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유괴·살해된 혜진 아버지, 딸 곁으로…

입력 2014.03.06 (08:38) 수정 2014.03.06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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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지난 2007년 크리스마스에 경기도 안양에서 두 아이가 납치돼 숨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기억하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두 아이의 이름은 혜진이와 예슬입니다.

그런데 당시 피해 어린이 중 한 명인 혜진 양의 아버지가 최근 건강이 악화 돼 숨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이승훈 기자와 얘기 나눠봅니다.

당연히 그렇겠지만 아이를 먼저 떠나보내고 많이 괴로워했다고 들었어요?

<기자 멘트>

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딸을 먼저 보낸 아버지의 마음.

무엇으로 표현을 할 수 있을까요?

혜진양의 아버지는 지난 6년 동안 딸은 잃은 충격과 슬픔 그리고 그리움에 식사를 거르고 술에 의존해 하루하루를 버텨왔다고 합니다.

오늘 뉴스 따라잡기에서는 혜진양 가족의 이 안타까운 사연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기억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사건.

지난 2007년 12월 크리스마스 날 경기도 안양의 초등학교에 다니던 혜진이와 예슬이는 연락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두 아이가 사라진 그날 저녁, 혜진이네 다섯 식구는 함께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기로 약속했었습니다.

<녹취> 故 이혜진 양 아버지(2008. 1. 2 방송) : “(혜진이와 통화하며) 8시에 퇴근한다고 그랬거든요. 크리스마스트리를 몇 시쯤 하면 좋겠냐고, 한 6시쯤 하면 안 돼?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난 네가 알아서 해라 그랬죠.”

대문을 열어 놓은 채 매일 밤을 지새며 딸이 돌아오기만을 바랐던 가족들...

가족들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혜진이와 예슬이는 끝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사건발생 80여일 만에 경찰에 붙잡힌 범인. 한동네에 살던 당시 39살의 정성현이었습니다.

정성현은 사건이 발생한 그날 혜진이와 예슬이에게 접근해 ‘아픈 강아지를 돌봐달라’며 자신의 집으로 유인한 뒤 무참히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가족들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충격과 슬픔에 빠졌습니다.

<녹취> 故 이혜진 양 아버지 (2008.3. 17 방송) : “진짜 아프지 않은 곳에서 행복해야지, 잘 있어라. 아빠가 너한테 무슨 말을 하겠니... 그냥 너를 놔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눈물로 딸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혜진 양의 아버지...

굳게 마음을 먹으려 했지만, 사랑하는 막내딸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은 아버지의 가슴을 계속 짓눌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지낸 6년의 세월.

혜진 양의 집에서 또 한 번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날로 건강이 악화되던 혜진이의 아버지가 지난 3일 그만 숨을 거두고 만 겁니다.

올해 53살인 혜진 양의 아버지...

직접적인 사망원인은 급성 심근경색이었지만, 유족들은 ‘술’이 원인이 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녹취> 유족 (음성변조) : “밥을 먹어야 되는데 밥은 안 먹고, 그 놈의 술만 찾는 거예요. 손도 떨리고 막 그러더라고요.”

<녹취> 故 이창근 씨 아내 (음성변조) : “(술이) 깰 만하면 먹고, 깰 만하면 먹고... 집하고 회사밖에 몰랐던 사람이 (딸 사건 후) 하루아침에 이렇게 망가져서 가슴이 쓰리고 아프죠. 당사자는 얼마나 힘들겠어요. 오죽하면 그랬겠어요.”

늦둥이로 얻은 10살짜리 막내 딸 혜진이를 보낸 뒤, 술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보냈다는 故 이창근 씨.

이웃 주민들에게도 이 씨는 항상 술에 취해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녹취> 이웃 주민 (음성변조) : “항상 길 다니는 것 보면 몸을 못 가누고 다녔어요. 항상 여기 앉아서 술 잡수시고 앉아 계시는데, 술 그만 잡수라고 술병도 뺏어 보기도 하고 그랬는데...”

<기자 멘트>

6년 전 사건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이 씨는 성실하고, 가정적인 아버지이자 남편이었습니다.

하지만 단란했던 한 가정의 행복은 한 순간에 무너져버렸습니다.

<리포트>

성실한 직장인으로, 또 자상한 아버지와 남편으로 남부럽지 않은 화목한 가정을 꾸렸던 이 씨.

하지만 딸을 잃고 난 뒤 이 씨는 가눌 수없는 슬픔을 술로 달래 왔습니다.

<녹취> 조문객 (음성변조) : “전에는 직장이 있어서 차도 사고, 집도 사고 그랬어요. 생전에 (이 씨) 저 사람 생활력이 강했는데, 딸이 그러고 나니까 그냥 삶의 낙을 잃어버리면서...”

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둬야 했고, 가족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이 더해지면서 이중고를 겪어야 했습니다.

<녹취> 故 이창근 씨 아내 (음성변조) : “도시가스비도 못 낼 정도로 힘들었어요. 내 월급 갖고 애들 키우는 것도 힘들고, 생활하다보면 돈이 없어요. 너무 막막하더라고요.”

남겨진 가족들의 고통은 계속됐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건은 사람들의 관심과 기억에서 잊혀져 갔습니다.

지난해 12월 열린 혜진이의 6주기 추모식.

단 네 사람만이 참석했던 추모식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쓸쓸했습니다.

<녹취> 나주봉(회장/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 모임) : “그때 저하고요, (다른) 실종 가족 한분하고, 혜진이 아버지하고, 운전해 줬던 분이 있어요. 넷이 조촐하게 지내고 왔습니다. 이런 사건이 자꾸 잊혀서 그런지...”

딸의 묘비 앞에 선 혜진이 아버지의 표정은 추모식 만큼이나 허전하고 쓸쓸해보였다고 합니다.

아무 말없이 눈물만 흘리며... 혜진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고 하는데요...

<녹취> 나주봉(회장/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 모임) : “(내가) 이게 마지막 추모제가 될 것 같다고 혜진이 보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그 말을 들은 혜진이 아버지가 아이의 묘비를 쓰다듬으면서 한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어요.”

식사도 거르고, 술로 버틴 6년의 세월 동안 혜진이 아버지의 건강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돼 있었습니다.

<녹취> 경찰 관계자 (음성변조) “(사망진단서에) 직접 사인은 급성심근경색이고요, 간경화가 진행이 돼서 간암으로 추정이 된다고 적혀있네요. 간이 거의 살 가망이 없을 정도로 굳었다고 하더라고요.”

몸과 마음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이 씨, 결국 그렇게 혜진이의 곁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녹취> 故 이창근 씨 누나 (음성변조) : “막내가 (동생을) 많이 따랐는데 뭐라고 말을 하겠어요. 속상해가지고, 아기 (묘소) 가서도 항상 울고 그렇게 항상 그랬어요.”

<녹취> 나주봉(회장/전국 미아·실종 가족찾기 시민의 모임) : “(혜진이가) 아빠한테 귀여움을 많이 받았나 봐요. 회사 갔다 오면 아빠한테 매달려서 용돈 500원만 줘, 1000원 줘 이랬다는 모습, 그런 모습들을 기억하고 가슴 아파했어요. ”

고통 속에 세상을 떠났을 딸 생각에 술 없이는 하루도 버티기 힘들었던 아버지...

6년의 괴로움 끝에 숨진 이 씨의 유골은 어제 그토록 보고싶어 하던 딸의 곁에 함께 묻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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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유괴·살해된 혜진 아버지, 딸 곁으로…
    • 입력 2014-03-06 08:51:39
    • 수정2014-03-06 10: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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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크리스마스에 경기도 안양에서 두 아이가 납치돼 숨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기억하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두 아이의 이름은 혜진이와 예슬입니다.

그런데 당시 피해 어린이 중 한 명인 혜진 양의 아버지가 최근 건강이 악화 돼 숨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이승훈 기자와 얘기 나눠봅니다.

당연히 그렇겠지만 아이를 먼저 떠나보내고 많이 괴로워했다고 들었어요?

<기자 멘트>

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딸을 먼저 보낸 아버지의 마음.

무엇으로 표현을 할 수 있을까요?

혜진양의 아버지는 지난 6년 동안 딸은 잃은 충격과 슬픔 그리고 그리움에 식사를 거르고 술에 의존해 하루하루를 버텨왔다고 합니다.

오늘 뉴스 따라잡기에서는 혜진양 가족의 이 안타까운 사연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기억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사건.

지난 2007년 12월 크리스마스 날 경기도 안양의 초등학교에 다니던 혜진이와 예슬이는 연락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두 아이가 사라진 그날 저녁, 혜진이네 다섯 식구는 함께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기로 약속했었습니다.

<녹취> 故 이혜진 양 아버지(2008. 1. 2 방송) : “(혜진이와 통화하며) 8시에 퇴근한다고 그랬거든요. 크리스마스트리를 몇 시쯤 하면 좋겠냐고, 한 6시쯤 하면 안 돼?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난 네가 알아서 해라 그랬죠.”

대문을 열어 놓은 채 매일 밤을 지새며 딸이 돌아오기만을 바랐던 가족들...

가족들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혜진이와 예슬이는 끝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사건발생 80여일 만에 경찰에 붙잡힌 범인. 한동네에 살던 당시 39살의 정성현이었습니다.

정성현은 사건이 발생한 그날 혜진이와 예슬이에게 접근해 ‘아픈 강아지를 돌봐달라’며 자신의 집으로 유인한 뒤 무참히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가족들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충격과 슬픔에 빠졌습니다.

<녹취> 故 이혜진 양 아버지 (2008.3. 17 방송) : “진짜 아프지 않은 곳에서 행복해야지, 잘 있어라. 아빠가 너한테 무슨 말을 하겠니... 그냥 너를 놔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눈물로 딸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혜진 양의 아버지...

굳게 마음을 먹으려 했지만, 사랑하는 막내딸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은 아버지의 가슴을 계속 짓눌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지낸 6년의 세월.

혜진 양의 집에서 또 한 번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날로 건강이 악화되던 혜진이의 아버지가 지난 3일 그만 숨을 거두고 만 겁니다.

올해 53살인 혜진 양의 아버지...

직접적인 사망원인은 급성 심근경색이었지만, 유족들은 ‘술’이 원인이 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녹취> 유족 (음성변조) : “밥을 먹어야 되는데 밥은 안 먹고, 그 놈의 술만 찾는 거예요. 손도 떨리고 막 그러더라고요.”

<녹취> 故 이창근 씨 아내 (음성변조) : “(술이) 깰 만하면 먹고, 깰 만하면 먹고... 집하고 회사밖에 몰랐던 사람이 (딸 사건 후) 하루아침에 이렇게 망가져서 가슴이 쓰리고 아프죠. 당사자는 얼마나 힘들겠어요. 오죽하면 그랬겠어요.”

늦둥이로 얻은 10살짜리 막내 딸 혜진이를 보낸 뒤, 술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보냈다는 故 이창근 씨.

이웃 주민들에게도 이 씨는 항상 술에 취해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녹취> 이웃 주민 (음성변조) : “항상 길 다니는 것 보면 몸을 못 가누고 다녔어요. 항상 여기 앉아서 술 잡수시고 앉아 계시는데, 술 그만 잡수라고 술병도 뺏어 보기도 하고 그랬는데...”

<기자 멘트>

6년 전 사건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이 씨는 성실하고, 가정적인 아버지이자 남편이었습니다.

하지만 단란했던 한 가정의 행복은 한 순간에 무너져버렸습니다.

<리포트>

성실한 직장인으로, 또 자상한 아버지와 남편으로 남부럽지 않은 화목한 가정을 꾸렸던 이 씨.

하지만 딸을 잃고 난 뒤 이 씨는 가눌 수없는 슬픔을 술로 달래 왔습니다.

<녹취> 조문객 (음성변조) : “전에는 직장이 있어서 차도 사고, 집도 사고 그랬어요. 생전에 (이 씨) 저 사람 생활력이 강했는데, 딸이 그러고 나니까 그냥 삶의 낙을 잃어버리면서...”

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둬야 했고, 가족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이 더해지면서 이중고를 겪어야 했습니다.

<녹취> 故 이창근 씨 아내 (음성변조) : “도시가스비도 못 낼 정도로 힘들었어요. 내 월급 갖고 애들 키우는 것도 힘들고, 생활하다보면 돈이 없어요. 너무 막막하더라고요.”

남겨진 가족들의 고통은 계속됐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건은 사람들의 관심과 기억에서 잊혀져 갔습니다.

지난해 12월 열린 혜진이의 6주기 추모식.

단 네 사람만이 참석했던 추모식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쓸쓸했습니다.

<녹취> 나주봉(회장/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 모임) : “그때 저하고요, (다른) 실종 가족 한분하고, 혜진이 아버지하고, 운전해 줬던 분이 있어요. 넷이 조촐하게 지내고 왔습니다. 이런 사건이 자꾸 잊혀서 그런지...”

딸의 묘비 앞에 선 혜진이 아버지의 표정은 추모식 만큼이나 허전하고 쓸쓸해보였다고 합니다.

아무 말없이 눈물만 흘리며... 혜진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고 하는데요...

<녹취> 나주봉(회장/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 모임) : “(내가) 이게 마지막 추모제가 될 것 같다고 혜진이 보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그 말을 들은 혜진이 아버지가 아이의 묘비를 쓰다듬으면서 한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어요.”

식사도 거르고, 술로 버틴 6년의 세월 동안 혜진이 아버지의 건강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돼 있었습니다.

<녹취> 경찰 관계자 (음성변조) “(사망진단서에) 직접 사인은 급성심근경색이고요, 간경화가 진행이 돼서 간암으로 추정이 된다고 적혀있네요. 간이 거의 살 가망이 없을 정도로 굳었다고 하더라고요.”

몸과 마음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이 씨, 결국 그렇게 혜진이의 곁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녹취> 故 이창근 씨 누나 (음성변조) : “막내가 (동생을) 많이 따랐는데 뭐라고 말을 하겠어요. 속상해가지고, 아기 (묘소) 가서도 항상 울고 그렇게 항상 그랬어요.”

<녹취> 나주봉(회장/전국 미아·실종 가족찾기 시민의 모임) : “(혜진이가) 아빠한테 귀여움을 많이 받았나 봐요. 회사 갔다 오면 아빠한테 매달려서 용돈 500원만 줘, 1000원 줘 이랬다는 모습, 그런 모습들을 기억하고 가슴 아파했어요. ”

고통 속에 세상을 떠났을 딸 생각에 술 없이는 하루도 버티기 힘들었던 아버지...

6년의 괴로움 끝에 숨진 이 씨의 유골은 어제 그토록 보고싶어 하던 딸의 곁에 함께 묻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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