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독일에 묻다 ② 경제대국으로 우뚝

입력 2014.03.15 (07:57) 수정 2014.03.15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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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눈부시게 파란 하늘 아래, 네 마리의 말이 이끄는 전차가 당장 튀어나갈 듯합니다.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는 전 세계에서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연일 북적입니다.

서방세계와 동구권간 첨예한 대치를 상징했던 검문소.

이른바 '체크포인트' 냉전의 상흔을 간직한 곳이지만 이젠 빼놓을 수 없는 관광명솝니다.

분단의 아픔을 웅변했던 베를린 장벽의 자취는 잘 보존돼 있지만 이젠 추억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통일 이전 동독지역에 살다 통일 후 아예 서독지역으로 이사 온 콘라드씨.

콘라드 씨처럼 분단의 최전방 현장에 살았던 사람이 아니곤, 이젠 장벽이 세워졌던 이곳의 표식조차 발견하기 쉽지 않습니다.

<인터뷰> 콘라드 무호(독일주민/45세) : "여기가 베를린 장벽입니다. 이쪽에 서베를린 쪽 장벽이 있었고, 저쪽에 동베를린 쪽 장벽이 있었습니다. 이 두 장벽 사이는 죽음의 사각지대였습니다. 여기 보시는 이 철판 표시는 이 자리에서 동독을 넘어 서독으로 넘어가려다 실패한 사람을 기억하기 위한 표식입니다. 그리고 이쪽 표시는 보시다시피 서독 쪽에 있죠. 동독에서 넘어온 이 사람은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베를린을 찾는 관광객은 지난해만 천만 명.

이 가운데 40퍼센트가 외국인입니다.
  
통일 전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쿠담거리와 같은 번화가는 물론 구동독지역을 상징하는 알렉산더 광장도 전 세계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코스가 됐습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인파는 관광객뿐만이 아닙니다.

베를린 시내의 거대한 전시장.
   
이른바 메세(Messe)라 불리는 박람회 개최를 위해 베를린 시가 건설했습니다.

전자제품을 포함해 각종 산업제품, 가정용품은 물론 관광박람회까지 열립니다.

매년 160여 개의 대형 박람회가 열릴 정도로 통일 이후 독일은 전 세계인을 빨아들이는 박람회국가로 거듭났습니다.

<인터뷰> 살렝 본스메르(모로코 전시 기획자) : "여기 오면 세상의 모든 나라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나라마다 적합한 프로젝트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인터뷰> 캐시 미네토스(그리스 린도스 호텔 소유주) : "여기에선 독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온 협력업체 관계자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여기에 온 이윱니다."

전 세계 바이어와 유력회사들이 이곳 전시장을 찾다 보니 독일이 아닌 다른 나라들이 주최국이 돼서 이곳에서 행사를 주관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인터뷰> 아스트리트 찬트(베를린 박람회장 언론담당관) : "통일 이전에도 48개의 관광박람회가 있었고 많은 업체가 참석했었습니다. 그렇지만 독일통일 후 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통일은 관광박람회 활성화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전체 유럽시장을 부흥시키는데도 이바지했다고 봅니다."

통일 이후 산업의 변화와 발전을 상징하듯 구 동독권 기업들의 진출도 활발합니다.

상대적으로 낙후됐던 구 동독.

멕켈렌부르크 포어포메른 주 지역에도 연간 천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인구 160만 명 가운데 40만 명이 관광산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토비아스 보이텐도르프(멕켈렌부르크 포어포메른주 관광협회 부회장) : "통일 이후 동독 지역 관광산업 집중 육성 정책으로 최고 인력들이 양성됐고 우수한 인프라가 구축됐습니다."

구 동독지역의 대표적 도시가운데 하나인 드레스덴.

인구 50만의 이 도시엔 언제나 활력이 넘쳐납니다.

한때 독일의 피렌체로 불리던 경제문화의 중심지였지만 2차 대전당시 연합국의 폭격으로 도시 대부분이 파괴됐던 아픔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분단 뒤엔 40여 년간 경제적으로 쇠락했다 통일 이후 극적으로 회생하게 됩니다.

통일 당시 독일정부는 동서독 통합의 의지를 입증하기 위해 경제는 물론 문화의 복원에도 집중합니다.

2차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무너져 내린 이 건물잔해가 전쟁이 남긴 상황과 분단의 역사를 상징한다면 통일 이후 완벽하게 복원된 이 성당은 진정한 통합에 대한 독일인들 의지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 있는 도심을 벗어나면 세계적인 연구소들이 즐비합니다.

독일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드레스덴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통일독일이 문화 복원과 동시에 동독주민들이 안정적으로 생업에 종사할 수 있는 환경조성에 힘쓴 결괍니다.

통일 이후 독일정부는 취약한 동독도시들의 특성을 고려해 대표적인 거점산업을 육성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드레스덴은 정보통신과 과학기술의 도시로 거듭나게 됐습니다.

산업발전에 있어 모든 분야를 골고루 지원하기보다는 특정분야에 집중투자해 다른 분야로 효과가 퍼져나가도록 하는 이른바 등대정책이 주효했다는 평갑니다.

구 동독지역 라이프니치의 한 자동차 공장입니다.

거대한 주차장에는 직원들이 세워놓은 출퇴근용 차량의 물결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철학과 음악의 도시 라이프니치에 자동차 산업이 육성되면서 주민들의 생활반경도 더 넓어졌습니다.

<인터뷰> 하이케 만케(BMW 자동차 생산직 직원) : "자동차 공장 때문에 이 지역 실업률이 낮아졌습니다. 여기에 출근하기 위해 100킬로미터에서 1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주민들도 큰 충격 없이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공장 내부의 생산시설이나, 직원들이 접하는 다양한  근로시스템은 손쉽게 삶의 양식을 바꾸게 되는 요인입니다.

거점산업 집중 육성은 일을 통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교육의 장 역할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인터뷰> 사라 나이쯔(BMW  직업교육생/19세) : "여기에서 중도 하차하지 않고 직업교육을 받으려고 노력했는데, 그 목표를 달성해서 기쁩니다. (젊은이들이 여기에서 직업교육을 받는 것을 많이 선호합니까?) 그럼요. 물론입니다."
  
지역 거점산업육성을 표방한 등대정책에 따라 독일기업들도 안정적으로 그 지역 투자가 가능했다는 평갑니다.

등대정책으로 지역경제를 육성하는데 성공한 독일은 이제 성장의 혜택이 골고루 미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게하르트 하임폴트(박사/할레 경제연구소) : "물론 크게 봐서는 지금까지 성공적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기업 규모나 연구 개발 부문 등에서 나타난 단점들을 보완해야 합니다."

지금 이곳 독일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말 가운데 하나는 '추 쿤푸트(Zufunft)', '미래'라는 단어입니다.

전쟁이 남긴 과거의 상흔을 딛고 통합에 따른 시련을 이겨낸 현재를 넘어서 이제 두려움이 없이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독일인들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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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독일에 묻다 ② 경제대국으로 우뚝
    • 입력 2014-03-15 08:40:36
    • 수정2014-03-15 10: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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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눈부시게 파란 하늘 아래, 네 마리의 말이 이끄는 전차가 당장 튀어나갈 듯합니다.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는 전 세계에서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연일 북적입니다.

서방세계와 동구권간 첨예한 대치를 상징했던 검문소.

이른바 '체크포인트' 냉전의 상흔을 간직한 곳이지만 이젠 빼놓을 수 없는 관광명솝니다.

분단의 아픔을 웅변했던 베를린 장벽의 자취는 잘 보존돼 있지만 이젠 추억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통일 이전 동독지역에 살다 통일 후 아예 서독지역으로 이사 온 콘라드씨.

콘라드 씨처럼 분단의 최전방 현장에 살았던 사람이 아니곤, 이젠 장벽이 세워졌던 이곳의 표식조차 발견하기 쉽지 않습니다.

<인터뷰> 콘라드 무호(독일주민/45세) : "여기가 베를린 장벽입니다. 이쪽에 서베를린 쪽 장벽이 있었고, 저쪽에 동베를린 쪽 장벽이 있었습니다. 이 두 장벽 사이는 죽음의 사각지대였습니다. 여기 보시는 이 철판 표시는 이 자리에서 동독을 넘어 서독으로 넘어가려다 실패한 사람을 기억하기 위한 표식입니다. 그리고 이쪽 표시는 보시다시피 서독 쪽에 있죠. 동독에서 넘어온 이 사람은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베를린을 찾는 관광객은 지난해만 천만 명.

이 가운데 40퍼센트가 외국인입니다.
  
통일 전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쿠담거리와 같은 번화가는 물론 구동독지역을 상징하는 알렉산더 광장도 전 세계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코스가 됐습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인파는 관광객뿐만이 아닙니다.

베를린 시내의 거대한 전시장.
   
이른바 메세(Messe)라 불리는 박람회 개최를 위해 베를린 시가 건설했습니다.

전자제품을 포함해 각종 산업제품, 가정용품은 물론 관광박람회까지 열립니다.

매년 160여 개의 대형 박람회가 열릴 정도로 통일 이후 독일은 전 세계인을 빨아들이는 박람회국가로 거듭났습니다.

<인터뷰> 살렝 본스메르(모로코 전시 기획자) : "여기 오면 세상의 모든 나라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나라마다 적합한 프로젝트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인터뷰> 캐시 미네토스(그리스 린도스 호텔 소유주) : "여기에선 독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온 협력업체 관계자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여기에 온 이윱니다."

전 세계 바이어와 유력회사들이 이곳 전시장을 찾다 보니 독일이 아닌 다른 나라들이 주최국이 돼서 이곳에서 행사를 주관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인터뷰> 아스트리트 찬트(베를린 박람회장 언론담당관) : "통일 이전에도 48개의 관광박람회가 있었고 많은 업체가 참석했었습니다. 그렇지만 독일통일 후 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통일은 관광박람회 활성화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전체 유럽시장을 부흥시키는데도 이바지했다고 봅니다."

통일 이후 산업의 변화와 발전을 상징하듯 구 동독권 기업들의 진출도 활발합니다.

상대적으로 낙후됐던 구 동독.

멕켈렌부르크 포어포메른 주 지역에도 연간 천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인구 160만 명 가운데 40만 명이 관광산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토비아스 보이텐도르프(멕켈렌부르크 포어포메른주 관광협회 부회장) : "통일 이후 동독 지역 관광산업 집중 육성 정책으로 최고 인력들이 양성됐고 우수한 인프라가 구축됐습니다."

구 동독지역의 대표적 도시가운데 하나인 드레스덴.

인구 50만의 이 도시엔 언제나 활력이 넘쳐납니다.

한때 독일의 피렌체로 불리던 경제문화의 중심지였지만 2차 대전당시 연합국의 폭격으로 도시 대부분이 파괴됐던 아픔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분단 뒤엔 40여 년간 경제적으로 쇠락했다 통일 이후 극적으로 회생하게 됩니다.

통일 당시 독일정부는 동서독 통합의 의지를 입증하기 위해 경제는 물론 문화의 복원에도 집중합니다.

2차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무너져 내린 이 건물잔해가 전쟁이 남긴 상황과 분단의 역사를 상징한다면 통일 이후 완벽하게 복원된 이 성당은 진정한 통합에 대한 독일인들 의지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 있는 도심을 벗어나면 세계적인 연구소들이 즐비합니다.

독일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드레스덴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통일독일이 문화 복원과 동시에 동독주민들이 안정적으로 생업에 종사할 수 있는 환경조성에 힘쓴 결괍니다.

통일 이후 독일정부는 취약한 동독도시들의 특성을 고려해 대표적인 거점산업을 육성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드레스덴은 정보통신과 과학기술의 도시로 거듭나게 됐습니다.

산업발전에 있어 모든 분야를 골고루 지원하기보다는 특정분야에 집중투자해 다른 분야로 효과가 퍼져나가도록 하는 이른바 등대정책이 주효했다는 평갑니다.

구 동독지역 라이프니치의 한 자동차 공장입니다.

거대한 주차장에는 직원들이 세워놓은 출퇴근용 차량의 물결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철학과 음악의 도시 라이프니치에 자동차 산업이 육성되면서 주민들의 생활반경도 더 넓어졌습니다.

<인터뷰> 하이케 만케(BMW 자동차 생산직 직원) : "자동차 공장 때문에 이 지역 실업률이 낮아졌습니다. 여기에 출근하기 위해 100킬로미터에서 1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주민들도 큰 충격 없이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공장 내부의 생산시설이나, 직원들이 접하는 다양한  근로시스템은 손쉽게 삶의 양식을 바꾸게 되는 요인입니다.

거점산업 집중 육성은 일을 통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교육의 장 역할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인터뷰> 사라 나이쯔(BMW  직업교육생/19세) : "여기에서 중도 하차하지 않고 직업교육을 받으려고 노력했는데, 그 목표를 달성해서 기쁩니다. (젊은이들이 여기에서 직업교육을 받는 것을 많이 선호합니까?) 그럼요. 물론입니다."
  
지역 거점산업육성을 표방한 등대정책에 따라 독일기업들도 안정적으로 그 지역 투자가 가능했다는 평갑니다.

등대정책으로 지역경제를 육성하는데 성공한 독일은 이제 성장의 혜택이 골고루 미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게하르트 하임폴트(박사/할레 경제연구소) : "물론 크게 봐서는 지금까지 성공적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기업 규모나 연구 개발 부문 등에서 나타난 단점들을 보완해야 합니다."

지금 이곳 독일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말 가운데 하나는 '추 쿤푸트(Zufunft)', '미래'라는 단어입니다.

전쟁이 남긴 과거의 상흔을 딛고 통합에 따른 시련을 이겨낸 현재를 넘어서 이제 두려움이 없이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독일인들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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