, 선정적 보도는 자주 되풀이되는 문제인데, 좀 개선할 방법은 없을까요?

<답변> 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자들 스스로가, 북한관련 기사를 쓸 때도, 사실 보도, 정확성이라는 대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겁니다.

지난 1995년, 한국 기자협회등에선 평화통일.남북 화해협력을 위한 보도 준칙을 만들었습니다.

관급자료 보도 유의. 추측 보도, 자극적 화면 절제, 희화적인 소재 지양, 망명자 증언도 신뢰성이 확보될 때 기사화하도록 하는 등, 북한 보도에 있어서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다짐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런 원칙들이 유명 무실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언론사간의 지나친 경쟁.

조금만 새로운 설이 나오면 <특종> <단독기사>라며 기사를 쓰고 1면 머릿기사로 보도했습니다.

특히, 오보로 밝혀진 경우에도, 이를 정정하거나 사과한 기사는 없었습니다. 이런 문제는 기자들 스스로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민서(통일부 기자단 간사) : "김정은이나 리설주가 남한 언론이 어떻게 보도했다고 해서 정정보도를 청구할리는 없겠죠.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는 농담처럼 하는 얘기가 있는데 우리쪽 분야에서는 특종도 없고 낙종도 없다. 왜냐하면 확인되지 않는 내용이 너무 많기 때문에"

물론 북한 전문기자 양성 등 기사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추측 기사나 오보를 줄이려면 언론계 스스로의 노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또, 북한 문제의 특수성을 고려해 언론사간의 협력도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인터뷰> 박종수(수원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언론사마다, 따로 하는 그래서 각각 자기네 정보만 가지고 활용을 하려는 이런데서부터 본의아니게 잘못된 경쟁이 유발될 수 있겠다는거죠. 유관단체들에서 정보를 공유하는게 저는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인터뷰> 김민서(통일부 기자단 간사) : "통일부를 출입하는 언론사만 해도 40개가 넘고요.출입하지 않는 언론사까지 포함하면 굉장히 많은데 다같이 노력하지 않는 한 이런 보도행태는 달라지기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고..."

정확한 정보가 부족할수록, 추측은 더 무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언론이‘아니면 말고’식의 추측과 속보 경쟁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조금 늦더라도 확인하는데 시간을 할애하고 정확한 사실을 보도하는데 힘을 쏟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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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잇단 오보…선정적인 ‘장성택 보도’
    • 입력 2013-12-22 17:33:57
    • 수정2013-12-22 18:04:14
    미디어 인사이드
<앵커 멘트>

북한 국방위 부위원장이었던 장성택의 숙청, 그리고 처형 소식이 전해지면서, 언론들도 관련 내용들을 집중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을 확인하기 보다는 추측에 의존한 기사들이 많았고, 일부 언론은 오보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번 사건을 둘러싼 우리 언론의 보도 태도를 짚어봅니다.

이 자리에 미디어 인사이드 구영희 기자, 그리고, KBS 북한 전문기자인 박진희 기자가 나와있습니다.

<질문> 먼저 구영희 기자! 사실 이번 일은 파장이 큰 만큼, 언론도 크게 다루지 않을 수는 없는 사안이었는데, 하지만, 모두 다 믿을 만한 기사는 아니었죠?

<대답> 네. 추측성 보도 경향은, 장성택의 숙청설이 나돌던 이달초부터 두드러졌습니다.

특히 장성택의 측근들의 처형 소식이 알려지면서부터 언론들은 관련 보도에 집중했습니다.

지난 3일, 국가정보원은 장성택의 핵심 측근 2명이 공개처형됐다는 내용을 국회에 보고했습니다.

<녹취> 방송 3사 뉴스 녹취 : "이와함께 국정원이 공개한 정보는 장성택의 실각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 뿐이었지만, 언론들의 추측은 꼬리를 물었습니다."

한 신문은, 숙청이 기정사실화되기 전인 6일, 장성택이 매일 반성문을 쓰고 있다는 주장을 보도했습니다.

중앙일보 12월 6일 1면 : "장성택이 집에 칩거하면서 김정은(29) 국방위 제1위원장의 특별지시에 따라 반성문을 매일 제출하는 등 자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반면, 또다른 신문은 온라인판에 장성택이 지난 5일 이미 처형됐다는 주장을 전했습니다.

조선닷컴 12월 9일 “공개처형이 아닌 극소수의 인원이 모인 가운데 처형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은은 새벽 2시에도 일어나 보고를 직접 받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처형됐다는 5일보다 일주일이나 지난 12일, 북한 측은 특별군사재판을 열어 장성택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 TV : "공화국 형법 제 60조에 따라 사형에 처하기로 판결하였다. 판결은 즉시 집행되었다."

또 북한이 숙청계획을 중국에 미리 알렸다는 소식도 나왔습니다.

<녹취> MBC 뉴스데스크(12월 4일) : "오늘은 MBC의 단독 취재내용으로 뉴스 시작하겠습니다. 북한이 장성택 숙청계획을 중국에 사전 통보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정부는, 이를 오보라며 공식 부인했습니다.

또, 장성택 측근들의 망명설도 잇따라 보도됐는데, 그 내용은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녹취> YTN(12월 6일) : "장성택의 최 측근이 우리 정부에 망명을 요청했고"

<녹취> SBS(12월 10일 톱뉴스) : "장성택의 핵심 측근이 최근 북한의 핵개발과 관련한 중요한 자료를 빼돌려서 중국으로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녹취> TV조선(12월 12일) : "중국으로 탈출해 망명을 원하는 장성택계 인사가 노두철 북한 부총리, 리무영 부총리 겸 화학공업상이라고 TV조선 취재결과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망명했다던 인물 중 일부는 김정일 2주기행사에 나타났습니다.

<녹취> KBS(12.17 9시 김대영 리포트) : "로두철 내각 무총리... 도 맨 앞줄에 앉아 건재를 확인시켰습니다."

장성택의 친척들이 소환됐다는 단독 보도도 나왔지만,

<녹취> 채널A 저녁뉴스(12월 3일) : “쿠바 대사로 나가있는 장성택의 매제와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인 장성택의 조카가 최근 북한으로 전격 소환당한 사실을 저희 채널 A가 확인했습니다.”

이후엔 이 인물이 여전히 대사 임무를 수행중이라는 기사가 났습니다.

한국일보 12월 18일 : “전 대사를 소환했다는 기사가 한국에서 나왔을 때, 북한대사관 직원들이 웃었다고 들었다"

<질문> 그런데, 박진희 기자. 박 기자는 김일성 종합대학을 나왔고, 북한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이같은 국내 언론들의 북한 보도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대답> 네, 일단 북한 관련 소식에 대해 국내 언론이 이렇게 많은 기사를 보도하는데 놀랐습니다.

북한에는 언론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사실 극히 제한적인 보도만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번에 장성택의 처형을 북한 언론이 보도한 것도 제 경험에 비춰보면 상당히 이례적입니다.

지난 97년에도 북한이 농업담당비서를 미제 간첩으로 몰아서 공개처형을 했지만, 관영 매체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아서 입소문을 타고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국내 언론의 보도를 보니, 북한의 매체들이 북한을 보도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내용을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망스러운 부분도 많습니다.

저도 통일부를 출입하고 있지만, 최근엔 기자들 사이에서도 너무 추측보도가 심한 게 아니냐, 이런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질문> 그런데 이번 사안 자체가 중대하긴 하지만, 언론 보도가 과열양상을 보인 측면이 있고, 익명의 취재원에 지나치게 의지한 게 아닌가 싶은데요...

<대답> 네. 제작진은 주요 언론들이 이번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내용을 분석해 봤습니다.

지난 13일, 방송 3사의 주요 뉴스는 단연, 장성택의 처형 소식이었습니다.

<방송 3사 메인 뉴스>

스포츠와 날씨를 제외한 뉴스 시간 가운데, 60% 가까이는 장성택 관련 소식이었습니다.

종편 채널은 아예 이날 하루, 전체 방송 시간 가운데 많게는 열시간 이상을 장성택의 처형 소식에 할애했습니다.

지난 3일, 장성택 숙청설부터 사형 집행 소식이 나오기까지, 사실 국내적으로는 국정원 개혁이나 채동욱 개인정보 유출, 철도 파업 등 주요 현안들이 많았지만 뉴스에서는 상대적으로 뒤로 밀렸습니다.

그런데, 이 장성택 관련 보도 가운데 과연 사실로 확인되는 정보는 얼마나 될까?

12월 4일에서 14일까지 5개 신문의 장성택 관련 기사를 분석했습니다.

총 기사 건수가 293건.

기사 제목을 보면 추측인 경우가 절반이었고, 취재원의 말을 인용한 경우가 24%, 사실을 제목으로 쓴 경우는 26%뿐이었습니다.

기사 취재원을 보면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가 26%로 가장 많았고 이어 정부,정치권이 23%, 북한 소식통,탈북자가 14%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주된 취재원을 명확히 밝힌 경우는 56%였지만 나머지 44%는 대북소식통 등으로 얼버무렸습니다.

북한 전문가들은 언론이 최근 북한 관련 고급 정보를 가진 익명의 소식통을 독자적으로 이렇게 많이 확보할 수 있는지, 의문을 표합니다.

<인터뷰> 양무진(북한대학원 교수) : "가능하지 않죠. 아니 우리 북한 분석가나 그다음에 북한 전문기자나 폐쇄된 국가에서 특히 남북 대화도 단절되고 교류협력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북한에 대한 고급정보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것은 거의 불가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박 기자. 앞에서 본 것처럼, 탈북자들을 인용한 보도가 많은데, 탈북자라고 모두 정확한 정보가 있다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답변> 네. 통일부 통계를 보면, 올해 9월까지 북한을 탈출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새터민이 2만 5천여명에 이릅니다.

이들 중 지난해말까지 들어온 2만 4천여명의 출신을 분석을 해보면, 북한에 있을 당시 그나마 고급 정보를 갖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는 관리직은 1.6% 정도밖에 안되고, 그가운데도 고위 관리직은 극히 드뭅니다.

반면 직업이 없었던 사람이 51%로 절반 가량이고, 노동자 출신이 38%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도층의 일거수 일투족을 일반 시민이 알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물며 북한이라는 폐쇄적인 사회는 더 한데, 단지 탈북자, 혹은 대북 소식통이라고 해서 정치적인 상황과 관련된 그들의 발언을 비중있게 다루는 것은 언론의 신뢰도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일부 탈북자들은, 자신의 경력을 과대포장해서, 실제 아는 것보다 더 과장되게 말하는 경우도 있고, 일부에서는 이해관계 때문에 일부러 이들의 입을 빌어 역정보를 흘리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더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질문> 부정확한 보도도 문제지만,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도 많았던 것 같아요..

<대답> 네.그렇습니다. 북한 체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보다는, 일단 눈길을 끌고 보자는 옐로우 저널리즘적 측면도 일부에서 나타났습니다.

지난 11일, 한 신문은 “장성택 여자관계는 은하수 관현악단지칭” 이라고 보도했습니다.

12.11. 5면 : “해맞이 식당 룸에서 장성택이 연회를 즐겼다” “이 과정에서 은하수 악단이 기쁨조 역할을 했다”

그러자,다른 언론들은 이를 확인하지 않고 받아썼고, 장성택의 여자관계를 둘러싼 내용은 갈수록 더 불어났습니다.

특히 은하수 악단 출신인 리설주와 장성택의 불륜설이 불거지면서, 김정은이 새 신부를 찾고 있다는 설까지 나왔습니다.

조선일보 온라인 : “장성택이 사단이 났고 리설주 역시 사실상 숙청된 상태다. 현재 김정은은 15세에서 18세 사이 여성 중에서 신부감을 찾기 위한 간택심사를 진행 중”이라는 설이 돌고 있다.

그러더니 김정은이 커플 시계를 차고 있어, 리설주는 건재한 것 같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녹취> 채널A 종합뉴스 : “ 김정은이 커플 시계를 차고 나오고 리설주가 나오는 기록 영화가 상영되는 등 리설주의 신변에는 이상이 없는 분위기입니다.“

훙미위주의 보도는 잇따랐습니다.

<녹취> TV조선(돌아온 저격수다 183회) : “리설주가 부쩍 살이 찌고 이뻐보이지 않습니다. 사랑받지 못한다는 부분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자기는 1억원짜리를 차면서 부인은 100분지 1인인 100만원짜리를 채워줬다? 절대 사랑하는 사이가 아닙니다. 김정은은 1억원짜리. 리설주는 100만원짜리랍니다.“

결국, 김정일 2주기인 지난 17일 , 리설주는 김정은과 함께 공식석상에 등장했습니다.

<인터뷰> 김용현(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그런 보도가 남북 관계를 앞으로 풀어가는데 있어서도 북한이 굉장이 트집을 잡거나 불만을 표시할 수 있다. 특히 가족관계나 사생활 부분에 있어서는 매우 신중하게 접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장성택에 대한 기관총 사살설이 나오자 부인 김경희의 반응을 상상하기도 하고,

<녹취> TV조선(돌아온 저격수다 182회) : "오히려 기관총 쏠 때 통쾌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애증의 관계였다면. 화염방사기를 사용해 시신을 훼손했다는 설이 나오자 추측 보도는 한발 더 나갔습니다."

<녹취> YTN(12.16 3) : "우리는 화염방사기를 써서 했다 이렇게 알고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다. 3일 굶긴 군견을 시켜서 물어뜯게 했다. 누구를 ? 장성택을요..."

하지만 이런 보도는 북한을 정확히 이해하고 분석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인터뷰> 양무진(북한대학원 교수) : "이것은 남북관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남남 갈등 남북 갈등 이것을 심화 확산시킬 수 있다."

<질문> 박진희 기자. 그리고 국내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북한의 모습이 사실과 다르지는 않습니까?

<답변> 저는 국내 언론이 북한의 실제 모습보다는 보고 싶은 모습만 보고, 다른 모습의 북한을 만들고 있다는 걸 많이 느꼈습니다.

예를 들어서 국내 언론들이 리설주 패션에 대해 쓰면서 치마가 짧고 자유분방한 패션으로, 보통여성들과 많이 차이나는 특별한 옷차림을 한 것처럼 보도했는데, 사실 제가 북한에 있을때도 그정도 옷차림은 기본 스타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신변잡기적인 보도, 선정적,자극적인 보도를 보면, 그게 과연 사실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장성택만 해도 사생활이 문란했는지 안했는지, 그게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보다는 경제.외교통이었던 장성택이 숙청됨으로써 북한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또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해 제대로 된 분석을 하는 것이 바로 언론이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사실 이런 추측성 보도, 선정적 보도는 자주 되풀이되는 문제인데, 좀 개선할 방법은 없을까요?

<답변> 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자들 스스로가, 북한관련 기사를 쓸 때도, 사실 보도, 정확성이라는 대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겁니다.

지난 1995년, 한국 기자협회등에선 평화통일.남북 화해협력을 위한 보도 준칙을 만들었습니다.

관급자료 보도 유의. 추측 보도, 자극적 화면 절제, 희화적인 소재 지양, 망명자 증언도 신뢰성이 확보될 때 기사화하도록 하는 등, 북한 보도에 있어서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다짐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런 원칙들이 유명 무실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언론사간의 지나친 경쟁.

조금만 새로운 설이 나오면 <특종> <단독기사>라며 기사를 쓰고 1면 머릿기사로 보도했습니다.

특히, 오보로 밝혀진 경우에도, 이를 정정하거나 사과한 기사는 없었습니다. 이런 문제는 기자들 스스로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민서(통일부 기자단 간사) : "김정은이나 리설주가 남한 언론이 어떻게 보도했다고 해서 정정보도를 청구할리는 없겠죠.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는 농담처럼 하는 얘기가 있는데 우리쪽 분야에서는 특종도 없고 낙종도 없다. 왜냐하면 확인되지 않는 내용이 너무 많기 때문에"

물론 북한 전문기자 양성 등 기사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추측 기사나 오보를 줄이려면 언론계 스스로의 노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또, 북한 문제의 특수성을 고려해 언론사간의 협력도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인터뷰> 박종수(수원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언론사마다, 따로 하는 그래서 각각 자기네 정보만 가지고 활용을 하려는 이런데서부터 본의아니게 잘못된 경쟁이 유발될 수 있겠다는거죠. 유관단체들에서 정보를 공유하는게 저는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인터뷰> 김민서(통일부 기자단 간사) : "통일부를 출입하는 언론사만 해도 40개가 넘고요.출입하지 않는 언론사까지 포함하면 굉장히 많은데 다같이 노력하지 않는 한 이런 보도행태는 달라지기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고..."

정확한 정보가 부족할수록, 추측은 더 무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언론이‘아니면 말고’식의 추측과 속보 경쟁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조금 늦더라도 확인하는데 시간을 할애하고 정확한 사실을 보도하는데 힘을 쏟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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