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 선원 2명도 상봉…17명은 사망확인

입력 2014.02.21 (06:38) 수정 2014.02.21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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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이산가족 상봉자에는 1970년대 납북된 선원 2명도 포함됐습니다.

정부가 북한 측에 납북자와 국군포로 50명의 생사확인을 요청했지만, 생존 사실이 확인된 건 이 납북 선원 2명에 불과합니다.

납북자와 그 가족의 40여 년 만의 만남을 이중근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974년 어선을 탔다 납북된 형 박양수 씨와 남쪽의 동생 양곤 씨가 42년 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한눈에 서로를 알아본 형제는 기쁨과 설움이 뒤엉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합니다.

동생 양곤 씨는 처음 만나는 형수에게 인사를 하고, 자신의 아들을 소개합니다. 큰 엄마께 인사드려라

사무치게 그리워했을 어머니의 별세 소식도 전합니다.

<녹취> 박양곤(피랍 선원 박양수 씨 동생) : "노환으로 엄마는 노환으로 돌아가셨고…"

형 양수 씨는 벅찬 감격에 말문이 막혀 부인이 대신합니다.

<녹취> 리순녀(피랍선원 박양수 씨 부인) : "이게 우리 딸입니다. 이건 손녀입니다. (손녀? 벌써 손녀를 봤습니까?)"

최선득 씨도 수원 33호를 탔다 납북된 동생 영철씨를 만났습니다.

<녹취> "작은형 죽은건 알지? (네?) 작은형…"

40년 동안 북한에서 살아온 동생은 고향 소식이 궁금합니다.

<녹취> 최영철 (피랍 수원33호 선원) : "내가 학교 다닐 때 꺾어다 심은 거 (미루나무 그것은 한 30년 전에 이만큼 커서 지붕 개량할 때..)"

이번 상봉에는 6.25 전쟁 당시 납치된 납북자의 자녀 3명도 포함됐습니다.

정부가 생사확인을 요청한 국군포로와 납북자 50명 가운데, 북한은 17명은 숨졌고, 31명은 확인 불가라고 답했습니다.

KBS뉴스 이중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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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납북 선원 2명도 상봉…17명은 사망확인
    • 입력 2014-02-21 06:40:12
    • 수정2014-02-21 08:44:09
    뉴스광장 1부
<앵커 멘트>

이산가족 상봉자에는 1970년대 납북된 선원 2명도 포함됐습니다.

정부가 북한 측에 납북자와 국군포로 50명의 생사확인을 요청했지만, 생존 사실이 확인된 건 이 납북 선원 2명에 불과합니다.

납북자와 그 가족의 40여 년 만의 만남을 이중근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974년 어선을 탔다 납북된 형 박양수 씨와 남쪽의 동생 양곤 씨가 42년 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한눈에 서로를 알아본 형제는 기쁨과 설움이 뒤엉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합니다.

동생 양곤 씨는 처음 만나는 형수에게 인사를 하고, 자신의 아들을 소개합니다. 큰 엄마께 인사드려라

사무치게 그리워했을 어머니의 별세 소식도 전합니다.

<녹취> 박양곤(피랍 선원 박양수 씨 동생) : "노환으로 엄마는 노환으로 돌아가셨고…"

형 양수 씨는 벅찬 감격에 말문이 막혀 부인이 대신합니다.

<녹취> 리순녀(피랍선원 박양수 씨 부인) : "이게 우리 딸입니다. 이건 손녀입니다. (손녀? 벌써 손녀를 봤습니까?)"

최선득 씨도 수원 33호를 탔다 납북된 동생 영철씨를 만났습니다.

<녹취> "작은형 죽은건 알지? (네?) 작은형…"

40년 동안 북한에서 살아온 동생은 고향 소식이 궁금합니다.

<녹취> 최영철 (피랍 수원33호 선원) : "내가 학교 다닐 때 꺾어다 심은 거 (미루나무 그것은 한 30년 전에 이만큼 커서 지붕 개량할 때..)"

이번 상봉에는 6.25 전쟁 당시 납치된 납북자의 자녀 3명도 포함됐습니다.

정부가 생사확인을 요청한 국군포로와 납북자 50명 가운데, 북한은 17명은 숨졌고, 31명은 확인 불가라고 답했습니다.

KBS뉴스 이중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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