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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원·심재경 “에밀레로 인연…30여년 음악 벗이죠”
입력 2014.06.05 (07:39) 연합뉴스
30여 년 지기이지만 카메라 앞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은 멋적은 듯했다.

"안 되겠다. 맥주 한 병 마시면서 하자."(강승원)

고(故)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작곡한 강승원(55)과 1983년 대학가요제 대상팀인 '에밀레' 출신 싱어송라이터 심재경(49)은 맥주 한 모금으로 해갈(解渴)하고는 다시 눈이 마주치자 엷게 웃었다.

강승원은 대중에게 그의 음악으로 더 친숙하다. '서른 즈음에'뿐만 아니라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로 시작되는 초코파이 광고 음악도 그가 만들었다. 현재 작곡가 겸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 음악 감독이다. 한동안 음악과 거리를 둔 심재경는 더욱 낯선 얼굴이다. 그는 미래에셋생명의 파이낸셜 컨설턴트(FC)로 재직 중이다.

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강승원과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심재경은 분명 다른 길을 걸은 차림새다. 그러나 인연의 공통분모를 찾기란 어렵지 않았다. 첫눈에는 주종(酒種)을 가리지 않는 애주가들이다.

강승원(물리학과 79학번)과 심재경(신문방송학과 83학번)은 서강대학교 선후배 사이. 강승원은 한 학번 선배 김광엽과 함께 1983년 서강대 노래패 에밀레를 만들었고, 심재경은 그해 에밀레 멤버로 대학가요제에 나가 김광엽이 작곡한 '그대 떠난 빈들에 서서'로 대상을 받았다.

이후 둘은 1990년대 보컬그룹 '우리동네사람들'로 함께 활동했고, 올해 각각 생애 첫 솔로 음반을 발표했다. 강승원의 음반 '강승원 1집 만들기 프로젝트'와 심재경의 '낙동연가'(洛東緣歌)다.

◇ 1980년대 청년 문화 공유…우리동네사람들로 다시 인연

늦봄 햇빛이 짱짱하던 날, 종로구 통의동의 한 카페에서 이들을 만났다.

강승원은 "대학 시절, 이 동네에 살아 근방을 잘 안다"며 "135번 버스가 서강대로 바로 안가고 마포로 돌아가서 205번 버스를 타고 연세대 앞에 내려 걸어 다녔다"고 혼잣말처럼 추억을 되새김했다.

1980년대 청년 문화를 공유한 이들은 어느덧 중년이 됐다. 심재경은 캠퍼스에서 처음 만난 '청년' 강승원을 또렷이 기억했다.

"형이 잔디밭에서 걸어오는데 이국적인 이미지였어요. (강승원이 '지금은 홍금보를 닮았다'고 하자) 당시엔 배우 최재성과 닮았었죠. 하하. 기타를 갖고 와서 우리들에게 노래 좀 해보라고 시키곤 했어요."(심재경)

강승원은 "서강대는 양희은 선배가 나온 학교여서 노래패가 있을 줄 알았는데 없어서 아쉬웠다"며 "광엽이 형을 도와 에밀레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코스모스 졸업을 할 즈음 결성돼 정작 본인은 공연 한번을 하고 활동하진 못했다.

이듬해 강승원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고 강승원과 심재경은 한동안 얼굴을 보기 어려웠다.

1989년 귀국한 강승원이 세검정 인근에 음악 스튜디오 '노래 은행'을 열었다. 개시 손님은 동물원이었다. "그다지 손님도 없고 장사할 마음도 없어 5~6년간 운영했다"며 "지하 1층이었는데 수도가 터져 곰팡이가 피길래 접었다"고 개구지게 말했다.

이즈음 심재경은 사회로 뛰어들었다. 대학가요제 수상 후 교내서 유명 인사였지만 가수로 나설 용기는 없었다. 1989년 12월 광고회사에 입사했고 외국계 마케팅 회사에서 7~8년, 그리고 지금은 스스로 '보험쟁이'가 된 지 2년이란다.

시절인연(時節因緣:때가 되어 인연이 합함)인 법. 강승원의 스튜디오를 아지트 삼아 음악 벗들이 모여들었다. 음악과 절연(絶緣)하지 못한 심재경은 1994년 강승원이 꾸린 그룹 '우리동네사람들'에 합류했다. 멤버는 동물원 출신 유준열, '사랑해요'를 부른 가수 고은희, 에밀레 출신이자 현재 심재경의 아내인 가수 김혜연 등이었다. 이곳에서 녹음한 이들의 1집(1994)은 비로소 명반으로 꼽힌다. 이 음반에 담긴 '서른 즈음에'는 김광석이 강승원에게 곡을 받아가 몇 개월 먼저 내면서 노래 '주인'이 됐다.

"미국서 귀국해 홍제동에 집을 짓는데 돈이 필요했어요. 그때 ('광야에서'를 작곡한) 문대현이 LG미디어에 다녔는데 선급금 4천만 원을 줄 테니 "형, 판 냅시다" 하더군요. 제 음반을 낼까 고민하다가 결국 우리동네사람들 음반을 냈죠."(강승원)

이때 카페 문을 열고 문대현이 불쑥 들어와 앉아 귀를 기울였다. 강승원과 문대현도 26년 지기다.

강승원은 "1988년 미국서 서울 나왔을 때 (김)광석이를 만나려고 술집에 갔는데 자기 친구라고 소개해준 게 대현이었다"고 했다. 문대현은 "그날이 광석이한테 내가 만든 노래 '꽃'을 준 날"이라며 "그런데 그 노래를 지금 아이유가 다시 부를 줄 어떻게 알았겠나"라고 '껄껄' 웃었다. 아이유는 최근 발표한 리메이크 앨범에 문대현이 작사·작곡한 '꽃'을 수록했다.

◇ "우린 중년의 신인 가수"…음반 낸 이유는?

첫 음반이 나오기까지 둘은 먼 길을 돌아왔다. 강승원은 고교 시절 음악을 시작한 지 40년 만에, 자신의 음반을 준비한 지 20여 년 만에 숙제를 해결했다. 심재경도 대학가요제 이후 30여 년 만의 결과물이다.

강승원은 "고 1때부터 곡을 쓰기 시작해 미발표곡이 40~50곡 되더라"며 "스튜디오를 운영할 때부터 나의 첫 음반을 녹음했는데 내려고 하니 후진 것 같아서 안 내고 미루다가…"라며 말을 흐렸다.

"용산고등학교 다닐 때 형들 따라 기타를 쳤는데 처음 만든 곡이 '가을 바다 찾아가보니'였죠. 제가 미국 간 사이에 (동물원의) 유준열이 이 노래로 동네 가요제 나가서 1등을 해 상금 10만 원을 탔더군요. 술을 뜯어 먹은 기억이 나네요. 하하."(강승원)

음반을 낸 건 노후대책이란다. "저작권료도 별로 안 되고 (1992년 KBS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를 시작으로 '유희열의 스케치북'까지) 20여 년 간 음악 감독을 한 것도 돈을 조금 받기 때문"이라고 명쾌하게 말했다.

강승원을 신인 가수로 만들고자 그의 음악성과 인간성을 지지하는 동료들이 발 벗고 나섰다. 문대현을 주축으로 김창기, 유준열 등이 음반 제작을 위한 펀드 조성 계획을 세웠고, 후배들인 이적이 '나는 지금...(40 Something)'을, 존박이 '술'을 노래해 줬다. '나는 지금'은 '서른 즈음에'의 40대 버전이고, '술'은 애주가인 그가 술에 바치는 재미있는 헌사(獻辭)다. "온탕과 냉탕을 오간 곡들"이라고 설명한다.

문대현이 "500만 원씩 8계좌를 모았는데 승원이 형 음반 투자자가 생겨 펀드가 필요 없어졌고 결국 말에 그쳤다"고 거들자 강승원은 "장가 안 간 친구, 의사 두 명 등 모두 나랑 노는 애들"이라며 웃었다.

그에 반해 심재경의 음악 작업은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이었다. "지금 하는 일이 '나인 투 파이브' 직장 생활이 아니어서 엄두를 냈다"며 "전곡을 쓰는데 3~4개월이 걸렸고 이후 6~7개월간 녹음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의 음반은 어린 시절 고향 안동과 낙동강변에서의 세밀한 기억을 담아 지역색이 뚜렷하다. 대중적으로 소비되기엔 다소 무모한 도전일 듯하다. "내 고향 사람들과 공유할 추억이지만 꼭 안동 출신이 아니어도 향수를 느낄 것"이라며 "안동 출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합하면 200만~300만 명은 되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강승원은 "재경이가 '블루 오션'을 찾은 것"이라며 "앞으로 대구, 목포, 북한까지 팔도강산 노래를 부르면 노후대책은 완성되는 것"이라고 거들었다.

특히 앨범 타이틀곡 '참 좋으이더'에선 '안녕하시이껴? 밥 잡샀니껴? 우리 참 오랫 마이씨더, 참 좋으이더'란 경상도 사투리가 알싸하다. 수록곡 '아지매쏭', '제천역 가락국수' 등에선 기타, 아코디언이 이끄는 어쿠스틱 사운드에 구수한 노랫말이 담겨 포근하다.

강승원은 "재경이 노래는 거짓말 안 하고 '정말' 같은 예쁜 노래들"이라며 "난 특히 노래 잘하는 마나님과 함께 부른 '청량산 밤하늘'이 좋더라"고 칭찬했다.

시간을 돌려보니 속절없이 흘러간 세월에 대한 잔향(殘香)도 남는다.

"우리동네사람들 2집을 못 낸 게 아쉬워요. 반주 녹음까지 했는데 제가 게을렀고 친구들도 흩어졌죠. '술'도 그때 노래예요. 당시 이 노래를 여자 멤버에게 시켰더니 가사가 야하게 들린다며 도저히 못 부르겠다고 하더라고요. 하하."(강승원)

"나이를 먹어가며 그때 느끼는 곡들을 좀 만들어놓을 걸 하는 후회가 돼요. 요즘은 감상적이 돼선지 가사가 잘 정리되는데 그땐 심기가 복잡했죠."(심재경)

첫발을 디뎠으니 음악 작업은 밀고 나갈 생각이란다.

1집 수록곡을 쪼개서 발표하고 있는 강승원은 이미 2집 곡까지 준비해뒀다.

그는 "지금껏 음악은 놀이이고 재미였다"며 "하지만 앞으로 발표할 '내 음악이 지금 시절과 맞닥뜨려 뭘 할 수 있을까'란 무게는 있다"고 했다.

"아직 음악에 '올인'할 환경은 아니지만, 지금껏 3분의 1만 발을 담갔다면 이제 3분의 2 정도로 옮겨가 볼까 해요. 다음 음반이 언제라고 약속할 순 없지만 곡을 쓰고 부르는 일은 계속할 겁니다."(심재경)
  • 강승원·심재경 “에밀레로 인연…30여년 음악 벗이죠”
    • 입력 2014-06-05 07:39:07
    연합뉴스
30여 년 지기이지만 카메라 앞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은 멋적은 듯했다.

"안 되겠다. 맥주 한 병 마시면서 하자."(강승원)

고(故)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작곡한 강승원(55)과 1983년 대학가요제 대상팀인 '에밀레' 출신 싱어송라이터 심재경(49)은 맥주 한 모금으로 해갈(解渴)하고는 다시 눈이 마주치자 엷게 웃었다.

강승원은 대중에게 그의 음악으로 더 친숙하다. '서른 즈음에'뿐만 아니라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로 시작되는 초코파이 광고 음악도 그가 만들었다. 현재 작곡가 겸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 음악 감독이다. 한동안 음악과 거리를 둔 심재경는 더욱 낯선 얼굴이다. 그는 미래에셋생명의 파이낸셜 컨설턴트(FC)로 재직 중이다.

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강승원과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심재경은 분명 다른 길을 걸은 차림새다. 그러나 인연의 공통분모를 찾기란 어렵지 않았다. 첫눈에는 주종(酒種)을 가리지 않는 애주가들이다.

강승원(물리학과 79학번)과 심재경(신문방송학과 83학번)은 서강대학교 선후배 사이. 강승원은 한 학번 선배 김광엽과 함께 1983년 서강대 노래패 에밀레를 만들었고, 심재경은 그해 에밀레 멤버로 대학가요제에 나가 김광엽이 작곡한 '그대 떠난 빈들에 서서'로 대상을 받았다.

이후 둘은 1990년대 보컬그룹 '우리동네사람들'로 함께 활동했고, 올해 각각 생애 첫 솔로 음반을 발표했다. 강승원의 음반 '강승원 1집 만들기 프로젝트'와 심재경의 '낙동연가'(洛東緣歌)다.

◇ 1980년대 청년 문화 공유…우리동네사람들로 다시 인연

늦봄 햇빛이 짱짱하던 날, 종로구 통의동의 한 카페에서 이들을 만났다.

강승원은 "대학 시절, 이 동네에 살아 근방을 잘 안다"며 "135번 버스가 서강대로 바로 안가고 마포로 돌아가서 205번 버스를 타고 연세대 앞에 내려 걸어 다녔다"고 혼잣말처럼 추억을 되새김했다.

1980년대 청년 문화를 공유한 이들은 어느덧 중년이 됐다. 심재경은 캠퍼스에서 처음 만난 '청년' 강승원을 또렷이 기억했다.

"형이 잔디밭에서 걸어오는데 이국적인 이미지였어요. (강승원이 '지금은 홍금보를 닮았다'고 하자) 당시엔 배우 최재성과 닮았었죠. 하하. 기타를 갖고 와서 우리들에게 노래 좀 해보라고 시키곤 했어요."(심재경)

강승원은 "서강대는 양희은 선배가 나온 학교여서 노래패가 있을 줄 알았는데 없어서 아쉬웠다"며 "광엽이 형을 도와 에밀레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코스모스 졸업을 할 즈음 결성돼 정작 본인은 공연 한번을 하고 활동하진 못했다.

이듬해 강승원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고 강승원과 심재경은 한동안 얼굴을 보기 어려웠다.

1989년 귀국한 강승원이 세검정 인근에 음악 스튜디오 '노래 은행'을 열었다. 개시 손님은 동물원이었다. "그다지 손님도 없고 장사할 마음도 없어 5~6년간 운영했다"며 "지하 1층이었는데 수도가 터져 곰팡이가 피길래 접었다"고 개구지게 말했다.

이즈음 심재경은 사회로 뛰어들었다. 대학가요제 수상 후 교내서 유명 인사였지만 가수로 나설 용기는 없었다. 1989년 12월 광고회사에 입사했고 외국계 마케팅 회사에서 7~8년, 그리고 지금은 스스로 '보험쟁이'가 된 지 2년이란다.

시절인연(時節因緣:때가 되어 인연이 합함)인 법. 강승원의 스튜디오를 아지트 삼아 음악 벗들이 모여들었다. 음악과 절연(絶緣)하지 못한 심재경은 1994년 강승원이 꾸린 그룹 '우리동네사람들'에 합류했다. 멤버는 동물원 출신 유준열, '사랑해요'를 부른 가수 고은희, 에밀레 출신이자 현재 심재경의 아내인 가수 김혜연 등이었다. 이곳에서 녹음한 이들의 1집(1994)은 비로소 명반으로 꼽힌다. 이 음반에 담긴 '서른 즈음에'는 김광석이 강승원에게 곡을 받아가 몇 개월 먼저 내면서 노래 '주인'이 됐다.

"미국서 귀국해 홍제동에 집을 짓는데 돈이 필요했어요. 그때 ('광야에서'를 작곡한) 문대현이 LG미디어에 다녔는데 선급금 4천만 원을 줄 테니 "형, 판 냅시다" 하더군요. 제 음반을 낼까 고민하다가 결국 우리동네사람들 음반을 냈죠."(강승원)

이때 카페 문을 열고 문대현이 불쑥 들어와 앉아 귀를 기울였다. 강승원과 문대현도 26년 지기다.

강승원은 "1988년 미국서 서울 나왔을 때 (김)광석이를 만나려고 술집에 갔는데 자기 친구라고 소개해준 게 대현이었다"고 했다. 문대현은 "그날이 광석이한테 내가 만든 노래 '꽃'을 준 날"이라며 "그런데 그 노래를 지금 아이유가 다시 부를 줄 어떻게 알았겠나"라고 '껄껄' 웃었다. 아이유는 최근 발표한 리메이크 앨범에 문대현이 작사·작곡한 '꽃'을 수록했다.

◇ "우린 중년의 신인 가수"…음반 낸 이유는?

첫 음반이 나오기까지 둘은 먼 길을 돌아왔다. 강승원은 고교 시절 음악을 시작한 지 40년 만에, 자신의 음반을 준비한 지 20여 년 만에 숙제를 해결했다. 심재경도 대학가요제 이후 30여 년 만의 결과물이다.

강승원은 "고 1때부터 곡을 쓰기 시작해 미발표곡이 40~50곡 되더라"며 "스튜디오를 운영할 때부터 나의 첫 음반을 녹음했는데 내려고 하니 후진 것 같아서 안 내고 미루다가…"라며 말을 흐렸다.

"용산고등학교 다닐 때 형들 따라 기타를 쳤는데 처음 만든 곡이 '가을 바다 찾아가보니'였죠. 제가 미국 간 사이에 (동물원의) 유준열이 이 노래로 동네 가요제 나가서 1등을 해 상금 10만 원을 탔더군요. 술을 뜯어 먹은 기억이 나네요. 하하."(강승원)

음반을 낸 건 노후대책이란다. "저작권료도 별로 안 되고 (1992년 KBS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를 시작으로 '유희열의 스케치북'까지) 20여 년 간 음악 감독을 한 것도 돈을 조금 받기 때문"이라고 명쾌하게 말했다.

강승원을 신인 가수로 만들고자 그의 음악성과 인간성을 지지하는 동료들이 발 벗고 나섰다. 문대현을 주축으로 김창기, 유준열 등이 음반 제작을 위한 펀드 조성 계획을 세웠고, 후배들인 이적이 '나는 지금...(40 Something)'을, 존박이 '술'을 노래해 줬다. '나는 지금'은 '서른 즈음에'의 40대 버전이고, '술'은 애주가인 그가 술에 바치는 재미있는 헌사(獻辭)다. "온탕과 냉탕을 오간 곡들"이라고 설명한다.

문대현이 "500만 원씩 8계좌를 모았는데 승원이 형 음반 투자자가 생겨 펀드가 필요 없어졌고 결국 말에 그쳤다"고 거들자 강승원은 "장가 안 간 친구, 의사 두 명 등 모두 나랑 노는 애들"이라며 웃었다.

그에 반해 심재경의 음악 작업은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이었다. "지금 하는 일이 '나인 투 파이브' 직장 생활이 아니어서 엄두를 냈다"며 "전곡을 쓰는데 3~4개월이 걸렸고 이후 6~7개월간 녹음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의 음반은 어린 시절 고향 안동과 낙동강변에서의 세밀한 기억을 담아 지역색이 뚜렷하다. 대중적으로 소비되기엔 다소 무모한 도전일 듯하다. "내 고향 사람들과 공유할 추억이지만 꼭 안동 출신이 아니어도 향수를 느낄 것"이라며 "안동 출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합하면 200만~300만 명은 되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강승원은 "재경이가 '블루 오션'을 찾은 것"이라며 "앞으로 대구, 목포, 북한까지 팔도강산 노래를 부르면 노후대책은 완성되는 것"이라고 거들었다.

특히 앨범 타이틀곡 '참 좋으이더'에선 '안녕하시이껴? 밥 잡샀니껴? 우리 참 오랫 마이씨더, 참 좋으이더'란 경상도 사투리가 알싸하다. 수록곡 '아지매쏭', '제천역 가락국수' 등에선 기타, 아코디언이 이끄는 어쿠스틱 사운드에 구수한 노랫말이 담겨 포근하다.

강승원은 "재경이 노래는 거짓말 안 하고 '정말' 같은 예쁜 노래들"이라며 "난 특히 노래 잘하는 마나님과 함께 부른 '청량산 밤하늘'이 좋더라"고 칭찬했다.

시간을 돌려보니 속절없이 흘러간 세월에 대한 잔향(殘香)도 남는다.

"우리동네사람들 2집을 못 낸 게 아쉬워요. 반주 녹음까지 했는데 제가 게을렀고 친구들도 흩어졌죠. '술'도 그때 노래예요. 당시 이 노래를 여자 멤버에게 시켰더니 가사가 야하게 들린다며 도저히 못 부르겠다고 하더라고요. 하하."(강승원)

"나이를 먹어가며 그때 느끼는 곡들을 좀 만들어놓을 걸 하는 후회가 돼요. 요즘은 감상적이 돼선지 가사가 잘 정리되는데 그땐 심기가 복잡했죠."(심재경)

첫발을 디뎠으니 음악 작업은 밀고 나갈 생각이란다.

1집 수록곡을 쪼개서 발표하고 있는 강승원은 이미 2집 곡까지 준비해뒀다.

그는 "지금껏 음악은 놀이이고 재미였다"며 "하지만 앞으로 발표할 '내 음악이 지금 시절과 맞닥뜨려 뭘 할 수 있을까'란 무게는 있다"고 했다.

"아직 음악에 '올인'할 환경은 아니지만, 지금껏 3분의 1만 발을 담갔다면 이제 3분의 2 정도로 옮겨가 볼까 해요. 다음 음반이 언제라고 약속할 순 없지만 곡을 쓰고 부르는 일은 계속할 겁니다."(심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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