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삼성가 동생의 완승…형제들의 화해는 가능할까?

입력 2014.02.10 (16:47) 수정 2014.02.10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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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가 형제들의 유산 소송 항소심 선고가 열린 서울고등법원. 이른 아침부터 법원이 술렁거렸습니다. 법정에는 법조 출입 기자는 물론이고 경제 담당 기자에, 삼성과 CJ 측 관계자들까지 몰려들어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재판. 

결과는 1심에 이어 2심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완승입니다. 재판부는 상속 당시 재산 분할 협의가 없었던 것은 인정하지만 일부 주식의 경우 상속 소송을 할 수 있는 법정 기한인 10년이 이미 지났기 때문에 주식 분할 청구를 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또 삼성전자의 주식 전부를 상속 개시 당시의 차명 주식이라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이맹희 씨를 비롯한 공동 상속인이 이건희 회장의 경영권 행사에 오랫동안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며 차명주식의 존재를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 이 회장의 주식 보유를 양해하거나 묵인했다고 지적했습니다.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경영권 승계와 상속 등에서 이건희 회장의 정통성을 인정한 겁니다.

2년 가까이 끌어온 이번 소송전은 삼성그룹 세무조사를 하던 국세청이 2012년 초 이맹희 씨 등 형제들에게 보낸 공문에서 시작됐습니다. '故 이병철 회장의 차명재산이 이건희 회장 명의로 넘어갔는데, 상속인들이 지분을 포기하고 이건희 회장에게 증여한 것이 맞느냐'는 것.

재판 과정에서 이맹희 씨 측은 삼성 특검을 통해 알려진 것 외에도 차명주식이 더 있다는 주장을 해 삼성 차명주식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또 1심 4조 원, 2심 9400억 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소송가액도 화제가 됐죠. 이러다 보니 소송 인지대도 1,2심 모두 170여 억 원이나 됐고, 양측이 화려한 변호인단을 꾸리면서 소송비용만 100억 원대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실제 사람들의 관심은 재판의 결과나 판결 취지보다는 삼성가의 형제들이 벌인 상속 싸움, 이 과정에서 드러난 '재벌가의 속살'에 더 집중됐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던 모습이 현실에서 벌어진 겁니다. 그것도 현실 속 주인공이 국내 최대 재벌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그의 큰형 이맹희 전 제일 비료 회장입니다. 이맹희 씨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아버지이기도 하니, 삼성과 CJ의 대립 구도도 형성됩니다. 이맹희 씨가 재판부에 제출한 편지에서도 썼듯이 '돈 욕심이 나 내는' 밀려난 장남이냐, '형제도 버리고 재산을 독식한' 후계자냐, 양측을 보는 시각도 나뉘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남긴 차명 주식과 삼성그룹의 후계구도, 밀려난 형제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다시 주목받게 됩니다. 이맹희 씨는 항소심 재판의 결심공판에서 재판부에 편지를 제출합니다. 이 편지는 공식적으로 동생 이건희 회장에게 화해하자는 취지로 공개한 것입니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이맹희 씨의 동생에 대한 서운함과 응어리가 남아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재현이가 삼성으로부터 독립할 때 미행을 하고, CCTV로 감시하고, 제일 제당 주식을 다시 사들이고, 장손의 할아버지 묘사도 방해하고...", "동생만을 믿고 자리를 비켜주었던 저 자신에 대한 죄책감과 동생에 대한 배신감, 엉클어져 버린 집안을 보면서..." 삼성가의 장손인 자신의 아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삼성으로부터 불이익을 받고, 장손으로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점 등에 대한 걱정도 보입니다. 상속 소송의 항소심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탈세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습니다.



이에 이건희 회장은 화해의 진정성이 없다며 거부합니다. 이맹희 씨가 경영권을 뺏으려 하는 게 아니라면서 에버랜드 등에 대한 소를 취하했을 때도, 재판부가 거듭 조정을 제안했을 때도, 이 회장은 '이 문제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정통성의 문제'라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결국 1,2심에 걸쳐 재판부가 이건희 회장의 손을 들어준 유산 상속 문제. 이맹희 씨 측 변호인은 "상속문제를 양해하거나 묵인했다는 부분은 납득하기 어렵다""의뢰인과 상의해 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 라고 말했습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선고를 하면서 이례적으로 형제들의 화합과 화목이 이병철 회장의 유지였을 거라는 법정 발언까지 남겼습니다. 법조계에선 1,2심 모두 일방적으로 이맹희 씨 측이 졌는데 더 이상의 재판은 무의미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상속 재산을 놓고 화해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이맹희 씨는 이건희 회장을 직접 만나 풀기를 바란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만남도 쉽지 않을 거란 전망입니다. 양측이 다 화해를 원한다고 하지만, 사과를 먼저 해야 할 쪽은 서로 자신이 아니라 상대방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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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삼성가 동생의 완승…형제들의 화해는 가능할까?
    • 입력 2014-02-10 16:47:53
    • 수정2014-02-10 17:01:48
    취재후·사건후
삼성가 형제들의 유산 소송 항소심 선고가 열린 서울고등법원. 이른 아침부터 법원이 술렁거렸습니다. 법정에는 법조 출입 기자는 물론이고 경제 담당 기자에, 삼성과 CJ 측 관계자들까지 몰려들어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재판. 

결과는 1심에 이어 2심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완승입니다. 재판부는 상속 당시 재산 분할 협의가 없었던 것은 인정하지만 일부 주식의 경우 상속 소송을 할 수 있는 법정 기한인 10년이 이미 지났기 때문에 주식 분할 청구를 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또 삼성전자의 주식 전부를 상속 개시 당시의 차명 주식이라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이맹희 씨를 비롯한 공동 상속인이 이건희 회장의 경영권 행사에 오랫동안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며 차명주식의 존재를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 이 회장의 주식 보유를 양해하거나 묵인했다고 지적했습니다.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경영권 승계와 상속 등에서 이건희 회장의 정통성을 인정한 겁니다.

2년 가까이 끌어온 이번 소송전은 삼성그룹 세무조사를 하던 국세청이 2012년 초 이맹희 씨 등 형제들에게 보낸 공문에서 시작됐습니다. '故 이병철 회장의 차명재산이 이건희 회장 명의로 넘어갔는데, 상속인들이 지분을 포기하고 이건희 회장에게 증여한 것이 맞느냐'는 것.

재판 과정에서 이맹희 씨 측은 삼성 특검을 통해 알려진 것 외에도 차명주식이 더 있다는 주장을 해 삼성 차명주식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또 1심 4조 원, 2심 9400억 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소송가액도 화제가 됐죠. 이러다 보니 소송 인지대도 1,2심 모두 170여 억 원이나 됐고, 양측이 화려한 변호인단을 꾸리면서 소송비용만 100억 원대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실제 사람들의 관심은 재판의 결과나 판결 취지보다는 삼성가의 형제들이 벌인 상속 싸움, 이 과정에서 드러난 '재벌가의 속살'에 더 집중됐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던 모습이 현실에서 벌어진 겁니다. 그것도 현실 속 주인공이 국내 최대 재벌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그의 큰형 이맹희 전 제일 비료 회장입니다. 이맹희 씨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아버지이기도 하니, 삼성과 CJ의 대립 구도도 형성됩니다. 이맹희 씨가 재판부에 제출한 편지에서도 썼듯이 '돈 욕심이 나 내는' 밀려난 장남이냐, '형제도 버리고 재산을 독식한' 후계자냐, 양측을 보는 시각도 나뉘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남긴 차명 주식과 삼성그룹의 후계구도, 밀려난 형제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다시 주목받게 됩니다. 이맹희 씨는 항소심 재판의 결심공판에서 재판부에 편지를 제출합니다. 이 편지는 공식적으로 동생 이건희 회장에게 화해하자는 취지로 공개한 것입니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이맹희 씨의 동생에 대한 서운함과 응어리가 남아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재현이가 삼성으로부터 독립할 때 미행을 하고, CCTV로 감시하고, 제일 제당 주식을 다시 사들이고, 장손의 할아버지 묘사도 방해하고...", "동생만을 믿고 자리를 비켜주었던 저 자신에 대한 죄책감과 동생에 대한 배신감, 엉클어져 버린 집안을 보면서..." 삼성가의 장손인 자신의 아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삼성으로부터 불이익을 받고, 장손으로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점 등에 대한 걱정도 보입니다. 상속 소송의 항소심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탈세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습니다.



이에 이건희 회장은 화해의 진정성이 없다며 거부합니다. 이맹희 씨가 경영권을 뺏으려 하는 게 아니라면서 에버랜드 등에 대한 소를 취하했을 때도, 재판부가 거듭 조정을 제안했을 때도, 이 회장은 '이 문제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정통성의 문제'라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결국 1,2심에 걸쳐 재판부가 이건희 회장의 손을 들어준 유산 상속 문제. 이맹희 씨 측 변호인은 "상속문제를 양해하거나 묵인했다는 부분은 납득하기 어렵다""의뢰인과 상의해 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 라고 말했습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선고를 하면서 이례적으로 형제들의 화합과 화목이 이병철 회장의 유지였을 거라는 법정 발언까지 남겼습니다. 법조계에선 1,2심 모두 일방적으로 이맹희 씨 측이 졌는데 더 이상의 재판은 무의미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상속 재산을 놓고 화해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이맹희 씨는 이건희 회장을 직접 만나 풀기를 바란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만남도 쉽지 않을 거란 전망입니다. 양측이 다 화해를 원한다고 하지만, 사과를 먼저 해야 할 쪽은 서로 자신이 아니라 상대방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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