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통영, ‘70년 서재’를 잃다

입력 2014.01.12 (12:13) 수정 2014.01.13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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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 끝자락의 작은 도시 통영은 예향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곳입니다. 이런저런 논란을 뒤로하자면, 박경리, 김춘수, 윤이상, 유치환, 전혁림, 이중섭 등 수많은 예술인이 나고 자라고 활동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통영의 골목골목에는 예인들의 수많은 사연이 깃들어 이야기가 흘러넘치고 통영시는 커다란 박물관과 같습니다.

통영 중앙동 우체국과 바로 앞에 자리한 서점, 이문당 역시 그렇습니다. 청마 유치환은 이영도 시인에게 반해 20년 동안 5천 통에 이르는 연서를 보냈는데, 그 장소가 바로 통영 중앙동 우체국입니다. 청마의 시 ‘행복’에 등장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 뵈는 우체국’이 바로 통영 중앙동 우체국이며, 그 연서를 썼던 장소가 바로 우체국 앞 서점 이문당입니다. 청마는 연서를 쓰기 위해서, 책을 사려고 이문당을 드나든 단골이었습니다. 또, ‘토지’의 작가 박경리도 한 때 서점 문을 닫을 때까지 책을 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꽃’의 작가 김춘수 역시 이문당의 단골이었다고 합니다.

작은 도시의 한 서점의 단골이 한국 문학의 거장들이었다는 점 말고도 이문당은 또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바로 역사입니다. 우리나라가 일제치하에서 해방되던 1945년, 작은 잡화점으로 시작한 이래 이문당은 처음 그 자리를 지키며 올해 햇수로 딱 70년을 맞았습니다. 기자의 취재에 따르면, 이문당은 현존하는 서점 가운데 두 번째로 긴 역사를 가졌고, 사라졌던 서점을 포함하더라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역사를 가졌습니다.

그런 이문당이 이제 문을 닫습니다. 이유는 역시 경영난입니다. 인터넷 서점에 밀려 매출이 줄더니 최근에는 전자책까지 등장하며 종이책을 파는 오프라인 서점이 설 곳을 잃게 된 겁니다. 수많은 문인을 배출한 통영이지만, 이제 이문당이 문을 닫으면 서점은 단 한 곳만 남게 됩니다.

2대째 이문당을 운영해 온 김병기 대표는 이런 현실이 못내 안타깝습니다. 서가에서 책을 하나 둘씩 빼낼 때는 자식을 내다 보내는 것처럼 가슴이 아프다고 합니다. 오랜 경영난 속에서도 지역에 지식을 공급한다는 자부심으로 버텨왔는데, 더 이상은 힘든 상황에 왔다고 합니다. 예전 통영지역 고등학교의 대학 진학률이 좋을 때, 서울로 유학가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자식 일처럼 느꼈던 대견함은 더 이상 느끼지 못하게 됐습니다. 한번씩 고시 합격생이 찾아와 “내 아저씨한테 산 책으로 공부해서 이렇게 잘 됐습니다.” 하는 인사를 전해 올 때 느꼈던 뿌듯함은 이제 과거로 남게 됐습니다.

김 대표는 인터넷 서점의 편리함과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마찬가지로 오프라인 서점의 필요성 또한 강조합니다. 부모가 아이 손을 잡고 나와 책이라는 것들을 보여주기도 하고, 또 어떤 책들이 나왔는지 살펴보기도 하고, 요즘 출판되는 책들을 살펴보며 세상의 흐름도 느끼고, 직접 책장을 넘기며 어떤 책들이 자기와 맞는지 찾아보기도 하고, 알려지지 않았던 좋은 책을 발견하는 기쁨을 맛보는 일은 오프라인 서점이 아니면 힘들다는 겁니다. 책과 사람이 호흡하고 교류하는 공간이 바로 서점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서점이 사라지면 어디서 사람들이 인문학을 접하고 호흡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합니다. 서점이 밑바닥 인문 문화여서 서점이 사라지면 다른 인문학도 자리 잡을 수 없을 거라고 걱정입니다.

이런 걱정에 저 역시 공감합니다. 저는 인터넷으로 옷을 사지 않습니다. 표준에서 한참 떨어진 체형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옷은 직접 보고 입어봐야 나와 맞는지를 알 수 있는 것 같아서입니다. 책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는 주변의 추천에, 서평을 보고, 유명 작가이니까 라는 이유로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해 몇 장 넘기다 책장에 꽂아둔 책들이 있습니다. 저와 맞지 않아서이지요. 그래서 저는 옷처럼 되도록 서점에서 책을 직접 보려고 노력합니다. 책 첫 장을 넘길 때 기대와 감흥도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살 때가 더 큰 법이지요.

그러나 보통사람이 시대의 변화와 기술의 진보를 거스르며 살 수는 없겠지요. 저 역시 시간부족과 편리함 때문에 인터넷 서점을 자주 이용합니다. 물론 오프라인 서점에서 제게 맞는 책을 찾아가는 기쁨은 생략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필요한 물건을 인터넷으로 손쉽게 주문하듯 지식 역시 쇼핑한다는 느낌이지요. 그래서 이제는 일부러 라도 오프라인 서점을 찾아가 보려고 합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놓쳐왔던 책과 호흡하며 나에게 맞는 책을 찾는 즐거움을 느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책을 읽으며 얻는 즐거움에 더해 책을 찾으며 누릴 수 있는 기쁨을 한 번 찾아 나서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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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1-12 12:13:34
    • 수정2014-01-13 09:06:17
    취재후·사건후

반도 끝자락의 작은 도시 통영은 예향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곳입니다. 이런저런 논란을 뒤로하자면, 박경리, 김춘수, 윤이상, 유치환, 전혁림, 이중섭 등 수많은 예술인이 나고 자라고 활동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통영의 골목골목에는 예인들의 수많은 사연이 깃들어 이야기가 흘러넘치고 통영시는 커다란 박물관과 같습니다.

통영 중앙동 우체국과 바로 앞에 자리한 서점, 이문당 역시 그렇습니다. 청마 유치환은 이영도 시인에게 반해 20년 동안 5천 통에 이르는 연서를 보냈는데, 그 장소가 바로 통영 중앙동 우체국입니다. 청마의 시 ‘행복’에 등장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 뵈는 우체국’이 바로 통영 중앙동 우체국이며, 그 연서를 썼던 장소가 바로 우체국 앞 서점 이문당입니다. 청마는 연서를 쓰기 위해서, 책을 사려고 이문당을 드나든 단골이었습니다. 또, ‘토지’의 작가 박경리도 한 때 서점 문을 닫을 때까지 책을 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꽃’의 작가 김춘수 역시 이문당의 단골이었다고 합니다.

작은 도시의 한 서점의 단골이 한국 문학의 거장들이었다는 점 말고도 이문당은 또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바로 역사입니다. 우리나라가 일제치하에서 해방되던 1945년, 작은 잡화점으로 시작한 이래 이문당은 처음 그 자리를 지키며 올해 햇수로 딱 70년을 맞았습니다. 기자의 취재에 따르면, 이문당은 현존하는 서점 가운데 두 번째로 긴 역사를 가졌고, 사라졌던 서점을 포함하더라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역사를 가졌습니다.

그런 이문당이 이제 문을 닫습니다. 이유는 역시 경영난입니다. 인터넷 서점에 밀려 매출이 줄더니 최근에는 전자책까지 등장하며 종이책을 파는 오프라인 서점이 설 곳을 잃게 된 겁니다. 수많은 문인을 배출한 통영이지만, 이제 이문당이 문을 닫으면 서점은 단 한 곳만 남게 됩니다.

2대째 이문당을 운영해 온 김병기 대표는 이런 현실이 못내 안타깝습니다. 서가에서 책을 하나 둘씩 빼낼 때는 자식을 내다 보내는 것처럼 가슴이 아프다고 합니다. 오랜 경영난 속에서도 지역에 지식을 공급한다는 자부심으로 버텨왔는데, 더 이상은 힘든 상황에 왔다고 합니다. 예전 통영지역 고등학교의 대학 진학률이 좋을 때, 서울로 유학가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자식 일처럼 느꼈던 대견함은 더 이상 느끼지 못하게 됐습니다. 한번씩 고시 합격생이 찾아와 “내 아저씨한테 산 책으로 공부해서 이렇게 잘 됐습니다.” 하는 인사를 전해 올 때 느꼈던 뿌듯함은 이제 과거로 남게 됐습니다.

김 대표는 인터넷 서점의 편리함과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마찬가지로 오프라인 서점의 필요성 또한 강조합니다. 부모가 아이 손을 잡고 나와 책이라는 것들을 보여주기도 하고, 또 어떤 책들이 나왔는지 살펴보기도 하고, 요즘 출판되는 책들을 살펴보며 세상의 흐름도 느끼고, 직접 책장을 넘기며 어떤 책들이 자기와 맞는지 찾아보기도 하고, 알려지지 않았던 좋은 책을 발견하는 기쁨을 맛보는 일은 오프라인 서점이 아니면 힘들다는 겁니다. 책과 사람이 호흡하고 교류하는 공간이 바로 서점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서점이 사라지면 어디서 사람들이 인문학을 접하고 호흡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합니다. 서점이 밑바닥 인문 문화여서 서점이 사라지면 다른 인문학도 자리 잡을 수 없을 거라고 걱정입니다.

이런 걱정에 저 역시 공감합니다. 저는 인터넷으로 옷을 사지 않습니다. 표준에서 한참 떨어진 체형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옷은 직접 보고 입어봐야 나와 맞는지를 알 수 있는 것 같아서입니다. 책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는 주변의 추천에, 서평을 보고, 유명 작가이니까 라는 이유로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해 몇 장 넘기다 책장에 꽂아둔 책들이 있습니다. 저와 맞지 않아서이지요. 그래서 저는 옷처럼 되도록 서점에서 책을 직접 보려고 노력합니다. 책 첫 장을 넘길 때 기대와 감흥도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살 때가 더 큰 법이지요.

그러나 보통사람이 시대의 변화와 기술의 진보를 거스르며 살 수는 없겠지요. 저 역시 시간부족과 편리함 때문에 인터넷 서점을 자주 이용합니다. 물론 오프라인 서점에서 제게 맞는 책을 찾아가는 기쁨은 생략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필요한 물건을 인터넷으로 손쉽게 주문하듯 지식 역시 쇼핑한다는 느낌이지요. 그래서 이제는 일부러 라도 오프라인 서점을 찾아가 보려고 합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놓쳐왔던 책과 호흡하며 나에게 맞는 책을 찾는 즐거움을 느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책을 읽으며 얻는 즐거움에 더해 책을 찾으며 누릴 수 있는 기쁨을 한 번 찾아 나서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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