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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한반도] 3년 4개월 만의 상봉…“보고 싶었습니다”
입력 2014.02.22 (07:49) 수정 2014.02.22 (11:01) 남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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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하얀 눈으로 뒤덮인 금강산.

허리까지 차오른 눈도 60여 년 만의 만남을 갈라놓진 못했습니다.

모습도, 음성도 희미해질 만큼 긴 세월이 흘러 만난 남북의 가족들은 얼굴을 쓰다듬고, 손을 맞잡으며 서로의 온기를 확인합니다.

<녹취> "언니, 언니"

<녹취> "동생아, 동생아"

아흔 넷, 늙은 아버지만큼이나 예순을 넘긴 아들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가득합니다.

백발이 성성한 아들을 만나는 데 걸린 시간은 반세기를 훌쩍 넘은 64년.

그러나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한 부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2박 3일, 단 여섯 차례 만남에 11시간뿐입니다.

<녹취> 강정국(64세/아들) : "아버지가 나 태어나기 전에 남한으로 갔기 때문에...."

<녹취> 강능환(93세/아들과 상봉) : "모습이 보면 닮았잖아, 모습이 다 한 모습이야."

<녹취> 박근혜(신년사) :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으로 첫 단추를 잘 풀어서 남북관계에 새로운 계기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남북 양측은 이산가족 상봉을 두고 줄다리기에 들어갔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 "총포탄이 오가는 속에서 흩어진 가족 친척 상봉을 마음 편히 할 수 있겠는가......"

<녹취> 조선중앙TV : "북남사이의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상봉행사를 진행하자는 것을 남측에 제의했습니다."

<녹취> 류길재(통일부 장관) : "이산가족 상봉은 차질 없이 남북이 합의한 대로 이행이 된다라고 하는 것이 저희들 생각입니다."

<녹취> 조선중앙TV : “북과 남은 흩어진 가족, 친척 상봉을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하였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둔 입장차로 이산상봉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지만, 남북은 두 차례의 고위급 접촉을 거쳐 마침내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했습니다.

2010년 진행된 상봉 이후 3년 4개월 만에 19번째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된 것입니다.

1차 상봉 이틀 전 찾은 강능환 할아버지는 지난해 9월, 이산상봉이 취소돼 풀어놓은 짐을 다시 한 번 챙기고 있었습니다.

<인터뷰> 강능환(93세/아들과 상봉) : "이건 내의고. (양말.)"

약품이며 생활용품, 내의 등 애틋한 마음으로 손수 준비한 선물들입니다.

<인터뷰> 강능환(93세/아들과 상봉) : "결혼을 하고 4개월이 됐는데 갑자기 (피난을) 나왔다 돌아간다 그러고선 나온 것이 이별이 된 겁니다. (북쪽에) 아들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1950년, 1.4후퇴 당시 인민군을 피해 고향을 떠난 강능환 할아버지는 헤어진 가족들의 생사라도 알아보자는 생각에 이산상봉 신청서를 작성했습니다.

피난길에 헤어진 아내와의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다는 것도 이 때 처음 알았습니다.

<인터뷰> 강능환(93세/아들과 상봉) : "두근두근하죠. 어떻게 생겼는지, 날 닮았는지. 하루라도 빨리 좀 만나서 그래도 내 혈족이고 핏줄인데 만나면 얼마나 좋겠나."

상봉자 82명 가운데 일흔 살이 넘는 고령자는 90%, 이 가운데 강 할아버지처럼 90대가 25명이나 됩니다.

노령에 거동이 불편해졌고 휠체어를 타고 침상에 누웠지만 마지막일지 모르는 만남을 포기할 순 없었습니다.

<녹취> 장춘(81세/동생과 상봉) : "63년 만에 첫 만남이자 마지막 만남. 이제 살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마지막이겠죠."

남과 북으로 갈라진 가족들이 만난 것은 1985년, 분단된 지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습니다.

'고향방문단'이란 이름으로 우리 측 35가족과 북한 측 30가족이 각각 서울과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화해 무드가 필요한 남북 양국의 이해가 맞물린 1회성 이벤트였습니다.

<인터뷰> 정영태(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그 당시에 남북한의 어떤 여러 가지 민주적인, 소위 독재적인 그런 정치 분위기 상황이라든가 이런 것이 어렵게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또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남북한의 뭔가 평화적인 분위기, 이런 것을 창출할 필요가 있었어요.이산가족 상봉을 통한 남북한 관계 개선이라고 하는 것을 했을 때는 우리 진일보하는 정치라고 볼 수가 있죠."

'이산가족 상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0년 이후였습니다.

<녹취> 김정일(국방위원회 위원장) : "실향민이라든가 탈북자에 대한 거 많이 소개해서 잘 봤습니다. 그들이 눈물 흘리면서 고향 소식이나 이런 거 전달될 수 있지 않은가, 그 길이 빨라지지 않겠는가"

분단 55년 만에 손을 맞잡은 남북의 정상은 6.15 공동선언을 계기로 남북 100가족씩 서로의 가족을 찾는 방식의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했습니다.

2005년에는 화상상봉이 시작돼 3년간 7차례에 걸쳐 남북한 3천 7백여 명이 화면으로나마 재회의 기쁨을 나눴습니다.

한해에 두 번 꼴이던 상봉 행사는 지난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4년간 단 두 차례 상봉에 그쳤습니다.

화상상봉 역시 2008년 이후 연결되고 있지 않습니다.

이곳 통일전망대에서 북한 땅까지 불과 2.2km, 날씨가 좋을 땐 육안으로도 북한 땅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가까운 거립니다.

손에 잡힐 듯한 거리에서 남북의 이산가족은 60년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는데요.

상봉의 기회를 놓친 사람들이 가족을 만나기 위해선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걸까요.

허갑섬 할머니는 이산상봉 소식이 전해지자 TV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영문도 모른 채 이웃집 부부의 손에 이끌려 가족과 고향을 떠나온 지 63년.

상봉이 진행될 때마다 내 차례는 아닐까 기대를 하지만, 돌아오는 건 큰 실망과 좌절이었습니다.

<인터뷰> 허갑섬(80세/이산가족) : "(이산가족 상봉자) 추첨이 되기 전까지는 기대하고, 혹시 된다면 선물은 무엇을 할까. 이렇게 계획도 짜봤다가 이번 같이 안 됐을 때에는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혼자서 말없이 어깨에 힘이 빠지는 것 같고......."

10여 년 전 중국 브로커를 통해 형제들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이젠 그마저도 연락이 끊겼습니다.

할머니는 나머지 가족들마저 세상을 떠날까 마음이 급합니다.

14년간 이산상봉은 단 19차례, 그마저 100 가족으로 한정된 상봉 규모가 야속하기만 합니다.

<인터뷰> 허갑섬(80세/이산가족) : "(상봉자) 100명이 결정되고도 그동안 돌아가신 분을 (제외)하면 인원수가 줄어들잖아요. 매번 그래요. 그러면 나 같은 경우는 북한 (가족과) 서로 주소가 확실하고 살아있는 걸 아니까 당장 (명단에) 끼워 넣어도 되는 걸, 왜 안 되는지 그게 답답하고......"

지난달까지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12만 9천 여 명.

이 가운데 5만 7천 여 명이 가족을 만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생존자의 52% 이상이 80살 이상 고령입니다.

이번 상봉에서도 확정된 상봉자 100명 가운데 18명이 건강 악화 등을 이유로 상봉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녹취> 이근수(87세/이산상봉 포기) : "자꾸 정신적으로 심적으로 고통만 받는 것이죠. 이제는 살아서 보기는 틀렸고......"

직접 대면이나 화상상봉으로 가족을 만난 사람은 신청자의 1/6도 안 되는 2만 1천 여 명에 불과합니다.

남한이 이산가족 상봉에 적극적인 반면 북한은 상황이 다릅니다.

이산상봉 준비를 위한 경제적인 비용은 물론 폐쇄된 체제 특성상 북한 주민이 남한의 가족을 만나는 것도 큰 부담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정영태(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100명이든 200명이든 남북한의 가족과 서로 상호 만남으로써, 특히 북한 가족들은 남한의 가족 형편을 알게 되는 거죠. 북한 내부에 들어가서 아무리 입단속을 한다 치더라도 이것이 확산될 수밖에 없는, 그런 소문들이 확산될 수밖에 없는 그런 부정적 영향들이 있다고 볼 수가 있죠. 그렇기 때문에 가급적 북한은 피하고 싶죠, 이 자체는."

남북관계와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이산상봉이 좌우되는 것도 상봉 정례화의 걸림돌입니다.

실제로 2010년 이후 상봉이 중단된 것은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냉랭해졌기 때문이고, 지난해 9월, 불과 나흘 앞두고 이산상봉이 무산된 것도 금강산 관광 재개를 둘러싸고 남북 양측의 의견차가 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존한 이산가족은 이제 7만 1천 여 명, 고령인 가족들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인터뷰> 정영태(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앞으로 남북한 관계 개선이 되어가지고 남북한의 민간 차원의 교류, 이것이 가장 활성화 되어야지만 바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 자체도 그것이 보다 더 활성화 될 수 있다고 볼 수가 있죠. 그래서 관건 자체는 남북한 관계 개선이 활성화 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정기적인 이산가족 상봉이 어렵다면 서신 왕래나 화상 상봉처럼 간접적인 만남을 주선하고, 나아가 민간 차원의 교류도 넓혀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 [이슈&한반도] 3년 4개월 만의 상봉…“보고 싶었습니다”
    • 입력 2014-02-22 08:53:41
    • 수정2014-02-22 11:01:17
    남북의 창
<리포트>

하얀 눈으로 뒤덮인 금강산.

허리까지 차오른 눈도 60여 년 만의 만남을 갈라놓진 못했습니다.

모습도, 음성도 희미해질 만큼 긴 세월이 흘러 만난 남북의 가족들은 얼굴을 쓰다듬고, 손을 맞잡으며 서로의 온기를 확인합니다.

<녹취> "언니, 언니"

<녹취> "동생아, 동생아"

아흔 넷, 늙은 아버지만큼이나 예순을 넘긴 아들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가득합니다.

백발이 성성한 아들을 만나는 데 걸린 시간은 반세기를 훌쩍 넘은 64년.

그러나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한 부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2박 3일, 단 여섯 차례 만남에 11시간뿐입니다.

<녹취> 강정국(64세/아들) : "아버지가 나 태어나기 전에 남한으로 갔기 때문에...."

<녹취> 강능환(93세/아들과 상봉) : "모습이 보면 닮았잖아, 모습이 다 한 모습이야."

<녹취> 박근혜(신년사) :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으로 첫 단추를 잘 풀어서 남북관계에 새로운 계기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남북 양측은 이산가족 상봉을 두고 줄다리기에 들어갔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 "총포탄이 오가는 속에서 흩어진 가족 친척 상봉을 마음 편히 할 수 있겠는가......"

<녹취> 조선중앙TV : "북남사이의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상봉행사를 진행하자는 것을 남측에 제의했습니다."

<녹취> 류길재(통일부 장관) : "이산가족 상봉은 차질 없이 남북이 합의한 대로 이행이 된다라고 하는 것이 저희들 생각입니다."

<녹취> 조선중앙TV : “북과 남은 흩어진 가족, 친척 상봉을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하였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둔 입장차로 이산상봉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지만, 남북은 두 차례의 고위급 접촉을 거쳐 마침내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했습니다.

2010년 진행된 상봉 이후 3년 4개월 만에 19번째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된 것입니다.

1차 상봉 이틀 전 찾은 강능환 할아버지는 지난해 9월, 이산상봉이 취소돼 풀어놓은 짐을 다시 한 번 챙기고 있었습니다.

<인터뷰> 강능환(93세/아들과 상봉) : "이건 내의고. (양말.)"

약품이며 생활용품, 내의 등 애틋한 마음으로 손수 준비한 선물들입니다.

<인터뷰> 강능환(93세/아들과 상봉) : "결혼을 하고 4개월이 됐는데 갑자기 (피난을) 나왔다 돌아간다 그러고선 나온 것이 이별이 된 겁니다. (북쪽에) 아들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1950년, 1.4후퇴 당시 인민군을 피해 고향을 떠난 강능환 할아버지는 헤어진 가족들의 생사라도 알아보자는 생각에 이산상봉 신청서를 작성했습니다.

피난길에 헤어진 아내와의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다는 것도 이 때 처음 알았습니다.

<인터뷰> 강능환(93세/아들과 상봉) : "두근두근하죠. 어떻게 생겼는지, 날 닮았는지. 하루라도 빨리 좀 만나서 그래도 내 혈족이고 핏줄인데 만나면 얼마나 좋겠나."

상봉자 82명 가운데 일흔 살이 넘는 고령자는 90%, 이 가운데 강 할아버지처럼 90대가 25명이나 됩니다.

노령에 거동이 불편해졌고 휠체어를 타고 침상에 누웠지만 마지막일지 모르는 만남을 포기할 순 없었습니다.

<녹취> 장춘(81세/동생과 상봉) : "63년 만에 첫 만남이자 마지막 만남. 이제 살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마지막이겠죠."

남과 북으로 갈라진 가족들이 만난 것은 1985년, 분단된 지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습니다.

'고향방문단'이란 이름으로 우리 측 35가족과 북한 측 30가족이 각각 서울과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화해 무드가 필요한 남북 양국의 이해가 맞물린 1회성 이벤트였습니다.

<인터뷰> 정영태(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그 당시에 남북한의 어떤 여러 가지 민주적인, 소위 독재적인 그런 정치 분위기 상황이라든가 이런 것이 어렵게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또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남북한의 뭔가 평화적인 분위기, 이런 것을 창출할 필요가 있었어요.이산가족 상봉을 통한 남북한 관계 개선이라고 하는 것을 했을 때는 우리 진일보하는 정치라고 볼 수가 있죠."

'이산가족 상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0년 이후였습니다.

<녹취> 김정일(국방위원회 위원장) : "실향민이라든가 탈북자에 대한 거 많이 소개해서 잘 봤습니다. 그들이 눈물 흘리면서 고향 소식이나 이런 거 전달될 수 있지 않은가, 그 길이 빨라지지 않겠는가"

분단 55년 만에 손을 맞잡은 남북의 정상은 6.15 공동선언을 계기로 남북 100가족씩 서로의 가족을 찾는 방식의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했습니다.

2005년에는 화상상봉이 시작돼 3년간 7차례에 걸쳐 남북한 3천 7백여 명이 화면으로나마 재회의 기쁨을 나눴습니다.

한해에 두 번 꼴이던 상봉 행사는 지난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4년간 단 두 차례 상봉에 그쳤습니다.

화상상봉 역시 2008년 이후 연결되고 있지 않습니다.

이곳 통일전망대에서 북한 땅까지 불과 2.2km, 날씨가 좋을 땐 육안으로도 북한 땅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가까운 거립니다.

손에 잡힐 듯한 거리에서 남북의 이산가족은 60년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는데요.

상봉의 기회를 놓친 사람들이 가족을 만나기 위해선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걸까요.

허갑섬 할머니는 이산상봉 소식이 전해지자 TV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영문도 모른 채 이웃집 부부의 손에 이끌려 가족과 고향을 떠나온 지 63년.

상봉이 진행될 때마다 내 차례는 아닐까 기대를 하지만, 돌아오는 건 큰 실망과 좌절이었습니다.

<인터뷰> 허갑섬(80세/이산가족) : "(이산가족 상봉자) 추첨이 되기 전까지는 기대하고, 혹시 된다면 선물은 무엇을 할까. 이렇게 계획도 짜봤다가 이번 같이 안 됐을 때에는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혼자서 말없이 어깨에 힘이 빠지는 것 같고......."

10여 년 전 중국 브로커를 통해 형제들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이젠 그마저도 연락이 끊겼습니다.

할머니는 나머지 가족들마저 세상을 떠날까 마음이 급합니다.

14년간 이산상봉은 단 19차례, 그마저 100 가족으로 한정된 상봉 규모가 야속하기만 합니다.

<인터뷰> 허갑섬(80세/이산가족) : "(상봉자) 100명이 결정되고도 그동안 돌아가신 분을 (제외)하면 인원수가 줄어들잖아요. 매번 그래요. 그러면 나 같은 경우는 북한 (가족과) 서로 주소가 확실하고 살아있는 걸 아니까 당장 (명단에) 끼워 넣어도 되는 걸, 왜 안 되는지 그게 답답하고......"

지난달까지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12만 9천 여 명.

이 가운데 5만 7천 여 명이 가족을 만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생존자의 52% 이상이 80살 이상 고령입니다.

이번 상봉에서도 확정된 상봉자 100명 가운데 18명이 건강 악화 등을 이유로 상봉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녹취> 이근수(87세/이산상봉 포기) : "자꾸 정신적으로 심적으로 고통만 받는 것이죠. 이제는 살아서 보기는 틀렸고......"

직접 대면이나 화상상봉으로 가족을 만난 사람은 신청자의 1/6도 안 되는 2만 1천 여 명에 불과합니다.

남한이 이산가족 상봉에 적극적인 반면 북한은 상황이 다릅니다.

이산상봉 준비를 위한 경제적인 비용은 물론 폐쇄된 체제 특성상 북한 주민이 남한의 가족을 만나는 것도 큰 부담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정영태(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100명이든 200명이든 남북한의 가족과 서로 상호 만남으로써, 특히 북한 가족들은 남한의 가족 형편을 알게 되는 거죠. 북한 내부에 들어가서 아무리 입단속을 한다 치더라도 이것이 확산될 수밖에 없는, 그런 소문들이 확산될 수밖에 없는 그런 부정적 영향들이 있다고 볼 수가 있죠. 그렇기 때문에 가급적 북한은 피하고 싶죠, 이 자체는."

남북관계와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이산상봉이 좌우되는 것도 상봉 정례화의 걸림돌입니다.

실제로 2010년 이후 상봉이 중단된 것은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냉랭해졌기 때문이고, 지난해 9월, 불과 나흘 앞두고 이산상봉이 무산된 것도 금강산 관광 재개를 둘러싸고 남북 양측의 의견차가 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존한 이산가족은 이제 7만 1천 여 명, 고령인 가족들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인터뷰> 정영태(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앞으로 남북한 관계 개선이 되어가지고 남북한의 민간 차원의 교류, 이것이 가장 활성화 되어야지만 바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 자체도 그것이 보다 더 활성화 될 수 있다고 볼 수가 있죠. 그래서 관건 자체는 남북한 관계 개선이 활성화 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정기적인 이산가족 상봉이 어렵다면 서신 왕래나 화상 상봉처럼 간접적인 만남을 주선하고, 나아가 민간 차원의 교류도 넓혀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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