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방사선, CT 한번이 X레이 50번

입력 2014.01.26 (11:59) 수정 2014.01.2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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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취재를 위해 찾아간 한 대형 병원의 방사선과. 컴퓨터 단층촬영(CT) 검사를 받는 환자들로 북적였습니다. 대상자를 부르는 간호사의 목소리에 검사복을 입은 환자가 방사선 표시가 그려진 검사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몇 분 뒤 나오는 모습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흡사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풍경을 보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그만큼 CT를 비롯한 방사선 검사가 일상적인 일이 됐다는 얘기입니다.

문제는 검사 과정에서 적잖은 양의 방사선이 몸에 노출된다는 건데요, 의료 방사선 피폭량이 최근 몇 년 새 크게 늘어난 것으로 확인돼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간 의료기관에서 실시된 방사선 검사 건수와 검사 종류별 피폭량 등 10억 건의 빅 데이터를 분석했습니다. 우리 국민의 방사선 검사건수는 최근 4년 새 1억 6천만 건에서 2억 2천만 건으로 37%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1인당 연간 방사선 검사 건수는 같은 기간 3.3회에서 4.6회로 늘었고, 진단용 방사선의 1인당 피폭량도 같은 기간 0.93mSv에서 1.4mSv로 50%나 증가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CT 촬영으로 인한 방사선 노출이었습니다. 전체 방사선 검사 건수 가운데 CT 촬영이 차지하는 비중은 2.8%에 불과했지만, 1인당 연간 피폭량을 보면 CT 촬영으로 인한 방사선 피폭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 겁니다.

실제로 방사선 검사 때의 피폭량을 보면, 가슴 CT는 10mSv 정도로 가슴 X레이 한 장을 찍을 때 피폭량인 0.2mSv의 50배가량 됩니다. 전신 암 검사로 알려져 있는 PET-CT를 한 번 찍으면 20mSv로 일반인의 연간 방사선 피폭 한도인 1mSv의 20배나 됩니다. CT 방사선 관리의 시급성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의료 방사선 검사 건수와 피폭량, 왜 이렇게 늘어난 것일까요? 국민소득이 올라가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기 건강검진을 받는 사람이 많아진 게 주 요인으로 꼽힙니다. 노령화와 기대수명 증가로 검사 인원이 늘어난 것도 한 이유입니다. 청진기 진단 같은 경험적 방식을 대신해 촬영을 통한 과학적 진단이 보편화된 결과이기도 합니다. 병원들이 수입을 늘리기 위해 보험 적용이 안 되는 고가의 검사를 부추기는 경우도 상당합니다. 한 번 CT를 찍은 부위를 한 달 안에 다시 촬영하는 환자가 한해 9만 명에 이르는 실정입니다.

의료 방사선은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의료용 방사선은 원자로 폭발사고 때 누출되는 방사능 입자와는 달라서 몸에 축적되지 않고 몸을 통과합니다. 인체에 대한 영향이 거의 없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방사선 강도가 세거나 검사 횟수가 많아지면 마냥 안심할 수 없습니다. 유전자가 손상되거나 암 발생 위험이 높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됩니다.

CT 촬영이 포함되는 정밀검진을 받거나 병원을 옮겨 다니며 중복검사를 하게 되면 방사선 피폭량이 크게 늘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보건기구 WHO는 방사선 피폭을 1급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는데, 100mSV에 노출될 경우 1000명당 5명은 암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방사선을 이용한 정밀 검사라는 현대 의학의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최선의 대책은 의료 방사선 피폭을 가능한 한 줄이는 것입니다. 일단 같은 부위를 한 달 안에 또 촬영하는 것을 자제하고, 전신 PET CT를 찍고 바로 다른 부위의 CT 검사를 하는 식의 건강검진은 피해야 합니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식약처는 올해부터 ‘국민 개인별 맞춤형 방사선 안전 관리’를 단계적으로 실시합니다. 전국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CT 촬영을 할 때 발생하는 환자의 방사선 피폭량을 기록·관리하는 '환자선량 기록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작업이 다음 달 시작됩니다.

내년부터는 일반 X레이 촬영, 치과 X레이 촬영 등으로 방사선 안전 관리가 확대됩니다. 환자 개개인의 누적 피폭량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환자의 알 권리와 의료기관의 정보 공유를 위한 가칭 '환자 방사선 안전 관리법' 제정도 검토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2008년 벌어진 CT 방사선 과다 피폭사건을 계기로 캘리포니아주(2012년 7월)와 텍사스주(2013년 5월)에서 CT 촬영 시 환자 방사선량을 기록하는 법이 발효됐습니다.

정부의 의료 방사선 안전 관리 대책, 다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시행된 게 다행입니다. 이번 대책을 계기로 방사선 피폭량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도록 의료기관과 국민 개개인 모두 경각심을 갖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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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1-26 11:59:30
    • 수정2014-01-26 12:02:14
    취재후·사건후
며칠 전 취재를 위해 찾아간 한 대형 병원의 방사선과. 컴퓨터 단층촬영(CT) 검사를 받는 환자들로 북적였습니다. 대상자를 부르는 간호사의 목소리에 검사복을 입은 환자가 방사선 표시가 그려진 검사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몇 분 뒤 나오는 모습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흡사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풍경을 보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그만큼 CT를 비롯한 방사선 검사가 일상적인 일이 됐다는 얘기입니다. 문제는 검사 과정에서 적잖은 양의 방사선이 몸에 노출된다는 건데요, 의료 방사선 피폭량이 최근 몇 년 새 크게 늘어난 것으로 확인돼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간 의료기관에서 실시된 방사선 검사 건수와 검사 종류별 피폭량 등 10억 건의 빅 데이터를 분석했습니다. 우리 국민의 방사선 검사건수는 최근 4년 새 1억 6천만 건에서 2억 2천만 건으로 37%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1인당 연간 방사선 검사 건수는 같은 기간 3.3회에서 4.6회로 늘었고, 진단용 방사선의 1인당 피폭량도 같은 기간 0.93mSv에서 1.4mSv로 50%나 증가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CT 촬영으로 인한 방사선 노출이었습니다. 전체 방사선 검사 건수 가운데 CT 촬영이 차지하는 비중은 2.8%에 불과했지만, 1인당 연간 피폭량을 보면 CT 촬영으로 인한 방사선 피폭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 겁니다. 실제로 방사선 검사 때의 피폭량을 보면, 가슴 CT는 10mSv 정도로 가슴 X레이 한 장을 찍을 때 피폭량인 0.2mSv의 50배가량 됩니다. 전신 암 검사로 알려져 있는 PET-CT를 한 번 찍으면 20mSv로 일반인의 연간 방사선 피폭 한도인 1mSv의 20배나 됩니다. CT 방사선 관리의 시급성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의료 방사선 검사 건수와 피폭량, 왜 이렇게 늘어난 것일까요? 국민소득이 올라가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기 건강검진을 받는 사람이 많아진 게 주 요인으로 꼽힙니다. 노령화와 기대수명 증가로 검사 인원이 늘어난 것도 한 이유입니다. 청진기 진단 같은 경험적 방식을 대신해 촬영을 통한 과학적 진단이 보편화된 결과이기도 합니다. 병원들이 수입을 늘리기 위해 보험 적용이 안 되는 고가의 검사를 부추기는 경우도 상당합니다. 한 번 CT를 찍은 부위를 한 달 안에 다시 촬영하는 환자가 한해 9만 명에 이르는 실정입니다. 의료 방사선은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의료용 방사선은 원자로 폭발사고 때 누출되는 방사능 입자와는 달라서 몸에 축적되지 않고 몸을 통과합니다. 인체에 대한 영향이 거의 없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방사선 강도가 세거나 검사 횟수가 많아지면 마냥 안심할 수 없습니다. 유전자가 손상되거나 암 발생 위험이 높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됩니다. CT 촬영이 포함되는 정밀검진을 받거나 병원을 옮겨 다니며 중복검사를 하게 되면 방사선 피폭량이 크게 늘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보건기구 WHO는 방사선 피폭을 1급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는데, 100mSV에 노출될 경우 1000명당 5명은 암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방사선을 이용한 정밀 검사라는 현대 의학의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최선의 대책은 의료 방사선 피폭을 가능한 한 줄이는 것입니다. 일단 같은 부위를 한 달 안에 또 촬영하는 것을 자제하고, 전신 PET CT를 찍고 바로 다른 부위의 CT 검사를 하는 식의 건강검진은 피해야 합니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식약처는 올해부터 ‘국민 개인별 맞춤형 방사선 안전 관리’를 단계적으로 실시합니다. 전국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CT 촬영을 할 때 발생하는 환자의 방사선 피폭량을 기록·관리하는 '환자선량 기록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작업이 다음 달 시작됩니다. 내년부터는 일반 X레이 촬영, 치과 X레이 촬영 등으로 방사선 안전 관리가 확대됩니다. 환자 개개인의 누적 피폭량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환자의 알 권리와 의료기관의 정보 공유를 위한 가칭 '환자 방사선 안전 관리법' 제정도 검토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2008년 벌어진 CT 방사선 과다 피폭사건을 계기로 캘리포니아주(2012년 7월)와 텍사스주(2013년 5월)에서 CT 촬영 시 환자 방사선량을 기록하는 법이 발효됐습니다. 정부의 의료 방사선 안전 관리 대책, 다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시행된 게 다행입니다. 이번 대책을 계기로 방사선 피폭량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도록 의료기관과 국민 개개인 모두 경각심을 갖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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