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독도 침탈 전초기지를 가다 (5월 10일 방송)

입력 2014.05.08 (18:53) 수정 2014.05.1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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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요즘 초등학교 교과서에까지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억지 주장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이 오늘날까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게 한 잘못된 역사의 원인을 제공한 섬이자 독도 수탈의 전진기지였던 시마네 현의 오키 섬을 특파원이 취재했다.

오키 섬은 일본 남서쪽 시마네 현에서 북쪽으로 90킬로미터, 배로 2시간 반가량 걸리는 인구 만 5천여 명의 작은 섬이다. 대한제국이 일제에 병합되기 직전, 이곳 오키 섬의 수산업자들은 독도의 조업권을 얻기 위해 중앙정부에까지 가서 치열한 로비전을 폈다. 독도의 물개 잡이 때문이었다. 오키 섬의 자연생태계를 보여주는 자료관에는 물개 가죽과 그 가죽으로 만든 최고급 가방이 전시돼 있다.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독도 물개’ 가죽으로 만든 것이다.

일본은 러일전쟁 당시 군사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우리 땅인 독도를 1905년 시마네 현으로 몰래 편입시켰다. 러일전쟁이 끝난 뒤에는 본격적으로 독도의 자원을 수탈하기 시작했다. 1905년 8월, 일본의 첫 독도 시찰 기록을 보면 당시 수천만 마리의 물개들이 바위마다 무리를 지어 장관을 이뤘다고 기록돼 있다. 오키 섬의 수산업자 나가이 요사부로는 1903년 시험 조업 당시 300엔, 현재 시세로 우리 돈 6천만 원을 투자해 불과 일주일 만에 약 3억 4천만 원의 수익을 올렸다. 일제가 독도를 시마네 현에 강제 편입한 1905년, 독도조업권을 얻은 이 수산업자는 1912년까지 모두 11,000여 마리의 물개를 잡았다. 해마다 1300~1400마리를 잡은 것이다. 당시 물개 한 마리의 가죽 가격은 현재 시세로 300만 원. 물개 가죽으로만 연간 40억 원이 넘는 수익을 올렸던 것이다. 당시 시마네 현 어민들에게 ‘독도’는 ‘황금알을 낳는 섬’이었다.

일본 수산업자들이 독도 물개를 무차별 남획하면서 1900년대 독도를 뒤덮었던 독도 물개는 1930년대 들어 자취를 감췄다. 독도의 생태계가 바뀌자 물개 대신 전복과 성게, 미역 등 독도의 해산물이 최고 품질의 특산품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일제는 독도 해산물을 채취하기 위해 한국 해녀들을 제주도에서 독도까지 끌고 왔다. 해녀들은 독도에 갇혀 길게는 6년, 평균 4년 정도 일하며 전복을 채취했다. 한 일본 언론은 한국 해녀들이 낮에는 전복을 따고 밤에는 일본 어부들의 술시중까지 들었다고 보도했다. 독도 수산자원의 씨가 마르도록 수탈하고 제주 해녀들까지 동원해 수탈을 이어간 것이다. 독도 수탈의 전진 기지 시마네 현 오키 섬에는 수탈의 증거가 그대로 남아 있다.

영국 학생들, ‘등록금 폭탄' 피해 외국으로

담당 : 박장범 특파원


영국 학생들이 값비싼 영국 대학을 등지고 다른 나라로 유학을 떠나고 있다. 영국 정부가 재정적자 감축을 목표로 교육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1년치 등록금이 세 배나 뛰어 올랐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후 짊어지게 되는 1억 원이 넘는 ‘빚 폭탄’을 피해 저렴한 학비를 찾아 외국으로 떠나는 셈이다. 부자나라 영국의 가난한 젊은 세대들을 취재했다.

영국 청년 아담 후세인은 영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지난해 9월 네덜란드 남동부 마스트리히트대학에 입학했다. 수업의 90%가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아담처럼 영국에서 바로 유학을 오더라도 쉽게 적응이 가능하다. 지금 이 대학에서 공부하는 영국 유학생은 모두 436명이다. 2008년에 72명에 불과했던 유학생 수가 5년 만에 6배나 늘었다. 이 대학에 개설된 스카이프 입시 상담실에도 영국 고등학생들의 입학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상담을 받고 입학 전형이 시작되면 학교를 직접 방문하기도 한다.

영국 학생들이 네덜란드 대학으로 몰리는 이유는 엄청나게 비싸진 등록금에 있다. 재정적자 감축을 목표로 내건 영국 정부가 교육 예산을 대폭 삭감했기 때문이다. 1년에 3천 파운드였던 영국 대학의 등록금이 2012년 9천 파운드로 3배나 올랐다. 학비와 생활비를 대출을 통해 충당하는 대부분의 영국 대학생들에게 등록금 인상은 결국 빚 증가로 이어졌다. 영국 대학 졸업생의 1인당 평균 부채는 1억 원으로 늘어났다.

이미 영국 대학에 다니고 있던 재학생들이 외국 대학으로 옮겨가거나, 갑자기 오른 학비 때문에 학업을 포기했던 학생들이 외국에서 다시 학업을 이어가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영국 유학생이 많은 네덜란드에서는 한 달에 56시간 일을 하면 급여 외에도 500유로의 보조금을 받기 때문에 빚을 지지 않고도 대학을 졸업할 수 있다.

등록금 인상 후 영국에서는 대학생 숫자가 감소했다. 인상 첫해였던 2012년 잉글랜드의 대학생 수는 무려 13%나 급감했다. 대신 외국 유학을 고려하는 영국 학생 수가 크게 늘자 다른 나라의 대학들이 앞 다퉈 영국으로 달려와 신입생 모집경쟁에 나서는 새로운 현상까지 생겼다. 유럽연합 출신 유학생들에게도 자국 학생들과 똑같은 혜택을 주는 것은 네덜란드의 미래 전략이다. 졸업 후 네덜란드에서 자리를 잡으면 학자금 지원 이상으로 국가 재정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교육 예산을 삭감하면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경쟁력이 약화된다는 것이 네덜란드 교육계가 공유하는 철학이기도 하다. 영국 학생들은 정부의 등록금 인상 정책으로 더 많은 학생들이 영국 대학을 외면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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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5-08 18:53:18
    • 수정2014-05-15 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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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요즘 초등학교 교과서에까지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억지 주장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이 오늘날까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게 한 잘못된 역사의 원인을 제공한 섬이자 독도 수탈의 전진기지였던 시마네 현의 오키 섬을 특파원이 취재했다.

오키 섬은 일본 남서쪽 시마네 현에서 북쪽으로 90킬로미터, 배로 2시간 반가량 걸리는 인구 만 5천여 명의 작은 섬이다. 대한제국이 일제에 병합되기 직전, 이곳 오키 섬의 수산업자들은 독도의 조업권을 얻기 위해 중앙정부에까지 가서 치열한 로비전을 폈다. 독도의 물개 잡이 때문이었다. 오키 섬의 자연생태계를 보여주는 자료관에는 물개 가죽과 그 가죽으로 만든 최고급 가방이 전시돼 있다.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독도 물개’ 가죽으로 만든 것이다.

일본은 러일전쟁 당시 군사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우리 땅인 독도를 1905년 시마네 현으로 몰래 편입시켰다. 러일전쟁이 끝난 뒤에는 본격적으로 독도의 자원을 수탈하기 시작했다. 1905년 8월, 일본의 첫 독도 시찰 기록을 보면 당시 수천만 마리의 물개들이 바위마다 무리를 지어 장관을 이뤘다고 기록돼 있다. 오키 섬의 수산업자 나가이 요사부로는 1903년 시험 조업 당시 300엔, 현재 시세로 우리 돈 6천만 원을 투자해 불과 일주일 만에 약 3억 4천만 원의 수익을 올렸다. 일제가 독도를 시마네 현에 강제 편입한 1905년, 독도조업권을 얻은 이 수산업자는 1912년까지 모두 11,000여 마리의 물개를 잡았다. 해마다 1300~1400마리를 잡은 것이다. 당시 물개 한 마리의 가죽 가격은 현재 시세로 300만 원. 물개 가죽으로만 연간 40억 원이 넘는 수익을 올렸던 것이다. 당시 시마네 현 어민들에게 ‘독도’는 ‘황금알을 낳는 섬’이었다.

일본 수산업자들이 독도 물개를 무차별 남획하면서 1900년대 독도를 뒤덮었던 독도 물개는 1930년대 들어 자취를 감췄다. 독도의 생태계가 바뀌자 물개 대신 전복과 성게, 미역 등 독도의 해산물이 최고 품질의 특산품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일제는 독도 해산물을 채취하기 위해 한국 해녀들을 제주도에서 독도까지 끌고 왔다. 해녀들은 독도에 갇혀 길게는 6년, 평균 4년 정도 일하며 전복을 채취했다. 한 일본 언론은 한국 해녀들이 낮에는 전복을 따고 밤에는 일본 어부들의 술시중까지 들었다고 보도했다. 독도 수산자원의 씨가 마르도록 수탈하고 제주 해녀들까지 동원해 수탈을 이어간 것이다. 독도 수탈의 전진 기지 시마네 현 오키 섬에는 수탈의 증거가 그대로 남아 있다.

영국 학생들, ‘등록금 폭탄' 피해 외국으로

담당 : 박장범 특파원


영국 학생들이 값비싼 영국 대학을 등지고 다른 나라로 유학을 떠나고 있다. 영국 정부가 재정적자 감축을 목표로 교육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1년치 등록금이 세 배나 뛰어 올랐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후 짊어지게 되는 1억 원이 넘는 ‘빚 폭탄’을 피해 저렴한 학비를 찾아 외국으로 떠나는 셈이다. 부자나라 영국의 가난한 젊은 세대들을 취재했다.

영국 청년 아담 후세인은 영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지난해 9월 네덜란드 남동부 마스트리히트대학에 입학했다. 수업의 90%가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아담처럼 영국에서 바로 유학을 오더라도 쉽게 적응이 가능하다. 지금 이 대학에서 공부하는 영국 유학생은 모두 436명이다. 2008년에 72명에 불과했던 유학생 수가 5년 만에 6배나 늘었다. 이 대학에 개설된 스카이프 입시 상담실에도 영국 고등학생들의 입학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상담을 받고 입학 전형이 시작되면 학교를 직접 방문하기도 한다.

영국 학생들이 네덜란드 대학으로 몰리는 이유는 엄청나게 비싸진 등록금에 있다. 재정적자 감축을 목표로 내건 영국 정부가 교육 예산을 대폭 삭감했기 때문이다. 1년에 3천 파운드였던 영국 대학의 등록금이 2012년 9천 파운드로 3배나 올랐다. 학비와 생활비를 대출을 통해 충당하는 대부분의 영국 대학생들에게 등록금 인상은 결국 빚 증가로 이어졌다. 영국 대학 졸업생의 1인당 평균 부채는 1억 원으로 늘어났다.

이미 영국 대학에 다니고 있던 재학생들이 외국 대학으로 옮겨가거나, 갑자기 오른 학비 때문에 학업을 포기했던 학생들이 외국에서 다시 학업을 이어가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영국 유학생이 많은 네덜란드에서는 한 달에 56시간 일을 하면 급여 외에도 500유로의 보조금을 받기 때문에 빚을 지지 않고도 대학을 졸업할 수 있다.

등록금 인상 후 영국에서는 대학생 숫자가 감소했다. 인상 첫해였던 2012년 잉글랜드의 대학생 수는 무려 13%나 급감했다. 대신 외국 유학을 고려하는 영국 학생 수가 크게 늘자 다른 나라의 대학들이 앞 다퉈 영국으로 달려와 신입생 모집경쟁에 나서는 새로운 현상까지 생겼다. 유럽연합 출신 유학생들에게도 자국 학생들과 똑같은 혜택을 주는 것은 네덜란드의 미래 전략이다. 졸업 후 네덜란드에서 자리를 잡으면 학자금 지원 이상으로 국가 재정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교육 예산을 삭감하면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경쟁력이 약화된다는 것이 네덜란드 교육계가 공유하는 철학이기도 하다. 영국 학생들은 정부의 등록금 인상 정책으로 더 많은 학생들이 영국 대학을 외면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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