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일당 10만 원’ 예비군 훈련 가보니…

입력 2014.01.13 (16:16) 수정 2014.01.13 (16:5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덥수룩한 머리에 약간 삐딱하게 눌러 쓴 개구리 모자, 야상 점퍼의 지퍼를 연 채, 주머니에 손을 넣고 버스정류장에서 짝다리로 서 있는 모습...훈련 가는 예비군들의 익숙한 자태입니다. 세계 최고의 '예비군 강국' 이스라엘의 예비군들도 별반 다르진 않았습니다. 적어도 겉모습에선 말이죠. 그러나 그 내부는 천양지차였습니다.

지난해 말 이스라엘 예비군 취재를 위해 현지에 다녀왔습니다. 우리나라 경상북도만한 면적에, 인구는 7백 만 명에 불과한 이스라엘은 병력 62만 명중 현역이 17만, 나머지 44만은 예비군입니다. 이스라엘이 주변국과의 숱한 전쟁에서 연전 연승한 비결 가운데 하나는 막강 예비군 덕이었습니다. 이스라엘군은 남자 3년, 여자도 2년의 의무 복무 기간을 거치면 누구나 예비군에 편입되고, 그 뒤 남자 45세, 여자는 결혼,임신을 안 했을 경우에 한 해 34세까지 예비군 복무를 합니다.

20대 초반에 현역 복무를 마치고 나면 그 뒤 약 20년 예비군 생활을 하는 겁니다. 그것도 동원 일수가 어마어마합니다. 병사는 3년 동안 54일, 장교는 84일 동원이 되고, 예비군 마칠 때까지 동원훈련은 계속됩니다. 예비군 4년차까지 매년 2박3일 동원훈련 받는 우리나라와는 딴 판이죠.



3년에 한 번씩 최장 25일간은 전방에도 배치됩니다, 단지 훈련이 아니라 실전에도 투입되는거죠. 주변국이나 팔레스타인과의 접경지역 전방부대에서 현역과 똑같이 근무를 서고, 작전을 수행합니다. 예비군이지만 경력이 쌓이면서 계급도 계속 올라갑니다. 예비군이 현역 군인을 지휘하기도 합니다. 예비군이 현역보다 경험이 많으니, 예비군이 현역을 가르치는게 상식에도 맞죠.

그런데 특이한 점은, 이스라엘 예비군들, 별로 지루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동원 들어와서 신들이 나있고, 동료들과도 매우 친근하게 지내더군요.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군은 현역이 끝나고 예비군에 편입되는 첫 해 어느 한 부대에 소속되면 예비군 끝날 때까지 같은 부대에서 근무합니다. 그래서 동료들과 거의 20년을 같이 예비군 생활을 하는거죠. 예비군 훈련 들어갈 때마다 옆사람이 누군지 모르는 우리나라와 가장 다른 점이었습니다. 예비군들의 각별한 전우애도 이 때문에 생깁니다.

이스라엘 예비군들 신나게 군 복무하는 더 큰 이유는 이제부텁니다. 훈련비입니다. 하루 훈련비가 거의 10만원 꼴로 지급됩니다. 여기에 32일이상 근무시엔 3만원의 일당이 추가 지급됩니다. 한 달 넘게 복무할 경우 많게는 4백만원 가까이 받습니다. 우리나라의 예비군 훈련비는 11,000원에 불과한 실정이고보면, 차이가 나도 너무 납니다. 특히,이 훈련비는 사회에서 각자의 직장에서 받는 소득이 어느 정도인지를 따져 지급해서, 우리처럼 일률적이지 않습니다.


▲< 2013.12.26.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사막 예비군훈련장. 이스라엘 예비군 3년차 여대생 야엘.>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 사막의 작전 부대에 3주짜리 동원 훈련을 들어온 이스라엘 여대생 예비군 3년차 '야엘'의 말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대학교 심리학과 3학년이에요. 동원훈련 끝나고 며칠 뒤 기말 시험이 있어서 훈련이랑 시험준비를 잘 병행해야 합니다. 보통 매년 40일 정도 이런 훈련을 받죠. 학교 다니면서 틈틈이 웨이터 아르바이트로 돈을 받는데, 훈련을 들어오면 아르바이트비를 못 받죠. 하지만 사실 훈련비가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보다 더 많습니다. 물론 돈 때문에 오는 건 아니지만요. "

야엘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한 달 전 우리나라에 있었던 "대학생 예비군 동원훈련"논란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국방부가 4년제 대학생 예비군 56만명 중 졸업유예자와 유급자 2만명 가량을 대상으로 올해부터 동원훈련을 받게 할 방침이었는데 이것이 전체 대학생 예비군이 다 동원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와전돼 시끄러웠습니다.
 
사이버 공간에서 대학생들의 반발이 뜨거웠습니다.가뜩이나 학점이니, 취업준비니, 스펙관리니 해서 골치아프고 '안녕하지 못한' 상황인데, 그래서 졸업까지 미룬 것인데, 이 와중에 동원훈련 2박 3일이라니, 짜증난다는 것입니다. 와전된 소문에도 발끈할 만 합니다. 지금처럼 하루 8시간 교육받는 것도 시간 아까운데...
 
하지만, 연간 27만여명의 입대자들 가운데 22만여명이 대학생인데, 이들에겐 제대후 대학에 있는 동안 '학습권'을 보장해준다는 명목으로 동원훈련을 면해주고, 나머지 5만명, 즉 대학을 못 갔거나,미리 대학을 졸업하고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만 동원훈련을 가라고 하는 현실은 '역차별'이란 지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대학생들이 그런 역차별에 안주하려고 동원훈련을 꺼리는 건 아닐겁니다. 진짜 동원 훈련을 싫어하는 이유는 따로 있을 겁니다. 그 이유는 실효성 높은 훈련과 그에 걸맞은 훈련비를 받는 이스라엘 예비군을 보면 분명해지네요....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일당 10만 원’ 예비군 훈련 가보니…
    • 입력 2014-01-13 16:16:07
    • 수정2014-01-13 16:52:15
    취재후·사건후
덥수룩한 머리에 약간 삐딱하게 눌러 쓴 개구리 모자, 야상 점퍼의 지퍼를 연 채, 주머니에 손을 넣고 버스정류장에서 짝다리로 서 있는 모습...훈련 가는 예비군들의 익숙한 자태입니다. 세계 최고의 '예비군 강국' 이스라엘의 예비군들도 별반 다르진 않았습니다. 적어도 겉모습에선 말이죠. 그러나 그 내부는 천양지차였습니다.

지난해 말 이스라엘 예비군 취재를 위해 현지에 다녀왔습니다. 우리나라 경상북도만한 면적에, 인구는 7백 만 명에 불과한 이스라엘은 병력 62만 명중 현역이 17만, 나머지 44만은 예비군입니다. 이스라엘이 주변국과의 숱한 전쟁에서 연전 연승한 비결 가운데 하나는 막강 예비군 덕이었습니다. 이스라엘군은 남자 3년, 여자도 2년의 의무 복무 기간을 거치면 누구나 예비군에 편입되고, 그 뒤 남자 45세, 여자는 결혼,임신을 안 했을 경우에 한 해 34세까지 예비군 복무를 합니다.

20대 초반에 현역 복무를 마치고 나면 그 뒤 약 20년 예비군 생활을 하는 겁니다. 그것도 동원 일수가 어마어마합니다. 병사는 3년 동안 54일, 장교는 84일 동원이 되고, 예비군 마칠 때까지 동원훈련은 계속됩니다. 예비군 4년차까지 매년 2박3일 동원훈련 받는 우리나라와는 딴 판이죠.



3년에 한 번씩 최장 25일간은 전방에도 배치됩니다, 단지 훈련이 아니라 실전에도 투입되는거죠. 주변국이나 팔레스타인과의 접경지역 전방부대에서 현역과 똑같이 근무를 서고, 작전을 수행합니다. 예비군이지만 경력이 쌓이면서 계급도 계속 올라갑니다. 예비군이 현역 군인을 지휘하기도 합니다. 예비군이 현역보다 경험이 많으니, 예비군이 현역을 가르치는게 상식에도 맞죠.

그런데 특이한 점은, 이스라엘 예비군들, 별로 지루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동원 들어와서 신들이 나있고, 동료들과도 매우 친근하게 지내더군요.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군은 현역이 끝나고 예비군에 편입되는 첫 해 어느 한 부대에 소속되면 예비군 끝날 때까지 같은 부대에서 근무합니다. 그래서 동료들과 거의 20년을 같이 예비군 생활을 하는거죠. 예비군 훈련 들어갈 때마다 옆사람이 누군지 모르는 우리나라와 가장 다른 점이었습니다. 예비군들의 각별한 전우애도 이 때문에 생깁니다.

이스라엘 예비군들 신나게 군 복무하는 더 큰 이유는 이제부텁니다. 훈련비입니다. 하루 훈련비가 거의 10만원 꼴로 지급됩니다. 여기에 32일이상 근무시엔 3만원의 일당이 추가 지급됩니다. 한 달 넘게 복무할 경우 많게는 4백만원 가까이 받습니다. 우리나라의 예비군 훈련비는 11,000원에 불과한 실정이고보면, 차이가 나도 너무 납니다. 특히,이 훈련비는 사회에서 각자의 직장에서 받는 소득이 어느 정도인지를 따져 지급해서, 우리처럼 일률적이지 않습니다.


▲< 2013.12.26.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사막 예비군훈련장. 이스라엘 예비군 3년차 여대생 야엘.>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 사막의 작전 부대에 3주짜리 동원 훈련을 들어온 이스라엘 여대생 예비군 3년차 '야엘'의 말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대학교 심리학과 3학년이에요. 동원훈련 끝나고 며칠 뒤 기말 시험이 있어서 훈련이랑 시험준비를 잘 병행해야 합니다. 보통 매년 40일 정도 이런 훈련을 받죠. 학교 다니면서 틈틈이 웨이터 아르바이트로 돈을 받는데, 훈련을 들어오면 아르바이트비를 못 받죠. 하지만 사실 훈련비가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보다 더 많습니다. 물론 돈 때문에 오는 건 아니지만요. "

야엘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한 달 전 우리나라에 있었던 "대학생 예비군 동원훈련"논란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국방부가 4년제 대학생 예비군 56만명 중 졸업유예자와 유급자 2만명 가량을 대상으로 올해부터 동원훈련을 받게 할 방침이었는데 이것이 전체 대학생 예비군이 다 동원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와전돼 시끄러웠습니다.
 
사이버 공간에서 대학생들의 반발이 뜨거웠습니다.가뜩이나 학점이니, 취업준비니, 스펙관리니 해서 골치아프고 '안녕하지 못한' 상황인데, 그래서 졸업까지 미룬 것인데, 이 와중에 동원훈련 2박 3일이라니, 짜증난다는 것입니다. 와전된 소문에도 발끈할 만 합니다. 지금처럼 하루 8시간 교육받는 것도 시간 아까운데...
 
하지만, 연간 27만여명의 입대자들 가운데 22만여명이 대학생인데, 이들에겐 제대후 대학에 있는 동안 '학습권'을 보장해준다는 명목으로 동원훈련을 면해주고, 나머지 5만명, 즉 대학을 못 갔거나,미리 대학을 졸업하고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만 동원훈련을 가라고 하는 현실은 '역차별'이란 지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대학생들이 그런 역차별에 안주하려고 동원훈련을 꺼리는 건 아닐겁니다. 진짜 동원 훈련을 싫어하는 이유는 따로 있을 겁니다. 그 이유는 실효성 높은 훈련과 그에 걸맞은 훈련비를 받는 이스라엘 예비군을 보면 분명해지네요....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