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본문 영역

상세페이지

피겨 여왕의 마지막 무대 ‘아디오스 연아!’
입력 2014.02.21 (08:58) 연합뉴스
김연아의 세계 신기록은 아마도 깨지기 어려울 것 같고 이제 김연아는 한국의 여왕에서 벗어나 세계인 모두의 여왕이 됐다"(뉴스위크) , "김연아의 기록을 돌파할 선수는 김 선수 자신밖에 없을 것"(밴쿠버 선)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김연아(24)가 쇼트프로그램(78.50점)과 프리스케이팅(150.06점) 모두 역대 최고점 기록을 경신하며 총점 228.56점의 '세계 기록'으로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자 전 세계 언론들은 '피겨 요정'에서 '피겨 여왕'으로 화려하게 등극한 김연아를 향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14년 2월 21일(한국시간). '피겨 여왕' 김연아는 자신의 피겨인생 18년의 마침표를 찍는 은퇴 무대인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에서 총점 219.11점을 따내 아델리나 소트니코바(러시아·224.59점)에 이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경기 결과를 놓고 개최국 러시아의 홈텃세가 판정에 영향을 끼쳤다는 피겨 전문가들의 '편파 판정'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지만 모든 짐을 내려놓은 피겨 여왕의 반응은 오히려 '쿨'했다.

"연기가 끝나고 여러 가지 기분이 교차했다. 홀가분하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면서 "마지막 은퇴 경기에서 실수 없이 마친 것에 만족스럽다"

◇ 타고난 재능을 부단한 노력으로 승화한 '피겨 여왕'

김연아가 피겨스케이팅과 만난 것은 운명적이었다. 김연아는 스스로 피겨와의 만남을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고 표현했다.

그는 2010년 10월 출간한 자서전 '7분의 드라마'에서 처음 피겨를 접했을 당시 상황을 '세렌디피티. 우연을 붙잡아 행운으로 만드는 것.

누구에게나 우연을 가장한 기회가 찾아온다. 하지만 그것을 붙잡아 행운을 만드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라고 전했다.

6살이던 1996년. 어머니 박미희(55) 씨의 손을 잡고 찾아간 과천 빙상장에서 처음 피겨를 접한 김연아는 우연을 운명으로 바꾸게 된다.

피겨 부츠를 신은 김연아는 말 그대로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쑥쑥 성장했다. 9살 때 전국체전 초등부에서 우승한 김연아는 12살 때 6가지 트리플 점프 가운데 트리플 악셀(공중 3회전 반)을 뺀 나머지 5가지 점프를 마스터하며 피겨 전문가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하지만 김연아의 5종 트리플 점프 역시 끊임없는 노력의 산실이었다. 몸에 와이어를 달고 빙판 위에서 수없이 뛰고 넘어진 결과였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의 금메달을 합작한 브라이언 오서 전 코치는 "김연아의 재능을 하늘의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김연아가 연습하는 과정을 딱 사흘만 지켜보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다.

◇ 그녀가 뛰면 역사가 된다.

김연아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그 자체가 한국 피겨의 역사다.

2002년 트리글라프 트로피 노비스(13세 이하) 부문에서 우승하며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김연아는 2004년 9월 헝가리에서 열린 2004-2005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 2차 대회에서 한국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국제대회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이듬해 3월 세계주니어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는 2006년 3월 마침내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정상에 오르면서 '피겨 요정'으로 국제적인 관심을 끌었다.

아쉽게 나이 규정 때문에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출전이 무산된 김연아는 2006-2007시즌 마침내 시니어 무대에 진출하며 재능을 마음껏 뽐내기 시작했다. 2006년 겨울에는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해 허리 통증을 진져 진통제를 먹고 금메달을 따냈다.

잦은 부상 때문에 고생한 김연아는 2008년 3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고관절 통증으로 끝내 진통제 주사를 맞고 경기에 나서 2년 연속 동메달을 따내는 투혼을 발휘하기도 했다.

김연아는 2008-2009 시즌 부상 없는 말끔한 몸 상태로 대회에 나서 그랑프리 2개 대회 우승과 그랑프리 파이널 준우승에 이어 2009년 4대륙 선수권대회와 세계선수권대회를 휩쓸면서 최고의 몸 상태를 유지했다.

특히 김연아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총점 207.71로 우승하면서 ISU가 도입한 신채점방식(뉴저지시스템)에서 처음으로 200점대를 돌파한 여자 싱글 선수로 역사에 기록됐다.

마침내 올림픽 시즌에 들어간 김연아는 2009년 10월에 시작한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2개의 금메달을 휩쓴 뒤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에 이어 2010년 2월 밴쿠버 올림픽에서 절정의 기량을 앞세워 역대 최고점 금메달의 역사를 써내렸다.

◇ 여왕의 화려한 은퇴 '아디오스 연아!'

김연아는 2010년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 이후 은퇴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김연아는 피겨 인생의 마지막을 은반에서 맞고 싶었고, 그 은퇴 무대를 이번 소치 동계올림픽으로 잡았다.

긴 침묵 끝에 2012년 7월 현역 복귀를 선언한 김연아는 그해 12월 NRW 트로피(201.61점), 2013년 3월 세계선수권대회(218.31점), 2013년 12월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204.49점) 등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200점을 넘기며 금메달을 놓치지 않으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김연아는 2013-2014 시즌 그랑프리 시리즈에 초대를 받았지만 오른발 부상의 악재 속에 출전을 포기한 채 재활에 집중했다.

결국 지난해 12월 오른발 부상에서 벗어난 김연아는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에서 우승하며 소치 금메달 전망을 밝혔다.

김연아는 은퇴 무대를 앞둔 이번 시즌 프로그램의 콘셉트를 '그리움'으로 잡았다. 18년 피겨 인생을 돌아보며 느꼈던 아쉬움과 그리움을 팬들에게 전해주고 떠나겠다는 의지였다.

김연아는 쇼트프로그램에서 이번 시즌 최고점인 74.92점으로 1위에 올랐지만 프리스케이팅에서 러시아의 아델리나 소토니코바에게 밀리면서 아쉽게 은메달로 피겨 인생을 마무리했다.
  • 피겨 여왕의 마지막 무대 ‘아디오스 연아!’
    • 입력 2014-02-21 08:58:43
    연합뉴스
김연아의 세계 신기록은 아마도 깨지기 어려울 것 같고 이제 김연아는 한국의 여왕에서 벗어나 세계인 모두의 여왕이 됐다"(뉴스위크) , "김연아의 기록을 돌파할 선수는 김 선수 자신밖에 없을 것"(밴쿠버 선)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김연아(24)가 쇼트프로그램(78.50점)과 프리스케이팅(150.06점) 모두 역대 최고점 기록을 경신하며 총점 228.56점의 '세계 기록'으로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자 전 세계 언론들은 '피겨 요정'에서 '피겨 여왕'으로 화려하게 등극한 김연아를 향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14년 2월 21일(한국시간). '피겨 여왕' 김연아는 자신의 피겨인생 18년의 마침표를 찍는 은퇴 무대인 2014 소치 동계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에서 총점 219.11점을 따내 아델리나 소트니코바(러시아·224.59점)에 이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경기 결과를 놓고 개최국 러시아의 홈텃세가 판정에 영향을 끼쳤다는 피겨 전문가들의 '편파 판정'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지만 모든 짐을 내려놓은 피겨 여왕의 반응은 오히려 '쿨'했다.

"연기가 끝나고 여러 가지 기분이 교차했다. 홀가분하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면서 "마지막 은퇴 경기에서 실수 없이 마친 것에 만족스럽다"

◇ 타고난 재능을 부단한 노력으로 승화한 '피겨 여왕'

김연아가 피겨스케이팅과 만난 것은 운명적이었다. 김연아는 스스로 피겨와의 만남을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고 표현했다.

그는 2010년 10월 출간한 자서전 '7분의 드라마'에서 처음 피겨를 접했을 당시 상황을 '세렌디피티. 우연을 붙잡아 행운으로 만드는 것.

누구에게나 우연을 가장한 기회가 찾아온다. 하지만 그것을 붙잡아 행운을 만드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라고 전했다.

6살이던 1996년. 어머니 박미희(55) 씨의 손을 잡고 찾아간 과천 빙상장에서 처음 피겨를 접한 김연아는 우연을 운명으로 바꾸게 된다.

피겨 부츠를 신은 김연아는 말 그대로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쑥쑥 성장했다. 9살 때 전국체전 초등부에서 우승한 김연아는 12살 때 6가지 트리플 점프 가운데 트리플 악셀(공중 3회전 반)을 뺀 나머지 5가지 점프를 마스터하며 피겨 전문가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하지만 김연아의 5종 트리플 점프 역시 끊임없는 노력의 산실이었다. 몸에 와이어를 달고 빙판 위에서 수없이 뛰고 넘어진 결과였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의 금메달을 합작한 브라이언 오서 전 코치는 "김연아의 재능을 하늘의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김연아가 연습하는 과정을 딱 사흘만 지켜보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다.

◇ 그녀가 뛰면 역사가 된다.

김연아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그 자체가 한국 피겨의 역사다.

2002년 트리글라프 트로피 노비스(13세 이하) 부문에서 우승하며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김연아는 2004년 9월 헝가리에서 열린 2004-2005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 2차 대회에서 한국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국제대회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이듬해 3월 세계주니어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는 2006년 3월 마침내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정상에 오르면서 '피겨 요정'으로 국제적인 관심을 끌었다.

아쉽게 나이 규정 때문에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출전이 무산된 김연아는 2006-2007시즌 마침내 시니어 무대에 진출하며 재능을 마음껏 뽐내기 시작했다. 2006년 겨울에는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해 허리 통증을 진져 진통제를 먹고 금메달을 따냈다.

잦은 부상 때문에 고생한 김연아는 2008년 3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고관절 통증으로 끝내 진통제 주사를 맞고 경기에 나서 2년 연속 동메달을 따내는 투혼을 발휘하기도 했다.

김연아는 2008-2009 시즌 부상 없는 말끔한 몸 상태로 대회에 나서 그랑프리 2개 대회 우승과 그랑프리 파이널 준우승에 이어 2009년 4대륙 선수권대회와 세계선수권대회를 휩쓸면서 최고의 몸 상태를 유지했다.

특히 김연아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총점 207.71로 우승하면서 ISU가 도입한 신채점방식(뉴저지시스템)에서 처음으로 200점대를 돌파한 여자 싱글 선수로 역사에 기록됐다.

마침내 올림픽 시즌에 들어간 김연아는 2009년 10월에 시작한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2개의 금메달을 휩쓴 뒤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에 이어 2010년 2월 밴쿠버 올림픽에서 절정의 기량을 앞세워 역대 최고점 금메달의 역사를 써내렸다.

◇ 여왕의 화려한 은퇴 '아디오스 연아!'

김연아는 2010년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 이후 은퇴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김연아는 피겨 인생의 마지막을 은반에서 맞고 싶었고, 그 은퇴 무대를 이번 소치 동계올림픽으로 잡았다.

긴 침묵 끝에 2012년 7월 현역 복귀를 선언한 김연아는 그해 12월 NRW 트로피(201.61점), 2013년 3월 세계선수권대회(218.31점), 2013년 12월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204.49점) 등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200점을 넘기며 금메달을 놓치지 않으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김연아는 2013-2014 시즌 그랑프리 시리즈에 초대를 받았지만 오른발 부상의 악재 속에 출전을 포기한 채 재활에 집중했다.

결국 지난해 12월 오른발 부상에서 벗어난 김연아는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에서 우승하며 소치 금메달 전망을 밝혔다.

김연아는 은퇴 무대를 앞둔 이번 시즌 프로그램의 콘셉트를 '그리움'으로 잡았다. 18년 피겨 인생을 돌아보며 느꼈던 아쉬움과 그리움을 팬들에게 전해주고 떠나겠다는 의지였다.

김연아는 쇼트프로그램에서 이번 시즌 최고점인 74.92점으로 1위에 올랐지만 프리스케이팅에서 러시아의 아델리나 소토니코바에게 밀리면서 아쉽게 은메달로 피겨 인생을 마무리했다.
kbs가 손수 골랐습니다. 네이버에서도 보세요.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