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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변호사 26년 만에 1,000명 육박…영향력 건재
입력 2014.06.01 (05:57) 수정 2014.06.01 (15:19) 연합뉴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회장 한택근) 소속 변호사 수가 출범 26년 만에 1천명 가까이로 늘었다.

민변은 여전히 사회 각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한국 민주화에 기여한 선배 인권 변호사들의 맥을 잇고 있다.

◇ 신규 가입자 눈에 띄게 증가 =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작년 5월부터 1년 동안 민변에 새로 가입한 변호사는 107명으로 최근 총 회원 수가 935명에 달했다.

회원 수가 900명을 넘어 1천명에 육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국 변호사 1만7천여명의 5% 수준이다.

1988년 5월 28일 출범한 민변은 매년 5월께 회원 수를 집계해왔다.

연간 신규 가입자도 10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했다.

앞서 2004년 5월∼2005년 5월 가입자는 53명에 그쳤다.

가입자가 눈에 띄게 늘어난 계기는 2008년 촛불 정국과 로스쿨 체제 도입 등으로 분석된다.

2007년 36명으로 줄었던 가입자는 2008년 78명으로 급증했다.

또 사법연수원 시절 보통 50∼70명 수준이었으나 로스쿨 졸업생이 배출되면서부터 100명 이상으로 뛰었다.

민변 관계자는 "회비를 내고 활동도 하는 회원은 전체의 3분의 1가량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 출범 당시 회원은 51명…꾸준히 외연 넓혀 = '민변'은 고(故) 조영래 변호사가 제안한 명칭이다.

정의실현 법조회와 청년변호사회를 기반으로 탄생했다.

초창기 민변은 젊은 변호사 51명이 모인 작은 조직이었다.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하고도 인권 변호사 길을 택한 김선수 변호사, 최연소 개업 변호사 기록을 세운 백승헌 변호사 등이 합류했다.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등도 있었다.

민변이 출범 후 1년여 동안 수임한 사건은 208건이었는데, 그 중 형사 사건이 190건으로 대부분이었다.

시국 사건을 도맡았다.

출범 10주년인 1998년께 민변 회원 수는 300명 안팎으로 늘었다.

이후 시국 사건뿐 아니라 비행장 소음 소송, 담배 소송 등 여러 공익 소송을 시도하면서 외연을 확대했다.

최근 대형 로펌에서 사회공헌 봉사인 '프로보노' 활동을 하는 변호사들 상당수도 민변 출신으로 알려졌다.

민변이 사회 각 분야 공익 법률지원 활동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다는 게 업계 평가다.

◇ 세부 분야 전문성 축적이 향후 과제 = 회원 1천명 시대를 맞은 민변의 사회적 영향력은 건재하다.

남은 과제는 전문성을 길러 이를 뒷받침하는 일이다.

최근 쌍용차 정리해고의 부당성이나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은 모두 민변 소속 변호사들 덕분에 세상에 알려졌다.

이런 활동은 전문성을 띤 위원회를 통해 이뤄졌다.

변호사들은 저마다 관심에 따라 노동, 통일, 여성 인권, 환경, 과거사 청산 등을 주제로 한 위원회에 모여 일한다.

회원이 증가하고 관심사가 다양해지면서 각 위원회가 갖춰지게 됐다.

현재 13개 분야로 나뉜 위원회는 앞으로 더 세분화될 수 있다.

지난달 회장 임기를 마친 장주영 변호사는 "회원들이 평소 민변 일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문적 역량을 어떻게 기르고 잘 축적할지가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라고 말했다.
  • 민변 변호사 26년 만에 1,000명 육박…영향력 건재
    • 입력 2014-06-01 05:57:04
    • 수정2014-06-01 15:19:16
    연합뉴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회장 한택근) 소속 변호사 수가 출범 26년 만에 1천명 가까이로 늘었다.

민변은 여전히 사회 각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한국 민주화에 기여한 선배 인권 변호사들의 맥을 잇고 있다.

◇ 신규 가입자 눈에 띄게 증가 =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작년 5월부터 1년 동안 민변에 새로 가입한 변호사는 107명으로 최근 총 회원 수가 935명에 달했다.

회원 수가 900명을 넘어 1천명에 육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국 변호사 1만7천여명의 5% 수준이다.

1988년 5월 28일 출범한 민변은 매년 5월께 회원 수를 집계해왔다.

연간 신규 가입자도 10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했다.

앞서 2004년 5월∼2005년 5월 가입자는 53명에 그쳤다.

가입자가 눈에 띄게 늘어난 계기는 2008년 촛불 정국과 로스쿨 체제 도입 등으로 분석된다.

2007년 36명으로 줄었던 가입자는 2008년 78명으로 급증했다.

또 사법연수원 시절 보통 50∼70명 수준이었으나 로스쿨 졸업생이 배출되면서부터 100명 이상으로 뛰었다.

민변 관계자는 "회비를 내고 활동도 하는 회원은 전체의 3분의 1가량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 출범 당시 회원은 51명…꾸준히 외연 넓혀 = '민변'은 고(故) 조영래 변호사가 제안한 명칭이다.

정의실현 법조회와 청년변호사회를 기반으로 탄생했다.

초창기 민변은 젊은 변호사 51명이 모인 작은 조직이었다.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하고도 인권 변호사 길을 택한 김선수 변호사, 최연소 개업 변호사 기록을 세운 백승헌 변호사 등이 합류했다.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등도 있었다.

민변이 출범 후 1년여 동안 수임한 사건은 208건이었는데, 그 중 형사 사건이 190건으로 대부분이었다.

시국 사건을 도맡았다.

출범 10주년인 1998년께 민변 회원 수는 300명 안팎으로 늘었다.

이후 시국 사건뿐 아니라 비행장 소음 소송, 담배 소송 등 여러 공익 소송을 시도하면서 외연을 확대했다.

최근 대형 로펌에서 사회공헌 봉사인 '프로보노' 활동을 하는 변호사들 상당수도 민변 출신으로 알려졌다.

민변이 사회 각 분야 공익 법률지원 활동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다는 게 업계 평가다.

◇ 세부 분야 전문성 축적이 향후 과제 = 회원 1천명 시대를 맞은 민변의 사회적 영향력은 건재하다.

남은 과제는 전문성을 길러 이를 뒷받침하는 일이다.

최근 쌍용차 정리해고의 부당성이나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은 모두 민변 소속 변호사들 덕분에 세상에 알려졌다.

이런 활동은 전문성을 띤 위원회를 통해 이뤄졌다.

변호사들은 저마다 관심에 따라 노동, 통일, 여성 인권, 환경, 과거사 청산 등을 주제로 한 위원회에 모여 일한다.

회원이 증가하고 관심사가 다양해지면서 각 위원회가 갖춰지게 됐다.

현재 13개 분야로 나뉜 위원회는 앞으로 더 세분화될 수 있다.

지난달 회장 임기를 마친 장주영 변호사는 "회원들이 평소 민변 일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문적 역량을 어떻게 기르고 잘 축적할지가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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