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본문 영역

상세페이지

[취재후] 故 오 대위, 두 번 죽이렵니까?
입력 2014.03.21 (16:12) 수정 2014.03.21 (16:33) 취재후
"이 같은 가혹 행위는 선진 육군의 사기와 미래를 저해하는 요소임은 분명한 바, 보다 엄중하게 벌해야 할 것이고, 그것이 곧 군사법제도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자 시대적 요청이라 하겠다." - 오 대위 사건 판결문 中

20일 오후 3시, 강원도 춘천 2군사령부 내 보통군사법원. 재판은 당초 예정보다 1시간이나 늦게 개정했습니다. '군 기강', '군내 법치주의', '엄벌'... 주문을 읽어 내려가는 주심 판사의 입에서 이런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피고인의 혐의도 모두 인정됐습니다. '혹시나' 했던 유족들은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재판정 밖에선 궂은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10월 16일, 강원도 화천 육군 15사단에 근무하던 여군 장교 오 모 대위가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오 대위의 일기장 등에선 '직속상관으로부터 성희롱 발언에 시달렸다', '10개월 동안 매일 야근을 시켰다'는 등의 내용이 나왔습니다. 당시 오 대위는 약혼자가 있었고, 결혼을 앞둔 상태였습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노 모 소령은 구속됐습니다. 직권남용에 따른 가혹행위와 성적 언행을 통한 모욕, 어깨를 주무르는 신체접촉을 통한 강제추행 등 4가지 혐의가 적용됐습니다. 재판은 작년 12월 19일 시작됐습니다. 성범죄 특성상 피해 여성의 진술 자체가 결정적인 증거 역할을 하지만, 오 대위는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노 소령 측은 무죄로 맞섰습니다. 오 대위의 일기장 등에 적힌 피해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필요했습니다. 바로 오 대위의 '부대 출입 기록'입니다.

이상한 일이 시작된 건 이때부터입니다. 군 부대 출입 기록은 위병소 컴퓨터뿐만 아니라 관리 서버, 부대 정보처 등에도 남게 됩니다. 하지만 2군단 재판부의 문서 제출 명령에 직할부대인 15사단 측은 "출입기록이 삭제됐다"고 답변했습니다. 사건 직후, 출입기록 사본을 받아 보관하고 있던 유족 측으로선 납득이 가질 않았습니다. 지난달 초, 이 기록을 재판부에 냈습니다. 그 즈음, 가해자 측 역시 기록 사본을 제출했습니다. 원본은 사라지고 없다는데 피해자와 가해자 측 모두 사본을 내놓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더 황당한 건 기록 내용입니다. 유족 측 기록에는 오 대위의 잦은 야근 내역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반대로 가해자 측 기록에는 대부분 '18시 정시 퇴근'한 걸로 돼 있었습니다. 어느 한쪽의 기록 사본이 위조나 변조됐을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이 와중에 지난 13일, 15사단 측은 돌연 '출입기록의 백업 파일을 찾았다'는 사실을 군 검찰에 알려옵니다. 유족 측이 보관하고 있던 기록과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변론은 이미 종결됐고,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유족 측은 육군이 고의적으로 재판을 방해했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관심은 가해자 측이 내놓은 기록의 출처입니다. 부대 측과 공모해 가짜 기록을 생산해 냈다면 이건 또 다른 범죄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육군의 설명을 들어보겠습니다. 먼저 "기록이 삭제됐다"고 한 부분.

"문서 제출 요구를 받은 부대 장교가 검색 권한이 제한되어 있어 해당자를 검색해도 나오지 않자 출입기록이 없는 것으로 오인해 '계정삭제로 출입 기록이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두 번째, 가해자 측이 엉뚱한 기록을 제출한 부분입니다.

"작년 8월 쯤에 갑자기 전산오류가 났습니다. 그래서 최근 기록이 아닌 과거의 기록이 검색되는 현상이 생겼습니다. 이에 대비해서 백업 파일을 만들었고, 그걸 나중에 찾아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가해자 측에 제공된 건 전산오류가 났던 바로 그 원본이었습니다."

두 가지 모두 해프닝일 뿐, 사실을 은폐하거나 재판을 방해할 목적이 없었다는 설명입니다.



"이번 사건의 경우 강제추행의 정도가 약한 점, 피고인은 아무런 전과가 없는 초범인 점 등을 참작하여 다음과 같이 선고한다.

1. 피고인을 징역 2년에 처한다. 2. 다만, 이 판결 확정일로부터 4년간 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 오 대위 사건 판결문 中


판사의 주문이 모두 끝났습니다. 혐의는 인정되나 죄질이 나쁘지 않다는 판단입니다. 통상 법원은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수사.재판에 협조적이거나 피해자 측과의 합의 여부 등을 주요 양형 감경 사유로 듭니다. 하지만 이 사건의 경우 세 가지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3페이지짜리 판결문 가운데 양형 참작 사유는 단 두 줄에 불과했습니다.

☞ 오 대위 판결문 다운로드 [PDF]

판시 내용을 이렇게 바꿔 말하면 어떨까요. "노 소령의 행동은 '깃털'만큼 가벼웠는데, 정작 오 대위의 행동은 태산만큼 무거웠다". 노 소령은 풀려났습니다. 가슴을 쓸던 유족들은 이내 가슴을 쳤습니다. 재판정 밖에선 여전히 궂은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아래는 오 대위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입니다. 오 대위의 명복을 빕니다!

"이 억울함 제발 풀어주세요. 누구라도... 저는 명예가 중요한 이 나라의 장교입니다. 정의가 있다면 저를 명예로이 해 주십시오" 
  • [취재후] 故 오 대위, 두 번 죽이렵니까?
    • 입력 2014-03-21 16:12:26
    • 수정2014-03-21 16:33:20
    취재후
"이 같은 가혹 행위는 선진 육군의 사기와 미래를 저해하는 요소임은 분명한 바, 보다 엄중하게 벌해야 할 것이고, 그것이 곧 군사법제도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자 시대적 요청이라 하겠다." - 오 대위 사건 판결문 中

20일 오후 3시, 강원도 춘천 2군사령부 내 보통군사법원. 재판은 당초 예정보다 1시간이나 늦게 개정했습니다. '군 기강', '군내 법치주의', '엄벌'... 주문을 읽어 내려가는 주심 판사의 입에서 이런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피고인의 혐의도 모두 인정됐습니다. '혹시나' 했던 유족들은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재판정 밖에선 궂은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10월 16일, 강원도 화천 육군 15사단에 근무하던 여군 장교 오 모 대위가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오 대위의 일기장 등에선 '직속상관으로부터 성희롱 발언에 시달렸다', '10개월 동안 매일 야근을 시켰다'는 등의 내용이 나왔습니다. 당시 오 대위는 약혼자가 있었고, 결혼을 앞둔 상태였습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노 모 소령은 구속됐습니다. 직권남용에 따른 가혹행위와 성적 언행을 통한 모욕, 어깨를 주무르는 신체접촉을 통한 강제추행 등 4가지 혐의가 적용됐습니다. 재판은 작년 12월 19일 시작됐습니다. 성범죄 특성상 피해 여성의 진술 자체가 결정적인 증거 역할을 하지만, 오 대위는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노 소령 측은 무죄로 맞섰습니다. 오 대위의 일기장 등에 적힌 피해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필요했습니다. 바로 오 대위의 '부대 출입 기록'입니다.

이상한 일이 시작된 건 이때부터입니다. 군 부대 출입 기록은 위병소 컴퓨터뿐만 아니라 관리 서버, 부대 정보처 등에도 남게 됩니다. 하지만 2군단 재판부의 문서 제출 명령에 직할부대인 15사단 측은 "출입기록이 삭제됐다"고 답변했습니다. 사건 직후, 출입기록 사본을 받아 보관하고 있던 유족 측으로선 납득이 가질 않았습니다. 지난달 초, 이 기록을 재판부에 냈습니다. 그 즈음, 가해자 측 역시 기록 사본을 제출했습니다. 원본은 사라지고 없다는데 피해자와 가해자 측 모두 사본을 내놓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더 황당한 건 기록 내용입니다. 유족 측 기록에는 오 대위의 잦은 야근 내역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반대로 가해자 측 기록에는 대부분 '18시 정시 퇴근'한 걸로 돼 있었습니다. 어느 한쪽의 기록 사본이 위조나 변조됐을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이 와중에 지난 13일, 15사단 측은 돌연 '출입기록의 백업 파일을 찾았다'는 사실을 군 검찰에 알려옵니다. 유족 측이 보관하고 있던 기록과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변론은 이미 종결됐고,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유족 측은 육군이 고의적으로 재판을 방해했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관심은 가해자 측이 내놓은 기록의 출처입니다. 부대 측과 공모해 가짜 기록을 생산해 냈다면 이건 또 다른 범죄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육군의 설명을 들어보겠습니다. 먼저 "기록이 삭제됐다"고 한 부분.

"문서 제출 요구를 받은 부대 장교가 검색 권한이 제한되어 있어 해당자를 검색해도 나오지 않자 출입기록이 없는 것으로 오인해 '계정삭제로 출입 기록이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두 번째, 가해자 측이 엉뚱한 기록을 제출한 부분입니다.

"작년 8월 쯤에 갑자기 전산오류가 났습니다. 그래서 최근 기록이 아닌 과거의 기록이 검색되는 현상이 생겼습니다. 이에 대비해서 백업 파일을 만들었고, 그걸 나중에 찾아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가해자 측에 제공된 건 전산오류가 났던 바로 그 원본이었습니다."

두 가지 모두 해프닝일 뿐, 사실을 은폐하거나 재판을 방해할 목적이 없었다는 설명입니다.



"이번 사건의 경우 강제추행의 정도가 약한 점, 피고인은 아무런 전과가 없는 초범인 점 등을 참작하여 다음과 같이 선고한다.

1. 피고인을 징역 2년에 처한다. 2. 다만, 이 판결 확정일로부터 4년간 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 오 대위 사건 판결문 中


판사의 주문이 모두 끝났습니다. 혐의는 인정되나 죄질이 나쁘지 않다는 판단입니다. 통상 법원은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수사.재판에 협조적이거나 피해자 측과의 합의 여부 등을 주요 양형 감경 사유로 듭니다. 하지만 이 사건의 경우 세 가지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3페이지짜리 판결문 가운데 양형 참작 사유는 단 두 줄에 불과했습니다.

☞ 오 대위 판결문 다운로드 [PDF]

판시 내용을 이렇게 바꿔 말하면 어떨까요. "노 소령의 행동은 '깃털'만큼 가벼웠는데, 정작 오 대위의 행동은 태산만큼 무거웠다". 노 소령은 풀려났습니다. 가슴을 쓸던 유족들은 이내 가슴을 쳤습니다. 재판정 밖에선 여전히 궂은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아래는 오 대위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입니다. 오 대위의 명복을 빕니다!

"이 억울함 제발 풀어주세요. 누구라도... 저는 명예가 중요한 이 나라의 장교입니다. 정의가 있다면 저를 명예로이 해 주십시오" 
kbs가 손수 골랐습니다. 네이버에서도 보세요.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