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누가 패션을 사양산업이라 했나?

입력 2014.04.01 (17:34) 수정 2014.04.01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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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은 국경이 없습니다. 뉴욕에서 몸에 붙는‘스키니 진’이 유행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통이 넓은 바지가 인기를 끄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전염병처럼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것이 바로 이 패션, 유행입니다. 그럼 자동차는 어떤가요? 우리는 중대형 차를 선호하지만 유럽과 일본은 도로 사정이나 주차 문제 등으로 전통적으로 작은 차가 대세입니다. 요즘 미국에선 전기 차 열풍이라지만 우린 여전히 망설여집니다. 이 때문에 현지화 전략이 필요합니다.음식은 더 심합니다. 한식 세계화가 쉽지 않은 것은 나라마다 뿌리깊은 음식 문화가 있어 새로운 음식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패션이 다른 산업에 비해 글로벌화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최근 한류는 우리 패션 산업에 호재로 작용합니다. 중국에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열풍에 '천송이 코트'까지 덩달아 인기를 끈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패션 산업을 등한시해왔습니다. 큰 돈을 벌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하지만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해마다 발표하는 세계 억만장자 순위는 이를 반증합니다. 우리나라 최고 부자인 이건희 회장은 102위로 100위권에도 못 들었지만 스페인 의류브랜드 ‘자라’의 아만시오 오르테가 회장은 3위, 스웨덴 H&M과 프랑스 루이비통, 일본 유니클로 회장도 모두 50위 안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옷만 잘 팔아도 막대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게다가 패션 시장 규모는 무려 2천조 원으로 IT 시장과 맞먹는 거대한 시장입니다.



이번에 인터뷰를 한 패션 디자이너 정욱준 씨는 우리 패션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인물 가운데 한 명입니다. 정욱준 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10년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표적 패션쇼인 '서울 패션위크' 10주년 관련 취재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당시 정욱준 씨는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디자이너만 설 수 있다는 파리 패션쇼에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세계 무대에서는 이제 갓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신인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정욱준 씨는 훌쩍 성장해있습니다. 티셔츠에 잠수복 소재를 사용한 디자인이 패션계의 찬사를 받으면서 자신만의 디자인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파리 패션협회의 정회원 인정도 받았습니다. 전 세계 유명 패션쇼에 수차례 초청 제의를 받는 등 글로벌 브랜드로의 가능성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이제 4-5년 뒤엔 또 어디에서 어떤 활약을 펼치고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최근 유니클로나 자라 같은 글로벌 SPA 의류업체들의 공세로 토종 브랜드들이 설 자리를 잃으면서 우리 패션 산업이 위기인 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이들의 진출을 막을 수도 없고 막아봤자 역부족입니다. 국경이 없는 패션의 특성상 유행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고, 해외 직접 구매 등 유통 채널도 다양화됐기 때문입니다. 결국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들을 넘어설 창의적인 디자인과 마케팅, 유통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특히 이제는 한국적인 디자인을 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세계 어디서든 통하는 디자인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나라에서도 이른바 ‘명품 브랜드’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먼저 동대문을 중심으로 한,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역동적인 의류 생산 시스템이 있습니다. 또 올해 런던 패션쇼 개막을 한국인 신진 디자이너가 맡는 등 잠재력이 있는 패션 인재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상품화시키고 이를 글로벌 시장에 진출시키는 데는 디자이너 혼자만의 힘으로는 벅찹니다. 그래서 정부나 대기업 차원의 지원이 필요해 보입니다. IT나 자동차 못지않게 산업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창조경제' 멀리서 찾을 거 있나요? 연간 2천조 원이나 되는 규모지만 R&D도 필요없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되는, 패션이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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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누가 패션을 사양산업이라 했나?
    • 입력 2014-04-01 17:34:29
    • 수정2014-04-01 17:37:31
    취재후·사건후
패션은 국경이 없습니다. 뉴욕에서 몸에 붙는‘스키니 진’이 유행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통이 넓은 바지가 인기를 끄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전염병처럼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것이 바로 이 패션, 유행입니다. 그럼 자동차는 어떤가요? 우리는 중대형 차를 선호하지만 유럽과 일본은 도로 사정이나 주차 문제 등으로 전통적으로 작은 차가 대세입니다. 요즘 미국에선 전기 차 열풍이라지만 우린 여전히 망설여집니다. 이 때문에 현지화 전략이 필요합니다.음식은 더 심합니다. 한식 세계화가 쉽지 않은 것은 나라마다 뿌리깊은 음식 문화가 있어 새로운 음식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패션이 다른 산업에 비해 글로벌화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특히 최근 한류는 우리 패션 산업에 호재로 작용합니다. 중국에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열풍에 '천송이 코트'까지 덩달아 인기를 끈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패션 산업을 등한시해왔습니다. 큰 돈을 벌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하지만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해마다 발표하는 세계 억만장자 순위는 이를 반증합니다. 우리나라 최고 부자인 이건희 회장은 102위로 100위권에도 못 들었지만 스페인 의류브랜드 ‘자라’의 아만시오 오르테가 회장은 3위, 스웨덴 H&M과 프랑스 루이비통, 일본 유니클로 회장도 모두 50위 안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옷만 잘 팔아도 막대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게다가 패션 시장 규모는 무려 2천조 원으로 IT 시장과 맞먹는 거대한 시장입니다.



이번에 인터뷰를 한 패션 디자이너 정욱준 씨는 우리 패션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인물 가운데 한 명입니다. 정욱준 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10년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표적 패션쇼인 '서울 패션위크' 10주년 관련 취재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당시 정욱준 씨는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디자이너만 설 수 있다는 파리 패션쇼에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세계 무대에서는 이제 갓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신인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정욱준 씨는 훌쩍 성장해있습니다. 티셔츠에 잠수복 소재를 사용한 디자인이 패션계의 찬사를 받으면서 자신만의 디자인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파리 패션협회의 정회원 인정도 받았습니다. 전 세계 유명 패션쇼에 수차례 초청 제의를 받는 등 글로벌 브랜드로의 가능성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이제 4-5년 뒤엔 또 어디에서 어떤 활약을 펼치고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최근 유니클로나 자라 같은 글로벌 SPA 의류업체들의 공세로 토종 브랜드들이 설 자리를 잃으면서 우리 패션 산업이 위기인 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이들의 진출을 막을 수도 없고 막아봤자 역부족입니다. 국경이 없는 패션의 특성상 유행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고, 해외 직접 구매 등 유통 채널도 다양화됐기 때문입니다. 결국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들을 넘어설 창의적인 디자인과 마케팅, 유통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특히 이제는 한국적인 디자인을 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세계 어디서든 통하는 디자인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나라에서도 이른바 ‘명품 브랜드’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먼저 동대문을 중심으로 한,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역동적인 의류 생산 시스템이 있습니다. 또 올해 런던 패션쇼 개막을 한국인 신진 디자이너가 맡는 등 잠재력이 있는 패션 인재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상품화시키고 이를 글로벌 시장에 진출시키는 데는 디자이너 혼자만의 힘으로는 벅찹니다. 그래서 정부나 대기업 차원의 지원이 필요해 보입니다. IT나 자동차 못지않게 산업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창조경제' 멀리서 찾을 거 있나요? 연간 2천조 원이나 되는 규모지만 R&D도 필요없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되는, 패션이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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