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경각심’ 높아지지만 안전체험관은 고작 5곳

입력 2014.05.0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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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이 시국인 만큼 전시회나 박물관이 아닌 안전체험관에 오게 됐어요."

초등학교 3학년인 딸을 둔 차지윤(42) 씨는 어제(8일) 서울 동작구 보라매 안전체험관을 찾은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차 씨는 평소 친하게 지내는 학부모 3명과 각자의 자녀를 이끌고 이곳을 찾았다.

보라매 안전체험관에서는 지진, 태풍, 화재, 교통(지하철 포함)사고 등 다양한 유형의 재난을 실제와 유사한 수준으로 체험할 수 있으며 소방공무원으로부터 대응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지금까지 차 씨는 자녀와 주로 전시관, 박물관, 놀이 공원, 사설 직업 체험장 등을 다녔다. 하지만 지난달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로 생각이 바뀌었다.

차 씨는 "사설 직업 체험장이나 박물관은 아이들의 흥미를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안전체험관은 지진, 태풍 등 실제 상황과 유사한 재난 체험을 할 수 있어 아이들이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같은 날 경기 광명의 광남중학교 직업 체험·진로 탐구 동아리 학생 37명도 안전체험관을 찾았다. 일부 학교에서는 세월호 사고 이후 단체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있지만 지금이 학생들에 대한 안전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체험 시작 전 장난기 어린 눈빛을 보이던 학생들은 진도 7.0의 지진을 체험한 뒤 진지한 태도로 바뀌었다. 학생들은 가상 지진으로 바닥이 흔들리는 중에도 가스 밸브를 잠그고 나가는 문을 확보하는 등 소방공무원의 지시를 완벽히 수행했다.


<사진1. 8일 서울 동작구 보라매 안전체험관에서 학생들이 지진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2.  8일 서울 동작구 보라매 안전체험관에서 학생들이 머리에 손을 올리며 지진 발생 시 대처 방법을 실습하고 있다.>

김한솔(16) 양은 "실제로는 겪어본 적이 없는 지진을 체험하니 많이 무서웠다"며 "지진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잘 기억해야겠다"고 말했다.

특히 김 양은 "오늘 학교 가기 전 어머니가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많이 배우고 오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이수경 광남중 진로교사는 "언제 어떠한 방식으로 재난이 닥칠지 모르는 만큼 안전 교육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 진로교사는 이날을 포함해 학생들과 함께 총 다섯 차례나 안전체험관을 방문했다.

실제와 유사한 재난을 체험하고 재난 대처 능력을 키우고자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최근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 상왕십리역 전동차 충돌 사고 이후 안전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이 같은 수요는 더 커질 전망이다.

보라매 안전체험관 관계자는 "세월호 사고 이후 안전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체험관 이용 방법이나 이용 가능 여부 등을 묻는 전화가 많이 늘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기존에는 거의 학교, 기업체에서 방문했지만 요즘에는 학원, 학부모 모임, 아파트 주민 모임 등에서도 재난 체험에 큰 관심을 보인다"고 말했다.


<사진 3. 8일 서울 동작구 보라매 안전체험관에서 한 소방공무원이 학생들에게 완강기 사용법을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점차 증가하는 재난 체험에 대한 수요와 달리 안전체험관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지진, 태풍 등 다양한 유형의 재난을 경험하도록 시·도가 운영하는 안전체험관(어린이 전용 제외)은 서울 광나루·보라매 안전체험관, 전북 119 안전체험관, 대구 시민 안전 테마파크, 태백 365 세이프타운 등 5곳이다.

전국적으로 안전체험관이 부족하다 보니 재난 체험을 위해 수도권 외 지역에서 서울까지 올라오는 일도 빈번하다.

수도권에 거주한다고 해서 재난 체험이 쉽지만은 않다.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서울·수도권에 건립된 안전체험관은 고작 2곳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족들이 함께 외출하기 좋은 주말에 안전체험관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보라매 안전체험관(하루 4회 각 60명)의 경우 가족 단위 체험객이 많은 주말 시간 예약은 오는 7월까지 100% 마감됐다.

이달 1일부터 7월 예약 신청을 받기 시작했는데 일주일 만에 꽉 찬 것이다. 7월 말까지 평일 예약률도 59%에 달한다.

광나루 안전체험관(하루 3회 각 200명)도 사정은 비슷하다. 7월까지 주말 예약은 80%가 마감됐으며 평일 예약도 64%나 찼다.

전북 119 안전체험관은 5월 이후 예약이 폭주해 올해 말까지 3만5000명이 예약했다고 밝혔다. 이 안전체험관은 오는 여름 선박 사고를 포함한 물놀이 안전체험장을 새로 설치할 계획이다.

최근 야외 활동을 자제하는 학교의 방침으로 일부 예약이 취소됐지만 그 자리를 다른 단체들이 메우면서 여전히 높은 예약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수경 진로교사는 "학교 동아리 활동은 주로 평일 오전 수업을 마친 뒤 진행된다"며 "우리가 방문 가능한 시간에 예약하기 너무 어려웠다"고 말했다.

차현정 교사는 "안전체험관에서는 이론뿐 아니라 직접 실습할 수 있어 학생들에 큰 도움이 된다"며 "전교생이 함께하길 바라지만 체험 가능 인원이나 체험관이 너무 적어 아쉽다"고 말했다.

차 교사는 "안전체험관이 서울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학생들과 가까운 곳에 많이 있었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누리꾼들도 안전체험관 확대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김태연 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고속도로 휴게소에 간이 안전체험장을 갖춰 많은 국민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예산 운영상 일시에 안전체험관을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안전체험관 건립에는 통상적으로 약 220억원이 필요하며 서울 등 땅값이 비싼 지역은 400억원 이상이 든다. 안전체험관 건립 비용은 국비(50%)와 지방비(50%)로 충당된다.

김대희 소방방재청 119생활안전과 소방경은 "전국적으로 안전체험관이 매우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많은 예산이 필요한 사안이라 늘리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 소방경은 "안전체험관을 한번에 확대하는 것은 예산 제약 등으로 불가능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각 시·도별로 1개씩 건립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며 "안전체험관 수요와 시급성, 기존의 안전체험관과의 접근성 등을 고려해 우선 순위를 정하겠다"고 설명했다.

한편 천안시는 2013년 9월부터 중부권 안전체험관 건립 공사에 들어갔으며 오는 12월께 준공할 예정이다. 부산시는 2015년 12월 준공을 목표로 지난 4월 안전체험관 공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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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난 경각심’ 높아지지만 안전체험관은 고작 5곳
    • 입력 2014-05-09 11:17:42
    사회
"시국이 시국인 만큼 전시회나 박물관이 아닌 안전체험관에 오게 됐어요." 초등학교 3학년인 딸을 둔 차지윤(42) 씨는 어제(8일) 서울 동작구 보라매 안전체험관을 찾은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차 씨는 평소 친하게 지내는 학부모 3명과 각자의 자녀를 이끌고 이곳을 찾았다. 보라매 안전체험관에서는 지진, 태풍, 화재, 교통(지하철 포함)사고 등 다양한 유형의 재난을 실제와 유사한 수준으로 체험할 수 있으며 소방공무원으로부터 대응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지금까지 차 씨는 자녀와 주로 전시관, 박물관, 놀이 공원, 사설 직업 체험장 등을 다녔다. 하지만 지난달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로 생각이 바뀌었다. 차 씨는 "사설 직업 체험장이나 박물관은 아이들의 흥미를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안전체험관은 지진, 태풍 등 실제 상황과 유사한 재난 체험을 할 수 있어 아이들이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같은 날 경기 광명의 광남중학교 직업 체험·진로 탐구 동아리 학생 37명도 안전체험관을 찾았다. 일부 학교에서는 세월호 사고 이후 단체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있지만 지금이 학생들에 대한 안전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체험 시작 전 장난기 어린 눈빛을 보이던 학생들은 진도 7.0의 지진을 체험한 뒤 진지한 태도로 바뀌었다. 학생들은 가상 지진으로 바닥이 흔들리는 중에도 가스 밸브를 잠그고 나가는 문을 확보하는 등 소방공무원의 지시를 완벽히 수행했다. <사진1. 8일 서울 동작구 보라매 안전체험관에서 학생들이 지진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2.  8일 서울 동작구 보라매 안전체험관에서 학생들이 머리에 손을 올리며 지진 발생 시 대처 방법을 실습하고 있다.> 김한솔(16) 양은 "실제로는 겪어본 적이 없는 지진을 체험하니 많이 무서웠다"며 "지진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잘 기억해야겠다"고 말했다. 특히 김 양은 "오늘 학교 가기 전 어머니가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많이 배우고 오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이수경 광남중 진로교사는 "언제 어떠한 방식으로 재난이 닥칠지 모르는 만큼 안전 교육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 진로교사는 이날을 포함해 학생들과 함께 총 다섯 차례나 안전체험관을 방문했다. 실제와 유사한 재난을 체험하고 재난 대처 능력을 키우고자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최근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 상왕십리역 전동차 충돌 사고 이후 안전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이 같은 수요는 더 커질 전망이다. 보라매 안전체험관 관계자는 "세월호 사고 이후 안전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체험관 이용 방법이나 이용 가능 여부 등을 묻는 전화가 많이 늘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기존에는 거의 학교, 기업체에서 방문했지만 요즘에는 학원, 학부모 모임, 아파트 주민 모임 등에서도 재난 체험에 큰 관심을 보인다"고 말했다. <사진 3. 8일 서울 동작구 보라매 안전체험관에서 한 소방공무원이 학생들에게 완강기 사용법을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점차 증가하는 재난 체험에 대한 수요와 달리 안전체험관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지진, 태풍 등 다양한 유형의 재난을 경험하도록 시·도가 운영하는 안전체험관(어린이 전용 제외)은 서울 광나루·보라매 안전체험관, 전북 119 안전체험관, 대구 시민 안전 테마파크, 태백 365 세이프타운 등 5곳이다. 전국적으로 안전체험관이 부족하다 보니 재난 체험을 위해 수도권 외 지역에서 서울까지 올라오는 일도 빈번하다. 수도권에 거주한다고 해서 재난 체험이 쉽지만은 않다.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서울·수도권에 건립된 안전체험관은 고작 2곳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족들이 함께 외출하기 좋은 주말에 안전체험관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보라매 안전체험관(하루 4회 각 60명)의 경우 가족 단위 체험객이 많은 주말 시간 예약은 오는 7월까지 100% 마감됐다. 이달 1일부터 7월 예약 신청을 받기 시작했는데 일주일 만에 꽉 찬 것이다. 7월 말까지 평일 예약률도 59%에 달한다. 광나루 안전체험관(하루 3회 각 200명)도 사정은 비슷하다. 7월까지 주말 예약은 80%가 마감됐으며 평일 예약도 64%나 찼다. 전북 119 안전체험관은 5월 이후 예약이 폭주해 올해 말까지 3만5000명이 예약했다고 밝혔다. 이 안전체험관은 오는 여름 선박 사고를 포함한 물놀이 안전체험장을 새로 설치할 계획이다. 최근 야외 활동을 자제하는 학교의 방침으로 일부 예약이 취소됐지만 그 자리를 다른 단체들이 메우면서 여전히 높은 예약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수경 진로교사는 "학교 동아리 활동은 주로 평일 오전 수업을 마친 뒤 진행된다"며 "우리가 방문 가능한 시간에 예약하기 너무 어려웠다"고 말했다. 차현정 교사는 "안전체험관에서는 이론뿐 아니라 직접 실습할 수 있어 학생들에 큰 도움이 된다"며 "전교생이 함께하길 바라지만 체험 가능 인원이나 체험관이 너무 적어 아쉽다"고 말했다. 차 교사는 "안전체험관이 서울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학생들과 가까운 곳에 많이 있었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누리꾼들도 안전체험관 확대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김태연 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고속도로 휴게소에 간이 안전체험장을 갖춰 많은 국민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예산 운영상 일시에 안전체험관을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안전체험관 건립에는 통상적으로 약 220억원이 필요하며 서울 등 땅값이 비싼 지역은 400억원 이상이 든다. 안전체험관 건립 비용은 국비(50%)와 지방비(50%)로 충당된다. 김대희 소방방재청 119생활안전과 소방경은 "전국적으로 안전체험관이 매우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많은 예산이 필요한 사안이라 늘리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 소방경은 "안전체험관을 한번에 확대하는 것은 예산 제약 등으로 불가능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각 시·도별로 1개씩 건립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며 "안전체험관 수요와 시급성, 기존의 안전체험관과의 접근성 등을 고려해 우선 순위를 정하겠다"고 설명했다. 한편 천안시는 2013년 9월부터 중부권 안전체험관 건립 공사에 들어갔으며 오는 12월께 준공할 예정이다. 부산시는 2015년 12월 준공을 목표로 지난 4월 안전체험관 공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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