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할아버지에게 바치는 동메달”

입력 2014.02.21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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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즈카 아야나(26)는 프리스타일 스키 하프파이프 동메달이 확정되자 그의 어머니 유카리(46) 씨를 향해 달려갔다.

유카리 씨는 두 개의 영정을 딸에게 전했고, 오노즈카는 이를 품에 안고 눈물을 흘리며 "천국에 계신 두 할아버지께 메달을 바친다"고 말했다.

오노즈카는 21일(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로사 쿠토르 익스트림 파크에서 열린 대회 여자 스키 하프파이프 결승에서 83.20으로 3위에 올랐다.

마이니치신문, 산케이스포츠 등 일본 언론들은 "오노즈카가 할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켰다"며 오노즈카의 사연을 전했다.

오노즈카는 두 살 때 외할아버지 가츠토시에게 처음 스키를 배웠다.

오노즈카의 열성팬이었던 외할아버지는 2012년 3월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해외 원정 훈련 중 비보를 접한 오노즈카는 급히 일본으로 돌아와 장례를 치렀다.

오노즈카는 외할아버지의 유품 금 목걸이를 손에 쥐며 "꼭 올림픽에 가겠다"고 다짐했다.

또 한 명의 열성팬 친할아버치도 2012년 12월 별세했다.

올림픽을 향한 오노즈카의 열망은 더 커졌다.

알파인 스키 선수였던 오노즈카는 2011년 4월 프리스타일 스키 하프파이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자 전략적으로 주종목을 바꿨다.

오노즈카는 "알파인 선수로서는 도저히 올림픽에 출전할 가능성이 없는 것 같았다"며 "'하프파이프의 올림픽 첫 메달리스트'란 타이틀도 매력적이었다"고 회상했다.

평범한 알파인 스키 선수였던 오노즈카는 빠르게 세계적인 프리스타일 스키어로 자리매김했다.

2012-2013 시즌 하프파이프 세계랭킹 3위를 기록했고, 2013-2014 시즌에도 8위에 올랐다.

열악한 환경도 주위의 도움과 자신의 의지로 극복했다.

2013년 초까지 일본은 하프파이프 국가대표를 뽑지 않았다.

하프파이프를 훈련할 곳이 없었고, 스키연맹의 지원도 받지 못했다.

자비로 대회 참가·훈련 비용을 해결해야 했던 오노즈카를 위해 지인들이 모금에 나섰다.

2012년 50만엔(약 520만원)에 그쳤던 후원금이 2013년에는 300만엔(약 3천100만원)으로 불어났다.

오노즈카가 2013년 3월 오슬로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을 따자 일본 스키연맹은 프리스타일 스키 하프파이프를 '전략종목'으로 채택해 오노즈카를 국가대표로 인정하고 훈련 등을 지원했다.

오노즈카는 "모두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가 도와주신 덕"이라고 했다.

그는 어머니 유카리 씨에게 "러시아로 올 때 두 할아버지의 영정을 가지고 와 달라"고 했다.

두 할아버지의 사진이 관중석에 놓였고, 오노즈카는 그 앞에서 멋진 공중회전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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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국의 할아버지에게 바치는 동메달”
    • 입력 2014-02-21 15:04:58
    연합뉴스
오노즈카 아야나(26)는 프리스타일 스키 하프파이프 동메달이 확정되자 그의 어머니 유카리(46) 씨를 향해 달려갔다. 유카리 씨는 두 개의 영정을 딸에게 전했고, 오노즈카는 이를 품에 안고 눈물을 흘리며 "천국에 계신 두 할아버지께 메달을 바친다"고 말했다. 오노즈카는 21일(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로사 쿠토르 익스트림 파크에서 열린 대회 여자 스키 하프파이프 결승에서 83.20으로 3위에 올랐다. 마이니치신문, 산케이스포츠 등 일본 언론들은 "오노즈카가 할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켰다"며 오노즈카의 사연을 전했다. 오노즈카는 두 살 때 외할아버지 가츠토시에게 처음 스키를 배웠다. 오노즈카의 열성팬이었던 외할아버지는 2012년 3월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해외 원정 훈련 중 비보를 접한 오노즈카는 급히 일본으로 돌아와 장례를 치렀다. 오노즈카는 외할아버지의 유품 금 목걸이를 손에 쥐며 "꼭 올림픽에 가겠다"고 다짐했다. 또 한 명의 열성팬 친할아버치도 2012년 12월 별세했다. 올림픽을 향한 오노즈카의 열망은 더 커졌다. 알파인 스키 선수였던 오노즈카는 2011년 4월 프리스타일 스키 하프파이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자 전략적으로 주종목을 바꿨다. 오노즈카는 "알파인 선수로서는 도저히 올림픽에 출전할 가능성이 없는 것 같았다"며 "'하프파이프의 올림픽 첫 메달리스트'란 타이틀도 매력적이었다"고 회상했다. 평범한 알파인 스키 선수였던 오노즈카는 빠르게 세계적인 프리스타일 스키어로 자리매김했다. 2012-2013 시즌 하프파이프 세계랭킹 3위를 기록했고, 2013-2014 시즌에도 8위에 올랐다. 열악한 환경도 주위의 도움과 자신의 의지로 극복했다. 2013년 초까지 일본은 하프파이프 국가대표를 뽑지 않았다. 하프파이프를 훈련할 곳이 없었고, 스키연맹의 지원도 받지 못했다. 자비로 대회 참가·훈련 비용을 해결해야 했던 오노즈카를 위해 지인들이 모금에 나섰다. 2012년 50만엔(약 520만원)에 그쳤던 후원금이 2013년에는 300만엔(약 3천100만원)으로 불어났다. 오노즈카가 2013년 3월 오슬로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을 따자 일본 스키연맹은 프리스타일 스키 하프파이프를 '전략종목'으로 채택해 오노즈카를 국가대표로 인정하고 훈련 등을 지원했다. 오노즈카는 "모두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가 도와주신 덕"이라고 했다. 그는 어머니 유카리 씨에게 "러시아로 올 때 두 할아버지의 영정을 가지고 와 달라"고 했다. 두 할아버지의 사진이 관중석에 놓였고, 오노즈카는 그 앞에서 멋진 공중회전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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