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노년의 외로움, 그 참기 힘든 괴로움

입력 2014.03.13 (10:22) 수정 2014.03.13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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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왜 그러시냐고 그러니까, '아이고, 그냥 뭐 살아서 뭐해', 이 얘기만 하시더라고요."

지난 5일 오후 1시 20분쯤, 경기도 의정부시의 한 주민센터. 3층 옥상 난간 앞에 선 79살 정 모 할아버지를, 주민센터 직원들과 경찰이 끌어안고 말렸습니다. 정 할아버지는 뛰어내릴 목적으로 이곳까지 올라왔고, 인근 건물에서 이를 목격한 시민이 급히 112에 신고한 것입니다. 몇 번이나 "뛰어내리겠다"며 몸부림치던 정 씨는 주변의 도움으로 무사히 구조됐습니다.

왜 그런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던 것일까요? 정 할아버지는 자신을 구출해 준 경찰에게 "몇 년 전 아내와 사별한 뒤 너무 외로워서 그랬다"고 토로했습니다.



이보다 앞선 지난 1일, 서울 마포구의 한 단독주택 1층 셋방. 10년 넘게 홀로 살아온 67살 정 모 할아버지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며칠째 우편물이 쌓여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집 주인이 발견해 신고한 것입니다.

당시 정 할아버지는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고, 머리 맡에는 '아저씨, 아주머니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란 글과 함께 100만 원이 든 봉투가 놓여 있었습니다. 방안 서랍에선 '시신은 화장해 달라'는 쪽지와 100만 원이 나왔습니다.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느낀 순간, 그렇게 자신의 장례 비용까지 남기고 외롭게 떠나갔습니다.

정 할아버지는 그 동안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왔지만, 간암을 앓으면서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려 온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때문에 치료도 제때 못 받았습니다. 여기에다 복지 서비스의 혜택도 보지 못했습니다. 도로명 주소가 새롭게 도입되는 과정에서, 관할 구청이 정 씨의 주소지 파악을 잘못해 대상에서 누락된 것입니다.

투신 소동을 빚은 할아버지, 쓸쓸히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 모두 배우자나 자녀 없이 홀로 사는 이른바 '홀몸 노인'입니다. 이런 홀몸 노인이 125만 명에 이릅니다.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 613만 명 가운데 20%나 되는 수준입니다. 이들이 우울증에 걸리는 비율은 누군가와 같이 사는 경우와 비교해 20%가량 높고, 자살률은 세 배나 높다고 합니다.



이유가 뭘까요? 무엇보다 힘든 건 극심한 고독감입니다. 30대 때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세 자녀를 키운 77살 김동호 할머니. 노인 상담소를 찾은 김 할머니는 '남편 없이 혼자 살면서 힘들지 않았냐'는 물음에 한숨부터 쉬었습니다. "쓸쓸하고 적적하고, 그걸 일일이 말을 못하죠. 혼자서 내 마음을 내가 달래고, 막 이런 생각 저런 생각하면 가슴도 콩닥거리고..."



노년기에도 여전한 성(性)에 대한 관심, 바로 이 부분도 배우자가 없이 지내는 노인에게는 적쟎은 스트레스입니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운영하는 '노인 성 상담소'에 이성 교제 등과 관련해 걸려오는 고민 상담 전화만 해마다 천 건을 넘을 정도입니다. 빈곤과 지병 역시 노년기의 주된 고민으로 꼽힙니다. 모두 우울증으로 연결되기 쉬운 요인들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노인들의 정신 건강엔 이미 경고등이 켜진 상태입니다. 인구 10만 명당 노인 자살률을 보면, 우리나라는 2000년 34.2명에서 2010년 80.3명으로 10년 새 2배 넘게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평균적으로 22.5명에서 20.9명으로 줄어든 것과 대조됩니다. 노인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선 이웃 공동체를 회복하는 동시에, 동반자를 찾아주기 위한 사회 전반의 노력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입니다.



이런 노력은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기 시작했습니다. 경기도는 현재 안양과 여주, 연천 등 6곳에서 이른바 '카네이션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노인들의 외로움과 빈곤을 덜어주기 위한 공동 생활 시설로, 마을회관이나 경로당을 리모델링해 시설을 마련했습니다.

홀몸 노인들은 이곳에 모여 서로 말벗이 돼 주면서 외로움을 덜고 있습니다. 종이 가방 손잡이나 딸기잼, 짚풀 공예품 등의 소일거리로 용돈을 벌면서 새로운 삶의 활력도 얻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의 호응은 뜨겁습니다. 안양시 안양동의 '제1호 카네이션 하우스에서 만난 77살 김윤일 할머니. "집에 혼자 있으면 외롭고 쓸데없는 잡념도 생기는데, 여기 오면 그런 생각도 안 들고, 일거리도 있어서 얘기해 가면서 하니까, 정말 행복하고 좋다"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경기도는 내년까지 '카네이션 하우스'를 도내 31개 모든 시·군에 한 곳씩 조성되도록 사업을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 로또 복권 기금 사업 공모에 선정돼 받은 16억9천만 원과 시·군비 7억9천만 원 등 총 24억8천만 원의 사업비을 확보했습니다.



홀몸 노인들의 '황혼 교제'를 위한 '미팅' 프로그램도 마련됐습니다. 경기도 연천군 노인복지관은 오는 24일, 지방자치단체 중에서 전국 최초로 독거 노인들을 위한 중장기 미팅 프로그램인 '두 번째 프러포즈'를 진행합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지역 노인 남녀 각각 15명을 대상으로, 오는 11월까지 9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프로그램입니다. 1대1 맞선과 데이트, 성 교육, 대인 관계 지원 등의 내용으로 이뤄집니다. 전문가의 성 상담과 성 인식 교육, 성병 예방 특강 등도 마련됩니다.

지역 노인들의 반응은 뜨겁습니다. 접수 시한을 3주 가까이 남긴 상태에서 정원이 다 찼습니다. 현재 교제하고 있는 친구와 참가하고 싶다며 함께 지원을 신청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있습니다.

연천군이 이런 프로그램을 마련한 건 역시 높아지는 홀몸 노인 인구 비율, 그리고 노인 자살률 때문입니다. 연천 지역은 2012년 기준으로 65세 이상 노인 인구 9,340명 가운데 홀몸 노인이 2,608명으로, 28%에 이릅니다. 이런 가운데 2007년 이 지역에서 발생한 자살 22건 중 60세 이상이 17명(77%), 2012년엔 19명 중 10명(53%)으로, 당시 경기도 내 노인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이웃나라 일본에선 이런 '노인 미팅'이 오래 전부터 활성화 돼 있습니다. 고령자 전문 소개 업체만 수십 개에 이를 정도입니다. 결혼 정보 시장의 연령대 자체가 변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유례 없는 고령화 속도를 보이는 우리 입장에서도 참고할 만한 부분입니다.

자칫 죽음까지 부르는 노년기의 외로움. 그만큼 해법 마련이 시급합니다. 노년의 무게를 더 이상 홀로 외롭게 감당하지 않도록, 누군가 곁에 있도록, 사회적 차원의 지원을 고민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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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노년의 외로움, 그 참기 힘든 괴로움
    • 입력 2014-03-13 10:22:38
    • 수정2014-03-13 18:51:46
    취재후·사건후
"아니, 왜 그러시냐고 그러니까, '아이고, 그냥 뭐 살아서 뭐해', 이 얘기만 하시더라고요."

지난 5일 오후 1시 20분쯤, 경기도 의정부시의 한 주민센터. 3층 옥상 난간 앞에 선 79살 정 모 할아버지를, 주민센터 직원들과 경찰이 끌어안고 말렸습니다. 정 할아버지는 뛰어내릴 목적으로 이곳까지 올라왔고, 인근 건물에서 이를 목격한 시민이 급히 112에 신고한 것입니다. 몇 번이나 "뛰어내리겠다"며 몸부림치던 정 씨는 주변의 도움으로 무사히 구조됐습니다.

왜 그런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던 것일까요? 정 할아버지는 자신을 구출해 준 경찰에게 "몇 년 전 아내와 사별한 뒤 너무 외로워서 그랬다"고 토로했습니다.



이보다 앞선 지난 1일, 서울 마포구의 한 단독주택 1층 셋방. 10년 넘게 홀로 살아온 67살 정 모 할아버지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며칠째 우편물이 쌓여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집 주인이 발견해 신고한 것입니다.

당시 정 할아버지는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고, 머리 맡에는 '아저씨, 아주머니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란 글과 함께 100만 원이 든 봉투가 놓여 있었습니다. 방안 서랍에선 '시신은 화장해 달라'는 쪽지와 100만 원이 나왔습니다.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느낀 순간, 그렇게 자신의 장례 비용까지 남기고 외롭게 떠나갔습니다.

정 할아버지는 그 동안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왔지만, 간암을 앓으면서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려 온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때문에 치료도 제때 못 받았습니다. 여기에다 복지 서비스의 혜택도 보지 못했습니다. 도로명 주소가 새롭게 도입되는 과정에서, 관할 구청이 정 씨의 주소지 파악을 잘못해 대상에서 누락된 것입니다.

투신 소동을 빚은 할아버지, 쓸쓸히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 모두 배우자나 자녀 없이 홀로 사는 이른바 '홀몸 노인'입니다. 이런 홀몸 노인이 125만 명에 이릅니다.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 613만 명 가운데 20%나 되는 수준입니다. 이들이 우울증에 걸리는 비율은 누군가와 같이 사는 경우와 비교해 20%가량 높고, 자살률은 세 배나 높다고 합니다.



이유가 뭘까요? 무엇보다 힘든 건 극심한 고독감입니다. 30대 때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세 자녀를 키운 77살 김동호 할머니. 노인 상담소를 찾은 김 할머니는 '남편 없이 혼자 살면서 힘들지 않았냐'는 물음에 한숨부터 쉬었습니다. "쓸쓸하고 적적하고, 그걸 일일이 말을 못하죠. 혼자서 내 마음을 내가 달래고, 막 이런 생각 저런 생각하면 가슴도 콩닥거리고..."



노년기에도 여전한 성(性)에 대한 관심, 바로 이 부분도 배우자가 없이 지내는 노인에게는 적쟎은 스트레스입니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운영하는 '노인 성 상담소'에 이성 교제 등과 관련해 걸려오는 고민 상담 전화만 해마다 천 건을 넘을 정도입니다. 빈곤과 지병 역시 노년기의 주된 고민으로 꼽힙니다. 모두 우울증으로 연결되기 쉬운 요인들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노인들의 정신 건강엔 이미 경고등이 켜진 상태입니다. 인구 10만 명당 노인 자살률을 보면, 우리나라는 2000년 34.2명에서 2010년 80.3명으로 10년 새 2배 넘게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평균적으로 22.5명에서 20.9명으로 줄어든 것과 대조됩니다. 노인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선 이웃 공동체를 회복하는 동시에, 동반자를 찾아주기 위한 사회 전반의 노력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입니다.



이런 노력은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기 시작했습니다. 경기도는 현재 안양과 여주, 연천 등 6곳에서 이른바 '카네이션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노인들의 외로움과 빈곤을 덜어주기 위한 공동 생활 시설로, 마을회관이나 경로당을 리모델링해 시설을 마련했습니다.

홀몸 노인들은 이곳에 모여 서로 말벗이 돼 주면서 외로움을 덜고 있습니다. 종이 가방 손잡이나 딸기잼, 짚풀 공예품 등의 소일거리로 용돈을 벌면서 새로운 삶의 활력도 얻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의 호응은 뜨겁습니다. 안양시 안양동의 '제1호 카네이션 하우스에서 만난 77살 김윤일 할머니. "집에 혼자 있으면 외롭고 쓸데없는 잡념도 생기는데, 여기 오면 그런 생각도 안 들고, 일거리도 있어서 얘기해 가면서 하니까, 정말 행복하고 좋다"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경기도는 내년까지 '카네이션 하우스'를 도내 31개 모든 시·군에 한 곳씩 조성되도록 사업을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 로또 복권 기금 사업 공모에 선정돼 받은 16억9천만 원과 시·군비 7억9천만 원 등 총 24억8천만 원의 사업비을 확보했습니다.



홀몸 노인들의 '황혼 교제'를 위한 '미팅' 프로그램도 마련됐습니다. 경기도 연천군 노인복지관은 오는 24일, 지방자치단체 중에서 전국 최초로 독거 노인들을 위한 중장기 미팅 프로그램인 '두 번째 프러포즈'를 진행합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지역 노인 남녀 각각 15명을 대상으로, 오는 11월까지 9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프로그램입니다. 1대1 맞선과 데이트, 성 교육, 대인 관계 지원 등의 내용으로 이뤄집니다. 전문가의 성 상담과 성 인식 교육, 성병 예방 특강 등도 마련됩니다.

지역 노인들의 반응은 뜨겁습니다. 접수 시한을 3주 가까이 남긴 상태에서 정원이 다 찼습니다. 현재 교제하고 있는 친구와 참가하고 싶다며 함께 지원을 신청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있습니다.

연천군이 이런 프로그램을 마련한 건 역시 높아지는 홀몸 노인 인구 비율, 그리고 노인 자살률 때문입니다. 연천 지역은 2012년 기준으로 65세 이상 노인 인구 9,340명 가운데 홀몸 노인이 2,608명으로, 28%에 이릅니다. 이런 가운데 2007년 이 지역에서 발생한 자살 22건 중 60세 이상이 17명(77%), 2012년엔 19명 중 10명(53%)으로, 당시 경기도 내 노인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이웃나라 일본에선 이런 '노인 미팅'이 오래 전부터 활성화 돼 있습니다. 고령자 전문 소개 업체만 수십 개에 이를 정도입니다. 결혼 정보 시장의 연령대 자체가 변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유례 없는 고령화 속도를 보이는 우리 입장에서도 참고할 만한 부분입니다.

자칫 죽음까지 부르는 노년기의 외로움. 그만큼 해법 마련이 시급합니다. 노년의 무게를 더 이상 홀로 외롭게 감당하지 않도록, 누군가 곁에 있도록, 사회적 차원의 지원을 고민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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