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황금돼지띠’ 학부모들의 한숨

입력 2014.01.24 (10:48) 수정 2014.01.2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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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 예비소집장을 찾았습니다. 추운 날씨였지만 처음 초등학교를 찾은 엄마와 아이들은 들떠 보였습니다. 학교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아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예비소집장으로 향했는데요, 예비소집장에 들어서는 순간 많은 엄마들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곳곳에서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습니다. 한 엄마는 "아이들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앞으로 다가올 입시가 벌써부터 걱정된다"라고 하더군요.

이 학교는 지난해 보다 신입생이 50% 넘게 늘었습니다. 1학년 학급을 2개 늘렸고, 주문해 둔 교과서가 부족해 추가 주문도 했습니다. 빈 교실이 없는 학교에서는 학급을 늘리지 못해 학급당 학생 수를 늘려야 했습니다. 이쯤 되면 엄마들의 걱정이 괜한 게 아니라고 느끼실 겁니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아이들은 2007년에 태어났습니다. 재물운이 좋은 '황금돼지띠'라는 이유로 당시 출산율이 7년 만에 증가했죠. 그 때문에 올해 초등학교에 신입생 수는 서울에서만 지난해보다 7천 명이나 늘었습니다. 요즘 대다수 가정에는 자녀가 한 명 내지 두 명이니 이왕이면 황금돼지띠·백호띠처럼 기운이 좋다는 해에 맞춰 자녀 계획을 세우곤 하는데요, 그러다 보니 그 아이들끼리는 더 심한 경쟁상황에 놓이게 되는 아이러니가 생긴 셈이죠.



신나는 쪽은 교육상품을 파는 업체들입니다. '황금돼지 효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이들이 늘어난 덕을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업계는 초등학생 입학 용품인 책가방과 학용품 판매가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아이들이 중학교·고등학교를 갈 땐 교복업체가 황금돼지 효과를 누리겠죠. 요즘같은 사교육 환경이 바뀌지 않는다면 학원들도 더 많은 돈을 벌 겁니다. 황금돼지띠의 '재물운'이 그 해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주어질지는 불확실한 반면, 이들 업체에게는 확실히 돌아갈 것 같습니다.

며칠 뒤 설 명절이 지나면 진짜 '갑오년' 청마의 해가 됩니다. 말띠 여자아이들이 팔자가 세다는 속설 때문에 올해는 여자아이를 낳지 않는 게 좋다는 얘기가 솔솔 들려옵니다. 하지만, 이럴 때 여자 아기를 낳으면 성장 과정에서 경쟁도 덜하고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역발상'이 더 필요한 게 아닐까요? 황금돼지띠 아이들의 초등학교 예비소집 풍경을 지켜보며 많은 예비 부모들이 '속설' 보다 '지혜'를 선택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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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황금돼지띠’ 학부모들의 한숨
    • 입력 2014-01-24 10:48:03
    • 수정2014-01-24 10:50:59
    취재후·사건후
지난 15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 예비소집장을 찾았습니다. 추운 날씨였지만 처음 초등학교를 찾은 엄마와 아이들은 들떠 보였습니다. 학교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아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예비소집장으로 향했는데요, 예비소집장에 들어서는 순간 많은 엄마들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곳곳에서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습니다. 한 엄마는 "아이들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앞으로 다가올 입시가 벌써부터 걱정된다"라고 하더군요.

이 학교는 지난해 보다 신입생이 50% 넘게 늘었습니다. 1학년 학급을 2개 늘렸고, 주문해 둔 교과서가 부족해 추가 주문도 했습니다. 빈 교실이 없는 학교에서는 학급을 늘리지 못해 학급당 학생 수를 늘려야 했습니다. 이쯤 되면 엄마들의 걱정이 괜한 게 아니라고 느끼실 겁니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아이들은 2007년에 태어났습니다. 재물운이 좋은 '황금돼지띠'라는 이유로 당시 출산율이 7년 만에 증가했죠. 그 때문에 올해 초등학교에 신입생 수는 서울에서만 지난해보다 7천 명이나 늘었습니다. 요즘 대다수 가정에는 자녀가 한 명 내지 두 명이니 이왕이면 황금돼지띠·백호띠처럼 기운이 좋다는 해에 맞춰 자녀 계획을 세우곤 하는데요, 그러다 보니 그 아이들끼리는 더 심한 경쟁상황에 놓이게 되는 아이러니가 생긴 셈이죠.



신나는 쪽은 교육상품을 파는 업체들입니다. '황금돼지 효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이들이 늘어난 덕을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업계는 초등학생 입학 용품인 책가방과 학용품 판매가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아이들이 중학교·고등학교를 갈 땐 교복업체가 황금돼지 효과를 누리겠죠. 요즘같은 사교육 환경이 바뀌지 않는다면 학원들도 더 많은 돈을 벌 겁니다. 황금돼지띠의 '재물운'이 그 해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주어질지는 불확실한 반면, 이들 업체에게는 확실히 돌아갈 것 같습니다.

며칠 뒤 설 명절이 지나면 진짜 '갑오년' 청마의 해가 됩니다. 말띠 여자아이들이 팔자가 세다는 속설 때문에 올해는 여자아이를 낳지 않는 게 좋다는 얘기가 솔솔 들려옵니다. 하지만, 이럴 때 여자 아기를 낳으면 성장 과정에서 경쟁도 덜하고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역발상'이 더 필요한 게 아닐까요? 황금돼지띠 아이들의 초등학교 예비소집 풍경을 지켜보며 많은 예비 부모들이 '속설' 보다 '지혜'를 선택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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