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서울대 공대 교수의 화려한 ‘스펙’…빠진 하나는?

입력 2014.04.11 (16:38) 수정 2014.04.1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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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학에서 받은 박사학위, 국제적으로 저명한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만 10편, 국제 학술대회에 초청되어 발표한 이력까지.. 최근 서울대에 임용된 교수님 이력서는 그야말로 화려했습니다. 줄줄이 영어로 되어있는데 다 읽어보기가 송구스러울 정도였죠. 교수가 아무나 되는 겁니까. 이 정도 연구 실적은 있어야 서울대 교수가 될 수 있는 거겠죠?

하지만 이력서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왠지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이 분이 공부를 못 했냐고요?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니면 연구가 부족하냐고요? 아닙니다. 공부도 잘 하셨고 힘든 연구에 온 열정을 쏟아서 교수가 되셨으리라 생각이 들지만, 이 교수님이 바로 공대 교수님이라는 점이 아쉬운 겁니다. 공과대학이라 하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쌓은 경력이 있다든지, 실용적인 연구를 한 이력이 있을 법도 한데, 서울대에서 공부를 시작해서 다시 서울대 공대 교수가 되기까지, 어느 산업 현장에 몸을 담아봤던 이력은 찾아보기가 힘들었습니다.

이것은 이 교수님만의 얘기는 아닙니다. 지금 한국에서 공대 교수가 되려면, 산업 현장에서 일한 경력보다는 무조건 국제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 수가 많아야 하는 게 현실이니까요.



산업 발전을 통한 경제 개발 시절. 전국의 공과대학이 경제 발전의 동력이 되었던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전국의 공과대학은 150 곳이 넘고, 이런 공대에서 한 해에 6만 9천 명씩 졸업생을 배출합니다. 하지만 4년제 공대를 나온 청년들을 뽑아놔도 현장에서 막상 써먹으려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가르쳐야 한다는 불만이 높죠.

철강 협회장이 서울대 공대를 찾아와서, 돈은 필요한 만큼 댈 테니 철강 관련 교육 좀 시켜달라고 사정했다는 얘기는 유명한 일화입니다. 이제 공대에는 철강이나 제련과 같은 분야는 강의도 개설되지 않고, 그런 강의를 할 교수도 없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다들 논문 쓰기 좋은 학술연구나 나노, 바이오 같은 미래 산업으로 몰려서, 정작 우리 산업계가 요구하는 분야의 연구는 하지 않는다는 얘기죠. 어디서부터 문제가 꼬인 걸까요?



첫째로 대학은 여기저기서 발표하는 대학 랭킹을 신경 써야 하니 SCI 논문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지요. 교수들은 교수들대로 논문을 많이 써야 좋은 평가를 받아서 부교수, 정교수로 승진도 할 수 있으니 당연히 논문에 매달립니다. 석사·박사 과정에 있는 대학원생들도 국제 학술지에 실릴만한 논문을 써야 졸업을 할 수 있으니 공대에서는 첫째도 논문, 둘째도 논문, 마지막도 논문입니다.



하지만 기업들은 먼 장래에나 개발이 가능할 것 같은 연구를 반길 리 없죠. 당장 생산하고 있는 물품을 개선하거나 제품의 불량률을 줄일 수 있는 연구를 원하는데, 공대 연구실에서는 이런 연구를 해봐야 국제 학술지에 실릴 논문이 나올 리가 없는 겁니다. 이렇다 보니 산학 협력 프로젝트가 들어와도 공대 대학원생들도 참여하는 걸 꺼리는 실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연구를 하더라도 논문이 나올만한 연구를 해야지, 실제 현장에서 필요한 연구를 하다가는 졸업도 못할 판이라는 얘기지요.

너도 나도 연구에만 매달려 점점 산업현장과 멀어져 가면 공대가 과연 '공과대학'이라는 이름에 맞는 곳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이러다가는 학술 연구만 하는 '제2의 자연과학대학'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산업체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실제 기업들에게 도움을 줄만한 연구도 좀 하도록 하자. 그러려면 제일 먼저, 대학의 한가운데 자리한 교수 채용 방식을 바꿔야겠다는 게 공대 혁신의 출발점인 것이지요.

예를 들어 지금은 학술 연구에 쏠려있는 교수 평가 지표에 산학협력 분야를 넣는 방법이 있습니다. 논문 발표로 대표되는 학술 실적이 없어도 산학협력 쪽의 성과가 좋으면 바로 교수가 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지요.

전체 학계에 파급효과가 큰 서울대학교부터 올 가을 전임교수 2명은 산업체 경력이 있는 사람으로 뽑겠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그동안 교수를 뽑을 때 산업체 경력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던 방식에 변화를 주겠다는 건데요, 새롭게 열린 이 자리에 어떤 사람들이 지원 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대학 연구실에서 하던 연구 그만두라는 건 아닙니다. 연구도 해야지요. 하지만 전국의 공대 150여 곳에서 죄다 학술 논문 쓰는 연구에만 매달려서는 될 일도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연구를 할 분들은 연구를 계속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걸 잘 하는 분들은 수업을 많이 하는데, 그런 한편으로 산업체에서 좋은 성과를 올리신 분들도 교수가 되어 공대생들에게 현장 감각을 전해주라는 게 이번에 나온 공대혁신방안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대목입니다.

또 연구 휴식을 하는 공대 교수들을 산업체 현장에 파견하고, 공대생을 중소·중견 기업에서 일을 배우며 학점을 따게 하는 인턴제를 강화하는 방안, 그리고 이런 산학협력 실적을 평가해서 대학 재정 지원에 반영하겠다는 계획도 나왔습니다. 공대가 스스로 얼마나 혁신을 해서 현장에서 함께 숨 쉬는 공대, 우리 경제를 끌고 나가는 공대로 변신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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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서울대 공대 교수의 화려한 ‘스펙’…빠진 하나는?
    • 입력 2014-04-11 16:38:02
    • 수정2014-04-11 16:44:14
    취재후·사건후
미국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학에서 받은 박사학위, 국제적으로 저명한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만 10편, 국제 학술대회에 초청되어 발표한 이력까지.. 최근 서울대에 임용된 교수님 이력서는 그야말로 화려했습니다. 줄줄이 영어로 되어있는데 다 읽어보기가 송구스러울 정도였죠. 교수가 아무나 되는 겁니까. 이 정도 연구 실적은 있어야 서울대 교수가 될 수 있는 거겠죠?

하지만 이력서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왠지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이 분이 공부를 못 했냐고요?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니면 연구가 부족하냐고요? 아닙니다. 공부도 잘 하셨고 힘든 연구에 온 열정을 쏟아서 교수가 되셨으리라 생각이 들지만, 이 교수님이 바로 공대 교수님이라는 점이 아쉬운 겁니다. 공과대학이라 하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쌓은 경력이 있다든지, 실용적인 연구를 한 이력이 있을 법도 한데, 서울대에서 공부를 시작해서 다시 서울대 공대 교수가 되기까지, 어느 산업 현장에 몸을 담아봤던 이력은 찾아보기가 힘들었습니다.

이것은 이 교수님만의 얘기는 아닙니다. 지금 한국에서 공대 교수가 되려면, 산업 현장에서 일한 경력보다는 무조건 국제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 수가 많아야 하는 게 현실이니까요.



산업 발전을 통한 경제 개발 시절. 전국의 공과대학이 경제 발전의 동력이 되었던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전국의 공과대학은 150 곳이 넘고, 이런 공대에서 한 해에 6만 9천 명씩 졸업생을 배출합니다. 하지만 4년제 공대를 나온 청년들을 뽑아놔도 현장에서 막상 써먹으려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가르쳐야 한다는 불만이 높죠.

철강 협회장이 서울대 공대를 찾아와서, 돈은 필요한 만큼 댈 테니 철강 관련 교육 좀 시켜달라고 사정했다는 얘기는 유명한 일화입니다. 이제 공대에는 철강이나 제련과 같은 분야는 강의도 개설되지 않고, 그런 강의를 할 교수도 없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다들 논문 쓰기 좋은 학술연구나 나노, 바이오 같은 미래 산업으로 몰려서, 정작 우리 산업계가 요구하는 분야의 연구는 하지 않는다는 얘기죠. 어디서부터 문제가 꼬인 걸까요?



첫째로 대학은 여기저기서 발표하는 대학 랭킹을 신경 써야 하니 SCI 논문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지요. 교수들은 교수들대로 논문을 많이 써야 좋은 평가를 받아서 부교수, 정교수로 승진도 할 수 있으니 당연히 논문에 매달립니다. 석사·박사 과정에 있는 대학원생들도 국제 학술지에 실릴만한 논문을 써야 졸업을 할 수 있으니 공대에서는 첫째도 논문, 둘째도 논문, 마지막도 논문입니다.



하지만 기업들은 먼 장래에나 개발이 가능할 것 같은 연구를 반길 리 없죠. 당장 생산하고 있는 물품을 개선하거나 제품의 불량률을 줄일 수 있는 연구를 원하는데, 공대 연구실에서는 이런 연구를 해봐야 국제 학술지에 실릴 논문이 나올 리가 없는 겁니다. 이렇다 보니 산학 협력 프로젝트가 들어와도 공대 대학원생들도 참여하는 걸 꺼리는 실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연구를 하더라도 논문이 나올만한 연구를 해야지, 실제 현장에서 필요한 연구를 하다가는 졸업도 못할 판이라는 얘기지요.

너도 나도 연구에만 매달려 점점 산업현장과 멀어져 가면 공대가 과연 '공과대학'이라는 이름에 맞는 곳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이러다가는 학술 연구만 하는 '제2의 자연과학대학'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산업체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실제 기업들에게 도움을 줄만한 연구도 좀 하도록 하자. 그러려면 제일 먼저, 대학의 한가운데 자리한 교수 채용 방식을 바꿔야겠다는 게 공대 혁신의 출발점인 것이지요.

예를 들어 지금은 학술 연구에 쏠려있는 교수 평가 지표에 산학협력 분야를 넣는 방법이 있습니다. 논문 발표로 대표되는 학술 실적이 없어도 산학협력 쪽의 성과가 좋으면 바로 교수가 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지요.

전체 학계에 파급효과가 큰 서울대학교부터 올 가을 전임교수 2명은 산업체 경력이 있는 사람으로 뽑겠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그동안 교수를 뽑을 때 산업체 경력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던 방식에 변화를 주겠다는 건데요, 새롭게 열린 이 자리에 어떤 사람들이 지원 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대학 연구실에서 하던 연구 그만두라는 건 아닙니다. 연구도 해야지요. 하지만 전국의 공대 150여 곳에서 죄다 학술 논문 쓰는 연구에만 매달려서는 될 일도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연구를 할 분들은 연구를 계속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걸 잘 하는 분들은 수업을 많이 하는데, 그런 한편으로 산업체에서 좋은 성과를 올리신 분들도 교수가 되어 공대생들에게 현장 감각을 전해주라는 게 이번에 나온 공대혁신방안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대목입니다.

또 연구 휴식을 하는 공대 교수들을 산업체 현장에 파견하고, 공대생을 중소·중견 기업에서 일을 배우며 학점을 따게 하는 인턴제를 강화하는 방안, 그리고 이런 산학협력 실적을 평가해서 대학 재정 지원에 반영하겠다는 계획도 나왔습니다. 공대가 스스로 얼마나 혁신을 해서 현장에서 함께 숨 쉬는 공대, 우리 경제를 끌고 나가는 공대로 변신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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