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김재형 “편안하게 들을만한 성악음반 냈죠”

입력 2014.04.01 (16:39) 수정 2014.04.01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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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가에게 '꿈의 무대'로 불리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와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코벤트가든)를 비롯해 빈 슈타츠오퍼, 바르셀로나의 리세우 극장 등 세계 주요 무대에서 주역으로 활약해온 테너 김재형(41).

세계무대에서 '알프레드 김'(Alfred Kim)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그가 최근 첫 가곡 음반 '모르겐'(Morgen·내일)을 냈다.

그런데 음반이 어딘지 좀 독특하다.

성악가들이 보통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것과 달리 그는 자신의 목소리에 어쿠스틱 기타 반주와 반도네온을 곁들였다.

첫 솔로 음반에서 이토록 과감한 모험을 감행한 그를 1일 낮 경희대 음악대학 연구실에서 만났다.

"기획의도는 간단합니다. 레스토랑 화장실에 가면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올 때가 많은데 관현악이나 피아노곡은 나와도 성악곡은 잘 안 나와요.

아무래도 '악악' 소리를 내니 편안하게 듣긴 어렵죠. 성악도 기악이나 현악처럼 부드럽고 편안하게 들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쿠스틱 기타와 반도네온을 반주에 사용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피아노 선율에 목소리를 얹는 편이 훨씬 수월했겠지만,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순간 듣는 이에게는 '부담스러운' 기존 성악 음반과 다를 것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도였던 만큼 작업에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했다.

"기타 반주가 제 성량과 맞지 않는 부분도 많았고 클래식 음악에서 흘러나오는 반주부의 묘미를 기타로 모두 끌어내기도 쉽지 않아 오랜 작업이 필요했어요. 곡을 선정했다가도 기타 편곡이 어려운 곡은 바꾸기도 했고요."

결과물은 만족스러웠다.

의도대로 '가볍고 편안한' 성악 음반이면서도 클래식 음악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평소 상상하지 못한 악기의 조합이 듣는 사람의 귀를 상당히 만족시키더군요. 다음 음반은 더 특이한 악기를 동원해 만들고 싶습니다."

앨범 발매와 더불어 그는 오는 27일 예술의전당에서 7년 만에 독창회도 연다.

"그동안 오페라 무대에 줄곧 섰는데 이제는 학구적인 레퍼토리뿐 아니라 가벼운 곡도 잘 부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독창회에서는 제가 부르고픈 곡을 골라 잘 다듬어 들려 드릴 수 있으니 관객에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기도 하고요."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국내 무대에서 먼저 주목을 받은 그는 1998년 독일 뮌헨 ARD 국제 음악콩쿠르 성악 부문에서 1위 없는 2위와 특별상을 받으며 외국 무대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어 1999년 이탈리아 토리노 왕립 오페라에서 푸치니의 '나비부인'에 출연하며 유럽 무대에 데뷔했고 2002년 파리 플라시도 도밍고 국제 성악 콩쿠르에서 특별상을 받고서 줄곧 세계무대를 누볐다.

그런 그가 2012년 경희대 음악대학 성악과 조교수로 임용되며 한국행을 선택했을 때 주위에서는 한결같이 그에게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냈다고 한다.

"아무래도 학교에 몸담고 있으니 학기 중에는 국내에 거주해야 하고 여러 가지로 제약이 많죠. 외국 오페라 극장들과 공연 일정을 조율할 때도 학교 일정을 먼저 조정해야 한다고 하면 캐스팅을 꺼려요. 실제로 외국에서의 출연 제의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기는 합니다. (웃음)"

이렇게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그가 강단에 서는 이유는 자신이 외국 무대에 진출하면서 겪은 시행착오를 후배들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외국에서 성악가로 생활하고 활동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저는 이미 아니까 외국 진출을 꿈꾸는 실력 있는 후배들에게 그런 정보를 전해준다면 도움도 되고 제가 이루지 못한 것들을 그들이 대신 해 줄 수 있을 것이라 믿고 한국행을 결정했습니다."

다행히 그의 이런 선택에 '희생'만 따른 것은 아니었다.

잃은 것만큼 얻은 것도 많다.

"이제 오페라 공연도 즐길 수 있게 됐습니다. 외국에서 생활할 땐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있었고 다른 출연자들과 대화를 나눌 여유도 없었어요. 지금은 공연 때마다 장거리를 오가야 하는 불편은 있지만, 무대에 서는 것이 즐겁습니다. 듣는 분이나 노래를 부르는 저도 함께 공연을 즐길 수 있게 되더군요."

앞으로 국내 무대에서 그를 자주 만날 수 있을 듯하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니 그 기간에 많은 관객에게 제 노래를 더 들려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앞으로 다양한 무대를 통해 국내 관객을 더 많이 찾아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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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너 김재형 “편안하게 들을만한 성악음반 냈죠”
    • 입력 2014-04-01 16:39:43
    • 수정2014-04-01 16:47:44
    연합뉴스
성악가에게 '꿈의 무대'로 불리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와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코벤트가든)를 비롯해 빈 슈타츠오퍼, 바르셀로나의 리세우 극장 등 세계 주요 무대에서 주역으로 활약해온 테너 김재형(41).

세계무대에서 '알프레드 김'(Alfred Kim)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그가 최근 첫 가곡 음반 '모르겐'(Morgen·내일)을 냈다.

그런데 음반이 어딘지 좀 독특하다.

성악가들이 보통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것과 달리 그는 자신의 목소리에 어쿠스틱 기타 반주와 반도네온을 곁들였다.

첫 솔로 음반에서 이토록 과감한 모험을 감행한 그를 1일 낮 경희대 음악대학 연구실에서 만났다.

"기획의도는 간단합니다. 레스토랑 화장실에 가면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올 때가 많은데 관현악이나 피아노곡은 나와도 성악곡은 잘 안 나와요.

아무래도 '악악' 소리를 내니 편안하게 듣긴 어렵죠. 성악도 기악이나 현악처럼 부드럽고 편안하게 들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쿠스틱 기타와 반도네온을 반주에 사용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피아노 선율에 목소리를 얹는 편이 훨씬 수월했겠지만,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순간 듣는 이에게는 '부담스러운' 기존 성악 음반과 다를 것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도였던 만큼 작업에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했다.

"기타 반주가 제 성량과 맞지 않는 부분도 많았고 클래식 음악에서 흘러나오는 반주부의 묘미를 기타로 모두 끌어내기도 쉽지 않아 오랜 작업이 필요했어요. 곡을 선정했다가도 기타 편곡이 어려운 곡은 바꾸기도 했고요."

결과물은 만족스러웠다.

의도대로 '가볍고 편안한' 성악 음반이면서도 클래식 음악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평소 상상하지 못한 악기의 조합이 듣는 사람의 귀를 상당히 만족시키더군요. 다음 음반은 더 특이한 악기를 동원해 만들고 싶습니다."

앨범 발매와 더불어 그는 오는 27일 예술의전당에서 7년 만에 독창회도 연다.

"그동안 오페라 무대에 줄곧 섰는데 이제는 학구적인 레퍼토리뿐 아니라 가벼운 곡도 잘 부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독창회에서는 제가 부르고픈 곡을 골라 잘 다듬어 들려 드릴 수 있으니 관객에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기도 하고요."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국내 무대에서 먼저 주목을 받은 그는 1998년 독일 뮌헨 ARD 국제 음악콩쿠르 성악 부문에서 1위 없는 2위와 특별상을 받으며 외국 무대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어 1999년 이탈리아 토리노 왕립 오페라에서 푸치니의 '나비부인'에 출연하며 유럽 무대에 데뷔했고 2002년 파리 플라시도 도밍고 국제 성악 콩쿠르에서 특별상을 받고서 줄곧 세계무대를 누볐다.

그런 그가 2012년 경희대 음악대학 성악과 조교수로 임용되며 한국행을 선택했을 때 주위에서는 한결같이 그에게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냈다고 한다.

"아무래도 학교에 몸담고 있으니 학기 중에는 국내에 거주해야 하고 여러 가지로 제약이 많죠. 외국 오페라 극장들과 공연 일정을 조율할 때도 학교 일정을 먼저 조정해야 한다고 하면 캐스팅을 꺼려요. 실제로 외국에서의 출연 제의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기는 합니다. (웃음)"

이렇게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그가 강단에 서는 이유는 자신이 외국 무대에 진출하면서 겪은 시행착오를 후배들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외국에서 성악가로 생활하고 활동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저는 이미 아니까 외국 진출을 꿈꾸는 실력 있는 후배들에게 그런 정보를 전해준다면 도움도 되고 제가 이루지 못한 것들을 그들이 대신 해 줄 수 있을 것이라 믿고 한국행을 결정했습니다."

다행히 그의 이런 선택에 '희생'만 따른 것은 아니었다.

잃은 것만큼 얻은 것도 많다.

"이제 오페라 공연도 즐길 수 있게 됐습니다. 외국에서 생활할 땐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있었고 다른 출연자들과 대화를 나눌 여유도 없었어요. 지금은 공연 때마다 장거리를 오가야 하는 불편은 있지만, 무대에 서는 것이 즐겁습니다. 듣는 분이나 노래를 부르는 저도 함께 공연을 즐길 수 있게 되더군요."

앞으로 국내 무대에서 그를 자주 만날 수 있을 듯하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니 그 기간에 많은 관객에게 제 노래를 더 들려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앞으로 다양한 무대를 통해 국내 관객을 더 많이 찾아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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