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진양’ 아버지 끝내 그리운 딸 곁으로…

입력 2014.03.04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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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잔뜩 껴 하늘이 유독 어둑어둑했던 지난 2007년 12월 25일.

성탄절 예배를 마친 뒤 놀이터로 향한 이혜진양(당시 11살)과 우예슬양(당시 9살)은 그날 늦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경찰에 실종 신고를 내고 딸을 애타게 찾아나선 혜진양 아버지 이창근(53)씨의 간절한 바람에도 딸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안양 초등생 유괴·살해사건'으로 불리며 세간의 걱정과 분노를 자아냈던 이 사건이 벌어진 지 6년여가 지나 아버지가 딸 곁으로 떠났다.

지난 3일 오전 4시 이씨가 심장마비로 숨진 뒤 빈소가 마련된 경기도 안양 A병원 장례식장은 4일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딸을 잃고 6년여간 괴로움과 외로움을 달래려고 거의 하루도 거르지않고 술에 의지해야 했던 그였다.

아빠에게 혜진이는 특별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어렵게 꾸리던 살림이 조금 나아졌을 때 얻은 딸이 혜진이었다.

그런 딸을 잃고 이씨는 슬픔을 잊으려고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10년을 근무했던 직장도 그만둔 그는 술 없이는 도저히 삶을 이어갈 수 없었다. 주변의 권유로 상담센터에서 치료도 받았지만, 상태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않을 딸을 살해한 살인마 정성현(45)이 2009년 2월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게 됐을 때도 이씨는 "이미 하늘나라로 간 내 딸이 돌아오느냐"며 격분했다.

딸의 4주기 추모식에서 그는 "내가 죽으면 죽었지 새끼 먼저 보낸 부모는 없어요, 한이 맺히는 거예요, 한평생. 죽을때까지"라며 괴로워했다.

2012년 12월 24일 5주기 추모식에서도 "널 안고 잘 때가 제일 행복했었는데…이렇게 추운 날 널 먼저 보낸 애비를 용서해라"며 자책하기도 했다.

그렇게 딸을 가슴에 품고 있던 이씨가 결국 딸의 곁으로 떠났고 유족들은 그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남편이 실직한 뒤 조리 일을 하며 가정을 책임졌던 부인 이달순(49)씨와 아들(24), 딸(22), 친척 등 유족 10여명만이 이씨의 영정을 지켰다.

장례식장은 6년여전 혜진이를 떠나보낸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기도 해 아빠의 죽음이 살아남은 가족들의 가슴을 더욱 후벼팠다.

범죄피해자대책지원본부 등에서 보내온 조화 5개가 전부였다.

이씨가 마지막 가는 길은 찾는 이들도 적어 아린 가슴이 더욱 쓰라렸다.

가끔 찾아오는 조문객들도 가족들의 아픈 과거를 헤집지 않은 채 조심스럽고도 안타까운 얼굴로 먹먹하게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고인의 시신은 화장돼 혜진양이 묻힌 안양 청계공원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발인은 5일 오전 10시에 치러진다.

남편까지 잃은 혜진양 엄마는 "이제 아이 아빠까지 하늘로 갔으니 나랑 아이들이 더 힘들 것 같다"면서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추슬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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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혜진양’ 아버지 끝내 그리운 딸 곁으로…
    • 입력 2014-03-04 18:58:50
    연합뉴스
안개가 잔뜩 껴 하늘이 유독 어둑어둑했던 지난 2007년 12월 25일. 성탄절 예배를 마친 뒤 놀이터로 향한 이혜진양(당시 11살)과 우예슬양(당시 9살)은 그날 늦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경찰에 실종 신고를 내고 딸을 애타게 찾아나선 혜진양 아버지 이창근(53)씨의 간절한 바람에도 딸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안양 초등생 유괴·살해사건'으로 불리며 세간의 걱정과 분노를 자아냈던 이 사건이 벌어진 지 6년여가 지나 아버지가 딸 곁으로 떠났다. 지난 3일 오전 4시 이씨가 심장마비로 숨진 뒤 빈소가 마련된 경기도 안양 A병원 장례식장은 4일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딸을 잃고 6년여간 괴로움과 외로움을 달래려고 거의 하루도 거르지않고 술에 의지해야 했던 그였다. 아빠에게 혜진이는 특별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어렵게 꾸리던 살림이 조금 나아졌을 때 얻은 딸이 혜진이었다. 그런 딸을 잃고 이씨는 슬픔을 잊으려고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10년을 근무했던 직장도 그만둔 그는 술 없이는 도저히 삶을 이어갈 수 없었다. 주변의 권유로 상담센터에서 치료도 받았지만, 상태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않을 딸을 살해한 살인마 정성현(45)이 2009년 2월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게 됐을 때도 이씨는 "이미 하늘나라로 간 내 딸이 돌아오느냐"며 격분했다. 딸의 4주기 추모식에서 그는 "내가 죽으면 죽었지 새끼 먼저 보낸 부모는 없어요, 한이 맺히는 거예요, 한평생. 죽을때까지"라며 괴로워했다. 2012년 12월 24일 5주기 추모식에서도 "널 안고 잘 때가 제일 행복했었는데…이렇게 추운 날 널 먼저 보낸 애비를 용서해라"며 자책하기도 했다. 그렇게 딸을 가슴에 품고 있던 이씨가 결국 딸의 곁으로 떠났고 유족들은 그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남편이 실직한 뒤 조리 일을 하며 가정을 책임졌던 부인 이달순(49)씨와 아들(24), 딸(22), 친척 등 유족 10여명만이 이씨의 영정을 지켰다. 장례식장은 6년여전 혜진이를 떠나보낸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기도 해 아빠의 죽음이 살아남은 가족들의 가슴을 더욱 후벼팠다. 범죄피해자대책지원본부 등에서 보내온 조화 5개가 전부였다. 이씨가 마지막 가는 길은 찾는 이들도 적어 아린 가슴이 더욱 쓰라렸다. 가끔 찾아오는 조문객들도 가족들의 아픈 과거를 헤집지 않은 채 조심스럽고도 안타까운 얼굴로 먹먹하게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고인의 시신은 화장돼 혜진양이 묻힌 안양 청계공원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발인은 5일 오전 10시에 치러진다. 남편까지 잃은 혜진양 엄마는 "이제 아이 아빠까지 하늘로 갔으니 나랑 아이들이 더 힘들 것 같다"면서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추슬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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