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황당한 수술…멀쩡한 무릎에 메스

입력 2014.03.12 (09:22) 수정 2014.03.13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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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의사가 멀쩡한 무릎에 칼을 댔을까?"

취재진이 병원에서 만난 제보자는 25살의 대학생,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는 배우지망생이다. 군 제대 후인 지난해 10월, 대학에 복학해 무용 수업을 들었는데 스트레칭을 무리하게 한 탓인지 오른쪽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고 한다. '괜찮겠지' 하고 가볍게 넘겼지만 지난달 급격하게 악화돼 병원을 찾았다는 것. 그때까지만 해도 멀쩡한 무릎까지 양쪽 무릎 모두를 수술하는 어이없는 일을 자신이 겪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환자의 통증이 심각했던 탓에 병원을 찾은 지 사흘 만인 2월 초, 수술 날짜가 잡혔다. 이윽고 수술 당일 하반신 마취를 한 채 수술실로 들어가 수술을 기다렸다고 한다. 하지만, 수술은 늦어졌다. 수술 부위를 놓고 의사와 간호사 간에 의견 충돌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간호사들은 환자의 통증이 심했던 오른쪽 무릎이 수술 부위라고 의사에게 이야기했지만 의사는 자신이 기억하기론 왼쪽 무릎이라며 건강한 왼쪽 무릎을 절개해 수술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수술 당시 환자는 수술 부위인 오른쪽 무릎에 깁스까지 하고 있었지만 의사는 자신의 주장대로 멀쩡한 왼쪽 무릎을 절개했다. 하지만 연골 손상 부위를 찾을 수 없었고, 의사는 착오가 생긴 것 같다며 다시 오른쪽 무릎을 수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환자는 당시 자신이 믿고 의지했던 의사가 설마 수술부위를 착각했을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수술실에 누워있는 환자에게 의사란 '절대 믿고 의지해야 할 대상' 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의사의 어이없는 실수 탓에 환자는 양쪽 무릎 모두를 수술한 뒤 지금은 휠체어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한 달 넘게 학교도 못가고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의사가 환자를 착각한 탓이었다. 다른 환자로 착각해 수술뿐 아니라 수술동의서까지 잘못 받았던 것이다. 확인 결과 이 의사는 수술동의서부터 멀쩡한 왼쪽 무릎을 수술 부위로 기재했고 결국 잘못된 수술까지 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의사의 표정이 참담했다. 하지만, 병원 측은 취재에 응할 수 없다며 취재진을 내쫓기에 바빴다. 다짜고짜 카메라와 휴대전화를 보며 녹취를 하는 게 아니냐며 따져묻는가 하면 보도가 될 경우 변호사를 통해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며 으름장까지 놓았다. 취재진을 이렇게 위협하는 수준이라면 힘없는 환자들에게는 어떻게 대할 것인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했다.

병원 측은 또 후속 대책과 관련해 환자가 원하는 대로 상급병실과 보조기기 등을 지원하고 있다며 오히려 이런 문제를 언론에 알린 환자를 탓했다. 심지어 제보 내용이 지난 10일 KBS 9시 뉴스에 방송되자 환자에게 약속한 비용을 제외한 127만 원을 내라고 통보했다고 한다. 결국, 이 환자는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고 병원을 떠났다.

이처럼 의료진의 과실에도 불구하고 수술비 등 추가비용은 환자들이 고스란히 부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소비자원이 발표한 '수술 분쟁 분석 자료'가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 2011년부터 2년 동안 소비자원이 의료 분쟁을 접수해 328건을 조정한 결과, 전체 조정 건수의 68%는 의사 과실이 인정됐다. 특히, 의료사고로 인해 입원기간이 늘어나고 추가 진료비가 발생한 경우에도 70%는 병원이 아닌 환자가 비용을 부담한 것으로 집계됐다. 사실상 병원이 '갑'이고 환자가 '을'인 부당한 '갑을관계',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부조리를 끝맺기 위해서라도 환자 개인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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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황당한 수술…멀쩡한 무릎에 메스
    • 입력 2014-03-12 09:22:54
    • 수정2014-03-13 22:07:15
    취재후·사건후
"설마, 의사가 멀쩡한 무릎에 칼을 댔을까?" 취재진이 병원에서 만난 제보자는 25살의 대학생,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는 배우지망생이다. 군 제대 후인 지난해 10월, 대학에 복학해 무용 수업을 들었는데 스트레칭을 무리하게 한 탓인지 오른쪽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고 한다. '괜찮겠지' 하고 가볍게 넘겼지만 지난달 급격하게 악화돼 병원을 찾았다는 것. 그때까지만 해도 멀쩡한 무릎까지 양쪽 무릎 모두를 수술하는 어이없는 일을 자신이 겪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환자의 통증이 심각했던 탓에 병원을 찾은 지 사흘 만인 2월 초, 수술 날짜가 잡혔다. 이윽고 수술 당일 하반신 마취를 한 채 수술실로 들어가 수술을 기다렸다고 한다. 하지만, 수술은 늦어졌다. 수술 부위를 놓고 의사와 간호사 간에 의견 충돌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간호사들은 환자의 통증이 심했던 오른쪽 무릎이 수술 부위라고 의사에게 이야기했지만 의사는 자신이 기억하기론 왼쪽 무릎이라며 건강한 왼쪽 무릎을 절개해 수술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수술 당시 환자는 수술 부위인 오른쪽 무릎에 깁스까지 하고 있었지만 의사는 자신의 주장대로 멀쩡한 왼쪽 무릎을 절개했다. 하지만 연골 손상 부위를 찾을 수 없었고, 의사는 착오가 생긴 것 같다며 다시 오른쪽 무릎을 수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환자는 당시 자신이 믿고 의지했던 의사가 설마 수술부위를 착각했을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수술실에 누워있는 환자에게 의사란 '절대 믿고 의지해야 할 대상' 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의사의 어이없는 실수 탓에 환자는 양쪽 무릎 모두를 수술한 뒤 지금은 휠체어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한 달 넘게 학교도 못가고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의사가 환자를 착각한 탓이었다. 다른 환자로 착각해 수술뿐 아니라 수술동의서까지 잘못 받았던 것이다. 확인 결과 이 의사는 수술동의서부터 멀쩡한 왼쪽 무릎을 수술 부위로 기재했고 결국 잘못된 수술까지 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의사의 표정이 참담했다. 하지만, 병원 측은 취재에 응할 수 없다며 취재진을 내쫓기에 바빴다. 다짜고짜 카메라와 휴대전화를 보며 녹취를 하는 게 아니냐며 따져묻는가 하면 보도가 될 경우 변호사를 통해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며 으름장까지 놓았다. 취재진을 이렇게 위협하는 수준이라면 힘없는 환자들에게는 어떻게 대할 것인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했다. 병원 측은 또 후속 대책과 관련해 환자가 원하는 대로 상급병실과 보조기기 등을 지원하고 있다며 오히려 이런 문제를 언론에 알린 환자를 탓했다. 심지어 제보 내용이 지난 10일 KBS 9시 뉴스에 방송되자 환자에게 약속한 비용을 제외한 127만 원을 내라고 통보했다고 한다. 결국, 이 환자는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고 병원을 떠났다. 이처럼 의료진의 과실에도 불구하고 수술비 등 추가비용은 환자들이 고스란히 부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소비자원이 발표한 '수술 분쟁 분석 자료'가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 2011년부터 2년 동안 소비자원이 의료 분쟁을 접수해 328건을 조정한 결과, 전체 조정 건수의 68%는 의사 과실이 인정됐다. 특히, 의료사고로 인해 입원기간이 늘어나고 추가 진료비가 발생한 경우에도 70%는 병원이 아닌 환자가 비용을 부담한 것으로 집계됐다. 사실상 병원이 '갑'이고 환자가 '을'인 부당한 '갑을관계',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부조리를 끝맺기 위해서라도 환자 개인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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